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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날린이 치솟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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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런던 윔블리 스태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에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이 재결합 공연을 재현한 장면.  


*Bohemian Rhapsody 예고편


한국의 7080 세대에겐 록그룹 퀸(Queen)이 비틀즈(The Beatles)나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보다 더 인기를 누렸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이 너무나 영국적이라면, 퀸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록계의 루치아노 파바로티', 천둥같은 가창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가 그 중심에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45세에 불꽃같은 삶을 마감하며, 록계의 전설로 남았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힙합뮤직과 사카린같은 댄스음악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오늘, 7080 세대는 소셜미디어 외에 '내 마음 갈곳을 잃어'식의 문화적 공황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커다란 공백을 메꾸어줄 전설의 록그룹 스토리가 스크린에 재현됐다. 프레디 머큐리와 록밴드 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영국을 비롯, 한국,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상영 중이다. 한국에선 관객들이 노래를 부르는 싱어롱(떼창) 영화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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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도미니온시어터에서 12년간 롱런한 퀸 뮤지컬 'We Will Rock You', 2006.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전에 퀸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가 제작됐다. 2002년 런던 도미니온시어터에서 초연되어 2014년까지 장기 공연한 뮤지컬이다. 2006년 런던 여행 중 시원한 퀸의 노래를 메를리로 듣고 싶어 뮤지컬 'We Will Rock You'을 보았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신화에 근접하지 못하는 아마추어 프로덕션처럼 느껴졌다. 과연 프레디 머큐리가 떠난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미션 임파시블.  결국 '위 윌 록 유'는 라스베거스까지는 갔지만, 브로드웨이까지 입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프레디 머큐리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제작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영화도 록밴드의 해산과 재결합처럼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0년 머큐리와 닮은 사샤 바론 코헨이 캐스팅됐다가 제작자인 브라이언 메이(퀸의 기타리스트)와 로저 테일러(퀸의 드러머)와의 불화로 하차했고(*베이시스트 존 디콘은 프레디 머큐리 사망 후 몇 추모 콘서트에서만 연주한 후 일체 활동을 접고 은둔 중이다.), 2017년초에야 배우 레미 말렉(Rami Malek)으로 대체됐다. 감독도 'X멘' 시리즈의 브라이언 싱거(Bryan Singer)가 메거폰을 잡았다가 #미투 스캔달로 하차하며, 덱스터 플레처(Dexter Fletcher)가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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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대학 록밴드 스마일(SMILE)은 프레디 머큐리의 등장으로 '퀸(QUEEN)'이 된다.


영화는 20세기 폭스의 로고와 함께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의 편곡 연주로 팡파레 음악이 흘러나오며 시작된다. 1970년부터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까지 록그룹 퀸의 탄생과 해산, 솔로 전향에서 재결합에 이르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그린다. 퀸의 팬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는 잔자바라(현 탄자니아)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 페르시아와 인도계로 인도에서 사립학교를 다녔으며, 잔자바라로 돌아갔다가 정치불안으로 17세에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자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집안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다.


따라서 프레디 머큐리는 영국의 아웃사이더였다. 머큐리는 록 그룹 '퀸'이 사회 부적응자(misfits)들의 그룹이며 부적응자들을 위한 밴드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아우르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뮤지션의 뿌리와 줄기는 역사상 최고 밴드 중의 하나인 퀸(Queen)으로 꽃 피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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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의 영원한 사랑, 메리 오스틴. Bohemian Rhapsody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수화물 담당 아르바이트를 하던 미대생 파로크 불사라는 타운의 청년 밴드 '스마일(Smile)'의 리드 싱어로 들어간다. 여기서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기타), 로저 테일러(Roger Taylor, 드럼)을 만나고, 후에 존 디콘(John Deacon, 베이스)이 가담하며, 전설을 만들어 나간다. 그는 그룹 이름도 대담하게 퀸(QUEEN)으로 제안하며 로고도 디자인했다. 그리고,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로 바꾼다. 동성애자이며 에이즈로 사망한 머큐리에게는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 인도계 옷가게 점원 메리 오스틴과 약혼까지 했고 7년간 함께 살았지만, 밴드 생활을 하면서 매니저 폴과 동성애에 빠져든다. 


프레디 머큐리 역의 라미 말렉은 이집트계 미국인 배우로 분장과 특이한 치아, 표정과 말투로 머큐리를 연기하지만, 작은 키가 함정이었다. 실제로 머큐리는 5피트 10인치, 레미 말렉은 5피트 9인치라지만, 머큐리의 늘씬한 다리와 육감적인 몸을 대신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초반의 장발은 프레디 머큐리보다 롤링 스톤스의 리더 믹 재거(Mick Jagger)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메이크업과 헤어로 프레디의 청년 시절에 더 가깝게 분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라미 말릭은 머리를 자른 후부터 연기도 무르 익어가며, 결말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는 프레디 머큐리가 환생한듯한 착각을 줄 만큼 복사판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밴드 멤버들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 역의 배우들은 젊은 시절 밴드 멤버들과 판박이같다. 때문에 20여분간의 전설적인 퀸의 컴백 콘서트를 영화관의 대형 화면으로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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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hemian Rhapsody

 

*QUEEN: Live Aid at Wembley Stadium


영화는 관람등급을 낮추기 위해서였는지 프레디 머큐리의 정서 불안과 와일드한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보수적인 부모와의 갈등, 메리를 향한 감정과 성정체성 문제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폭발적인 창작열과 심리적 불안정, 밴드 멤버들과의 갈등이 디테일하게 포착되지 못하고, 스케치에 불과하다. 밴드 멤버들은 마치 병풍같다. 천체물리학 박사였던 브라이언 메이, 치과대를 다니다가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꾼 로저 테일러, 전자공학을 전공한 존 디콘이라는 학구적이며 가정적인 멤버과 현란한 동성애자 프레디 머큐리의 물과 불같은 결합이 나중에 솔로 선언할 때의 놀라운 표정으로 그치는 것은 극적으로 미약하다.    


한편, 오페라 광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는 콘서트를 연극 무대처럼 생각했다. 머큐리와 퀸 멤버들이 레코드 프로듀서와 6분짜리 '보헤미안 랩소디' 레코딩에 관해 논쟁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하다. 머큐리는 반복을 싫어했으며,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 진정한 예술가였다. 결국 퀸을 월드 스타로 만든 것은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한국에선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지만.


또한, 머큐리가 메리를 생각하며 피아노를 치며 작곡한 "Love of My Life"를 부르는 도중 매니저 폴의 키스를 받는 씬도 아이러니하면서 애잔하다. 그리고, 존 디콘이 녹음실에서 기타를 치면서 쓰게된 "Another One Bites the Dust"와 브라이언 메이가 청중과 교감하기 위해 고안한 박수와 비트로 시작하는 "We Will Rock You"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새롭다. 한편, 여성같은 미모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Radio Ga Ga"를 작곡했고, 훗날 수퍼스타 레이디 가가의 작명에 영감을 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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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앨범(왼쪽)과 프레디 머큐리가 디자인한 로고.


*Queen - Bohemian Rhapsody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의 타고난 가창력뿐만 아니라 미술학도, 아웃사이더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늘 추구하면서 색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록밴드 '퀸'의 전설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의 배경음악으로 오페라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보헤미안 랩소디'에 영감을 준 '카르멘'도 있었다. 또한, 머큐리는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동경했고, 10여마리의 고양이들을 사람처럼 대우했다. 


남성 4인조 밴드에 '퀸'이라는 도발적인 이름을 쓸 수 있는 머큐리는 천재였다. 때문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2시간 동안 환생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뮤직 비디오를 보듯이 감상하기엔 흥미로운 영화이며, 또 보고 싶게 만든다. 집에 돌아와 유튜브로 퀸의 라이브 콘서트 비디오를 보며 머큐리에 중독되어 영화의 여운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인터넷 시대의 즐거움이다. 


퀸의 노래에 심취했던 젊은 날의 초상을 떠올리며, 이젠 영어로도 흥얼거릴 수 있게 늙어버린 우리들. 1985년 프레디 머큐리의 컴백, 이디오피아 난민 기아를 돕기 위해 모여든 세계의 스타 뮤지션들과 청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라이브 에이드(Live Aid)'는 33년 후 이기적인 좀비처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2시간 15분. 

*상영관 https://www.fandango.com/bohemian-rhapsody-211850/movie-overview



*Queen BBc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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