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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바리톤, 지휘자로 질주해온 '오페라의 왕'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메트오페라 데뷔 50주년...총 52개 역할, 695회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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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ido Domingo as Gianni Schicchi in Puccini's "Il Trittico', The Metropolitan Opera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77)가 2018년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도밍고도 대역으로 무대에 오르며 스타덤에 올랐다. 1968년 그의 나이 27세 때 프란체스코 칠레아 작곡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Adriana Lecouvreur)'에 당대 최고 테너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를 대신해 마우리지오 역으로 무대에 올라 당대 최고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와 호흡을 맞추었다. 


도밍고는 11월 23일 푸치니의 3부작 오페라 '일 트리티코(Il Trittico)' 중 '지아니 스키키(Gianni Schicchi)'의 타이틀 롤로 메트오페라하우스 공연하며 피터 겔브 메트오페라 단장으로부터 50주년 기념 선물을 받으며 성대한 갈라 없이 소박하게 50주년을 기념했다. 이날 도밍고는 지아니 스키키 역으로 메트오페라에 52번째 역할(테너 & 바리톤 & 지휘)로 총 695회 공연을 기록했다. '일 트리티코' 는 11/30, 12/5, 8, 12, 15에도 공연된다. 러닝타임 3시간 46분. 

https://www.metopera.org/season/2018-19-season/il-tritt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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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ido Domingo as Miller and Sonya Yoncheva in Verdi's "Luisa Miller." Photo: Chris Lee/Met Opera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77세의 노장이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변신해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고 있다. 도밍고는 베르디 작곡 '루이자 밀러(Louisa Miller)'에서 소프라노 소냐 욘체바, 테너 피요트르 벡잘라와 노래하는 중이다. '루이자 밀러'는 3월 29일부터 4월 21일까지 7차례 공연되며 4월 14일 토요일 오후 공연은 HD Live로 전세계 극장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러닝타임 3시간 28분. 


도밍고는 '루이자 밀러' 공연 후 23일부터 5월 12일까지 6차례 메트오페라에서 구노 작곡 '로미오와 줄리엣(Roméo et Juliette)'의 지휘봉을 잡는다. 티켓: $25부터. https://www.metopera.org


domingo7.jpg Placido Domingo


정상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베르디 바리톤 마라톤으로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도밍고는 2007년 2년 후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Simon Boccanegra)'의 타이틀롤인 바리톤으로 노래하겠다고 발표했다. 바리톤 데뷔 공연은 2009년 10월 24일 베를린국립오페라에서 열렸다. 그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도 시몬 보카네그라로 무대에 올랐다. 


바리톤 데뷔에 성공한 후 도밍고는 베이징 라인우드시어터에서 베르디의 '리골레토(Rigoletto)'와 마세네 작곡 '타이스(Thaïs)'에서 바리톤으로 노래했다. 2013년 3월엔 메트오페라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서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 역할을 처음으로 맡았다. 


이어 2015년엔 살스부르크 페스티벌의 '일 트로바토레(Il Trobatore)'에서 바리톤 루나 백작 역으로, 2013년엔 상 페테스부르크, 베이징, 베로나와 비엔나에서 베르디의 '나부코(Nabucco)'에서 타이틀롤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베르디 작곡 '맥베스(Macbeth)'와 '에르나니(Ernani)' '지아니 스키키(Gianni Schicchi)'의 바리톤으로 이어졌다. 



Placido Domingo, The King of Opera


domingo4.jpg Placido Domingo


스페인 출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77)는 오페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악가로서 통산 140개 이상의 역할을 맡았다.


도밍고는 테너로 출발했지만, 바리톤으로 노래하는가 하면, 작고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쓰리 테너(Three Tenors)로 콘서트를 열었다. 또한, 지휘봉을 잡고, 로스앤젤레스오페라와 워싱턴국립오페라의 디렉터로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본명은 호세 플라시도 도밍고 엠빌(José Plácido Domingo Embil). 1941년 1월 21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바리톤,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 그러나, 아버지는 감기 든 상태에서 노래하다가 목소리를 잃었다. 도밍고 일가는 1949년 멕시코시티로 이주했다. 부모는 자르주엘라(zarzuela, 소규모 오페라) 컴퍼니를 운영했고, 소년 플라시도는 피아노 교습을 받기 시작한 후 국립음악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다.


▶바리톤으로 데뷔: 1957년, 열여섯살의 도밍고는 어머니와 중미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에서 어머니와 함께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부모가 운영한 자주엘라에서 카베주오도스(Gigantes y cabezudos)에서 바리톤으로 데뷔했다. 이후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조역을 맡으면서, 부지휘자로도 활동한다.


▶테너로 발견되다: 1959년 도밍고는 멕시코국립오페라에 바리톤으로 오디션을 했다. 그런데, 테너의 아리아를 불러보라는 요청을 받은 후 테너로 바꾸어 입단하게 된다.


▶피아노, 지휘와 노래 사이에서: 도밍고는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지만, 연기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발레단과 멕시코 TV 프로그램의 반주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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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의 신랑: 도밍고는 겨우 열여섯살에 피아노를 함께 배우던 여학생 안나 마리아 구에라와 결혼해 아들 호세(현재 사진작가)를 두었다. 부모는 크게 실망했고, 도밍고는 호세가 태어난 직후 이혼했다. 


▶오페라 데뷔: 1961년 도밍고는 마리아 테레사 몬토야 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으로 정식 오페라 데뷔를 한다. 같은 해 미국 무대도 밟았다. 달라스 시빅 오페라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주역 아르투로 역을 맡았다. 상대역은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


▶두번째 결혼: 1962년 스물한살의 청년이 된 도밍고는 멕시코 출신 소프라노 마르타 오르넬라와 결혼한다. 그녀는 도밍고보다 6살 연상이었고, ‘올해의 가수’로 선정됐다. 하지만, 아내는 노래를 중단하고, 전업 주부로 두 아들(플라시도 주니어, 알바로 마우리지오)을 키우게 된다. 


domingo6.jpg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도밍고와 부인 마르타 오르넬라.


▶뉴욕 데뷔: 도밍고의 뉴욕 데뷔 무대도 대역이었다. 1965년 뉴욕시티오페라의 오디션에 합격한 도밍고는 ‘나비 부인’의 주인공 핑커튼 역을 맡은 테너가 아픈 바람에 대신 무대에 올랐다. 이어 ‘카르멘'의 돈 호세 역으로 출연하게 된다. 


▶대역으로 메트 데뷔: 메트오페라 데뷔도 대역으로 출발했다. 1968년 9월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의 주인공 마우리지오 역을 맡았던 테너 프랑코 코렐리를 대신해 무대에 올랐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테너 부문에서 가장 뜨거운 젊은 성악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후 도밍고는 메트오페라의 개막공연에만 21회 출연했다. 이는 엔리코 카루소(1873-1921)의 이전 회고 기록인 17회를 능가하는 수치다.


▶노래하는 지휘자: 테너로 스타가 된 도밍고가 지휘봉을 잡은 것은 1973년, 뉴욕시티오페라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 때였다. 푸치니의 ‘나비 부인(Madama Butterfly),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Roméo et Juliette), 베르디의 ‘스티펠리오(Stiffelio)’ 등 메트오페라에만 140여차례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크로스오버: 플라시도 도밍고가 더욱 더 유명해진 것은 1981년 컨트리 가수 존 덴버와 듀엣으로 녹음한 발라드곡 ‘Perhaps Love’를 발표하면서. 이 곡은 빌보드 핫 100의 59위에 오르면서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도밍고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멕시코 지진: 1985년 9월 19일 멕시코 역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도밍고는 친척들을 잃었다. 그 자신이 생존자들을 구조하러 현장으로 갔으며, 이듬해엔 희생자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domingo8.jpg 멕시코 시티의 도밍고 동상


▶카트리나 자선 모금: 2006년 허리케인 카트리니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스에서 갈라 베너핏 콘서트를 열었다. 

도밍고는 “음악은 사랑의 식량이라면, 음악은 희망의 목소리("If music be the food of love. Music is the voice of hope!”)라고 말했다.


▶내게 장벽이란 없다: 도밍고는 1990년대 이후 자신의 배역을 끊임없이 확대해왔다. 바그너의 ‘파르시팔’과 ‘발퀴레’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 무려 38개의 새로운 역할을 6가지 언어(영어, 이탈리안, 불어, 독어, 러시안, 스패니시)을 맡아 노래했다. 


▶쓰리 테너(Three Tenors): 스타 테너 도밍고는 라이벌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쓰리 테너를 구성해 1990년 로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공연했다. 첫 쓰리 테너 공연은 원래 호세 카레라스의 국제백혈병재단 기금 조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1994(LA), 1998(파리), 2002(요코하마) 월드컵까지 이어졌다. 


도밍고는 2006년 베를린 월드컵에서 당시 신인이었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레브코, 테너 롤란도 비야손과 콘서트를 열었다. 올림픽에서도 노래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폐막식,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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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LEY (HQ) Pavarotti - Domingo - Carreras / The Three Tenors


▶메트 125주년, 도밍고 40주년: 2009년 3월 15일 메트오페라에서는 125주년 기념식과 함께 도밍고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했다. 


▶오페라 경영자: 오페라단을 운영했던 집안에서 자란 도밍고는 1993년 도밍고는 세계 오페라 콩쿠르 ‘오페랄리아(Operalia)’를 창설해 젊은 성악가들을 발굴해오고 있다.


또, 1996년 워싱턴국립오페라(Washington National Opera)의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을 맡았다. 신인 발굴에 관심을 보였던 도밍고는 이미 1999년 러시아 출신 안나 네트레브코를 ‘리골레타’의 질다 역에 캐스팅했다. 2003년 도밍고는 단장(General Director)으로 경영까지 맡고 있다. 이와 함께 2000년부터 로스앤젤레스 오페라(Los Angeles Opera) 의 예술감독으로 시작, 2003년부터는 단장이 됐다. 


▶바리톤으로 확장: 무대 위와 밖에서 무수히 많은 역할에 도전하고, 성취해온 플라시도 도밍고는 ‘바리톤 배역’을 마지막 경력의 이동이라고 말했다. 2007년 베르디의 가장 난해한 바리톤 역인 ‘시몬 보카네그라’의 주연으로 바리톤 도밍고로 또 하나의 챕터를 열었다. 이후 '리골레토', ‘타이스(Thais)’ ‘나부코’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까지 저역 음감으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Plácido Domingo, Anna Netrebko, Rolando Villazón. The Berlin Concert


▶유네스코 친선대사: 2012년 11월 도밍고는 UNESCO의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오페라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우려를 거세할 수 있도록 대중화에 기여해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


▶유목민의 정착지: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멕시코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스타가 된 도밍고. 동으로 서로, 성악가로 경영자로 뛰는 그의 집은 어디일까? 뉴저지의 티넥에서 살면서 휴가는 멕시코의 아카풀코 별장에서 보내고 있다.


▶공로: 도밍고는 1971년 첫 그래미상 트로피를 받은 후 8개를 보탰다. 2007년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2011년 백악관에서 주는 자유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http://www.placidodomin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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