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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7.04.12 21:00

(262) 이영주: 선물을 주는 식당, 아토보이(Ato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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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43)

선물을 주는 식당

 

글: 이영주/ Photo: Christian L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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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은 흔히 좋은 식당의 조건으로 맛과 분위기를 꼽는다. 분위기 좋고 음식 맛까지 좋다면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식당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식당은 흔하지 않다. 

 

내게 있어 좋은 식당은 무조건 음식 맛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낙원동 뒷골목 할머니 칼국수 집의 3천원짜리 칼국수가 최고라 생각하고, 을지로 뒷골목 길가 연탄불에 구워주는 돼지갈비를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먹으면서도 희희낙락하고, 강원도 평창 시장 안의 6천원짜리 한정식에 자지러진다. 사람들이 대접하느라 일인당 15만원, 20만원짜리 저녁 초대에도 가서 먹어봤다. 인사치레로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긴 먹지만, 만족도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고급식당다운 수준급의 맛과 모양을 갖추고 있고, 서비스도 아주 세련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곳엔 소박한 음식에서 느끼는 사이다 같이 빵! 터지는 그 한 방이 없다.

 

 

atoboy2.jpg 아토보이 Atoboy

 

지난 주, 둘째 사위가 내가 꼭 가봐야 하는 식당이 있다는 바람에 두 딸들과 함께 갔다. 사위는 자기가 가본 식당 중에 최고란다. 인테리어는 마치 벨지움 스타일 같고(벨지움 사람 아니랄까봐 좋은 건 모두 벨지움 스타일이란다), 미래에서 온 식당 같은 분위기라며 극찬을 한다. 식당은 간판도 없고, 입구도 소박했다. 안에 들어가니 왼쪽엔 두 사람을 위한 작은 테이블이, 오른쪽엔 4명이 식사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양쪽에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구조였다. 가운데가 통로다. 칠하지 않고 상처도 나있는 날 것 그대로의 거친 벽엔 식당 이름이 쓰여 있는 포스터가 몇 개 붙어 있다. 현대적인 실내는 마치 설치미술처럼 심플하면서도 멋스럽고, 미니멀리즘의 극치다.

 

한국 셰프가 하는 식당이지만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국 식당은 아니다. 식단이 3개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그 중 한 가지씩 3가지 음식을 골라야 한다. 우리는 셋이서 각각 다른 음식을 주문해서 9가지 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미슐렌 별을 단 식당에 가면 커다란 접시에 음식은 아주 조그맣게 미술적으로도 잘 꾸민 음식이 나오는 게 다반사다. 이 집은 메인 디시가 중간 사이즈로, 소스는 미니 디시에 나왔다. 그런데 그 음식이 예쁘기도 하려니와 알차고, 특히 맛이 뛰어났다. 중간색의 접시에 지나친 화장끼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운 음식은 맛도, 향도, 색깔도, 모두가 은밀했다. 보기엔 유난스럽지 않은데, 입 안에 들어오면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일단 음식 맛이 입 안에서 착착 감기면서 치고 들어오는 맛이 일품이다. 

 

음식을 맛볼 때마다 “어머나, 어머나!”,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던 나는 마침내 “얘들아, 난 ‘노마’ 보다 여기가 훨씬 더 맛있어.” 얼토당토않게 노마까지 들먹였다. 참고로 노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식당으로 세계 최고 식당에 1등으로 3번이나 올랐던 식당이다. 자연에서 나는 가장 싱싱한 재료로 가장 맛있게 만든다 한들 이 식당처럼 모든 음식이 골고루 최고의 맛을 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FullSizeRender (3).jpg 아토보이 Atoboy

 

집으로 유명한 식당들에 가보면 자기네가 잘하는 한 두 가지 빼면 다 그저 그런 정도의 비슷한 수준의 맛이다. 놀랍게도 이 식당은 메뉴 하나하나가 다 재료 본래의 맛을 지키면서도 셰프의 특별한 조리법에 의해 이제까지 먹어본 어떤 음식과도 다른 차별성이 있다. 그 비결을 셰프 박정현은 좋은 재료로, 한국음식의 기본인 장과 그만의 창의적인 소스로 만든다는 음식철학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2016년, 매거진 ‘스타 셰프’ 10주년 행사에서 ‘떠오르는 스타상’을 수상할만큼 뉴욕 셰프계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박정현은 한식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고급스런 요리로 창조해낸다. 흔히 먹던 고등어며 연근이 이처럼 고급요리인지 미처 몰랐다.

 

디저트는 3가지인데, 특기할 것은 수정과다. 밑에 이탈리안 치즈를 앉히고 빙수 식으로 간 얼음의 형태로 등장하는 수정과는 한꺼번에 열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3가지 모두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 포만감 넘치는 위를 달래 줄만큼 고급스런 포용력까지 갖춘 묘한 매력의 디저트다. 먹는 중간 쟁반에 새로운 메뉴를 미니 접시에 담아 손님에게 보이며 권하는 센스도 마치 파티장 같은 기분이 들어 재미있었다.  

 

화장실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화장실은 지하에 있는데 층계를 내려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지하 복도엔 동으로 만든 커다란 작품이 액자에 끼워져 걸려 있어서 마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구리를 녹슬게 해서 액자에 넣은 것이라고 한다. 이들 액자며 식당 안의 포스터도 모두 본인들이 만든 것이라니 이들의 예술적 감각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당연히 화장실도 작은 문고리 하나까지 범상치 않은 부속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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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보이 Atoboy

 

가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매니저이자 박 셰프의 아내인 엘리아씨는 “선물을 주는 레스토랑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하며 웃는다. 식당 이름인 ‘아토보이(Atoboy,43 East 28th St. 646-476-7217)'의 ’아토‘가 순우리말로 선물이란 뜻이라면서. 식당이 선물을 준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선물이란 단어가 가슴에 확 들어왔다. 지난번 글에서 이번 사순절의 메시지 얘기를 했는데, 이 선물이라는 말이 어쩌면 메시지였나 보다는 확신이 들면서 말이다. 그럼 선물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토보이 처럼 좋은 재료로 건강한 믿음을 주는 사람. 입 안에서 감칠맛 나는 음식처럼 맛있는 사람. 꾸민 듯 꾸미지 않으면서 최고의 멋을 낼 줄 아는 겸손한 사람.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 만나면 편안하게 자기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사람. 

 

맛있는 음식을 보면 절제를 못하고 식탐이 많은 나를 어떤 사람은 비문명인이라며 비하했다. 하지만 그것은 음식을, 인생을 모르는 사람의 견해다. 인간의 3대 본능 중의 하나인 음식은 음식의 미학을 통해 우리네 삶의 깊은 철학을 통달하는 또 하나의 길이다. 그래서 처음 간 식당에서 좋은 음식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지 아니한가. 둘째 사위가 감탄해마지 않는 격이 넘치는 한국식당이 우리 한국 뉴요커들의 식당 문화 품격을 격상시켜 주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고맙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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