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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빨간 등대
2018.03.29 21:09

(332) 홍영혜: 새 친구들, 돌멩이와 기타와 자전거

조회 수 2091 댓글 3

빨간 등대 <5> 이머전시 키트(Emergency Kit)


새 친구들: 돌멩이와 기타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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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는 돌멩이 친구가 있다.  돌아이(또라이)를  만나게된 건 리버사이드길을 걷고 있던 중이었다. 블락파티가 열리는지  풍선이 매달려 있어 호기심이 생겨 가보았더니  그 블락에 사람들이 여러가지 물건들을 내다 놓고 팔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돌멩이를 보니 그냥 지나칠 수 가 없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딸에게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사가지고 왔다. 우선 식탁 테이블에 나두었는데 밥을 먹을 때  씩 웃고  앞니를 두개 보이는 돌아이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딸아이한테 이야기하니 엄마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하였다.  혼자 밥먹을 때가 많은데,   그 후론 돌아이는 밥먹을 때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다.

  

우습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웃으면  뇌가 웃는 걸로 감지하는 것 처럼,  웃는 얼굴을 한 돌멩이라도  우리 뇌에  좋은 친구로 인식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돌친구가 생긴 뒤로는 일 때문에 거의 함께 저녁식사를 못하던 남편도 가능하면 일찍와서 저녁은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한다. 돌친구와 저녁을 먹는 아내가  마음에 걸렸던지 ^^.  돌아이는 잔소리도 안하고, 미소를 짓고, 어떤 때는 소화가 더 잘 되는데 … 하지만 남편도 일찍 일찍 들어오게 하니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tumblr_n7acjqWeFh1qbilh4o1_r1_1280.jpg Breakfast at Tiffany's, 1961


마 전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집 부엌창을 내다보면 화이어 이스케이프가 쭉 이어지는 광경이 들어온다. 이걸 볼 때마다 영화 '티파니에서아침을'에 나온 오드리 헵번이 '문 리버(Moon River)'를 부르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기타를 배우면 부엌창 밖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면서 '문리버'를 부르리라 하는 엉뚱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  


아들이 첫 월급을 타고 빨간내복 대신에 무엇을 사줄까 물었을 때 기타가 떠올랐다. 기타를 고르러 샘 애쉬(Sam Ash)라는 악기점으로 갔다. 세번째 기타를 보여주는데 모양도 예쁘고 소리의 울림도 좋았다. 보통은 물건을 살 때 뜸을 드리고 선뜻 사지 못하는데 '이거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기타 선생님이 첫 시간에 "본인이 어렸을 때 외로운 적이 많았는데, 기타를 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친구가 되었다"면서 "자주 기타를 쳐주어 친구를 방치하지 말고,  좋은 친구가 되주라"는 말이 마음에 닿았다. 아 기타도 친구지 하고…


이제 혼자서 '뜸북새(오빠 생각)'와 '에델바이스' 두곡 정도 칠 수있는 실력이 되었다. 적적할 때 혼자 기타줄을 퉁기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러다 시카고에 사시는 시어머님과 전화통화로  "잘 있니? 밥 먹었니? 애들도 잘 있지?" 의미 없이 되풀이되는 대화보다는 어머님과 함께 전화를 스피커 모드로 해놓고 내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님도 안쓰던 목청을 쓰셔서 목소리가 트이기 시작하고, 여러가지 추억 이야기가 나오면서 화기애애하게 된다. 나도 서투른 기타를 연습할 수 있는 오디언스가 생기고 '윈윈'이다. 


요즘은 어머님의 18번인 '동백 아가씨'와 '립스틱 짙게 바르고'까지 함께 부르는데, 나의 기타는 "자가작작" 하면서 두두리는 소리를 낸다. 아직은 줄을 튕길 실력이 없어서. 언제가 '문 리버'를 칠 수 있는 실력이 되면 집에서 친구들을 부르고, 자그마한 콘서트를 할 야무진 꿈을 꾸어 본다. 패션공부하는 젊은 친구가 맘보 바지와 헤어밴드를 매면 어울리겠다고 해서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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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 친구는 자전거인데, 나에게는 아직 버거운 친구이다. 뒤늦게 자전거를 배워 사람이 접근하면 무서워 삐뚤빼뚤 달리고, 언덕에는 끌고 다니는 왕초보나 다름이 없다. 아파트에 자전거를 보관할 곳이 없어 접는 자전거를 샀다. 우리 아파트에서 혼자서 끌고 나와 공원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루는 내가 혼자 끌고 나와서  반은 걷고, 반은 타고해서 집앞 리버사이드 파크를 다녀왔다. 집에 다시 올 때는 어찌나 힘이 드는지, 자전거는 어떻게 탔는지 기억이 안난다.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혼자 이 모험을 감수한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 만난 사람에게 "오늘 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탔어요"라고 흥분해서 말하니까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이 마치 5살짜리 아이가 "오늘 처음 걸었어요"로 듣는 표정이었다. 어쨋든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하고 뿌듯하였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리버사이드 파크의 강변 자전거 길은 아직 이를 것 같고  넓은 대로(Promenade)를 시원한 바람을 가르면서 즐길 수 있기를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삶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행복일 수만은 없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많은  문제들을 마주치게 된다.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일의 문제 등을 만나며 우리가 외로움, 절망, 분노, 두려움을 견디고 살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을 만날 때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내 이머전시 키트(Emergency Kit)에다 하나씩 하나씩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함께 가면 좋겠지만 때로는 혼자 가야할 때가 있다. 사람 친구면 더 좋겠지만 때로는 사람이 아닌 친구들도 부지런히 사귀어 나의 도구 상자들을 하나 하나 채우고 준비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단단하고 풍성하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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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100.jpg 홍영혜/ Young Hae Kang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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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18.04.23 01:50
    오래 전 여의도 광장에서만 자전거를 탔었고, 뉴욕에서는 겁이 나서 한적한 섬에 여행가서나 겨우 탔었는데요, 홍영혜 선생님의 칼럼을 읽고 용기를 냈습니다. 21일 시티바이크 무료의 날을 맞아 동네에서 타고 언덕길을 내려갔지요. 브루클린아이스크림팩토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갖고 올라오는데, 뿌듯하더라구요. 짧은 거리였고, 자전거로 올라오지는 못했습니다만... 오늘은 브루클린식물원에 벚꽃구경 간 김에 프로스펙트파크에 도전했습니다. 시티바이크로 공원 한 바퀴 도는데, 약 30분이 걸리던데요. 공원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넘어지지 않은 것 다행이라 생각해요. 차가 많은 도심에는 못나가지만, 버킷 리스트였던 '뉴욕에서 자전거 타기'를 마침내 해보았네요. 칼럼 덕분이지요. 감사합니다^^
  • yh77 2018.05.01 00:34
    프로스펙트파크에 도전하셨군요!! 축하드려요. 지난 주 LA에 다녀왔는데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바람을 가르고 멋지게 질주하진 못하고 고블랑 고블랑하면서 자전거를 탔답니다^^. 피어에서 Ferris Wheel을 타고서야, 자전거 탈 때의 긴장을 풀고 비로소 멋진 바다경치를 즐겼답니다.^^
  • sukie 2018.05.01 10:37
    굿모닝!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입니다^^ 산타모니카 해변을 달리는 자전거 멋집니다!
    허드슨강변 배터리파크도 좋았습니다. 공원 주변 어디서든 탈 수 있는 시티 바이크 덕이랍니다.
    Happy Bi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