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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34) 조르쥬 브라크(17) 후안 그리(15) 페르낭 레제(15)


메트뮤지엄 레오나드 로더 입체파 4인방 컬렉션 특별전



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

October 20, 2014-–February 16, 2015@The Me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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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10월 20일 개막에 맞추어 레오나드 로더 입체파 컬렉션 81점을 공개하는 특별전 배너로 외관을 치장했다.

 
지난 10월 20일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시작된 '큐비즘: 레오나드 A. 로더 컬렉션(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전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조르쥬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 후안 그리(Juan Gris, 1887–1927), 그리고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1881–1955) 등 입체파 4인방의 회화, 조각, 드로잉 등 81점을 소개하고 있다. 

레오나드 A. 로더(Leonard A. Lauder) 에스테로더 명예회장이 30여년간 집요하게 구입해온 후 메트뮤지엄에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진 이번 전시에는 큐비즘을 창시한 피카소(34점)와 브라크(17점)을 비롯, 입체파 화가 그리(15점), 레제(15점) 등 1906년부터 1924년 사이에 제작된 로더 컬렉션을 전시 중이다. 

'큐비즘: 레오나드 A. 로더 컬렉션' 전시를 기해 메트 특별전과 큐비즘에 대해 연재한다.


큐비즘 탐구
<2> 큐비즘 Q&A: 입체파에 대해 궁금한 것 10가지



<2> 큐비즘 Q&A: 입체파에 대해 궁금한 것 10가지 



▶큐비즘(Cubism)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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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Braque. The Terrace at the Hôtel Mistral, 1907/ Georges Braque, Trees at L'Estaque, 1908



1907년 스페인 출신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프랑스 출신 조르쥬 브라크(Georges Braque)가 창시한 미술운동. 르네상스 이후 대상을 복사하는 사실주의적 전통해서 해방시킨 미술의 혁명이다.

큐비즘(1907-1914)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조였다. 큐비즘은 대상을 해체, 분석해서 추상적인 형태로 재조합했다.


1908년 가을 아트딜러 다니엘 헨리 칸 웨일러(Daniel-Henry Kahnweiler)이 기획한 전시에서 마티스는 야수파였던 브라크가 그린 풍경화 '에스타크의 나무들(Trees at L’Estaque, 1908)에 대해 "조그만 입방체로 만들어진 회화(painting made of small cubes)"라고 비야냥거렸다. 이 전시 리뷰에서  비평가 루이 보셀르(Louis Vauxcelles)가 ‘큐비즘’이라는 말을 쓰면서 공식화했다



▶왜 큐비즘이 나왔나?


20세기 초 세상을 변화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으로 현실은 복잡하고, 애매모호하며, 철학적인 의구심과 문화적 다양성이 화두로 등장했다. 이로써, 하나의 시각보다 다양한 관점이 불가피했다. 또한, 문호가 개방되면서 동양과 서양, 원시와 산업화 사회의 문화적 상호작용으로 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해졌다.



▶큐비즘의 특징은? 


00014. Nude in an Armchair_Picasso (2).jpg Pablo Picasso, Nude in an Armchair, 1909


회화는 모방이 아니다. 전통을 거부하면서, 화가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다.

관람자의 눈은 그림의 표면에 머무르면서 3차원적인 체험 속으로 초대된다. 화가는 대상을 작은 조각으로 분해한 후 구도를 재편성한다. 화가는 대상의 앞, 뒤, 옆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은 분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품을 조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브라크와 피카소의 큐비즘 회화는 르네상스의 하나의 시점에서 보는 개념으로부터 해방선언이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입체파 스타일의 복잡한 그림에서 악기나 커튼 등 확연한 물체를 통해 관람객이 단서를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면서 정물에 신문이나 악보, 상표 등 비정통적인 소재를 미술에 끌어들였다. 



▶큐비즘에 영향을 준 화가는?


00cezanne.jpg 폴 세잔(1839-1906)


큐비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이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이었다. 1904년 파리의 가을 미술전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 )’에서 열린 세잔 회고전에서 3차원적인 입체적 그림이 소개됐으며, 이것이 큐비즘의 원동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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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Cézanne, Le Mont Sainte-Victoire au-dessus de la route du Tholonet, 1896-98, Musée d'Etat de l'Ermitage, Saint-Pétersbourg



살롱 도톤느엔 폴 세잔의 작품 31점을 소개하는 갤러리가 마련됐다. 인물화, 자화상, 정물화, 풍경화 및 목욕하는 사람들 시리즈 등 대부분이 콜렉터 앙브로아즈 볼라르 소장품이었다. 그해 살롱에는 르노아르와 툴루즈 로트렉이 각각 35, 28점, 마티스가 14점을 전시했으며, 당시 19세였던 로버트 들로니도 1점으로 참가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세잔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세잔이 자연 속에 내재한 ‘입체적인 건축성’을 신봉했으며, 미술이란 현실의 모방이나 환상이 아니라 형태의 새로운 ‘언어’를 통해 창조하는 새로운 종류의 현실이라는 것을 믿었다. 이로써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를 배격하고,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미술가의 해석력과 다양한 관점이 중요해졌다. 



▶큐비즘의 창시자와 추종자들은?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쥬 브라크가 선두주자로 나섰고, 이후 쟝 메칭거(Jean Metzinger), 알버트 글라이즈(Albert Gleizes), 로버트 들로니(Robert Delaunay), 앙리 르 포코니에(Henri Le Fauconnier), 페르낭 레제( Fernand Léger), 후안 그리(Juan Gris)가 참가했다.



▶최초의 큐비즘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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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Museum of Modern Art


피카소가 ‘아비뇽의 여인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로 큐비즘의 문을 활짝 열었다. 

바르셀로나의 홍등가에 있는 매춘부들의 모습을 아프리카 가면에서 영감을 얻은 모티프를 가미하면서 기하학적으로 해부해 다양한 앵글로 명암을 표현했다. 피카소는 르네상스 이후 회화의 불문율이었던 하나의 정지된 시점과 조화로운 비율을 거부한 것이다.


피카소는 큐비즘으로 구속 대신 자유를 얻었다. 대상을 모방하지 않고, 새로운 회화적 언어를 구축하게 된다. 



▶야수파 마티스의 반응은? 


000matisse-1309bf9add42aa1b1a3b88450341ab59358cd21e-s6-c30.jpg 앙리 마티스(1869-1954)


피카소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야수파 마티스는 브라크의 그림을 본 후 "조그만 입방체로 만들어진 회화(painting made of small cubes)"라고 비야냥거렸다고 전해진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관계는?


000picasso1922.jpg  000Georges_Braque,_1908,_photograph_published_in_Gelett_Burgess,_The_Wild_Men_of_Paris,_Architectural_Record,_May_1910.jpg 피카소(왼쪽)와 브라크(오른쪽)


몽마르트르의 화가 브라크(1882-1963)는 처음 피카소(1881-1973)의 ‘아비뇽의 여인들’을 본 후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다양한 시점을 조합한 ‘대형 누드’(1908)를 그리게 된다. 이후로 피카소와 브라크의 예술적인 우정과 동업관계가 시작된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밀월관계는 1908년 경부터 1914년 브라크가 전쟁터로 나갈 때까지 약 6년간 지속됐다. 


1882년 파리 근교 아르장퇴이유에서 태어난 브라크는 1902년 몽마르트르에 정착했고, 198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904년 몽마르트르로 들어갔다. 세잔을 선망했던 브라크는 느긋한 속도로 작업하는 모더니스트 화가였고, 피카소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실험하고 신속하게 작업하는 유형의 화가였다. 이토록 대조적인 화가들의 협동으로 큐비즘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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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Head of a Man, 1912/ Composition with Violin, 1912


1909년경 큐비즘의 쌍두마차 브라크와 피카소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피카소는 “거의 매일 저녁 내가 브라크의 작업실로 가거나, 브라크가 내 작업실로 왔다. 우리는 각자 낮에 무엇을 그렸나를 봐야했다. 그리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판했다. 그림은 우리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기 전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이즈음 피카소와 브라크는 쌍둥이같았다. 이들의 작품은 누구의 것인지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색채, 질감, 선의 구조가 유사했다.


그러나, 브라크는 생애 내내 다양한 매체로 지속적으로 탐구와 실험을 하던 피카소의 그늘에 가려지게 된다. 나이는 비숫했지만, 피카소는 10년을 더 살며 5만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천재는 피카소, 스타도 피카소였다.



▶큐비즘이 콜라쥬를 시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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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Braque. Violin and Sheet Music: "Petit Oiseau", 1913


피카소와 브라크는 캔버스에 신문, 악보, 카드, 식당 메뉴 등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소품들을 끌어왔다. 이로써 콜라쥬(Collage)가 탄생하게 된다. 로버트 라우셴버그도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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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nand Léger. The Village, 1914


한편, 페르낭 레제는 기계, 로보트, 건물 등 기계 문명을 반영하는 이미지들을 화폭에 담았다.



▶조화의 미술로서의 큐비즘


0008. Still Life with Checked Tablecloth_Gris (2).jpg Juan Gris, Still Life with Checked Tablecloth, 1915


큐비즘의 또 하나의 미학은 조화(harmony)를 중시하는 미술운동이라는 점이다. 


큐비즘 작가들의 작품은 오브제가 서로 겹치면서 대상과 배경이 통합된다. 컬러도 회색, 갈색, 베이지, 옅은 녹색 등의 로우키로 서로 드러나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 된다. 말하자면, 하나가 돋보이지 않으며, 모든 대상을 중요하게 보는 스타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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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Carafe and Candlestick, 1909


▶개방시간: 일-목 오전 10시-오후 5시30분, 금-토 오전 10시-오후 9시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5월 첫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25), 65세 이상($17), 학생($12). *추천 기부금제(suggested donation). 

1000 5th Ave. 82nd St. 212-535-7710, www.metmuseum.org.


*메트뮤지엄 레오나드 로더 큐비즘 컬렉션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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