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쉬 걸(The Danish Girl)' ★★★ 세계 최초 트랜스젠더 덴마크 화가 이야기
The Danish Girl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Be Yourself ★★★
세계 최초 트랜스젠더,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의 삶
The Danish Girl, 1920년대 덴마크 화가 부부의 스토리.
영화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에 끌린 이유는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oi, 1864-1916)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파크애브뉴 스칸디나비아 하우스에서 열리는 '평정의 회화: 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온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걸작전(Painting Tranquility: Masterworks by Vilhelm Hammershøi from SMK, Statens Museum for Kunst)에서 함메르쇼이는 고요한 실내에 뒷모습의 인물들을 포착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에드워드 호퍼가 무채색으로 만난듯한 함메르쇼이의 그림은 인간의 실존과 그 소외감을 북구의 날씨처럼 멜란콜리하고, 무거우며, 미스테리하게 묘사한다.
Vilhelm Hammershøi, Interior in Strandgade, Sunlight on the Floor, 1901. Oil on canvas, Statens Museum for Kunst, smk.dk.
*북구의 평정: 덴마크 거장 빌헬름 함메르쇼이 걸작전@스칸디나비아하우스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회화에서 친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대니쉬 걸'의 아파트.
뉴욕에 온 첫해 소호의 안젤리카필름센터에서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Breaking the Waves)'를 보면서 가슴이 뒤흔들렸던 기억이 있다. 덴마크 소녀, '대니쉬 걸'엔 함메르쇼이의 실내 풍경을 떠올리는 친숙한 풍경이 등장했지만, 스토리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보다 낯설었다. 이 영화는 화가 부부와 성전환수술에 관한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2001년 데이빗 에버쇼프(David Ebershoff)가 이 스토리를 소설화한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을 출간했고, 영화의 원작이 된다.
풍경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왼쪽)은 후에 여성 릴리 엘베로 살아간다.
메거폰은 말더듬이 영국왕 조지 6세의 이야기를 그린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로 연출력을 발휘했던 톰 후퍼(Tom Hooper)가 잡았다. 1900년대 초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보헤미안, 데카당트 라이프 스타일이 풍미하던 유럽. 덴마크의 아방-가르드 화가 부부의 드라마틱한 실화다.
에이나르 베게너
게르다 베게너
1920년대 코펜하겐, 풍경화가 에이나르 베게너(Einer Wegener)는 덴마크 왕립미술학교에서 만난 인물화가 게르다 베게너(Gerda Wegener)와 결혼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게르다는 어느날 발레리나 모델 울라가 늦어지자 남편 에이나르에게 대신 포즈를 취하라고 요청한다.
The Danish Girl, 모델이 펑크낸 날 화가 아내의 모델이 된 에이나르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잠자고 있던 여성성을 발견한다.
발레복, 스타킹, 발레슈즈를 걸치고, 화가 아내 앞에서 모델이 된 에이나르는 이를 계기로 종종 여자 복장과 화장을 하며 파티에 나타나고, 남성들의 유혹을 받는다. 어느새 에이나르는 남자의 육체이지만, 여자의 영혼을 느끼며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는 어릴 적 친구 한스와 첫 키스를 나누었고, 그동안 잠복했던 여성성이 드러난다. 그녀의 새 이름은 릴리 엘베(Lili Elbe).
'만물의 이론'에서 스티븐 호킹 역을 맡아 오스카상을 수상한 에디 레드메인이 에이나르 역을 맡았다. 오른쪽은 실제 에이나르.
게르다와 에이나르 부부 사이에 릴리라는 새로운 인물이 탄생한 것이다. 게르다는 릴리를 모델로 작품 활동을 하며, 파리까지 알려지며 성공한다. 에이나르와 릴리 사이에서 정체성 혼돈에 빠진 베게너는 붓을 놓고, 급기야는 독일에서 성전환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이로써 에이나르는 1930년 세계 최초의 성전환 수술의 환자가 된다.
에이나르 역은 루게릭병에 걸린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전기영화 '만물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 한국 개봉 제목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이 맡았다. 그는 눈썹 끝, 손가락에서 발끝까지 섬세하고, 정교하게 여성성을 탐험한다.
아르누보라기보다는 너무도 모던한 알리시아 비칸데르
게르다
에이나르의 동료이자, 아내이며, 끝까지 그를 지원하는 게르다 역은 스웨덴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Alicia Vikander)가 열연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얼굴과 분위기는 1920년대라기보다는 현대적으로 보였다.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보완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한스
에이나르의 어릴적 친구이자 아트딜러 한스 역의 마티아스 쇼네츠(Matthias Schoenaerts)의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연상시키는 그는 에이나르와 게르다 사이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날카로운 눈매 속에 숨은 열정을 표현했다. 그는 벨기에 출신 낙서화가이자 배우라고.
울라
애견 픽시
배우 조니 뎁의 부인이자 양성애자인 엠버 허드(Amber Heard)는 게르다의 발레리나 친구 울라 역을 맡아 스파클링한 분위기를 풍겨준다. 여기에 에이나르와 게르다가 기르는 애견 잭 러셀 테리어(Jack Russell Terrier)의 눈 자위가 하나는 흰털, 하나는 갈색인 것도 에이나르의 성정체성을 상징하는 절묘한 캐스팅이다.
브루스 제너와 케이틀린 제너
2015년 리얼리티 스타 킴 카다시안의 계부이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0종 경기 금메달주자였던 브루스 제너(Bruce Jenner)가 올 봄 여성 케이틀린으로 성전환을 해서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다. 브루스 제너가 ABC-TV의 다이앤 소여와 독점 인터뷰를 통해 "어릴 적 어머니의 옷장에서 꺼낸 옷을 입곤 했다"고 고백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2015년 여름 뉴욕에서도 동성결혼이 허용되고, 성정체성 때문에 법적인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아직도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차별은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다. 감독 톰 후퍼는 에이나르를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하고 전기쇼크요법을 가했던 시대가 있었노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심판하지 말라고 나직하게 말하는듯 하다.
1924년 게르다와 에이나르 베게너가 게르다의 작품 'Sur la route d'Anacapri' 앞에서. Photo: The Royal Library, Denmark
'대니쉬 걸'은 리어왕의 유명한 독백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와 가수 하덕규의 '가시나무' 가사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를 떠올린다. 인간의 육체는 남성/여성으로 이분화될 수 있어도, 심성이란 단순히 남성/여성으로 분리할 수 없을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분법이란 얼마나 재단적인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Gerda Wegener, Two Cocottes with Hats, Lili and Friend Photo: Morten Pors
울라 역의 앰버 허드는 여성 사진작가 타샤 반 리(Tasya Van Ree)와 사귀다가 조니 뎁을 만나 결혼했다. 할리우드에서 양성애자라고 밝힌 여성 연예인은 안젤리나 졸리, 레이디 가가, 린제이 로한, 사만다 폭스, 안나 파퀸, 에반 레이첼 우드 등이 알려져 있다.
'대니쉬 걸' 게르다 베게너는 이후 서양 미술사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소설과 영화를 계기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지금 코펜하겐의 아르켄 현대미술관(Arken Museum of Modern Art)에서는 게르다 베게너의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NYCB Gallery <141> 게르다 베게너@아르켄현대미술관, 코펜하겐
*CulBeat Express 게르다 베게너 회고전@아르켄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