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뮤지엄 얼굴 바꾼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 조각 4점
Wangechi Mutu: The NewOnes, will free Us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얼굴 바꾼 왕게치 무투 조각 4점
"새로운 이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Sept. 9, 2019 - Jan. 12, 2020
Wangechi Mutu's The NewOnes, will free Us at the Met Museum Facade
메트로폴리탄 뮤지엄(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가 117년 역사상 처음으로 건물 정면에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케냐 출신 뉴욕 조각가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 1972- )가 청동좌상 4점을 보자르 양식의 뮤지엄 빌딩 벽감(壁龕, niche,건물에서 오목하게 파인 벽면)에 설치했다.
왕게치 무투 작가와 맥스 홀레인 메트뮤지엄 관장이 9일 언론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했다.
지난 9일 언론 프리뷰에서 7피트 높이의 청동 좌상 4점 "새로운 이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The NewOnes, will free Us)"가 베일을 드러냈다. 1902년 건축된 메트뮤지엄 건물 벽감에 처음 예술작품이 전시된 것. 메트뮤지엄의 첫 건물 정면 위임(파사드 커미션, Façade Commission)으로 완성된 조각들이다.
맥스 홀레인 메트뮤지엄 관장이 왕게치 무투의 '좌상(The Seated)'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맥스 홀레인(Max Hollein) 메트로폴리탄뮤지엄 관장은 언론 시사회에서 내년 뮤지엄 창립 150주년을 맞아 "현대작가들과의 대화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켈리 바움(Kelly Baum) 큐레이터는 "1902년에 이 벽감이 채워졌더라면, 분명 백인남성 작가의 작품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메트뮤지엄은 제 1호 파사드 커미션으로 케냐 출신 여성작가 왕게치 무투를 선택했을까? 2013년 미 경찰의 흑인 무차별 살해로 시작된 사회운동이 트위터 #BlackLivesMatter(흑인 목숨들도 중요하다)를 통해 세계로 전파됐다. 또한, 2007년 10월 할리우드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이 폭로된 후 이어진 미투(#MeToo) 운동이 퍼져나갔으며, 내년은 미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국 내 흑인들의 투표권은 이에 앞선 1870년에 주어졌다.
올 아모리쇼(The Armory Show)에서도 흑인작가 열풍이 불었고, 전설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를 비롯,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등 흑인 작가들의 작품이 수천만 달러에 팔리며 뮤지엄 곳곳에서 흑인 작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 흑인 작가들은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2019 휘트니 비엔날레에서는 두 흑인 여성작가 시몬 리(Simone Leigh)와 왕게치 무투의 작품이 주목을 끌었다. 구겐하임뮤지엄은 2018 휴고보스상 수상작가 시몬 리의 조각을 전시 중이며, 하이라인 공원에는 그의 대작 '브릭하우스(Brick House)'가 설치됐다.
이처럼 #BlackLivesMatter와 #MeToo가 시대정신이 된 오늘 문화적으로도 소외됐던 그룹인 흑인과 여성을 대표하는 왕게치 무투를 메트뮤지엄의 얼굴에 내세우는 것은 탁월한 선택처럼 보인다. 왕게치 무투가 이 커미션 작가로 선정된 것은 올 9개월 전으로 알려졌다.
1902년 완공 후 비어 있던 보자르 양식의 메트뮤지엄 벽감(niche)에 왕게치 무투의 청동조각 4점이 전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아프리카 미술을 접근해온 태도는 다양성 측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870년 메트뮤지엄이 창립된 후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들의 미술품이 기부되었지만, 1911년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과 협약으로 '선사시대 사람들'에 의한 '원시미술'로 분류되어 작품들이 자연사박물관 내로 들어갔다.
이후 메트뮤지엄은 유럽, 아시아, 지중해 연안국의 작품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1969년에 가서야 메트뮤지엄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칸 원주민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메트의 얼굴에 왕게치 무투의 조각은 거의 혁명적이며,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사건이다.
구원의 조각: The NewOnes, will free Us
왕게치 무투의 조각 4점은 어떤 의미일까?
Wangechi Mutu, The Seated I, II, III, IV, Bronze, 2019.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왕게치 무투는 카리아티드(Caryatid,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기둥으로 사용된 여인상)과 중앙 아프리카 루바족(Luba)의 전통 나무 조각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4점의 좌상 'NewOnes'는 신전을 받들고 서있던 수많은 대리석 여인상들이 아니라 메트뮤지엄의 정면 벽감 안에 부처처럼 품위있게 앉아 있는 청동 조각이다. 대리석 대신 청동으로 아프리카 피부색을 표현하고, 윤기를 내서 회색 건물에서 시선을 집중시킨다.
고대 이집트 대리석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여신들, 카리야티드(왼쪽)/ 이디오피아 무르시(Mursi) 부족의 입술판. https://www.pinterest.com
아프리카 여인들이 애용했던 링 목걸이 모티프를 활용한 의상은 마치 청살 갑옷처럼 강인함을 표현하는듯 하다. 뮤지엄 안의 대부분 여성들이 누드가 아니던가? 이 창살같은 갑옷은 자가 방어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머리에 쓴 둥그런 청동판은 아프리카 부족 여성들이 입술에 구멍을 내서 장신구처럼 달고 다니는 입술판(lip plate, lip disc)에서 영감을 받았다. 나무나 점토로 만든 입술판은 15-16세때 입술에 구멍을 내서 큰 점토판을 달 수 있도록 확대한다. 원래 노예상인의 포획을 막기위해 사용되었지만, 미혼여성에게는 입술판이 클수록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왕게치 무투는 이 무겁고, 불편한 입술판을 머리에 올림으로써 성차별적인 폐습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입술판은 마치 왕관처럼, 선디스크처럼 햇빛에 반사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개혁가였던 파라오 아케나텐(Akenaten)과 왕비 네페르티티(Nefertiti)가 숭상했던 태양신 아톤(Aton)을 연상시킨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파라오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왕비 부조(왼쪽)/ 왕게치 무투의 '좌상 2'.
왕게치 무투는 "여성들이 힘, 탄력성과 지혜로 인정받으면서도 여전히 고통이 수반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본다."면서 "거울같은 판들은 반성을 촉발하며, 품위와 공감에 대한 희망과 불평등과 편견을 넘어서는 승리가 있는 미래를로 손짓한다"고 밝혔다.
조각의 타이틀 '새로운 이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The NewOnes will free Us)'는 고대 이집트의 최고 미녀로 꼽히는 왕비 네페리티티(Nefertiti)의 이름 '아름다운 이가 오셨도다'를 연상시킨다. 왕게치 무투는 가부장적이며, 백인우월주의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야 했다. 아프리카 출신 여성작가로서 자신의 문화에 경의를 표하고, 그동안 미술사에서 소외되어왔던 소수 여성들을 대변하고, 구원하는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https://www.metmuseum.org
Wangechi Mutu's The NewOnes, will free Us at the Met Museum Facade
1972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태어난 왕게치 무투는 영국 웨일스에서 카톨릭 고등학교를 다녔다. 1990년대 뉴욕으로 이주, 뉴스쿨과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인류학과 미술을 전공했다. 쿠퍼유니온에서 학사, 예일대학원에서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출신 컨설턴트 마리오 라짜로니와 결혼해 두딸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