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아이다(AIDA)' 마지막 공연
*3/7 메트오페라 '아이다(AIDA)' 플라시도 도밍고 지휘로 마지막 공연
31년간 247회 공연으로 피날레. 2020-21 시즌 마이클 메이어 프로덕션으로 컴백
베르디 작곡 '아이다(AIDA)
테너 이용훈씨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로 열창
스펙터클한 세트, '개선 행진곡' 합창, 사랑과 충성의 딜레마
1월 11일, 14일, 18일 공연
메트오페라 '아이다' 2막에서 승전한 라마데스 장군(이용훈 분)이 말을 타고 테베의 성문 앞 광장으로 등장하는 장면.(좌)
Yonghoon Lee as Radamès in Verdi's "Aida."(우) Photo by Karen Almond for the Metropolitan Opera.
딴 따 따라라랄라라 따라라랄라라~ 트럼펫 소리가 웅장한 '개선 행진곡(Marcia trionfale)'. 오페라도 베르디를 몰랐던 시절 운동회에서 울려퍼지던 이 곡은 한번 들으면 하루종일 뇌리에 남아 자동으로 테이프처럼 반복해서 돌아갔다. '개선 행진곡'이 삽입된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걸작 오페라 '아이다(Aida)'를 처음 본 곳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였다.
2001년 1월 23일 친구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가 이집트 장군 라마데스로 분한 '아이다'를 보러갔다. 당시 파바로티는 노구에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첫 인터미션 때 거의 청중이 객석으로 들어간 즈음 은발의 신사가 발 빠르게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대통령이었다. 그해 1월 20일까지 8년간 백악관을 지켰던 빌클린턴이 조지 W. 부시에게 넘겨준 후 사흘만에 '아이다'를 보러 온 것이었다. 무척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클린턴은 가장 좋은 파르테르 박스석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A scene from Act 2 of Verdi's "Aida" Photo: Marty Sohl/Met Opera(좌) / 1월 7일 커튼콜에서 이용훈씨(우).
'개선 행진곡'이 등장하는 웅장한 2막이 내려간 후 인터미션에 커튼이 완전히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가 부산한 모습이 살짝 보였다. 빌 클린턴과 파바로티, 출연진이 기념 촬영을 하는 것 같았다. 옆 자리의 여인에게 '빌 클린턴이 왔어요'라고 귀뜸해주니, 옆으로 말이 이어져서 우리 좌석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 박수 소리가 터졌다. 누군가 빌 클린턴을 향해 치기 시작했다. 이때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첼시 클린턴도 오페라하우스에 있었다. '아이다'에 맞게 황금색 넥타이를 맨 은발의 빌 클린턴은 당시 55세, 갓 숙녀가 된 첼시는 20세, 파바로티는 66세, 그리고 뉴욕은 9/11이라는 참사가 발생하기 8개월 전, 뉴욕의 평화로운 겨울날이었다.
2007년 전설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작고하고, 플라시도 도밍고가 바리톤으로 전향하며 지휘봉을 잡고 있으며, 호세 카레라스는 70대가 넘어 은퇴직전이다. 쓰리 테너의 행성 옆으로 오늘날 오페라 은하수는 테너의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요나스 카프만(Jonas Kaufmann), 로베르토 알라냐(Roberto Alagna),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Juan Diego Flórez)와 성대 수술로 공백기 후 복귀한 롤란도 비야손(Rolando Villazon)등 스타를 비롯해 라몬 바르가스(Ramón Vargas), 조셉 칼레야(Joseph Calleja), 비토리오 그리골로(Vittorio Grigolo), 매튜 폴렌자니(Matthew Polenzani), 마르셀로 알바레즈(Marcelo Álvarez), 마이클 파비아노(Michael Fabiano), 피오트르 베찰라(Piotr Beczala)까지 국적(독일, 이탈리아, 멕시코, 아르헨티나, 라트비아, 폴란드 등)도 다양하다. 여기에 한인 테너 이용훈(Yonghoon Lee)씨는 아시아 출신 테너로는 혈혈단신 세계 톱 클래스 테너의 궤도에 진입했다.
1월 7일 공연 후 커튼 콜에서 왼쪽부터 솔로몬 하워드(이집트 왕), 로베르토 프론탈리(아모나스로), 크리스틴 루이스(아이다), 니콜라 루이소티(지휘), 이용훈(라다메스), 돌로라 자직(암네리스), 비탈리즈 코왈조프(람피스/제사장).
2010년 '돈 카를로'의 타이틀롤로 메트오페라에 데뷔한 이용훈씨는 '카르멘' '나부코' '일 트로바토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에 주역으로 거의 매년 메트 무대에 올랐다. 뉴욕타임스의 오페라 비평가 안토니 토마씨니는 돈 카를로 역의 이용훈씨에 대해 "탁월한 테너, 미남이며, 젊어보이며, 무대에서 자연스럽고, 듀엣과 앙상블 때 감성적으로 경청한다. 카리스마적인 겸손함을 풍기면서 감동적으로 진심어린 돈 카를로를 만들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용훈씨는 7일 '아이다' 공연에서 이집트 공주의 노예가 된 이디오피아 공주 아이다를 남몰래 사랑하는 친위대장 라마데스 역으로 분했다. 제 1막 초두에 등장한 그는 간판 아리아 "천상의 아이다(Celeste Aida)"를 트럼펫 소리와 듀엣으로 승전을 다짐는 분기탱천한 라다메스에서 아이다에 대한 사랑을 담은 서정적인 보컬로 선회해 벨벳처럼 부드러운 톤으로 우아하고, 아름답게 노래하며 라다메스의 충성과 사랑이라는 딜레마를 예고했다. 고음에서 파워풀한 가창력을 발휘하는 이용훈씨는 저음에서 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볼륨이 약해져서 아쉬움을 남겼다.
A scene from Verdi's "Aida" Photo: Marty Sohl/Met Opera
하지만, 1막 커튼이 내려간 후 인터미션에 우리 줄에 앉았던 미국인 중년 여성이 관람평을 했다. "지난번 테너(*알렉산드르 안토넨코) 방송으로 들었는데, 이번 테너(*이용훈)가 훨씬 낫다"고 안도했다. 이용훈씨는 2막에서 라다메스 장군으로 개선 행진곡(Marcia trionfale)과 함께 위용있게 등장하면서 연기와 노래가 자연스럽게 무르 익어갔다.
그는 3막에서 아이다(크리스틴 루이스)와의 결혼을 다짐하는 2중창 "다시 보니, 나의 달콤한 아이다(Pur ti riveggo, mia dolce Aida)"와 "적의 가득찬 이곳으로부터 도망갑시다(Fuggiam gli ardori inospiti)", 이어 4막에서 암네리스 공주(돌로라 자직)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2중창 "이미 제사장들은 모이고(Già i Sacerdoti adunansi)"를 메트오페라하우스를 울릴 정도의 박력있는 가창력으로 청중의 열띤 갈채를 받았다.
Yonghoon Lee as Radamès and Kristin Lewis in the title role of Verdi's "Aida."(left)/ Yonghoon Lee as Radamès and Dolora Zajick as Amneris in Verdi's "Aida." Photo by Karen Almond for the Metropolitan Opera.
소프라노 손드라 라드노프스키(Sondra Radvanovsky)의 개인 사정으로 아이다 역으로 전격 캐스팅된 크리스틴 루이스(Kristin Lewis)는 이 공연이 메트오페라 데뷔 무대였다. 미국 아칸소 출신으로 2005년부터 비엔나, 로마, 드레스덴,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루이스는 거칠면서 풍부한 성량의 라드노프스키에 비해 깊고, 청아하고, 영롱한 보이스였지만, 때때로 파워와 성량이 부족했다.
1막의 아리아 애절한 "이기고 돌아오라(Ritorna vincitor)"와 3막의 "오! 나의 고향(Oh, patria mia)"의 저음에선 모기소리처럼 취약했다. 아마도 1700-2200석 내외의 유럽 무대에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메트 오페라하우스는 3800석의 초대형 극장이라 소리를 격하게 질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사랑과 충성, 연인과 아버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인 아이다의 딜레마를 몸으로 열연했다.
반면,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에서 집시여인 아주체나 역으로 찬사를 받아온 베테랑 메조 소프라노 돌로라 자직(Dolora Zajick)은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역으로는 너무 많은 나이(66세)였다. 자직은 1989년 메트에서 암네리스 역을 맡은 후 근 30년간 80회 이상 출연해온 암네리스로 컴백한 것. 자직은 라다메스에 대한 짝사랑과 노예 아이다에 대한 질투와 배신, 굴욕에 가득찬 공주의 딜레마를 포효하는듯한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압도했다.
A scene from Verdi's "Aida" Photo: Marty Sohl/Met Opera
베르디 '아이다'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합창이다. 제 2막 테베 성문 앞 광장에서 트럼펫 팡파레와 함께 펼쳐지는 코러스의 합창 "이집트의 영광 Gloria all' Egitato", 일명 '개선의 합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상상 속의 고대 이집트인들과 이디오피아 노예들, 말까지 행진며 현란하게 무대에 펼쳐진다. 니콜라 루이소티(Nicola Luisotti)가 지휘하는 메트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는 스펙터클한 사운드를 책임졌다.
'아이다'의 스펙터클한 무대는 1988년 초연된 소냐 프리셀(Sonja Frisell) 프로덕션이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덴더 사원(Temple of Dendur) 일부와 고대 이집트 석상과 벽화가 디테일하게 재현되었다. 지아니 콰란타(Gianni Quaranta)의 웅장한 세트, 갑옷과 투구, 실제 말과 당나귀 네마리, 278명이 행진하는 '아이다'의 코러스와 엑스트라들의 머리 끝부터 샌달까지 고대 이집트 의상을 재현한 디자이너 다다 살리게리(Dada Saligeri)에게 30년 롱런의 공을 돌려야할 것이다. '아이다'는 또한 발레 장면이 삽입되어 또 다른 장르의 즐거움을 준다. 여성노예들의 군무가 다소 현대적인 안무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알렉세이 래트만스키(Alexei Ratmansky)가 맡았다.
A scene from Verdi's "Aida" Photo: Marty Sohl/Met Opera
2020년 프로덕션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연출가 마이클 메이어(Michael Mayer)의 프로덕션이 새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리골레토'를 이탈리아 배경에서 1960년대 라스베가스로 각색한 인물이라 30년 인기를 끌어온 소냐 프리셀의 스펙터클한 무대를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테너 이용훈씨가 주연하는 '아이다', 오페라의 백미인 '아이다'를 이번 시즌 꼭 봐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용훈씨는 '아이다' 공연 후 시드니의 호주 오페라에서 '투란도트'의 칼라프로 분하며, 3월엔 비엔나국립오페라(Wiener Staatoper)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리두 역을 맡는다. 이어 5월 뮌헨 바바리안국립오페라(Bayerische Staatoper)에서 푸치니의 '일 트리티코' 중 '일 타바로(Il Tabarro)'의 루이지역으로, 6월엔 쥐리히오페라하우스에서 '운명의 힘'의 돈 알마로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A scene from Verdi's "Aida" Photo: Marty Sohl/Met Opera
메트오페라 2018-19 시즌에서 '아이다'는 지난해 9월 26일부터 10월 11일까지 수퍼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레브코와 테너 알렉산드르 안토넨코, 메조 소프라노 아니타 라쉬벨리쉬빌리(Anita Rachvelishvili)가 출연했으며, 이용훈씨가 10월 15일과 18일 안토넨코의 대타로 공연했다.
이용훈씨가 출연하는 '아이다'는 1월 11일, 14일, 18일 공연되며,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하는 '아이다'는 2월 28일, 3월 4일과 7일 공연된다. 티켓 $37-$485 https://www.metopera.org/season/reserve/date-comparison/?perf=15150
*메트오페라하우스 그랜드 티어 레스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