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sts
2015.10.18 20:40
세계 미술계에 부는 한국 단색화 열풍 (2) 크리스티 뉴욕 거장전(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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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Dansaekhwa):심오한 철학과 한국 미학의 만남
<2> 크리스티 뉴욕 한국 모던 추상화 & 단색화 8인전
2015년 10월 8일-23일, 크리스티 뉴욕
크리스티 뉴욕의 '한국 모던 추상화와 단색화 거장'전에서. 정윤아 스페셜리스트가 윤형근 화백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1970년대 태동했지만, 오랫동안 한국 미술사의 그늘에 가려졌던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 Tansaekhwa)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블루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부활하고 있다.
10월 8일부터 23일까지 록펠러센터 크리스티 뉴욕(Christie's New York)에서 열리는 '자연을 이루다: 한국 모던 추상화와 단색화(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전은 세계 미술의 메카 뉴욕에 한국의 모던 추상화와 단색화를 함께 소개하는 첫 전시다.
최근 세계 메이저 뮤지엄 큐레이터들과 학자들, 아트 컬렉터들이 새삼 단색화에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이유는 '단색화'를 연구한 영문 서적(*Joan Kee,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이 출간되어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크리스티 뉴욕의 정윤아 스페셜리스트는 무엇보다도 한국 추상화가 "철학적으로 심오하며,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며, 개념적으로 독특하다는 것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크리스티 뉴욕에 전시 중인 정상화 화백의 '무제' 시리즈(1987-2012)
이번 그룹전에는 김환기(Kim Whan-ki 金煥基, 1913-1974), 이성자(Rhee Seundja 李聖子, 1918-2009), 정창섭(Chung Chang Sup 丁昌燮, 1927-2011), 윤형근(Yun Hyong-Keun 尹亨根, 1928-2007) 등 4인의 작고한 작가와 박서보(Park Seo-Bo 朴栖甫, B. 1931), 정상화(Chung Sang-Hwa 鄭相和, B. 1932), 하종현(Ha Chong-Hyun 河鐘賢, B. 1935), 그리고 이우환(Lee Ufan 李禹煥 (B. 1936) 등 4인의 건재한 거장들이 뉴욕 크리스티 웨스트갤러리에서 랑데부하고 있다.
뉴욕 크리스티 전시엔 대여 작품 7점을 포함 33점이 소개되고 있으며, 11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홍콩 크리스티으로 이어질 전시회에선 같은 작가군의 다른 작품 24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이 전시회는 경매가 아니라 프라이빗 세일 형식으로 소개된다. 잊혀졌던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을 뉴욕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크리스티 갤러리는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다. http://www.christies.com
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
김환기(Kim Whan-ki 金煥基, 1913-1974)
김환기 화백의 '무제'(oil on cotton, 1971, 왼쪽)과 '산'(oil on canvas, 1958).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김환기-
한국 모더니즘의 제 1세대인 김환기 화백. 평론집 '자연을 노래한 조형시인'(윤난지 저)의 제목이 요약해주듯 김 화백에겐 자연이 영감이었으며, 그의 작품은 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크리스티 뉴욕에 선보이는 '산'(1958)과 '무제'(1971)는 김 화백이 산과 달, 매화와 달항아리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구상회화에서 '그랑 블루'의 청색을 기조로 한 점화법의 추상회화로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캔버스를 물들인 청색은 고향인 섬마을의 바닷가이자 하늘일 것 같다. 2013년 3월 크리스티 뉴욕에서 '달과 매화'(1953-54)가 66만3750달러에 낙찰됐다.
달과 매화(1953-54)
김환기 화백의 호는 수화(樹話).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거쳐 니혼대 미술학부 석사까지 마쳤다. 귀국 후 서울대와 홍익대 미대 교수를 지내다가 1956년 파리로 이주해 개인전을 6차례 열었다. 귀국 후 홍익대 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해 명예상을 수상을 계기로 1963년 뉴욕에 정착했다. 팝아트가 풍미하던 뉴욕에서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점화(點畵)법을 시작하며, 추상의 3천여점을 남겼다. 시인 이상의 부인이었던 수필가 김향안(변동림) 여사와 결혼했다.
이성자(Seund Ja Rhee李聖子, 1918-2009)
이성자 화백이 한국에 남았더라면 어떤 화풍을 보여주었을까?
이번 전시에서 흥미로운 작가는 유일한 여성인 이성자 화백이다. 1951년부터 2009년 작고할 때까지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 화백을 뒤늦게 발견하게된 것은 즐거움이다. 크리스티 뉴욕에 전시 중인 유화 6점 중 5점은 1958년-62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 대지, 양귀비꽃 등 자연과 어머니를 주제로 원과 직선, 떡살무늬를 연상시키는 디테일까지 기하학적 이미지가 컬러풀하며 붓놀림은 다이내믹하다.
이성자 화백은 형식과 주제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과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초기 구상시대에서 추상시대를 거쳐 기하학적인 부호로 여성과 대지를 표현하는 시기를 지냈다. 이후 선과 면이 겹쳐지는 중복시대, 원색이 등장하는 도시시대, 음과 양의 시대, 초월 시대, 자연 시대를 거쳐 우주 시대까지 변화무쌍하게 화폭에 담았다.
RHEE SEUNDJA, The Earth of Angels, oil on canvas, 130 x 162 cm. (51 1/8 x 63 3/4 in.), Painted in 1958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난 이성자 화백은 진주여고를 거쳐 도쿄 지센여자대학교를졸업했다. 1951년 한국전쟁 중 의사였던 남편과 이혼 후 세 아들을 두고 파리로 유학갔다. 그랑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50여년간 동양적인 정서가 담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2009년 프랑스 툴레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5년 귀국해 개인전을 열었다. 생애 유화 1229점, 판화 613종, 도자기 479점, 수채화 69점 등을 남겼다. 2007년 회고록 '이성자, 예술과 삶'이 출간됐으며, 올 7월 진주에 이성자 미술관이 개관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퐁피두 센터, 파리 시립미술관 등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정창섭(Chung Chang Sup 丁昌燮, 1927-2011)
정창섭 화백의 '명상' 시리즈(1993-97).
제 2차 세계대전 후 파리 미술계는 형을 부정하는 미술 운동 아르 앵포르멜(Art Informel)이 풍미한다. 정창섭 화백은 이에 동조하면서도 유화와 붓 대신 대신 한지의 소재인 닥을 사용해 독창적인 기법을 구축하게 된다.
정 화백은 창호지, 도배지, 장판지 등 종이가 소재인 한옥에서 자라며 친숙한 한지에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은듯 하다. 닥을 물에 적셔 손으로 반죽해서 두드려 길들인 후 캔버스 위에 올려 손으로 문질러 그린다. 붓을 통하지 않고, 자신과 재료가 일체가 되는 물아합일(物我合一)'의 경지에 도달한다. 이로써 작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캔버스에 묻어난다. 때문에 가까이서 그 질감과 윤결을 촉각으로 느껴야 한다.
CHUNG CHANG-SUP, Untitled, best fiber on canvas, 72 x 91 cm. (28 3/8 x 35 7/8 in.), Executed in 1991
정창섭 화백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과(1회)를 졸업했다. 1953년 제 2회 국전에서 특선했으며,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냈다. 1961년 파리 비엔날레, 1965?년 사웅파울로 비엔날레에 참가,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뉴욕의 갤러리 페로틴(Galerie Perrotin)에서 11월 3일부터 23일까지 정창섭 개인전 '명상(Meditation)'이 열린다. https://www.perrotin.com
윤형근(Yun Hyong-Keun 尹亨根, 1928-2007)
윤형근 화백의 'Burnt Umber & Ultramarine, oil on linen(1991)
윤형근 화백은 수묵화의 농담에서 착안 물감의 번지는 기능에서 착안한 모노크롬 회화, 단색화가 트레이드마크.
리넨(linen)에 묽은 물감을 발라 스스로 흡수되어 번져나가가며 여러차례 겹쳐진다. 암갈색과 군청색을 혼합,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라 오묘하고, 심연의 색이 여백과 음양의 대조를 이루며, 명상의 화폭으로 승화한다.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난 윤형근 화백은 청년 시절 군인 초상화가로 일했다.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다가 한국전쟁 때 홍익대 서양화과에 편입했다. 수화 김환기 화백의 사위이기도 하다. 독일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독일 로이틀링겐 콘크리트 예술재단, 텍사스 말파의 치내티 파운데이션 등 전시.
197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였으며, 베니스 비엔날레(1995)에 참가했다. 뉴욕의 블룸&포우(Blum & Poe)는 10월 30일부터 12월 23일까지 윤형근 개인전을 연다. http://www.blumandpoe.com
박서보(Park Seo-Bo 朴栖甫, B. 1931)
2008년 첼시 아라리오 뉴욕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박서보 화백. Photo: Sukie Park
박서보 화백이 2008년 첼시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뉴욕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타이틀은 '마음을 비워라(Empty the Mind)'였다. 그의 작업은 마음을 비워가면서 하는 명상이자 수행의 과정이다. 박 화백의 캔버스는 선과 면, 드로잉과 페인팅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크리스티 뉴욕에 전시 중인 묘법(Écriture, 描法) 연작은 1974년-1979년 네 점과 1996년, 2011년 두 점이다. 박 화백의 70년대 작품은 캔버스 위에 오일과 연필로 칠하고, 긁어내는 반복적인 묘법으로 얼핏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의 드로잉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트웜블리가 무작위적이고, 자유방임적인 반면, 박 화백의 작품은 엄격하게 절제된 드로잉을 통해 캔버스의 표면이 노출되며 긴장감이 흐른다. 후기 작품에선 강렬한 색상이 전면에 등장하며, 캔버스 대신 전통한지를 물에 적신 후 캔버스에 누르면서 결을 만드는 묘법이다.
PARK SEO-BO, Écriture No. 110305, mixed media with Korean paper on canvas, 231 x 170 cm, 2011
박서보 화백은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 회화과 교수, 미술대학장을 역임했다. 1962 국립중앙도서관화랑 개인전을 비롯 도쿄 무라마쓰화랑, 프랑스 생테티엔 메트로폴 현대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뉴욕 아라리오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특별시 미술부문 문화상, 은관문화훈장, 옥관문화훈장 등 수상. 서울시립미술관, 리움삼성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워커힐아트센터, 일본 히로시마시현대미술관 등지에서 소장하고 있다.
정상화(Chung Sang-Hwa 鄭相和, B. 1932)
CHUNG SANG-HWA, Untitled (2005-10-15), acrylic on canvas, 258.7 x 194 cm. (101 7/8 x 76 3/8 in.), 2005
정상화 화백의 작업은 노동집약적이다. 고령토를 캔버스에 바른 후 마르면, 캔버스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접어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갈라진 경계를 따라 고령토를 떼어내 움푹한 자리를 만들어 그 빈 공간에 아크릴릭 물감으로 채운다. 질서정연한 격자무늬 모자이크의 미세하고, 정교하며, 균일한 균열은 전체 속에서 부분, 부분에서 전체로 확장하는 캔버스, 미세한 맥박이자 요동의 캔버스다.
캔버스를 찢어내고, 메우는 반복적인 과정은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작가의 치유이자 수련의 자세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의 경과 속에서 마침내 평정을 찾는 캔버스처럼 보인다. 과정은 혼돈이지만, 완성된 캔버스는 드러냄과 감춤의 긴장 속에서 우주의 질서가 담긴듯 평정하다. 제목이 '무제(Untitled)'인 만큼 그림 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관람자의 몫이다.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성장한 정상화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대 졸업 후 서울예고 교사를 지냈다. 이후 프랑스(1967-68), 일본(1969-76), 다시 프랑스(77-92)에서 활동한 후 귀국했다. 2008년 폴란드 포즈난의 5 미디에이션 비엔날레(2008), 프랑스 생테티엔느 메트로폴 현대미술관 회고전(2011) 등을 열었다.
하종현(Ha Chong-Hyun 河鐘賢, B. 1935)
HA CHONG-HYUN, Conjunction No. 97-035, oil on hemp cloth, 220 x 120 cm. (86 5/8 x 47 1/4 in.), 1997
하종현 화백은 캔버스 대신 성긴 마포(삼베, hemp cloth)를 틀에 고정시킨 후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서 표면으로 배어나오게 해서 손질하는 배압법(背壓法)으로 작업한다. 마포의 올 틈새로 나온 물감을 손이나 칼, 붓 등으로 누르거나 긁어냄으로써 표면에 생기는 흔적이 투박하면서도, 미학적인 촉감을 만들어낸다. 뒤에서부터 그리는 그림은 전통 회화기법을 비트는 것. 유신시대 산업화의 그늘에서 억눌렸던 자유와 작가로서의 욕구불만이 배압법으로 표출, 승화된 듯하다.
하종현 화백의 '접합(Conjunction No. 91-25)', 1991.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난 하종현 화백은 홍익대 회화과 졸업. 홍익대 미대 교수, 학장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지냈다.1965년 파리비엔날레 한국 대표작가로 참가했으며, 1988년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로 활동했다.
2003년 밀라노 무디마 파운데이션 현대미술관 전시(2003),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2012), 2000년 홍대 교수직을 정년 퇴직하면서 하종현미술상을 제정했다. 2007 프랑스 문화훈장을 받았다. 첼시의 티나 김 갤러리에서 11월 6일부터 12월 5일까지 하종현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http://tinakimgallery.com
이우환(Lee Ufan 李禹煥 (B. 1936)
LEE UFAN, From Line,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72.7 x 90 cm. (28 5/8 x 35 3/8 in.), 1980
2011년 구겐하임 뮤지엄 회고전 '무한의 제시'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 태생 미술가. 이우환 화백은 2014 미 인터넷 미술지 아트넷(Artnet)의 '세계 톱 100 소장 가치있는 아티스트(2011-14)'에서 판매가 2680만 달러로 53위에 선정됐다.
이 화백은 서예를 바탕으로 한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조응' 등 점과 선이 그림이 되고, 이미지와 여백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에너지로 철학적인 사고를 이끈다. 캔버스 위의 최종 작업 결과보다는 작가로서 마음을 비우고, 선을 그리는 과정에서 함포된 실존적 의미를 탐구하게 만든다.
2011년 구겐하임 뮤지엄 회고전 '무한의 제시' 언론 프리뷰에서 이우환 화백. Photo: Sukie Park
이우환 화백은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 1년 중퇴 후 일본으로 이주 니혼대학교에서 철학과에 편입했다. 1960년대 후반 모노하(물질파) 운동의 선구주자가 됐으며, 평론과 창작 작업을 겸해왔다. 도쿄 다마예술대학 교수, 파리 에콜드보자르 방문교수 등을 지냈으며, 수필집 ‘여백의 예술’ 시집 ‘멈춰 서서’ 등과 이론서를 냈다.
1971년 파리 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참가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1994), 프랑스 국립쥐드폼미술관(1997), 호암미술관(2003), 독일 폰 쿤스트미술관(2005), 브뤼셀왕립미술관(2009), 뉴욕 구겐하임뮤지엄 회고전(2011), 베르사이유 궁전 개인전(2014) 등을 열었다. 런던의 페이스(Pace) 갤러리에서 9월 15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개인전 'Lee Ufan: From Point, From Line, From Wind'가 열리고 있다. http://www.pacegallery.com
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
Oct. 8-23, 2015
Christie's New York: 20 Rockefeller Plaza, bet 5-6th Ave.@49th 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