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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20:10
뉴욕영화제 (2)우리시대 거장 홍상수, 크리스티앙 문주, 다르덴 형제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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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뉴욕영화제(9/30-10/16)
홍상수, 크리스티앙 문주, 다르덴 형제 신작
인간의 소유욕, 야망과 죄의식에 대한 성찰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Yourself and Yours by Hong Sang-soo
인간은 종종 도덕성이라는 시험대에 올라간다. 연인 관계에서도, 가족 관계, 직장 내에서도 이따금 딜레마에 빠진다. 집착과 소유욕에 시달리며, 잘못된 선택에 대해, 그로 인한 죄의식과도 부단히 싸우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Yourself and Yours)'은 연인들의 이야기,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졸업(Graduation)'은 외도하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이며, 장 피에르와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의 '신원미상의 소녀(The Unknown Girl)'은 한 여의사의 죄책감이 화두가 된다. 칸 영화제 등 국제영화제 베테랑들인 이 세 감독은 저예산의 인디영화 정신으로 예리하게 인간과 사회에 현미경을 들여대는 우리 시대 거장들이다. http://www.filmlinc.org/nyff2016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Yourself and Yours) ★★★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Yourself and Yours by Hong Sang-soo
홍상수(Hong Sang-soo) 감독의 18번째 영화, 뉴욕영화제 10번째 초청작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여전히 남녀관계와 술자리, 그리고 남자의 깐죽거림이 전편에 흐른다. 홍상수가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18번씩이나 동어반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변주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작품이다. 2016 산세바스찬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영수는 선배로부터 애인 민정이 딴 남자와 술을 먹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후 민정과 대판 싸우고 헤어진다. 바로 후회한 영수는 민정을 찾아 나서는데, 민정을 닮은 여인이 낯선 남자들을 만나는 것이 친구들에게 목격된다.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연인 관계과 불신, 그로 비롯되는 질투와 결별, 그리고 후회는 사람마저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홍상수의 의도는 민정이 카페에서 읽고 있는 책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시골신부'(민음사 간)에 드러나있다. '변신(The Metamorphosis/Transformation)'은 어느날 깨어나보니 벌레가 된 여행 세일즈맨 그레고르 삼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민정은 영수와의 싸움 후 변신(變身)한 것이 아니라 변심(變心)한듯 하다. 자신이 일란성 쌍둥이라고 말해 버리는 민정은 '망각의 강'을 건넜을지도, 아니면 영수의 백일몽에 등장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이 구속이 되고, 이기심과 질투로 이어지면 연인이 낯선이로 변신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일 터이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Yourself and Yours by Hong Sang-soo
민정은 정말 쌍둥이일까? 아니면, 영수와의 이별 후 변심한 민정일뿐인가? 민정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Vertigo)'에서 마들렌/주디(킴 노박)에 대한 오마쥬였을지도 모른다. 구차하고, 째째하고, 뻔뻔하고, 경박한 남성 심리를 통렬하게 폭로하는 홍상수의 시선, 그 마지막엔 재회한 영수와 민정의 침대 옆에서 타고 있는 촛불이다. 우리의 삶이 이 촛불처럼 유한할 터인데, 의심하며, 속박하는 인간의 소유욕에 대해 촛불은 묻고 있는듯 하다. 86분. 10월 7일/10일 오후 9시, 14일 오후 9시 45분 @상영관은 웹사이트 참조 http://www.filmlinc.org/nyff2016/films/yourself-and-yours
졸업(Graduation/Bacalaureat) ★★★
졸업 Graduation/Bacalaureat by Cristian Mungiu
낙태문제를 다룬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4 Months, 3 Weeks, 2 Days)'로 200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주(Cristian Mungiu)의 신작. 올 칸 영화제에서 프랑스 올리비야 아싸야의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와 공동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침이면 유리창으로 날아오는 돌멩이, 학교 인근 성폭행, 황량한 거리를 떠도는 개 그리고 경찰과 병원, 학교까지 부정부패가 만연한 루마니아의 클루지(Cluj), 교사와 바람을 피우면서 우울증 걸린 부인과는 각방을 쓰고 있는 중년 의사 로미오에겐 유일한 꿈이 딸을 영국에 심리학 전공 장학생으로 유학보내는 것이다. 졸업고사만 잘 치르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딸이 시험을 앞두고 성폭행(강간미수)을 당하면서 꿈이 수포가 될 지경에 이른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커넥션을 이용하며 학점을 위조하려 하는데, 딸이 아버지의 바람 현장을 보게된다. 딸은 아버지가 엄마에게 외도를 고백하지 않으면, 졸업고시를 포기하겠다고 협박한다.
학교에서 경찰, 병원까지 뇌물이 오가는 루마니아에서 도덕성을 준수하는 것이 가능할까? 미래 세대를 대표하는 딸(엘리자)과 부패한 구세대의 전형 아버지(로메오)의 자가당착. 그리고 구세대로 대변되는 할머니의 쇠약, 3대를 통해 루마니아의 미래, 최근 영국의 EU탈퇴 후 새삼 유럽의 뒤숭숭한 미래를 예견하는듯 하다. 등장인물 모두가 불행하다. 모두가 루마니아의 부패한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고 싶어한다. 엘리자에게 '졸업'은 루마니아를 탈출해 영국 유학으로 이어지는 희망이다. 크리스티안 문주의 헨드헬드 카메라와 거칠은 화면, 아버지 아르디란 티티에니(Adrian Titieni)와 딸 마리아 드라거스(Maria Dragus)의 강렬한 연기가 부녀 간의 갈등을 증폭하면서 이 황량한 영화에 강도 높은 긴장감을 부여한다. 127분, 10월 11일 오후 6시, 12일 오후 9시@앨리스털리홀
신원미상의 소녀 (The Unknown Girl/La Fille Inconnue) ★★★★
신원미상의 소녀 The Unknown Girl/La Fille Inconnue by Jean-Pierre and Luc Dardenne
'로제타(Rosetta, 1999)'와 '소년(L'Enfant, 2005)'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석권한 장-피에르와 뤽 다르덴(Jean-Pierre and Luc Dardenne) 형제 감독의 신작. '신원미상의 소녀'는 동네 여의사의 죄책감과 진실에 대한 집요한 인내, 그리고, 또한 문(doors)에 관한 영화다.
작은 마을의 개업의 제니 다방(Jenny Davin)은 어느날 인턴 줄리앙과 언쟁하던 중 병원 벨이 울리는 소리를 무시한다. 다음날 병원 근처에서 한 흑인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경찰이 병원 CCTV로 그 소녀의 모습이 찍힌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흑인 소녀의 신원은 미상이다. 죄책감에 시달리게된 제니는 소녀의 가족을 찾기 위해 나 홀로 수사에 나선다. 소녀는 불법 부지의 트럭에서 노인과 매춘을 했고, 교통사고에도 연루되었으며, 아프리카 가봉에서 온 불법체류자였다. 노인도, 교통사고 목격자 소년과 아버지도, 사이버카페의 흑인 여성도 모두 소녀를 알고 있었고, 제니처럼 자기들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의사 제니 다방은 불법체류자의 범람, 무관심의 팽배와 부패한 벨기에 사회의 도덕적 지렛대다.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 '졸업'에서 바람을 피우면서 딸을 위해 뇌물과 편의를 제공하는 부정한 의사 아버지와는 다르다. 제니 역을 자연스럽고, 투명하게 소화시킨 아델 하에넬(Adèle Haenel)의 집요함에서 장예모 감독의 '귀주 이야기(The Story of Qiu Ju)'에서 관료주의와 싸우며 도시로 가는 시골 임신부 공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흑인 소녀의 죽음에 대해 각자 느끼는 죄의식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Rashomon)'의 관점을 연상시킨다. 사무라이의 죽음을 둘러싼 나무꾼, 도적, 사무라이의 아내, 그리고 스님 등의 증언은 모두 이기심의 필터를 통과한 편견이다.
결국 다르덴 형제는 '문'의 열림과 닫힘을 통해 죄의식을 시험하고 있다. 제니 병원의 문과 그곳을 두드리다 주검을 발견된 소녀는 현대의 시대의 차가운 인간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녀의 마지막을 보았던 사람들은 마침내 '입(문)'을 열고, 자백한다. 인간은 결국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역사를 뒤로 돌려놓는 영국의 EU탈퇴, 브렉시트(Brexit)는 쇄국주의 정책으로의 귀환이니, '신원미상의 소녀'는 현재 유럽의 우울한 엘레지다. 106분, 10월 12일 오후 6시, 13일 오후 9시@앨리스털리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