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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의 삶의 희로애락 릴레이 콘서트 

'우리는 죽을거야(We're Gonna Die)' 리바이벌


2월 4일-3월 22일, Tony Kier Theater, 2nd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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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lle McDermoth in "We're Gonna Die" Photo: Joan Marcus


2018년 헤이즈 시어터(Hayes Theater)에 백인 가족 이야기를 그린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Straight White Men)'으로 브로드웨이 진출 첫 아시안 여성 희곡작가가 된 이영진(Young Jean Lee)씨의 연극이 오프브로드웨이 세컨드스테이지 시어터(Second Stage Theater)에서 리바이벌됐다. 도발적인 제목의 '우리는 죽을 거야(We're Gonna Die)'는 뉴욕타임스가 "그 세대의 가장 모험적인 다운타운 희곡작가", 빌리지보이스는 "불안의 여왕(Queen of Unease)"으로 불렀다.


2월 4일부터 3월 22일까지 오프브로드웨이 토니 카이저 시어터(Tony Kiser Theater, 2nd Stage)에서 공연되는 '우리는 죽을 거야(We're Gonna Die)'는 이영진씨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일 것이다. 이영진씨는 부친의 죽음 이후 이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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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ean Lee in *WE’RE GONNA DIE, 2011 https://youngjeanlee.org/work/were-gonna-die


이영진씨는 자신의 여성성, 아시안성에서 탈피한 소재들과 씨름해왔다. 셰익스피어(King Lear), 흑인(The Shipment), 그리고 백인 남성(Straight White Men)'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죽을 거야'는 우리의 불편한 진실인 '죽음'에 태클을 거는 모노드라마이자 뮤지컬이다. 2011년 다운타운 퍼블릭시어터의 조즈 펍(Joe's Pub)에서 초연됐을 때 이영진씨가 직접 주연을 맡아 노래까지 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록음악이 흘러나온다.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했던 커팅 크류(Cutting Crew)의 "(I Just) Died in Your Arms Tonight"만 친숙했다. 유행가요는 대부분 실연에 대해 노래하지 죽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이곡도 사실은 사랑에 관한 노래다. 269석이 조금씩 채워가는 동안 노래와 함께 보라색 네온의 제목 'We're Gonna Die'가 마치 미닫이 문처럼 무대를 모서리를 오가고 있었다. 관람객에게 죽음은 우리와 가까이 있음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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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re Gonna Die", Tony Kiser Theater, 2nd Stage, NYC


무대는 모던한 흰색 바탕에 파스텔조 조명이 매혹적이다. 공항인지 병원인지 혹은 천국의 대기실처럼 보이는 무대에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였고, 왼쪽엔 나선형 계단, 오른쪽에는 자동판매기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힙스터같은 차림의 밴드 멤버들이 무대에 나타난다.  케빈 라메사(Kevin Ramessar, 기타), 루크 맥기니스(Luke McGinnis, 베이스), 마퀘스 월스(Marques Walls, 드럼), 사이몬 로스(Ximone Rose, 키보드/퍼커션)가 연주 준비를 한다. 오리지널 베이스주자는 데비 크리스틴 총(Debbie Christine Tjong)이지만, 이날 공연에는 맥기니스가 대타로 출연했다. 여기에 오리지널 배우이자 가수(Singer)는 이영진씨 대신 흑인 여성가수 자넬 맥더모스(Janelle McDermoth)가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무대의 히로인으로 관객 앞에 섰다.

  

주인공 싱어는 독백을 시작한다. 어린시절 명절 때면 늘 자신의 집으로 오던 삼촌은 롤 모델이 아니라 인생의 실패자였다. 그의 방 침대에 숨어 삼촌의 고뇌를 목격한다. 6살 때는 동네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타고 광고회사 간부와 살인놀이를 즐기다가 왕따당했다. 사춘기에 벌써 새치가 생기자 그녀는 엄마에게 호소한다. 능력있는 언니에게 늘 영등감을 느꼈던 그녀는 대학졸업 후 완벽한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가지만, 외아들인 그와 거리감만 느끼고, 마침내 헤어진다. 폐암에 걸린 아버지가 신약에 희망을 걸지만, 어처구니 없이 세상을 떠난다. 슬픔에 잠긴 때 친구는 바람난 남편 때문에 사고를 당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의 챕터마다 인생의 희노애락 에피소드를 관객에게 들려준다. 외로움, 상처, 상실, 배신,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상념을 토로한다. 그녀의 독백은 마치 심리치료사에게 하는 고백처럼 들린다. 우리 관객은 마치 테라피스트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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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lle McDermoth in "We're Gonna Die" Photo: Joan Marcus


각 에피소드를 마무리할 때마다 싱어는 밴드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한다. 이영진씨와 존-마이클 라일스(John-Michael Lyles)가 공동으로 작곡한 노래 "I Still Have You" "Horrible Things" "I’m Gonna Die" 그리고, "Who do you think you are?" 등 때로는 언더그라운드밴드 록같다가 때로는 수퍼스타 록밴드 U2의 사운드처럼 친숙하게 들린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비극으로부터 면역되어 있나요?/ 당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상처받지 않고 지낼 수 있나요?"


데이빗 진(David Zinn)이 디자인한 무대는 보라빛, 노랑빛, 초록빛, 주황빛 등 파스텐톤의 투세 야삭(Tuce Yasak)의 조명으로 현란하다. 왼쪽으로는 계속 보라색 풍선이 떨어지고 있다. 모래시계처럼 우리에게 남은 시간들일까? 아니면, 죽음의 연속을 암시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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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e Gonna Die" Photo: Joan Marcus


연출은 댄서/안무가이기도 한 흑인 남성 라야 페더 켈리(Raja Feather Kelly)가 맡았다. 그래서 피날레에서 심각했던 주인공의 고백 세션은 끝나고, 무대는 광란의 파티장으로 변한다. 싱어과 연주자들은 춤을 추고, 관객과 함께 노래한다. 우리는 "We're Gonna Die"를 따라 불러야 한다. 그리고, 객석에선 풍선이 와르르 떨어진다. 


'우리는 죽을 거야'는 죽음과 실존에 대한 탐구라기보다는 상실과 고독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순응하며 살아가야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듯 하다. 우리는 물론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극장 밖을 나서면서 죽음을 망각의 강으로 떠내려 보내고 싶다. 우리의 삶을 죽음의 공포 없이 계속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은 순간순간이 더 소중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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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면서 객석의 천장에서 'We're Gonna Die'가 적힌 풍선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우리는 죽을거야'는 뮤지컬과 연극, 모노드라마와 콘서트가 블렌딩된 작품이다. 달콤한 해피 엔딩이 기다리고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달리 씁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꺼리고 있는 주제에 태클을 걸고 있는 가운데 아시안 여성작가의 도발적인 용기와 재능은 높이 사야할 것이다. 65분간의 고백담이 어떤 이에게는 치유적인 작품이며, 어떤 이에게는 불편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https://2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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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e Gonna Die" Photo: Joan Marcus


이영진(Young Jean Lee)씨는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나 두살 때 도미, 워싱턴주 풀만에서 성장했다. UC 버클리 영문과와 동 대학원을 거쳐 2002년 뉴욕으로 이주, 브루클린칼리지에서 희곡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자전적인 희곡 '풀만, 워싱턴'을 비롯한 '용비어천가(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 '교회' '선적(The Shipment)' '리어(Lear)' 백인여성 올누드 공연 'Untitled Feminist Show' 등 풍자성 연극과 록 캬바레 'We’re Gonna Die'로 주목받았다. 그의 작품은 비엔나, 하노버, 베를린, 취리히, 오슬로, 로테르담 등 해외에서도 공연됐다. 2007년엔 오프브로드웨이의 토니상인 오비(OBIE)상 신인 희곡작가상을 수상했다. 2018년 헤이즈 시어터에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Straight White Men)'을 올리며 브로드웨이 진출 최초의 아시안 여성작가로 기록됐다. 이영진씨는 예일대의 2019 윈담 캠벨상(Windham Campbell Prize)를 수상했다. 주최측은 "이영진은 지속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경계를 넓히는 드라마트루기로 다양한 연극의 스타일, 형태와 주제를 탐구하는 진실로 독창적인 희곡작가이자 연극 제조자다"라고 심사평을 밝혔다.   



000.jpg *브로드웨이 아시안 여성작가 1호 이영진씨, Straight White Men

*데이빗 헨리 황: 아시안아메리칸 배우들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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