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1932-2006) 10주기, 작품과 어록
Flying to the Moon: Nam June Paik
백남준(1932.7.20-2006.1.29)
2006. 1.30 뉴욕중앙일보
Bye Bye Nam June Paik
백남준(1932.7.20-2006.1.29)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이 29일 저녁 마이애미의 달 아래서 자연으로 돌아갔다.
1965년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발표했던 백남준. 그는 TV가 막 탄생했을 무렵 캔버스 대신 TV를 매개로 신(新) 예술 '비디오아트'를 창시했다.
독일에서 바이올린을 부수고 넥타이를 자르던 그의 행위예술은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를 만나며 꽃을 피우게 된다.
백남준은 예술과 기행(奇行), 예술과 치기(稚氣)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비디오아트라는 미술사의 새 장르를 개척했다.
백남준과 샬롯 무어만.
하지만 그는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의 비평단으로부터 '어린애 장난이지 예술작품이 아니다'라는 비난을 받았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50년대부터 홍콩 일본과 독일을 돌며 미술사와 전위음악을 공부하며 독창적인 예술을 창안한다. 그런 그에게는 고국으로부터 '반동적 부르조아'라는 비난의 화살도 쏟아졌다.
백남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코스모폴리탄이었다. 그는 존 케이지, 조셉 보이스, 머스 커닝햄, 데이빗 보위, 로리 앤더슨 등 당대의 전위예술가들과 협업해왔다.
1964년 뉴욕에 정착 이래 백남준은 고독한 문화적 망명자로서 창작에 몰두해왔다. 비디오를 통해 그는 기술과 인간, 보수와 진보, 붓과 빛 사이의 실험을 지속한다.
TV Garden
'TV 시계'('63) 'TV 의자'('68) 'TV 첼로'('71) 'TV 정원'('74) '비디오 물고기'('75) '비디오 부처'('76) '로봇 가족; 할머니'('86) '로봇 가족: 하이테크 아기'('86) '야곱의 사다리'(2000) 등 백남준의 작품들은 동과 서 음과 양, 정(精)과 동(動) ,안방 TV와 뮤지엄의 조각/설치의 경계를 깼다. 또한, 과거의 작품들은 아직도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AP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그해 독일 포쿠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예술가'에 뽑혔고 이듬해에는 독일 '카피탈'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 가운데 8위에 올랐다.
2000년 2월 뉴욕 구겐하임뮤지엄에서는 '백남준의 세계'를 열어 '비디오아트의 대부'에게 경배를 바쳤다.
지난해에는 10월6일 9.11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메타 9.11' 퍼포먼스를 벌여 창의력의 건장함을 입증하기도 했다.
뉴욕중앙일보 박숙희 기자
Nam June Paik Works & Words
"The future is now."
-Nam June Paik-
"원래 예술이란 사기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독재자가 대중을 속이니까 예술가는 독재자를 속이는 사기꾼, 그러므로 사기꾼의 사기꾼이다.
고등 사기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