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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희/수다만리
2020.04.11 02:27

(483) 한류 33 코드 #8 김치와 고추장의 힘

조회 수 1081 댓글 0

수다만리 (37) 느림의 미학, 기다림의 맛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8 김치와 고추장: 발효, 그 느림의 맛 Fermentation, The Flavor of Time

 

왜 많은 한인들은 해외 여행지에서도 굳이 한식을 고집하는 것일까? 김치와 고추장이라는 발효 음식의 맛에 길들여진 우리의 혀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과 감칠맛(Umani) 외에도 온 몸에 전율이 날 정도로 짜릿하게 만족스러운 한식 고유의 맛을 알고 있다. 그 시원하고, 개운한 맛은 '음식의 오르가즘(foodgasm: food orgasm)'이라 부를만 하다. 그 맛을 아는 우리들에게는 미국이나 유럽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시시하다. 우리는 김치와 고추장 없이는 못 사는 코리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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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오 김치의 대표 키딤 오(오기림)가 2014년 이스트빌리지 식당 지미즈 No.43에서 음식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김치 만들기 워크숍을 열었다. '단지' 후니 김의 쌈장과 모모푸쿠 데이빗 장의 쌈장.

 

 

"쌈장(Ssäm Sauce)의 맛은 모모푸쿠의 DNA다. 난 거의 모든 음식에 쌈 소스를 쓴다." -데이빗 장(모모푸쿠)-

 

"나의 모든 것은 김치에서 왔다." -로이 최(고기 타코 트럭)-

 

오늘날 모든 한국인들이 '빨리빨리' 정신으로 조급하고, 속도전에 매달리고 있는듯 하다. 우리의 속도에 대한 강박관념 뒤에는 느림의 철학이 있다.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로 대표되는 발효음식은 기다림이라는 시간과 정성이 담긴 우리의 '슬로우 푸드(Slow Food)'다.

 

지금 세계 160여개국에 진출한 슬로우 푸드(Slow Food)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브라(Bras)에서 사회운동가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가 시작했다. 페트리니는 로마의 관광명소 스패니쉬 계단 옆에 맥도날드가 오픈한다는 소식을 듣고 'Fast Food'에 대항하기 위해  슬로우 푸드 운동을 펼치게 됐다. 2007년 토리노(Turin) 여행 중 들렀던 브라는 아주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치즈, 와인, 요거트, 맥주 등이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라면,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은 패스트 푸드에 난공불락(難功不落)인 한국의 발효식품이다. 한식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김치, 우리 민족에게 김치의 의미는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정광태의 노래 '김치 주제가'에서 드러난다.  

 

 

kimchi-song.jpg '김치 주제가'가 담긴 정광태의 앨범(1985)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없으면 왠지 허전해

김치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나는 나는 너를 못잊어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수 없지 입맛을 바꿀 수 있나...

 

*정광태, 김치 주제가(Kim-Chi title song)

 

 

 

#오래 살고 싶다면? 한국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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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집 김치(왼쪽), 고추장 Photo by redhonghope 

 

2006년 미국의 건강 잡지 'Health'는 김치를 올리브 오일(스페인), 간장 등 콩가공식품(일본), 요거트(그리스), 렌틸콩(인도)와 함께 세계 5대 건강 식품으로 선정했다. 김치에는 소화를 향상시켜주는 유산균, 섬유소와 비타민이 풍부하며, 암세포 성장을 막아주며, 체중증가를 방지하는 저지방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것. 스페인의 올리브 오일은 심장병, 뇌출혈, 유방암 퇴치 효능이 있으며, 그리스 요거트는 면역체계와 뼈조직을 강화한다. 일본의 콩 가공식품류(간장, 두부, 나토)는 암과 골다공증 예방에 좋으며, 인도의 렌틸콩은 콜레스테롤 수치 저하 효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포스트(New York Post)는 2017년 '세계 건강국의 식이요법 비밀(Diet secrets from the world’s healthiest countries)'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은가? 한국으로 이주하라"고 했다. 이 신문은 영국의 의학 잡지 '란셋(The Lancet)'에 실린 런던 임페리얼칼리지(Imperial College London)의 연구를 인용해서 한국의 남녀 기대 수명이 각각 84세, 90.8세로 미국(남-79.5세, 남-83.3세)에 비해 훨씬 장수하는 것에 주목했다. 한국인들이 장수하는 비결 중 하나는 식사에서 빠지지 않는 김치(kimchee)로 섬유질과 산화방지제를 보충해줄 뿐만 아니라, 장 건강에 유익한 유산균이 풍부해 질병퇴치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또 하나는 '건강한 식재료가 풍부한 비빔밥'을 장수의 비결로 꼽았다. 비빔밥을 완성하는 것은 물론 고추장이다.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 또한 2017년 같은 연구를 토대로 2030년 한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세계 최고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인용하면서 '최신의 수퍼푸드(Latest Superfood)'로서 김치의 효능을 소개했다. 

 

독일의 발효식품 사워크라우트(sauerkraut)는 양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반면, 김치는 간단히 만드는데도 배추, 파, 소금, 고추가루, 새우젓, 마늘, 생강이 필요하며, 무, 양파, 미나리에 양념으로 까나리액젓, 멸치젓 등 젓갈과 설탕 등, 육수(다시마, 멸치, 찹쌀가루) 등 10가지가 쉽게 넘어간다. 그뿐인가? 지역에 따라 굴, 전복 등 각종 해산물에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까지 넣기도 한다. Anything Goes! 한국의 김치는 가히 예술(Art)의 경지에 올라있는듯 하다. 

 

가을철 월동 준비를 위해 담그는 김장은 한국인들의 나눔정신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보여주는 문화다. 유네스코(UNESCO)는 2013년 한국의 김장(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을 무형문화유산(Intangible Heritage)으로 지정했다. 

 

 

#김치와 고추장 Kimchi & Gochu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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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트위터 

 

 

1996년 초 뉴욕에 와서 컬럼비아대 어학원(ESL)에 다닐 때 우리 반 학생이었던 스위스 출신 변호사 루카(Luca)는 뉴욕에서 고추장을 발견했다. 학교 앞 한식당 밀(The Mill)에서 맛본 비빔밥의 소스에 반했던 모양이다. 그가 "나는 고추장 하나만으로도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다"라고 말한 순간 번개가 치는듯 했다. 루카가 치즈의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었을까? 어떻게 고추장의 진미를 알아차렸을까? 치즈와 김치, 발효라는 공통 분모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같은 반에서 예닐곱명의 일본 학생들은 늘 점심시간 밀 식당으로 몰려가 돼지 제육볶음, 비빔밥, 순두부를 먹었다. 특히 사무라이를 연상시키는 후쿠노리는 '김치광'이었다. 루카와 후쿠노리는 뉴욕에서 내게 한식의 잠재성을 일깨워주었다. 한류가 미국에 밀려오기 훨씬 전, 뉴욕의 우리들은 여전히 김치와 된장 냄새에 예민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마크 비트만(Mark Bittman) 기자는 1996년 4월 '한국의 매운 주식: 김치의 세계 탐험(Exploring the World of Kimchi, the Spicy Korean Staple)'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 미국인 친구들의 김치 예찬과 홈메이드 김치 레서피를 썼다. 뉴욕타임스는 이후 김치전(2010), 오이 김치(2011), 녹색채소와 콩나물을 사용한 즉석 김치(겉절이), 김치국, 김치국수케이크, 김치 오믈렛(2015), 15분만에 담그는 김치(2018), 김치 볶음밥(2020)도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올 7월 2일자에서 독자들에게 김치를 집에서 담가보라고 권유하는 기사를 실었다. 에릭 김(Eric Kim)이 쓴 "김치를 동사로 생각하라(Think of Kimchi as a Verb)"에는 오이김치, 체리토마토 김치, 그리고 페널 김치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올 4월 14일자 뉴욕타임스 다이닝 섹션 'If You Have Kimchi, You’re Steps Away From This Soup'에는 멜리사 클락(Melissa Clark)이 망치(Maangchi)의 김치국과 후니 김(Hooni Kim)의 요리책 'My Korea' 중 김치찌개에서 영감을 받은 김치찌개(Kimchi Soup) 레시피가 등장했다. 

 

세월이 흘러 김치는 백악관 키친까지 입성하기에 이르렀다. 2013년 2월 영부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는 백악관에서 배추김치를 담았다며 사진과 함께 레시피를 트위터에 올렸다. "지난 주 우리는 정원에서 나파 배추를 땄어요, 지금 우리는 부엌에서 김치를 만들고 있답니다. 집에서 만들어 보세요"라고 권유했다. 2013년 12월 한국의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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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조지와 마르자 봉거리첸이 진행한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김치 크로니클'(2010)

 

뉴욕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도 김치에 매료됐다. 미슐랭 3스타 요리사 장 조지 봉거리첸(Jean-Georges Vongerichten)과 한국계 부인 마르자 봉거리첸(Marja Vongerichten)은 2010년 한식 다큐멘터리 13부작 '김치 크로니클(The Kimchi Chronicle)'에 출연했다. 봉거리첸 부부는 쌀을 비롯해 제주도, 해산물, 콩요리, 쇠고기 맛, 해산물, 서울 맛, 닭고기 맛, 서울 국수와 만두, 돼지고기, 길거리 음식 등을 주제로 한국 여행과 한식 조리법을 소개했다. 영화배우 휴 잭맨과 헤더 그레이함 등까지 게스트로 출연한 '김치 크로니클'은 2011년 PBS-TV로 방영되며, 한식이 미국사회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마르자 봉거리첸은 요리책 'The Kimchi Chronicles: Korean Cooking for an American Kitchen: A Cookbook'도 출간했다. 어머니가 한국계인 마르자 봉거리첸은 책 서두에서 "우리 집 부엌은 말 그대로 용광로다. 한국, 프랑스, 미국의 뿌리가 연결된 다문화의 공간이다.... 남편은 올리브 오일과 유럽산 식초를 샐러드 드레싱 재료로 찬장에 보관하며, 주말에 팬케이크용으로 버터밀크를 냉장고에 두며, 자기 전에 꼭 먹어야 하는 초콜릿은 양념 사이에 숨겨놓는다. 나는 김치를 냉장고에 둔다. 처음엔 모두가 나를 힘들게 했지만, 이젠 우리 집의 중요한 기본 식료품이 됐다. 내 딸 클로이조차도 가장 이상적인 식사는 아마도 파스타 옆에 쌀밥이며, 김치를 좋아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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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3스타 셰프 에릭 리퍼트가 '아베크 에릭(Avec Eric)' 촬영차 한국에 가기 전 모모푸쿠의 데이빗 장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야채와 함께 고추장, 김치와 모모푸쿠 쌈장이 테이블에 올랐다. http://www.aveceric.com

 

뉴욕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르 버나단/르 베르나댕(Le Bernadin)의 셰프 에릭 리퍼트(Eric Ripert)는 불교 신자로 한국의 사찰음식과 김치 고추장에 매료됐다. 에릭 리퍼트는 2015년 자신이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 '아베크 에릭(Avec Eric, 에릭과 함께)'에 촬영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통도사, 백양사, 진관사 등지를 돌아보고, 사찰음식 전문가 정관 스님(백양사 천진암 주지)의 요리를 배웠다. 한국 특집 제 1탄 '한국-사찰음식:영혼을 위한 음식(KOREA- Temple Food: Feed the Soul)'은  2015년 3월 케이블 TV 쿠킹 채널에서 방영됐다. 또한, 2017년 리퍼트는 자신의 레스토랑 르 버나단에서 정관 스님의 사찰 음식을 홍보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이 행사에선 곤드레밥, 더덕, 두부구이, 능이 버섯국, 메밀묵채, 감자전 등을 시식했다. 

 

'아베크 에릭' 한국 특집 2탄의 주제는 '김치와 고추장(Kimchi and Gochujang - Hot and Spicy)', 3부는 'DMZ-Food Under Fire in Korea'였다. 리퍼트는 한국을 방문하기 전 한인 2세 셰프인 '모모푸쿠(Momofuku)'의 셰프 데이빗 장(David Chang)을 만나 조언을 얻었다. 리퍼트는 김치와 고추장을 탐구했고, 이 여정에서 영감을 받은 새우탕(Korean Style Shrimp Bouillabaisse/Cioppino) 레시피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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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에릭 리퍼트의 르 버나단에서는 김치국물을 쓴 레드 스내퍼(1, 트위터)을 메뉴에 올렸다. 2015년 점심 메뉴에는  고추장소스 하마치(2)와 김치소스 홍어 요리(3)가 등장해서 맛을 보았다.  

 

이어 에릭 리퍼트는 자신의 씨푸드 레스토랑 르 버나단의 메뉴에 김치와 고추장을 재료로 한 메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2015년 어느 겨울날 르 버나단으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갔을 때 고추장을 사용한 애피타이저 하마치(옐로테일)과 김치국물을 쓴 홍어요리가 메뉴에 보여 애국심과 호기심을 자극해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마치 요리(Hamachi: Flash Marinated Hamachi; Rice Crispy/ Gochujang Sake Vinaigrette)는 정종과 식초를 섞은 초고추장으로 쌀과자까지 곁들여 새콤하고 바삭한 맛이 식욕을 부추겼다. 홍어요리(Skate: Poached Skate; Braised Daikon, Charred Scallion Jam/ Lemon Confit-Kimchi Broth)에는 매콤한 김치국물이 소스다. 하마치와 홍어의 소스인 초고추장과 김치국물은 따로 가져와 뿌려주었다. 지난해 3월 르 버나단 트위터에는 김치액을 쓴 레드 스내퍼 요리(Red Snapper Slivers; Asian Pear, Akinori, Kimchi Emulsion)가 올라왔다.  

 

2016년 여름 미슐랭 스타 셰프 다니엘 불루(Daniel Boulud)의 카페 불루(Café Boulud)에선 한식이 특별 메뉴로 올라왔다. 'Le Voyage: Korean Cuisine)에는 미역국, 초고추장을 곁들인  하마치회, 아구찜, 김치가 곁들여진 막갈비찜의 네 종류가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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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몬 스네일의 코로나19 격리 거실 피크닉 비빔밥(왼쪽)/ 핑거레이크 핫도그 식당 FLX 위너의 홈메이드 김치와 셰프 이사벨 보다드케(Isabel Bogadke).

 

한편, 뉴욕을 질주하는 컬트 베간푸드 트럭 시나몬 스네일(Cinnamon Snail)의 셰프 아담 소벨(Adam Sobel)도 김치와 고추장 팬이다. 고추장 버거 딜럭스(Gochujang Burger Deluxe), 고추장과 함께 나오는 김치볼 튀김(Kimchi Tater Tots) 등을 제공했다. 또, 최근에는 코로나19으로 자가격리 중인 뉴요커들을 위해 특별 메뉴로 김치,두부, 단호박, 해초를 곁들인 '격리 거실 피크닉 비빔밥'(Quarantine living room picnic bibimbap)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런가하면, 업스테이트 뉴욕의 리슬링 와인 산지 핑거레이크(Finger Lakes) 여행 중에도 김치를 발견했다. 핫도그 전문 식당 'FLX 위너리(FLX Wienery)'에선 미국인 셰프 크리스토퍼 베이츠(Christopher Bates)가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직접 담근 김치로 핫도그 'K-타운 도그' '김치 감자칩(K-Town Fries)'를 제공하고 있었다. 

 

 

#김치사업에 투신한 한인 2세들

 

우리 민족은 예전부터 기다림과 정성이 담긴 발효음식 즐겨왔다. 김치박물관에 따르면, 김치의 종류는 30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 봄엔 얼갈이, 고들빼기 김치, 여름엔 열무김치, 오이 소박이, 가을엔 파김치, 종각 김치, 겨울엔 김장 김치, 동치미 등 사시사철 김치를 담구어 밥상에 올린다. 김치는 항암, 면역 체계 증강, 노화 방지, 콜레스테롤 제어, 체중 조절 등에도 효능 있는 수퍼 푸드로 공인됐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선 생선의 내장까지 버리지 않고 염장해 발효시켜 칼칼하고, 감칠맛(우마미, うま味, Umami)' 있는 젓갈의 풍미를 즐겨왔다. 김치에 넣는 젓갈은 식물성과 동물성의 만남, 2중 발효의 시너지까지 발휘한다. 서울의 새우젓과 오징어젓, 충청도의 어리굴젓과 밴댕이젓, 강원도의 명란젓과 창란젓, 경상도의 꽁치젓과 갈치속젓, 전라도의 황석어젓과 전복창자젓, 제주도의 자리젓과 고등어젓, 황해도의 까나리젓과 참게젓, 평안도의 게알젓과 건댕이젓, 함경도의 연어알젓과 가자미식해 등 젓갈류는 140여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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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유니온스퀘어에서 필립 리(이윤석)의 김치타코 트럭과 타코(치킨타코/매운돼지고기타코/갈비타코). 

 

김치는 미국에서 멕시코 음식 타코와의 마리아쥬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업스테이트 뉴욕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수학한 후 르 버나단과 호텔의 주방을 거친 한인 2세 로이 최(Roy Choi)가 2008년 LA에서 푸드 트럭 '고기(Kogi)'를 운영하며 김치 타코 트럭 붐을 일으켰다. 뉴욕에선 2008년 코넬대 석사 출신 필립 리(Phillip Lee, 이윤석) '김치타코 트럭(Kimchi Taco Truck)'을 시작, 뉴요커들에게 갈비타코, 매운돼지 타코, 김치 주먹밥 등을 제공했다. 

 

필립 리의 희망은 "미국 가정의 냉장고에 김치가 한병씩 들어갈 때까지 사업을 하겠다"였고, 2012년엔 브루클린에 김치 그릴(Kimchi Grill) 식당을 열었으며, 이후 뉴저지주 저지시티에도 오픈했다. 지금 뉴욕 대부분의 수퍼마켓에선 피클과 나란히 김치를 구비하고 있다. 배추김치 뿐만 아니라 깍두기, 오이소배기, 고추장도 살 수 있다. 이후 뉴욕의 포시즌호텔(Four Seasons Hotel, New York)의 칵테일 라운지에도 김치 타코가 메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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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뉴욕공립도서관에서 로린 전과 벤 라이더 하우의 김치 대회(A Kimchi Conversarion with Authors Lauryn Chun and Ben Ryder Howe). 

 

김치가 웰빙식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뉴욕에서 한인 2세들이 진로를 바꾸어 김치 사업을 시작했다. 브랜드 이름도 어머니 세대에 바치는 장모 김치와 마마오 김치다. 이들 신세대 김치 사업가들은 브랜드와 포장을 고급화했고,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시식회, 와인과의 페어링, 김치 담그기 워크숍, 김치 먹기 대회 등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으로 김치를 홍보해왔다. 

 

뉴욕에서 와인 전문잡지 기자로 일하던 로린 전(Lauryn Chun, 전혜원)은 2009년 김치사업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에서 설렁탕 식당 '장모집(Jangmo Jip)'을 운영하던 어머니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받아 '마더인로 김치(Mother-in Law)' 즉 장모김치를 브랜드로 론칭했다. 손으로 찟은 배추를 사용하는 마더인로 김치는 젓갈을 쓰는 Original/ 채식주의자용 Seaweed/ Spicy에 와인의 리저바(Reserva)처럼 숙성된 (설렁탕집) 신 김치로 나누었다. 

 

2014년엔 고추장 사업까지 추가해 Original/ Tangy/ Sesame/Garlic 맛으로 개성화했다.  로린 전은  뉴욕공립도서관에서 김치 워크숍을 열었으며,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김치와 와인의 궁합을 소개했다. 로린 전은 'The Kimchi Cookbook'도 출간했다.  회사 이름 'Milkimchi'는 우유와 김치가 세계인의 모든 냉장고에 들어가 있기를 바라며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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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거버너스 아일랜드에서 열린 마마오 김치의 김치 먹기대회. 

 

그런가하면, 뉴욕에서 DJ로 활동하던 2세 오기림(Kheedim Oh)은 2009년 메릴랜드주의 어머니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본격적으로 마마오 프리미엄 김치(Mama O's Premium Kimchi)라는 브랜드로 김치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김치 축제 '김치 팔루자(Kimchi palooza)'를 열고, 매운 김치 먹기 콘테스트와 김치 담그기 워크숍도 진행했다. 

 

마마오 김치는 가정에서 김치를 간편하게 만들수 있는 홈메이드 김치 키트(Homemade Kimchi Kit), 김치 양념(Kimchi Paste)와 김치 소스(Kimchi Sauce)도 판매한다. 홀푸드(Whole Foods) 머레이즈 치즈(Murray's Cheese Shop), 윌리엄 소노마(Williams Sonoma) 등지까지 들어갔다.

 

 

#한인 셰프들이 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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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스타 셰프들. 데이빗 장(왼쪽부터), 로이 최, 코리 리, 에드워드 리, 대니 보윈, 후니 김. 

 

서울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두레유(DOOREYOO)의 유현수(Tony Yoo) 셰프는 NYCultureBeat에 기고한 칼럼 '한국 남자들이 요리를 잘 하는 이유'에서 젓가락, 비빔밥, 그리고 발효음식을 언급했다. 유현수 셰프는 "한국의 맛에서 가장 독창적인 것이 고차원적이며 중독성 있는 '발효의 맛'"이라고 지목했다. 그리고, 발효의 맛을 이해하는 것은 요리사로서 큰 자산이며, 한국인 요리사들에게는 큰 장점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고유의 발효음식인 김치, 고추장과 젓갈은 복잡미묘한 맛을 내며, 우리 혀의 미뢰(味蕾, 맛봉오리)를 발달시켰다. 아울러 맛의 어휘도 풍성해졌다. 매콤하다, 칼칼하다, 아리다, 얼얼하다, 짭조름하다, 간간하다, 삼삼하다, 슴슴하다, 새콤하다, 시큼하다, 새콤달콤하다, 쌉싸래하다, 감칠맛이 나다, 고소하다, 구수하다, 느끼하다, 담백하다, 개운하다... 영어로 번역하기 난감한 우리 고유의 맛, 그 스펙트럼은 고도로 정교하다.   

 

모모푸쿠(Momofuku)의 데이빗 장(David Chang)을 비롯, 미국의 동서남북에서 돌풍을 일으킨 한인 셰프들에게 비장의 무기도 김치와 고추장으로 대표되는 발효음식과 비빔밥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5월 링컨센터에서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우는 제임스비어드재단상(James Beard Foundation Awards) 시상식이 열렸다. 한인 2세 데이빗 장은 시카고의 폴 카한(Paul Kahan, Blackbird)과 최우수 셰프(Outstanding Chef)를 공동 수상했으며, 입양 한인 셰프 대니 보윈(Danny Bowien)은 신인 셰프상(Rising Star of the Year)을 거머쥐었다. 

 

뿐만 아니라 LA에서 '고기(Kogi)'로 미국에 타코트럭 붐을 일으킨 로이 최(Roy Choi), 샌프란시스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베누(Benu)의 코리 리(Corey Lee), 뉴욕의 2 미슐랭 스타 정식(Jung Sik)의 임정식(Jung Sik Yim),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단지(Danji)의 후니 김(Hooni Kim), 켄터키 루이빌의 610 마그놀리아(Magnolia) 셰프 에드워드 리(Edward Lee) 등 한인 스타 셰프들이 미 동서남북에서 현대 미국 요리를 이끄는 선두주자가 되었다. 이들은 한국 식재료에 프렌치 테크닉을 적용하며, 한식과 중식과 일식을 대범하게 블렌딩하거나, 김치와 멕시코 타코를 결합하는 '비빔밥 정신'으로 무장해 새로운 미국 음식의 혁명아 군단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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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BBQ and Kimchi: Five Korean-American Star Chefs at Inside Korea’s Table <NYT, Jan 17, 2014> 

 

로이 최(Roy Choi)는 회고록 'L.A. Son, My Life, My City, My Food'에서 "나의 모든 것은 김치에서 왔다"고 고백했다. 캘리포니아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CIA에서 요리를 배운 로이 최는 2008년 비버리힐스 선셋불러바드의 나이트클럽 앞에서 타코 트럭 '고기'을 시작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아메리칸 레스토랑 베누(Benu)를 운영하는 셰프 코리 리(Corey Lee, 이동민)는 2015년 한인 셰프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받았다. 토마스 켈러의 와인 컨트리 레스토랑 프렌치 론드리(The French Laundry)와 퍼세(Per Se)를 거친 코리 리는 2006년 제임스비어드재단 신인요리사상, 2017년 웨스트 최우수 요리사상을 수상했다. 베누에서는 갈비찜과 바비큐에 김치와 쌈장이 나온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는 올 4월 코리 리가 장독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과 함께 한식당 산호원(San Ho Won)의 오픈 소식을 전했다. 코리 리는 포항의 죽장연에서 간장을 만들어 공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오클라호마 가정에 입양된 대니 보윈(Danny Bowien)은 2008년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열린 페스토(pesto)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팝업 레스토랑 '미션 차이니즈 푸드(Mission Chinese Food)'로 히트하며, 2012년엔 뉴욕 지점을 오픈해 그해 뉴욕타임스의 뉴 레스토랑 #1에 등극한다. 그리고, 뉴욕에선 돌연 사천요리 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뉴욕대 영문과를 우등졸업한 에드워드 리(Edward Lee)는 2004년 경마대회가 열리는 루이빌에서 '610 마그놀리아'에서 남부 요리의 스타덤에 올랐다. 수년간 제임스비어드재단상 최종 후보에 오른 그는 메릴랜드주 내셔널하버와 워싱턴 DC에 진출해 업스케일 레스토랑 서코타쉬(Succotach)를 오픈했다. 에드워드 리가 쓴 요리책 '스모크와 피클(Smoke & Pickle)'에는 돼지고기덮밥을 비롯, 한식 바비큐, 김치, 고추장, 간장과 남부요리를 조합한 레시피가 올라 있다.   

 
 
#쌈장(Ssam Sauce) 전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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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장연에서 장맛을 보는 단지(Danji)의 셰프 후니 김(왼쪽, chefsociety)/ 샌프란시스코 베누(Benu)의 장을 담그는 커티스 (clee_benu instagram).

 

캘리포니아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니 김(김훈)은 의대를 포기한 후 미슐랭 3스타 다니엘(Daniel)과 마사(Masa) 키친에서 수련했다. 그리고, 2010년 맨해튼에 한식당 '단지(Danji)'를 오픈, 이듬해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첫 한식당으로 만들었다. 이후 한잔(Hanjan)을 열고, 뉴욕타임스로부터 별 2개를 받았다. 모던 한식당 단지의 히트작이 불고기 슬라이더(미니버거)였던 반면, 한잔은 한국 포장마차와 시장음식을 표방하면서 고추장 돼지갈비, 묵은지 김치찌개, 죽장연고추장 멸치튀김 등 보다 토속적인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후니 김은 올 4월 요리책 'My Korea: Traditional Flavors, Modern Recipes'를 냈다. 

 

 

후니 김은 장 애호가다. 2013년 한잔에서 뉴욕의 미식가들을 대상으로 포항의 죽장연(竹長然) 시식회를 열었으며, 죽장연의 된장, 청국장, 고추장, 사과쥬스, 설탕, 참기름, 마늘, 생강, 파, 콩기름 등으로 제조한 훈이's 쌈장을 판매하고 있다. 쌈장이 쌈 싸 먹을 때 간을 맞추는 양념장이던가? 된장, 고추장, 간장/청국장 등 우리의 장 3종을 섞은 3장이던가? 죽장연은 무쇠가마솥에 참나무 장작불로 익힌 콩으로 담근 장을 와인처럼 '빈티지(vintage)' 개념을 도입했으며, 미국의 한인 스타 셰프들을 내세운 마케팅을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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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푸쿠 데이빗 장이 개발한 쌈장은 피자, 햄버거, 프라이드 치킨, 샌드위치, 타코 등 거의 모든 요리에 어우러진다.

 

2010, 2012년 타임(Time)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된 모모푸쿠의 데이빗 장(David Chang, 장석호)은 2004년 이스트빌리지의 허름한 자리에 '모모푸쿠 누들바(Momofuku Noodle Bar)'를 오픈하며 뉴욕의 식당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수퍼스타 셰프다.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유대인이 많은 뉴욕에서 데이빗 장은 돼지고기를 센터피스로 내세웠고, 뉴욕의 비평가들과 식도락가들을 현혹시켰다. 모모푸쿠 누들바에서는 북경오리에서 영감을 받은 포크번(*Pork Bun, 중국식 찐빵 안에 돼지삼겹살, 오이와 파를 얹고, 호이즌 소스를 뿌린 샌드위치)이 히트메이커였고, 주인공이었던 라멘은 이후 뉴욕 곳곳에 일본라멘 식당 붐을 일으켰다. 

 

그의 두번째 식당 '모모푸쿠 쌈바(Momofuku Ssäm Bar)'에선 생굴, 김치, 상추를 곁들인 돼지고기 보쌈(Bo Ssäm)으로 화제가 됐으며, 12석의 테이스팅 메뉴 전문 레스토랑 '코(Momofuku Ko)'로 이어졌다. 제임스비어드재단상을 8회나 석권한 데이빗 장의 모모푸쿠 제국은 오늘날 뉴욕, 보스턴, 워싱턴 DC, LA, 라스베가스, 토론토와 시드니까지 진출해 있다. 

 

데이빗 장도 김치와 고추장이 별미의 근원이다. 2004년 모모푸쿠 누들바를 오픈할 때부터 한국의 발효식품 고추장, 된장, 간장에 식초와 정종(사케)를 블렌딩한 홈메이드 쌈소스/쌈장(Ssäm Sauce)을 계열 식당에서 사용해왔다. 2015년부터 쌈장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는 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와 아마존(Amazon)을 통해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데이빗 장은 "쌈 소스의 맛은 모모푸쿠의 DNA다. 난 거의 모든 음식에 쌈 소스를 쓴다"고 밝혔다.

 

오리지널 쌈장(original Ssäm Sauce)은 피자, 햄버거, 프라이드 치킨, 라면과 어울리며, 매운맛 쌈장(spicy Ssäm Sauce)은 샌드위치, 버팔로 윙, 야채 구이와 타코에 추천하고 있다. 쌈장이 이제 미국의 케첩(Ketchup), 멕시코의 타바스코(Tabasco), 태국의 스리라차(Sriracha)처럼 흔한 소스가 될 날도 머지 않은듯 하다. <계속>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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