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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프랑스 여행 <8> 샹티이성 Château de Chantilly 

오말 공작 컬렉션의 보고 '콩데 뮤지엄'


루이 14세 대접하던 요리사 바텔 샹티이 크림 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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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30마일 떨어진 샹티이성(Château de Chantilly/Domaine de Chantilly)은 '작은 베르사이유궁'으로 불리운다. 


프랑스엔 도대체 샤토(Chateau)가 몇채나 있을까? 프랑스 남서부에 자리한 도르도뉴(Dordogne) 지방엔 1천여개, 루아르 밸리(Loire Valley)엔 300여개에 달한다. 


공작(duke/duc), 후작(marquis), 백작(earl/comte), (viscount/vicomte), 남작(baron)...등으로 불리우던 귀족들. 지금도 프랑스엔 귀족이 있을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전날 당시 귀족의 수는 1만7000명에 달했다. 혁명 후 2800명이 살아남았고, 20년 후 나폴레옹 1세는 '제국의 귀족'이라는 타이틀을 새로 만들어 군대, 경제, 문화계의 고위 명사들을 귀족으로 대우했다. 19세기 400가문이 귀족이었으며, 오늘날엔 3000개 가구가 귀족으로 자처하고 있다. 


귀족들의 이름에는 주로 'de'가 붙지만, 반드시 귀족은 아니다. 프랑스 전 대통령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은 귀족이 아니었다. 귀족과 영주들이 살던 수많은 샤토들은 박물관이나 호텔이 되고, 샤토에서 살고 있는 귀족들은 관광객들에게 샤토를 오픈해 입장료 수입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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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두 노예상은 한때 샹티이성의 주인 안느 드 몽모랑시의 소유였다.


'베르사이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샹티이성(Château de Chantilly)은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30마일/50km 떨어져 있다.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기차로 30분이 채 안걸리는 인기 당일치기 여행코스. 하지만, 우리가 샴페인 도시 랭스(Reims) 인근 샤토드쿠르셀레(Château de Courcelles)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콩데 박물관 샹티이성으로 가는데는 차로 1시간 30분이 걸렸다. 


샹티이 숲을 지나 운하를 끼고 있는 샹티이 성은 스토리가 많은 샤토다. 

1659년 몰리에르의 희곡 '웃음거리 재녀들(Les Précieuses ridicules)'이 초연되었고, 1671년 루이 14세가 콩데 왕자를 방문했을 때 요리사 프랑소아 바텔(François Vate)이 생선 배달이 늦어져 요리가 늦게 나올 것에 두려워 자살했다. 바텔은 지금 우리가 먹는 프랑스 생크림, 샹티이 크림을 처음 만들어낸 요리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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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티이성의 대공관(그랑자파르트망)의 화려한 인테리어.


1985년 로저 무어가 007 제임스 본드로 분하고 크리스토퍼 월켄이 악당으로 분한 '뷰 투어 킬(View to a Kill)'을 촬영했고, 1994년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콘서트를 열었으며, 2005년 발렌타인 데이에 브라질 축구스타 호나우드(Ronaldo)가 모델 다니엘라 시카렐리와 호화(80만 달러) 결혼식을 올렸다는 성이다. 매년 5월 운하에선 왕의 트로피(Trophee des Rois)를 걸고 대학생들의 보트대회가 열린다. 


호화로운 베르사이유 궁전을 둘러보고 나면 태양왕 루이 14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사치에 울렁증이 생기지만, 콩데 박물관(Musée Condé)이 된 샹티이성은 예술을 사랑했던 왕족의 품격이 느껴지는 샤토다. 한국어 브로셔도 갖추고 있어서 더욱 친근감이 드는 샤토 박물관이다. 



# 콩데 뮤지엄: 루브르에 이은 최고의 고전 회화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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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티이성의 회화 갤러리. 푸생, 샹파뉴, 들라크루아, 코로 등의 작품이 걸려있다.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샹티이성은 1560년 경 건축된 작은 성 프티 샤토(작은 성, Petit Château built)와 프랑스 혁명중 완전히 파괴된 후 1882년에 재건된 그랑 샤토(큰 성, Grand Château)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마지막 황 루이 필립의 아들 오말 공작 앙리 돌리앙(Henri d’Orléans, Duke of Aumale, 1822-1897)이 샹티이성에서 살았다. 당대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였던 오말 공작은 1886년 프랑스 인스티튜트에 기증하면서 전대 콩데 왕자(Princes of Condé)를 기리는 뜻에서 소장품 갤러리를 콩데 뮤지엄(Musée Condé)이라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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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틸리성의 주인이었던 오를레앙의 앙리, 오말 공작은 미술광이었다. 


콩데 뮤지엄은 프랑스에서 루브르박물관 다음으로 최고의 고전 회화(1850년 이전)를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꼽힌다. 라파엘로, 보티첼리, 프라 안젤리코, 필리피노 리피, 베로네즈, 카라치, 푸생, 반 다이크, 메믈링, 들라크루아, 앵그르, 제리코 등 260여점을 비롯, 필사본 1천500여점, 도서 1만7500점 등을 자랑한다. 회화 갤러리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작품은 콩데 뮤지엄의 보물인 가로x세로 17cm 크기의 라파엘로 작 '삼미신(三美神)', '오를레앙의 마돈나', 그리고 '로레토의 성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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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의 삼미신(Three Graces, 1504-1505)

   

대공관에는 콩데 왕자들의 광물 컬렉션, 도서관, 반 다이크의 초상화가 있는 친위대의 방, 왕세자의 침실, 원숭이 회화와 중국풍 장식이 있는 라 그랑드 생쥬리, 콩데 공이 승리를 거둔 전투장면을 묘사한 11점의 대형 회화, 음악의 방으로 이어진다. 예배당은 몽모랑시가 소유했던 에쿠엥 성에서 온 세공 장식품과 스테인드글래스가 하이라이트.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메두사의 뗏목'으로 유명한 낭만주의 화가 데오도어 제리코의 석판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 미켈란젤로 노예상 한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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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와 '반항하는 노예'가 설치된 샹티이성 정문.


샹티이 성의 입구에는 낯익은 조각 한쌍이 눈길을 끈다. 루브르 뮤지엄이 소장한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대리석 조각 '반항하는 노예(Rebellious Slave)'와 '죽어가는 노예(Dying Slave)'의 카피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1513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에 세월 계획으로 제작하다가 프로젝트가 변경되고, 돈 문제까지 겹쳐서 자신이 로마에서 병들었을 때 도와 준 로베르토 스트로찌에게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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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뮤지엄이 소장한 미켈란젤로의 오리지널 노예상.


스트로찌는 프랑스로 망명한 후 총사령관 안느 드 몽모랑시(Anne de Montmorency)에게 주었고, 몽모랑시의 샤토 엥쿠엥 성(Château d'Ecouen, 현 르네상스 뮤지엄 Musée Renaissance))에 설치되었다가 리셸리유 주교(Cardinal de Richelieu, 루브르에 갤러리 이름이 있다)가 자신의 푸아토우(Poitou) 샤토로 가져갔다. 그리고, 1794년 노예들은 루브르 뮤지엄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 밖 정원에는 '그랑드' 콩데 공작, 안 드 몽모랑시 총사령관, 부르봉 공작, 아말 공작을 비롯 플라톤, 바커스, 고대 그리스 여성시인 사포, 잔다르크, 몰리에르, 그리고 사슴, 개 등의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 베르사이유보다 더 사랑했던 샹티이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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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티이성의 정원은 베르사이유 궁전과 퐁텐블로를 조경한 앙드레 르 노트르가 설계했다.


115헥타르에 달하는 샹티이 정원은 세가지 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17세기 최고의 조경 건축가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 1613-1700)가 분수대, 조각, 수경으로 디자인한 프렌치 가든(*French Garden, 기하학적이며, 분수대와 폭포가 있다. 베르사이유궁전의 정원이 전형적이다.) 장 프랑수아 를로이가  시골집 5채를 세우며 조경한 영국-중국식 가든, 그리고 영국식 정원(*English Garden: 질서보다 자연스럽고 창의적인 것을 강조하는 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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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콩데(Grand Condé) 왕자의 조각이 설치된 정원의 호수.


베르사이유 궁전 안 마리 앙투아네트의 프티 트리뇽(Petit Trianon) 촌락은 영국-중국식 가든의 오두막촌 '르아모(Le Hameau)'를 본딴 것이다. 르 아모 레스토랑에선 3월부터 11월 초까지 샹티이 휩드 크림을 비롯, 런치와 애프터 눈 티를 제공한다. *메뉴 


샹티이성의 2.5km에 달하는 대운하는 베르사이유보다 600미터가 길다. 앙드레 르 노트르는 베르사이유(Versailles), 퐁텐블로(Fontainebleau), 보 르 비콩트(Vaux-le-Vicomte), 그리고 루브르 옆 튈러리(Tuileries) 정원도 설계했지만, 특히 샹티이 정원을 가장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환생을 믿은 왕자와 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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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Vivant du Cheval


살아있는 말 뮤지엄(Musée Vivant du Cheval)은 1719년 자신이 말로 환생할 것으로 믿었던 루이 앙리(부르봉 공작, 콩데 왕자)가 건축가 장 오베르(Jean Aubert)에게 위임해서 만든 거대한 마굿간이었다. 186미터에 달하는 마굿간에는 240마리의 말과 500마리의 사냥개들을 수용할 수 있다. 이 뮤지엄에서 007 '뷰 투어 킬'(1985)을 촬영했다. 


1830년 8살이던 루이-필리페 왕의 네째 아들 오를레앙의 앙리(오말 공작)은 삼촌 부르봉 공작(콩데 왕자)으로부터 6천600만 리브르(현 2억6천만 달러), 그리고 샹티이 성, 에쿠앙 성 등 영지와 대지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오말 공작은 알제리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했으며, 평생 미술품을 수집했다. 그리고, 샤토, 마굿간, 경마장, 그리고 8km에 달하는 숲을 프랑스협회에 기증하게 된다.  



# 샹티이 생크림 crème Chantilly


MV5BOGIwZTY4MzgtYmQ5MS00ZTIwLTkxMDUtYjc0MTcyZDdkMjlkXkEyXkFqcGdeQXVyMjUyNDk2ODc@._V1_.jpg Vatel, 2000


우리가 즐겨먹는 프랑스 생크림(crème Chantilly, Chantilly cream)은 샹티이성에서 콩데 왕자의 셰프였던 프랑소아 바텔(François Vatel,1631-1671)에 의해 고안됐다. 샹티이 크림은 생크림에 설탕, 바닐라 추출액을 넣고 거품을 낸 휩드 크림으로 디저트, 푸딩과 음료 장식에 쓰인다.


샹티이성의 주인 콩데 왕자는 1671년 4월 샹티이성에서 사촌인 루이 14세를 환영하는 만찬에 2천명을 초대했다. 바텔은 생선 배달이 늦어져 루이 14세에게 나갈 생선요리가 늦어질 것에 불안해한 나머지 칼로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 '미션(Mission)'의 롤랑 조페 감독은 제라르 드파르디유(Gérard Depardieu) 주연으로 전기영화 '바텔(Vatel)'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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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티이성 지하의 레스토랑 라 카피테너리.


지하에는 17세기 샹티이 크림을 개발한 셰프 프랑수아 바텔에 오마쥬를 표하는 레스토랑 '라 카피테너리(La Capitainerie)'가 운영되고 있으며, 벽에는 제라르 뒤파르디유가 출연했던 전기 영화 '바텔(Vatel, 2000)'의 스틸 사진을 붙여놓았다.



샹티이성의 역사 History of Chateau de Chant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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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âteau de Chantilly


샹티이성은 원래 노네트강 계곡의 습지대 바위 언덕에 지어진 요새였다. 1386년 오르쥐몽(d’Orgemont) 가문, 1484년에 기욤 드 몽모랑시(Guillaume de Montmorency)가 상속받은 후 르네상스 시대엔 프랑소아 1세 국왕의 전우였던 총사령관 안느 드 몽모랑시(Anne de Montmorency)의 소유가 되었고, 몽모랑시는 당대 최고 건축가 장 뷜랑(Jean Bullant)을 초빙해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으로 샤토를 지었다. 1632년 샤토는 왕에 이해 압수되었다가 11년 후 콩데 왕자(부르봉의 앙리 1세) 부인인 샬롯 드 몽모랑시에게로 돌아간다. 


부르봉가의 루이 2세는 루이 14세의 사촌으로 '위대한 콩데(Grand Condé)'로 불리웠다. 콩데 왕자는 샹티이성을 베르사이유 궁전처럼 만들고자 베르사이유 정원의 조경가 르 노트르(Le Notre)에게 정원 설계를 의뢰한다.


1719년 부르봉의 공작(루이 앙리)는 건축가 장 오베르(Jean Aubert)에게 새로운 샤토와 말 뮤지엄이 될 위대한 마굿간을 위임했다. 1740년 콩데 왕자 루이 조셉이 오두막형 정원(La Hameau)을 조성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샤토는 철거되고, 1804년 앵기엥 공작이 나폴레옹 황제의 명으로 처형되면서 부르봉-콩데 가문의 대가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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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티이성의 예배당


1830년 아들을 잃은 부르봉 공작은 종손이자 루이-필리페 왕의 아들인 오를레앙의 앙리, 오말 공작(Duke of Aumale)을 상속인으로 정하게 된다. 1875년 오말 공작은 건축가 오노레  도메(Honoré Daumet)를 기용, 자신의 미술품 컬렉션을 전시할 수 있는 '그랑 샤토'를 지었다. 오말 공작은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아 캐롤리나와 결혼, 네 자녀를 두었지만 두 아들은 유아기에 사망했으며, 아들 두명은 17세, 20세에 미혼인 채 사망하는 비운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에 오말 공작은 1886년 샹티이성을 프랑스 학사원에 기증한다. 대신 전시작의 위치를 변경하지 않으며, 미술품 대여를 허락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1898년 샹티이성은 '콩데 뮤지엄'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개방하게 된다. 

 

Château de Chantilly - Musée Condé

7 rue du Connétable

60500 Chantilly

http://www.domainedechantilly.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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