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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강익중씨 두번째 시화집 '사루비아' 출간

시(詩)를 잊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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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시화집 '사루비아' 표지와 강익중 작가. 사진: 안웅철

 

뉴욕의 화가 강익중(Ik-joong Kang)씨가 12월 두번째 시집 '사루비아'(송송책방)를 출간했다. 지난해 6월 펴낸 첫 시집 '달항아리'에 이은 두번째 시집엔 정선한 시 118편과 함께 강익중 작가의 작품, 일상에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있다. 강익중 작가는 뉴욕컬처비트에 '詩 아닌 詩'에 시를 연재해왔다. 그가 그동안 쓴 시는 1천700여수에 이른다. 

 

글로벌 아티스트 강익중씨는 왜 시를 쓸까? 시집 '사루비아'는 시를 쓰는 화가의 변명 '詩'로 시작한다. 

 

마음을 챙기려고

시를 써본다

잊지 않으려고

시를 써본다

세월에 끄적이려고

시를 써본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를 써본다

-'사루비아'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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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강익중 작가에게 마음 추스르기(명상)나 혹은 마음 다짐(결심)의 글쓰기이자, 시간의 경과 속에서 사라지게될 그 무엇을 간직하려는 욕구인듯 하다. 시는 그를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명경지수(明鏡止水)의 마음 상태로 데려다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시인으로서 그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아름다움과 추함,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낚아내어 마음의 보물상자 속에 가두었다가 글로 풀어내 세상과 소통하려는 작가다. 화가로서 그는 시의 문외한임을 고백하면서도 말 달리듯이, 일필휘지(一筆揮之)식으로 시를 쓴다. 

 

그의 시는 쉽게 쓰여진 것 같지만, 쉽게 읽혀지지만은 않는다. 자신의 성찰과 깊은 사유를 통해 길어낸 시들로 독자는 곱씹어봐야 한다. 즉, 여운을 주는 시들이다. 탐미주의 언어로 총총한 자아도취의 시가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맑고, 담담하고, 순수한 시다. 어쩌면, 시는 그림보다 더 적확하게 인간 강익중의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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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는 왜 그림을 그릴까? 시 '그림을 그린다'에서 화가는 고백한다.

 

잊으려고 그림을 그린다

잊지 않으려고 그림을 그린다

시간을 보내려고 그림을 그린다

시간을 아끼려고 그림을 그린다

날이 좋아서 그림을 그린다

날이 나빠서 그림을 그린다

편지 대신 그림을 그린다

그냥 그림을 그린다" 

-'사루비아' 23쪽-

 

그림 그리기와 글 쓰기는 자기 표현의 수단이자, 철저하게 고독한 작업이다. '잊기 위해, 잊지 않으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도, 시간이 (너무 없어) 아까워서' '날이 좋아도, 나빠도'라는 이율배반적인 이유로 강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 글쓰기(편지) 대신 그리기(그림) 역시 누군가와 소통하려는 욕망이다. 결국 그는 가장 좋은 이유를 찾았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just)'이다. 그림은 그의 천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어 중의 하나다.

 

그냥

걸을 때는 걷고

들을 때는 듣고

먹을 때는 먹고

잘 때는 자고

웃을 때는 웃고

바람 불면 바람에 안기고

내려놓을 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달항아리'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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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피카소도 아티스트이자 시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300여편의 소네트를 남겼고, 1623년 종손 미켈란젤로에 의해 시집이 출판됐다. 피카소는 1935년 54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59년 엘 그레코의 그림 제목을 딴 시집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을 출간했다.

 

'누가 화가이고, 누가 시인인가', 강익중 작가는 화가와 시인에 대한 구별을 짓고 싶어하지 않는다. 화가라고,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어제

그림을 그렸으면

지나간 화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누구나 화가

어제 시를 썼으면

지나간 시인

지금 시를 쓰고 있으면

누구나 시인

-'사루비아'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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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데뷔 시집의 타이틀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달항아리'였다. 두번째 시집의 제목은 왜 '사루비아'일까? 

 

사루비아를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벌새가

사루비아를

좋아한다기에

나도

사루비아를

좋아하기로 했다

-'사루비아' 13쪽-

 

디지털 세대에게는 사루비아가 낯설지도 모른다. 기성세대에게 사루비아는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이름이다. 영어로 샐비아(salvia)지만, 일본식 발음으로 불리운 꽃. 옛날 교정의 화단에 빨간색 꽃망울을 줄줄이 달았던 사루비아는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꽃이다. 사루비아는 꿀을 머금고 있는 꿀풀이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그 시절 사루비아 꽃을 빨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루비아는 그런 추억의 꽃이며 빨간색 사루비아는 지혜, 정열, 정성, 가족애를 상징한다. 

 

벌새는 매우 작은 새지만, 벌처럼 날아 꿀을 빨아먹는다고 한다. 벌새가 사루비아의 꿀을 좋아한다. 사루비아의 꿀샘은 화가의 마음 속에 불타고 있는 시 쓰고 싶은 열정, 즉 시정(詩情)인 듯하다. 시집 '사루비아'의 크레용화 표지는 사루비아처럼, 초심으로, 추억으로 돌아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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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 모토는 '이렇게 살고 싶다'에 드러난다. 이제 그는 '화려함, 넓음, 높음, 넉넉함, 큰것'까지 갖춘 부자 화가다. 하지만, '웃음, 살아있음, 편안함, 소박함, 그리고 텅 빈'이라는 시어를 통해 겸손함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한다. 물질적인 욕구보다는 정신적인 만족감에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다짐하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환히 웃는 들꽃처럼

넓지는 않지만

살아 있는 시냇물처럼

높지는 않지만 편안한 산마루처럼

넉넉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밥상처럼

크지는 않지만

텅 빈 달항아리처럼

-'사루비아'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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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소에 물질적, 정신적 욕망을 제어한다. 시 '까지만'은 반복적으로 탐욕을 억누르는 마음 다짐의 시이자 체념으로 마음 추스르기처럼 읽혀진다. 그는 마치 자신과 독자에게 최면을 거는듯 하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작가는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상기기킨다.

 

우리는

볼 수 있는 것 까지만 본다

갈 수 있는 곳 까지만 간다

느낄 수 있는 것 까지만 느낀다

채울 수 있는 것 까지만 채운다

상상할 수 있는 것 까지만 상상한다

찾을 수 있는 것 까지만 찾는다

알 수 있는 것 까지만 안다

믿을 수 있는 까지만 믿는다

줄 수 있는 것 까지만 준다

받을 수 있는 것 까지만 받는다

사는 날 까지만 산다

-'사루비아'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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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해지려면' 시리즈(14수)에서 강익중 작가는 자기 최면을 걸고, 독자에게는 인생 코치(life coach)처럼 속삭인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눈을 감는다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는다

모두 버린다

아무 것도 없는 지금에 만족한다

그리고

하하 웃는다" 

-'사루비아' 139쪽-

 

쓰레기통을 비운다

김칫국물에 국수를 만다

밀린 설거지를 한다

운동화를 빤다

내 것은 원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하 웃는다" 

-'사루비아'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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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익중 시인은 다시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생은 연극이었다'라며 부질없는 욕망 대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맨 처음부터

인생은 연극이었다

해와 달고 별과 구름도

담장 사이에 핀 덩굴 나무도

작은 것에 목숨 거는

너와 나도

무대를 두고 떠나는 날

집으로 가는 날이다

-'사루비아' 231쪽-

  

이제 60을 눈앞에 둔 화가 강익중씨의 '사루비아'는 그 자신에게 성찰의 시일뿐만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잠시 멈추어 생각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백'을 주는 글 모음집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SNS)에 중독되기 쉬운 오늘, 즉흥적인 호기심이나 쾌락보다 삶의 슬기와 마음가짐 요령을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처럼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강익중 작가의 시집 '사루비아'는 할러데이 시즌 근사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사루비아' 구입처
-고려서적 212-564-1844(뉴욕), 201-461-0008(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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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I Know, 2008, Studio of Ik-Joong Kang
 

강익중 Ik-Joong Kang

1960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1984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이주했다. 1987년 프랫인스티튜드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 '멀티플/다이얼로그'를 열었다. 1997년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했다. 공공미술작품으로 2016 영국 런던 템즈 페스티벌(Totally Thames)의 메인 작품 '집으로 가는 길(Floating Dreams)',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 벽화, 광화문 복원현장의 '광화문에 뜬 달: 산, 바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삼라만상: 멀티플 다이얼로그∞', 2013 순천 국제정원 '꿈의 다리', 2016 오두산 통일전망대 '그리운 내 고향', 2018 순천 국제정원 '현충정원' 등이 있다. 구겐하임뮤지엄, 휘트니뮤지엄,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18년 첫 시화집 '달항아리'를 출간했다. 

 

 

*강익중 인터뷰: 세계로, 미래로 뛴다 

*첫 시집 '달항아리' 출간한 화가 강익중씨 인터뷰

*강익중씨 런던 템즈강에 '꿈의 섬(Floating Dreams)' 설치

*Inside Korea(The New York Times) Interview 

*강익중 순천국제정원박람회 설치작 '꿈의 다리' 

*NYCB 갤러리(17): 강익중 신작@스튜디오 

*화가 강익중의 차이나타운 맛집

*Artist Ik-Joong Kang’s Chinatown Restaurant Guide 

*NY Quotes: 강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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