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Artist & Muse <9> 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와 아델레, 에밀리, 세레나, 엘리자베스, 마다

 

000001.jpg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Portrait of Emilie Flöge, 1902–03/ Portrait of Mäda Primavesi, 1912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구스타프 클림트는 비엔나 외곽의 작은 마을 바움가르텐에서 3남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금세공사였으며, 어머니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아버지의 일자리를 찾아 그의 가족은 1862년부터 1884년 사이에 5번이나 집을 옮겨다녀야 했다. 

 

클림트가 가장 좋아했던 소재는 여인이었다. 그의 캔버스에서 여성들은 화려하며 에로틱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클림트에게는 최소한 14명의 사생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류사회 아트 컬렉터, 모델, 패션디자이너....그의 모델들은 뮤즈이자 연인, 그리고 아기 엄마가 됐다. 

 

 

000klimt.jpg

Gustav Klimt, 1887/ Klimt with a cat, 1912/ Egon Schiele, Gustav Klimt im blauen Malerkittel, 1913

 

그는 가운같은 옷(caftan) 하나만 걸친 채 작업했으며, 그의 연애는 적업실 밖으로 새나가지 않았다. 그는 여인과 고양이를 좋아한 바람둥이 화가였지만, 나르시스트는 아니었던 것 같다. 클림트는 자화상을 좀체로 그리지 않았다.  

 

클림트는 1918년 2월 세계로 퍼진 스페인 독감 전염병에 걸려 합병증(뇌경색과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같은 해 10월엔 제자 에곤 쉴레가 스페인 독감으로 눈을 감았다. 당시 세계 인구의 3-5%에 달하는 5억명이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스페인 독감과 화가들 <2> 구스타프 클림트

*스페인 독감과 화가들 <3> 에곤 쉴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Adele Bloch-Bauer (1881-1925)

 

adele2.jpg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Neue Galerie, New York/ Adele Bloch-Bauer II, 1912

 

황금빛 초상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는 맨해튼 독일/오스트리아 전문 미술관 '노이에 갈러리(Neue Galerie)의 모나리자'로 불리운다. 2006년 아트 컬렉터 로날드 로더(Ronald Lauder)가 당시 회화 사상 최고가인 1억3천500만 달러에 구입해 자신이 공동으로 창립한 노이에 갈러리에 기부한 작품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 아델레 블로흐-바우어(Adele Bloch-Bauer)는 비엔나의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7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5살 때 오빠의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어 종교를 멀리했으며, 늘 병약했다. 아델레는 18살 때 35살의 설탕사업가 페르디난드 블로흐(Ferdinand Bloch, 1864–1945)와 결혼했다. 언니 테레세가 남편 페르디난드의 형인 닥터 구스타프 블로흐와 결혼한 뒤였다. 겹사돈인 셈이다. 

 

아델레는 두 아이를 유산했고, 세번째 아이마저 출산 이틀 후에 사망했다. 독문학, 불문학, 영문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집안에 살롱을 마련해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리차드 스트라우스, 요하네스 브람스, 소설가 스테판 츠바이크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1903년 페르디난드는 장인, 장모의 결혼기념일 선물로 부인의 초상화를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의뢰하게 된다. 

 

클림트는 1년 이상 수백점의 스케치만 그렸다. 1907년 4년이 걸려 완성된 아델레의 초상화는 비잔틴 모자이크가 현란한 황금빛의 캔버스였다. 금빛 드레스에 삼각형, 달걀, 눈 등의 에로틱한 모티프에서 화가와 모델의 친밀한 관계를 상상할 수 있다. 1912년 클림트는 다시 아델레의 초상화 2를 그렸다. 클림트가 초상화를 두점 그린 것은 아델레뿐이다. 페르디난드 블로흐-바우어는 아델 초상화 2점과 풍경화 4점, 그리고 수십점의 드로잉을 사들였다. 

 

 

00film.jpg

Woman in Gold(2015) directed by Simon Curtis

 

이들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한 후 체코 시민권을 요청했다. 아델레는 비엔나에서 살다가 1925년 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아델은 남편이 사망한 후 클림트 작품을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관에 기부하는 유언을 남겼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블로흐-바우어의 컬렉션은 나치에 압류됐다. 페르디난드는 나치를 피해 프라하를 거쳐 쥐리히로 갔다가 1945년 11월 가난 속에 죽음을 맞았다. 페르디난드는 소장품을 형 구스타프 블로흐의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하지만, 소장품은 오스트리아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2005년 구스타프 블로흐의 딸, 즉 아델레와 페르디난드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Maria Altman)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아델레의 초상화 2점과 풍경화 3점에 대한 소유권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2'은 경매에서 8천800만 달러에 팔렸다. 알트만이 회수한 5점의 총 가격은 3억2천7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소송을 담은 사이먼 커티스(Simon Curtis) 감독작 '황금옷을 입은 여인(Woman in Gold, 2015)'에선 헬렌 미렌이 마리 알트만 역으로, 라이언 레이놀스가 변호사 랜돌 숀버그(작곡가 아놀드 숀버그의 손자) 역을 맡았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초상화 2'(1912)는 2006년 토크쇼 호스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가 경매에서 8천790만 달러에 구입했다. 윈프리는 2016년 이 그림을 중국인 컬렉터에게 1억5천만 달러에 팔았다. 

 

 

#에밀리 플뢰게 Emilie Flöge (1874-1952)

 

000emily.jpg

Gustav Klimt, Portrait of Emilie Flöge, 1902–03/ The Kiss, 1907-08, Austrian Gallery Belvedere Collection

 

독신남 구스타프 클림트 곁에 가장 오랫동안, 27년간 함께 했던 여인은 에밀리 루이즈 플뢰게(Emilie Louise Flöge)였다. 클림트는 에밀리의 형부였다. 에밀리의 언니 헬렌(Helene)이 클림트의 동생인 화가 에른스트(Ernst Klimt)와 결혼했다.1891년 에른스트의 소개로 에밀리와 클림트는 만났다. 당시 에밀리는 17살이었다. 

 

이듬해 클림트의 아버지와 동생 에른스트가 연달아 사망하자 클림트는 헬렌, 조카, 그리고 에밀리의 집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으며 휴가도 함께 보냈다. 클림트는 제수씨 헬렌의 가디언이 되었고, 에밀리는 클림트의 뮤즈가 됐다.  

 

에밀리는 재봉사로 시작 1895년 큰 언니 폴린(Pauline)이 오픈한 의상학교에서 일했다. 1899년 의상 경연대회에서 언니와 함께 수상했다. 1904년엔 고급 패션 브랜드 'Schwestern Flöge(플뢰게 자매)'를 시작해 디자이너 겸 사업가로 성공하게 된다. 플뢰게 자매의 패션 살롱은 조셉 호프만(Jesef Hoffmann)이 당시 비엔나에 유행했던 아르누보 양식인 '유겐스틸(Jugendstil, Youth Style)'로 설계했다.   

 

 

000film4.jpg

라울 루이즈(Raúl Ruiz) 감독,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 주연의 전기영화 '클림트(Klimt,2006)'. 

 

화려한 비잔틴 모자이크와 장식미를 추구했던 클림트는 상류사회 여성들에게 패션디자이너 에밀리를 고객으로 소개해주었다. 에밀리는 클림트 모델의 의상을 제작해주었다. 아시아 미술 애호가였던 이들은 함께 아시아와 유럽의 직물을 수집했다. 

 

1918년 2월 11일 클림트는 최후의 순간 "에밀리를 데려와"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밀리 플뢰게는 클림트의 유산 절반을 상속하게 됐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에밀리 플뢰게의 집에 화재가 발생해 그녀가 보관했던 클림트의 그림을 비롯, 의상들이 불에 타버리고 만다. 플뢰게는 1952년 사망했다. 

 

 

#세레나 & 엘리자베스 레더러 Szerena & Elisabeth Lederer

 

00kederer-family.jpg

Gustav Klimt, Serena Pulitzer Lederer, 1899. Metropolitan Museum of Art/ Portrait of Elisabeth Lederer, 1914–16/ Egon Schiele, August Lederer, 1918

 

세레나 퓰리처 레더러(1867-1943)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퓰리처상으로 유명한 언론인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의 친척으로 기업가 남편 아우구스트 레데러(August Lederer)과 함께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 등 비엔나 분리파를 후원했다. 1912년 클림트는 제자 에곤 쉴레(Egon Schiele)를 레더러 가문에 소개해주었으며, 쉴레는 막내 아들과 친구가 됐다. 클림트는 세레나를 비롯, 그녀의 엄마, 딸 엘리자베스 프란치스카(Elisabeth Franziska)의 초상화도 의뢰했다. 

 

클림트를 후원한 아트 컬렉터이며 뮤즈였고, 또한 연인이었다. 세레나 레데러는 비엔나에서 '베스트 드레서'로 불리울 만큼 패션 감각이 뛰어났다. 클림트는 그녀에게 드로잉을 가르쳤으며, 그녀를 모델로 작업했다. 1899년 초상화는 그 첫 위임작으로 미국 화가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 분위기가 감돈다. 세레나의 딸 엘리자베스(1894- )는 클림트를 '삼촌'이라 불렀다. 미술학교에 다닌 엘리자베스는 훗날 조각가가 됐다. 

 

1918년 클림트가 사망한 이듬해 레데러는 클림트의 유산을 모두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 2차세계대전 중 나치가 권력을 잡으면서 유대계 레더러 가족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개신교 신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몸이었다. 클림트와 남편 레데러가 사망한 후 세레나는 엘리자베스의 생부가 클림트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술사가들은 세레나가 유대인 학살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절반의 유대인(half-Jew)' 증명서로 추방을 피할 수 있었다. 

 

세레나의 클림트 컬렉션은 1940년 세레나가 부다페스트로 도피하면서 나치에 압류됐다. 게슈타포는 컬렉션을 오스트리아의 슐로스 이멘도프 성(Schloss Immendorf Castle)에 보관했지만, 1945년 연합국에 넘어갈 것을 우려해 불태워버렸다.  세레나 레더러의 초상화는 1980년 메트뮤지엄 소장품이 됐다.

 

 

#마다 프리마베시 Mäda Primavesi 

 

Gustav Klimt, Portrait of Mäda Primavesi (1912). Courtesy of the Neue Galerie an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jpg

Gustav Klimt, Portrait of Mäda Primavesi, 1912. Metropolitan Museum of Art Collection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Gallery #829)이 소장한 이 그림의 주인공은 9살 짜리 소녀 마다 프리마베시(Mäda Primavesi, 1903-2000). 

 

마다 프리마베시의 아버지 오토 프리마베시(Otto)는 은행가였으며 유지니아(Eugenia Primavesi)와 함께는 아트 콜렉터였다. 마다가 입은 봄 내음이 물씬 나는 꽃무늬 의상은 클림트의 제안으로 그의 뮤즈였던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 플뢰게가 디자인한 것. 클림트는 이 초상화를 위해 스케치를 상당수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은 1964년 메트뮤지엄으로 들어갔다. 엄마 유지니아(Eugenia) 역시 클림트의 모델이 되었으며, 초상화는 도요타시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마다 프리마베시는 2000년 97세로 별세했다.  

 

 

Installation shot of “Klimt and the Women of Vienna’s Golden Age, 1900–1918.” Courtesy of the Neue Galerie..jpg

"Klimt and the Women of Vienna’s Golden Age, 1900–1918" Photo: Neue Galerie, New York

 

 

*노이에 갈러리 가이드

*독일 모젤 트라벤 트라바흐의 구스타프 클림트와 유겐스틸(아르누보)

*스페인 독감과 화가들 <2>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영화 '황금옷을 입은 여인(The Woman in G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