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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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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싱거 사전트와 친구들  Sargent: Portraits of Artists and Friends

마담 X에서 모네, 로댕, 예이츠, 헨리 제임스까지


June 30-Oct. 4, 2015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Scintillating exhibition of this formidable genius' The Guardian

★★★★ Daily Telegraph

★★★★ The Times

★★★★ The Independent

★★★★ Time Out


런던 국립초상화 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 2/12-5/25, 2015)에서 뉴욕 메트뮤지엄으로 순회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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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존 싱거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 의 국적은 미국이다. 하지만, 사전트의 삶은 코스모폴리탄적이었고, 유목민 타입에 가까웠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전트는 소년기에 가족과 세계로 여행을 다녔다. 

아마추어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림에 매료됐으며, 파리에서 공부한다. 인물화의 대가로 파리, 런던, 베니스 그리고 미국까지 행동의 반경을 넓혔다. 


사전트가 위임받아 그린 인물화에는 반 다이크나 앵그르의 인물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물의 얼굴 표정과 손에는 모델의 성격이 드러나고, 의상은 캐릭터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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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문학, 연극, 영화를 사랑했던 문화인 사전트는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화가 모네, 로댕, 폴 엘류, 예이츠, 스티븐슨, 헨리 제임스 등 작가들과도 친분을 나누었고, 그들을 화폭에 담았다. 사전트는 돈 벌이로 하는 초상화보다는 친구들과 예술가들을 부담없이 그리면서 더욱 실험적인 구도로 팔레트와 붓을 과감하게 놀린듯 하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6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리는 '사전트: 예술가들과 친구들 인물화(Sargent: Portraits of Artists and Friends)'는 사전트의 삶 속으로, 인물들의 내면으로 유영하게 만드는 특별전이다.



Sargent: Portraits of Artists and Friends

존 싱거 사전트(1856-1925)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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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러스 듀랑 Carolus-Duran (1837-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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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트의 가족은 1874년 파리로 이주, 라이트 뱅크 샹젤리제 인근의 고급 아파트에 정착했다. 아버지 사전트는 아들이 18살 때 몽파르나스에서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던 화가 카롤러스 듀랑에게 개인 교습을 시켰다. 사전트는 1년도 채되지 않아 에콜드 보자르에 입학했다.

사전트는 1879년 23세에 스승 카롤러스 듀랑의 초상화를 그려 파리 미술계에서 초상화가로 인정받는다. 대담하면서도 극적으로 듀랑을 포착하며 청출어람, 이미 스승보다 나은 제자로 올라서게 된다. 듀랑의 컬러에 달린 붉은 장식은 레종 도뇌르 훈장이다. 스타 제자인 사전트는 초상화 상단 오른쪽에 스승에게 헌사한다고 썼다.


마담 X의 초상(Portrait of Madame X, 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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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별명은 '마담 X' 본명은 버지니 거트로. 사전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파리에서는 악명높게 만든 초상화다. 프랑스의 은행가와 결혼한 미모의 미국인 버지니 고트로는 당대 사교계의 명사였고, 바람둥이로 알려졌다. 마담 고트로를 그려서 파리 살롱에 나가려 작정한 사전트는 그녀의 블랙 새틴 드레스 오른쪽 어깨의 끈을 내렸다. 그리고 그림을 공개하자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이나 매춘부가 아니라, 너무나 잘 알려진 여인의 어깨 끈 하나 내려갔다고 사교계와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사전트는 그림을 자신의 화실에 두고 있다가 몇 년 후 어깨 끈을 올려 그렸다. 그리고, 이 그림은 1916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으로 팔렸다. 당시 사전트는 자신의 그림 중 최고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림은 '마담 X'로 불리워졌고, 이에 관한 소설도 2편이 출간됐다.


로댕 Auguste Rodin (184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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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까미유 끌로델' 때문인지 조각가 로댕하면,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떠오른다. 그러나, 로댕은 비교적 날씬했던 것 같다. 사전트는 1884년 마흔네살의 로댕을 그렸다. 사전트는 열여섯살 연상인 로댕과 어울렸으며, 후엔 같은 후원자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1902년 로댕은 사전트를 "우리 시대의 반 다이크(Van Dyck)"라고 찬사를 보냈다. 17세기 네덜란드 초상화가 반 다이크에 비교한 것이다.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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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는 로댕과 나이가 같고, 친구였다. 1870년 중반 모네와 사귀기 시작한 사전트는 1887년 로댕과 함께 모네가 살며 작업하는 지베르니로 여행을 한다. 이때 그린 모네 초상화는 1897냔 사전트가 뉴욕의 내셔널아카데미오브 디자인에서 학위를 받기위해 제출한 작품이었다. 사전트는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을 흡수했다. '마담 X' 스캔달로 영국으로 이주한 후 시골 풍경에서 인상주의 스타일이 드러난다. 

사전트는 친구들의 모습을 스케치한 후 선물로 주곤 했다. 그러나, 1885년 모네와 그의 부인이 있는 시골 풍경을 그린 이 작품은 모네의 회화와 함께 죽을 때까지 갖고 있었다. 

 
폴 세자르 엘류 Paul César Helleu (1859-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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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트는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면서 세살 아래 폴 세자르 엘류를 만나 평생 우정(?)을 나누었다. 사전트는 엘류를 모델로 많이 그렸다. 브루클린뮤지엄이 소장한 이 그림은 엘류와 부인이 강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사전트는 엘류와 뉴욕 그랜드센트럴터미널 내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으며, 그랜드 콩코스 천장의 별자리는 엘류가 그린 것이다. 그러나, 엘류의 별자리는 거꾸로여서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늘의 시선이었다는 해명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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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트는 엘류를 화가로서 성공시키기 위해 수시로 조언을 했다. 엘류를 모델로 한 이 드로잉을 파리의 자신 아파트에 죽을 때까지 걸어놓았다고 한다. 엘류는 딸에게 사전트가 평생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었다고 고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엘류는 1925년 사전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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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건라이브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드로잉전 'Life Lines: Portrait Drawings from Dürer to Picasso'(6/12-9/8)에도 사전트가 그린 엘류 수채화가 전시 중이다.



시인 W.B.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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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트는 아일랜드 출신 시인 예이츠가 1908년 시선집을 1부를 출판을 기해 책에 쓸 드로잉을 위임받았다. 벨벳 재킷과 리본 넥타이를 맨 모습의 드로잉에 대해 예이츠는 "매력있다. 매우기분 좋아진다"며 "사전트는 아주 좋은 친구"라고 썼다.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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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트는 '보물섬'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등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을 파리에서 만났다. 그리고, 초상화를 세점 그렸다. 그 초상화들은 특별했다. 모델의 근엄한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폐병에 걸린 작가의 신경쇠약을 영화 적으로 포착한 것. 스티븐슨의 11세 연상 미국인 아내 패니 오스본은 인도 드레스를 입은 채 의자에 널부러진 모습이 절반만 보인다. 그리고 중앙에는 열린 문이 더욱 수수께끼를 더한다. 인물화라기보다는 연극의 한 장면같다.  



소설가 헨리 제임스 Henry James(1843-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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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X'(1884) 스캔달로 화가로서 진로가 위기에 빠진 사전트는 이듬해 런던으로 이주했다. 이즈음 영국의 화가들 뿐만 아니라 소설가 헨리 제임스, 리처드 루이스 스티븐슨, 시인 W.B. 예이츠 등과 교류하며 초상화를 그렸다. 

뉴욕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소설가 헨리 제임스와 피렌체에서 태어난 미국인 화가 사전트는 서로 찬미했다. 1913년 헨리 제임스의 70세 생일을 기념해서 그린 초상화. 사전트를 보스턴의 아트콜렉터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에게 소개한 것도 헨리 제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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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뮤지엄 숍에서 판매 중인 헨리 제임스의 소설. '여인의 초상' '도브' '러브 템프테이션(the Golden Bowl)' '워싱턴 스퀘어'가 모두 영화로 제작됐다. 표지가 존 싱거 사전트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아트 콜렉터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Isabella Stewart Gardner (1840-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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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을 설립한 아트 콜렉터. 1886년 작가 헨리 제임스의 소개로 만나자 마자 반해 평생의 후원자가 됐다.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의 가드너는 사전트처럼 유럽을 여행하며 코스모폴리탄적인 삶을 꾸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드너는 특히 '마담 X'를 찬미했다. 이 관람자를 향해 정면을 응시하는 모델과 후광은 여러모로 관습적인 초상화의 규칙을 벗어난 것이다.


소설가 에두아르 파일러롱 Édouard Pailleron, 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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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카롤러스 듀랑의 초상화로 이름을 알린 사전트는 보헤미안 희곡작가 에두아르 파일러롱의 가족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파일러롱과 아내, 그리고 아들과 딸. 에두아르 파일러롱(베르사이유 궁전, 오르세이뮤지엄 소장), 아이들(데모인아트센터, 아이오와주), 마담 파일러롱(내셔널갤러리, 워싱턴 DC 소장)에 헤어져 있던 가족이 처음 랑데부했다.


에두아르와 마리-루이즈 파일러롱 Édouard and Marie-Louise Pailleron, 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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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러롱의 아들 에두아르와 딸 마리-루이즈의 초상. 오빠와 여동생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안 카페트에 오빠는 검은 옷, 여동생은 흰 드레스(사전트가 좋아하는 색) 차림으로, 소심한 오빠는 뒤에서, 동생은 화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동생이 주연, 오빠가 조연처럼 보인다. 

성난듯한 마리-루이즈는 훗날 작가가 됐는데, 사전트 앞에서 무려 83번을 앉아야 했으며, 옷과 머리 스타일 두고 싸웠다고 회고했다. 사전트는 때때로 피아노를 쳐주면서 모델들의 기분을 달래주었다고.  
 

IMG_4504-300-2.jpg Self-Portrait, 1906

렘브란트나 반 고흐는 자화상을 무수히 많이 그렸다. 사전트는 남들 그리기를 더 좋아했다. 자화상은 생애 단 3점을 남겼는데, 모두 위임받아 그린 것이다. 1906년 사전트는 그의 고향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으로부터 미국인 최초로 자화상을 위임받게 된다. 이 자화상엔 스승 카롤러스 듀랑 초상화처럼 레종 도뇌르 훈장을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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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n Terry as Lady Macbeth, 1889. 메트뮤지엄의 큐레이터 엘리자베스 콘하우저(Elizabeth Kornhauser, 왼쪽)와 스테파니 L. 허드리치(Stephanie L. Herdrich).

*The Artists Project: Kehinde Wiley on John Singer Sargent <Video>

http://artistproject.metmuseum.org/1/kehinde-wiley



“사전트는 모든 사람을 화려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크고, 날씬하게. 그러나, 모두 분위기가 있으며,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다.” 
 -앤디 워홀(1986)-

 

☞ John Singer Sargent(1856. 피렌체–1925, 런던)          


IMG_4504-300-3.jpg 자화상, 1886

당대 대표적인 초상화가. 베니스, 티롤, 중동, 몬타나, 메인, 플로리다 등 세계를 여행하며 유화 900여점, 수채화 2000여점을 남겼다.

미국인 안과의사인 아버지 피츠 윌리엄과 어머니 마리는 필라델피아에서 살았다.  누이가 두살 때 사망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신경쇠약에 시달리자, 치유를 위해 해외에서 살게 된다. 사전트 부부는 파리에 집을 두고,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위스의 휴양지에서 보냈다. 

존 싱거 사전트는 1856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필라델피아로 돌아가고, 어머니와 존, 그리고 4명의 동생이 함께 해외에서 살았지만, 이중 두 아이만 어린 시절을 넘기며 살아남았다.

그는 정식 학교교육을 받지 않고, 아마추어 화가였던 어머니의 홈 스쿨링을 받았다. 어린 사전트는 스케치북을 들고 유럽의 뮤지엄, 교회를 돌면서 성장했다. 


433px-John_Singer_Sargent_-_Morning_Walk1888-privatecollection.jpg 모네의 영향을 받은 Morning Walk, 1888, 개인소장

여행을 통해 미술, 음악, 문학에 조예가 깊고, 불어, 이탈리아, 독일어에 능통한 청년으로 자란다. 르네상스 화가 미켈란젤로, 티치아노와 틴토레토를 존경하며 화가를 꿈꾸었고, 피렌체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려 했다.

그러나, 학교 재조정 사정으로 파리로 이주해 카롤러스-듀랑으로부터 초상화를 배웠다. 이후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가 수학한다.
1874년 스타 미술학도로 떠오르면서 드가, 로댕, 모네, 휘슬러를 만났다. 이후 스페인으로 가서 거장 벨라스케즈의 그림을 연구하고 거장의 테크닉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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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X의 어깨 선을 내렸다고 조롱받은 사전트와 미래의 걸작 '마담 X'와 파리 스튜디오에서. 1985


존 싱거 사전트는 1884년 파리 살롱에 드레스 어깨끈이 흘러내린 ‘마담 X의 초상(Portrait of Madame X/Madame Pierre Gautreau)’를 출품해 스캔달을 일으키며 거센 혹평을 받는다. 이에 사전트는 파리를 도피, 런던으로 예술적인 망명을 했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소장한 이 초상화는 사전트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영국의 시골에서 묻혀서 풍경화를 그리며 지내던 사전트는 1885년 지베르니의 클로드 모네를 방문했다. 모네와의 만남 이후 인상주의 테크닉을 포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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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D. 로커펠러, 1917                                                     센트럴파크의 조경건축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1895

 
1887년엔 뉴욕과 보스턴을 방문한다.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의 초상화 등 20여명의 초상화를 위임받았다. 사전트가 첫 개인전을 연 곳은 보스턴이었다. 이후 사전트는 초상화가로 유명해져, 미국에서 런던으로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사전트는 무려 2000여점의 수채화를 그렸다. 위임받고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실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풍경을 그렸다. 

이곳저곳 여행하며 수채화를 그리는 시간이 그에겐 스트레스 해소 타임이었다. 사전트는 자연, 건축, 외국인, 산 등을 그렸으며, 그중 베니스 곤돌라를 소재로 한 풍경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베두인, 어부들을 그렸으며, 말년에는 메인, 플로리다와 몬타나 등지에서 가족, 친구, 정원, 분수대 등 수채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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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트 교회, 1904


1909년 사전트는 뉴욕에서 86점의 수채화로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중 83점은 브루클린뮤지엄에서 구입했다.
사전트는 1922년 뉴욕 그랜드센트럴 내 아트갤러리를 오픈했으며, 그랜드센트럴미술학교도 창립했다. 1924년 이 갤러리에서 사전트의 회고전이 열렸다.

사전트는 이듬해 4월 14일 영국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동성연애자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프랑스 화가 폴 엘류와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며, 그의 스케치가 거실에 죽을 때까지 걸려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