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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an Gogh Sisters

빈센트 반 고흐의 세자매: 안나, 엘리자베스, 빌레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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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an Gogh Sisters(book)/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1889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불꽃같은 삶은 미술사에 신화처럼 남았다. 빈센트에겐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던 아트딜러 동생 테오(Theodorus van Gogh, 1857-1891)가 잘 알려졌다. 빈센트는 37세에 권총 자살(*논란)로 마감했고, 테오는 형이 사망한 지 6개월 후 눈을 감고 형 옆에 나란히 묻혔다. 

 

하지만, 빈센트의 여동생들은 테오의 뒤에 가려져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세자매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빌레미나(Wilhemina, Wil), 엘리자베스(Elisabeth, Lies), 안나(Anna) 반 고흐에 관한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빌렘-얀 베를린덴(Willem-Jan Verlinden)이 쓴 '반 고흐 자매들(The Van Gogh Sisters)'이 2016년 네덜란드어로 나왔으며, 오는 4월 20일엔 영문 번역판으로 시판된다. *아마존 링크

 

 

#빈센트의 부모: 목사와 정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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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us van Gogh(1822-1885)/ Vincent van Gogh, Still Life with Bible, 1885

 

빈센트의 아버지 테오도러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22-1885, *남동생과 이름이 같다)는 할아버지처럼 캘빈주의를 고수하는 개혁교회 목사이며 미남에 멋쟁이였다. 아버지의 희망은 장남 빈센트가 자신처럼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빈센트도 신학교를 다녔고, 임시 전도사로 사역했지만, 그림에 대한 꿈을 저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빈센트는 집주인의 딸, 조카, 매춘부와 사랑에 빠져 아버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빈센트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1885년 3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몇 개월 후 빈센트는 아버지에게 바치는 정물화를 그렸다. 아버지의 신앙심을 보여주는 성경은 '이사야 53' 구절이 펼쳐있다. 성경 앞에는 에밀 졸라(Émile Zola)의 소설 '삶의 기쁨(La Joie de Vivre)'를 배치했다. 소설은 닳아빠졌고, 아버지를 암시했던 촛불은 꺼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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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Mother,1888/ Anna Cornelia van Gogh(1819-1907)

 

엄마는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 카르벤투스(Anna Cornelia van Gogh, 1819-1907)는 왕실 제본업자(bookbinder)의 딸로 정원 가꾸는 것이 취미였다. 종종 야생화를 스케치하고, 직접 만든 꽃다발을 수채화로 그렸다.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빈센트는 9살 때 개를 스케치했다. 엄마는 늘 빈센트가 그림 그리는 것을 격려했다.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 노래, 공예를 가르쳤고, 독서를 부추겼다. 

 

1884년 엄마가 다리 부상으로 집에 있을 때 빈센트는 엄마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마을의 교회를 그려다 주었다. 아버지 사망 후엔 이 그림의 앙상한 겨울 나무에 단풍을 덧그렸으며, 상복 입고 교회 가는 사람들도 추가로 그려 넣었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엄마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고 썼다. "난 색깔 없는 사진(*흑백)을 참을 수가 없어서 나 자신을 위해 엄마의 얼굴을 그리는 중이야. 나의 기억 속에서 엄마를 보고, 색깔의 조화로 그리려고 해." 

 

1886년 빈센트가 프랑스로 이주한 후엔 엄마와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그림도 보냈다. 하지만, 엄마는 1890년 빈센트가 사망할 때까지 만나지 못하게 된다. 안나는 세 아들을 30대에 모두 잃었고, 1907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빈센트 반 고흐의 형제, 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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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에게는 1852년 태어나자 사망한 형 빈센트가 있었다. 이듬해 태어나 형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빈센트는 고흐 가문에서 흔한 이름이었다. 조각가였던 삼촌 할아버지 빈센트, 목사였던 할아버지도 빈센트, 테오의 아들인 조카도 빈센트다. 

 

빈센트 아래의 여동생이 안나, 남동생 테오도러스(테오), 엘리자베스(리스), 빌레미나(빌), 그리고 막내 코르넬리스(코르)로 3남 3녀였다. 빈센트는 37세, 테오는 34세, 코르도 33세로 3형제가 모두 요절했다. 반면, 세자매는 70대로 장수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여동생들은 누구인가? 그 시대 네덜란드 여성들은 어떤 삶을 꾸려나갔을까?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Anna Cornelia van Gogh, 1855-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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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왼쪽)/ 런던 시절 빈센트가 짝사랑했던 집 주인 딸 유지니 로이어(왼쪽 끝)

 

빈센트는 여동생 안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큰딸 안나는 영국에서 가정교사로 일했으며, 배려심도 많고, 정리정돈을 잘하며, 독실한 신자로 알려졌다. 

 

1873년 5월 스무살의 빈센트는 영국으로 갔다. 코벤트가든 안 구필화랑에서 사진과 판화 딜러로 일하면서 사우스 런던 브릭스톤(Brixton)에서 살았다. 당시 빈센트는 목사 아버지보다 더 잘 벌었다. 빈센트는 빅토리안 스타일의 문화를 사랑했다. 빅토리안 중산층의 상징인 톱 햇을 쓰고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 직장을 다녔다.  

 

런던 초기 생활은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그가 살던 집에는 작은 학교를 운영하는 우술라와 유지니 로이어 모녀가 살았다. 빈센트는 유지니에 반했다. 하지만, 유지니에겐 이미 엔지니어 약혼자가 있었다. 

 

이듬해 6월 여동생 안나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런던에 갔다. 안나와 빈센트는 함께 살았다. 안나는 남동생 테오에게 영어로 쓴 편지에서 둘간의 연애를 알렸다. 빈센트는 짝사랑을 하다가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즈음 안나와의 사이도 삐걱거리게 된다. 

 

1875년 4월 안나는 2살 아래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불평했다. 

"난 그(빈센트)가 사람들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고, 그들을 알기 전에 판단해 버린다고 생각해. 그리곤, 그는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게된 후엔 미리 예상한 의견에 충족하지 않는다고 실망해 버리지.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시든 꽃들처럼 버린단 말이야." 

 

안나는 1878년 여름 결혼했고, 빈센트도 참석했지만 관계는 소원했다. 안나는 빈센트를 '나무 사자'라고 불렀다. 1885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 후 둘의 관계는 더 악화됐다. 어느날 빈센트는 안나와 말싸움을 했고, 결국 빈센트가 집을 떠나고 네덜란드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게 된다. 빈센트는 이때 여동생 빌이 자기 편이 되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나는 1930년 75세까지 살았다. 

 

 

#엘리자베스 반 고흐 (Elisabeth Huberta "Lies" van Gogh, 1859-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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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오빠 빈센트에 관한 회고록을 집필한 엘리자베스 반 고흐

 

엘리자베스(리스)는 빈센트보다 6살 아래였다. 리스는 기숙사 학교에서 영어와 불어를 배웠다. 아버지가 갑자기 별세하자 수입도 사라져 가족은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리스는 부인이 중병에 걸린 판사 뒤 퀘스네 반 브루켐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다가 그만 임신을 했다. 이 사건은 가족의 수치가 됐고, 1886년 리스는  프랑스 호텔방에서 딸 위베르티나를 출산했다. 리스는 딸을 사탕가게 과부에게 맡겨 성인이 될 때까지 위탁했다. 1891년 판사의 부인이 사망한 후 결혼에 이르렀고, 4자녀를 더 낳았다.  

 

당시 리스는 여성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전문직이 별로 없다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 시대 여성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였다. 리스는 1908년부터 1933년까지 5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1913년엔 빈센트에 관한 회고록 'Personal Recollections of Vincent Van Gogh by Elisabeth Huberta Du Quesne-van Gogh'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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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뒤뜰에서 본 목사관, 1884. 1928년까지 엘리자베스 반 고흐가 소장했던 드로잉.

 

이 회고록에서 리스는 어릴 적 빈센트가 곤충학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썼다. 빈센트는 모든 곤충의 이름을 줄줄 외고, 채집했으며, 과학자처럼 꼼꼼하게 분류했다고 한다. 그가 자연을 묘사한 것도 생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리스는 빈센트의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반 고흐의 그림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에 바탕을 둔 재능, 단순함과 진지함의 정교한 균형을 깨닫지 못하면 눈이 먼 것이다. 그는 타협이나 소유에 대한 학구적인 안전함이라는 악마에 대한 눈이 없었다. 그는 왕같은 힘으로 자신의 영역을 통제했으며, 그의 비전을 아름답게 만들고, 엄격한 구조의 캐릭터로 그렸다. 그의 걸작을 보는 것은 그의 주제에 대한 충성심을 깨닫는 것이며, 거의 고통스러운 목적의 단일성이다. 그의 걸작의 붓질은 감사의 기도였으며, 그의 마지막 생각은 영원한 에너지의 법칙이었다,"

 

리스는 남편이 사망한 후엔 살림이 빈궁해져서 오빠의 그림을 많이 팔며 생활하다가 1936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빌레미나 반 고흐 (Willemina Jacoba "Wil" van Gogh, 1862-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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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미나 반 고흐/ 빌을 모델로 그린 'The Novel Reader', 1888 

 

빈센트와 가장 친했던 여동생 빌레미나(빌)은 9살 아래였다, 빈센트는 빌에게 22통의 편지를 보냈다. 빌은 그림과 글 쓰기에 관심이 많았으며, 꽃꽂이를 즐겼다. '네덜란드 백합(The Dutch Lily)'이라는 잡지에 '꽃꽂이에 관한 비전통적인 가이드'로 느슨한 배열의 꽃꽂이 방법을 기고하기도 했다. 

 

빌은 빈센트 오빠의 스케치를 복사하고, 때때로 그의 모델이 되었다. 이들은 문학과 미술에 대해 의견을 편지로 교환했으며, 서로 정신적 건강 상태에 대해 물었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빌이 화가와 결혼할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하지만, 여동생이 전업 작가가 될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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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가 빌에게 준 그림 선물. Blossoming Almond Branch in a Glass with a Book, 1888/ 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

 

빌은 오빠 테오와 파리에서 에드가 드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기도 했다. 1888년 빈센트는 빌의 생일을 맞아 두점의 그림을 선물했다. 하나는 유리병에 담긴 아몬드꽃과 책이 있는 정물화, 또 한점은 프랑스 소설과 장미가 있는 정물이다. 1889년 여름엔 빌의 요청에 따라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 풍경화를 소품으로 그려 주었다. 

 

그녀는 타고난 간호원이었다. 가족과 주변의 병자들을 돌보다가 1890년 빈센트, 1891년 테오 오빠가 연달아 사망하자 병원에 간호원으로 취직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1898년 전국여성노동전시회(National exhibition of women's work)에 가담해 여성들의 경제 기여, 특히 상품 생산 측면에서의 공헌을 알리는데 활약했다. 이 전시회를 통해 2만 길더가 조성됐고, 네덜란드에 여성부가 신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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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Memory of the Garden at Etten, 1888/ Vincent's letter to sister Wil

 

하지만, 1902년 마흔살 즈음엔 치매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병원기록에 따르면, 빌은 음식을 거부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정신병원 치료비는 자매들과 테오의 부인 조안나(Johanna van Gogh-Bonger)가 빈센트의 그림을 팔아서 충당했다. 이후 빌은 1941년 79세로 사망할 때까지 40여년간을 정신병원에서 절반 이상의 삶을 보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전설 만든 요한나 반 고흐-봉허(Johanna van Gogh-Bonger)
http://www.nyculturebeat.com/?mid=TopStory2&document_srl=4040056
 
*위대한 음식 열정 <9> 빈센트 반 고흐: 하늘과 별과 밀밭, 그리고 감자와 커피
http://www.nyculturebeat.com/?mid=FoodDrink2&document_srl=403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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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4.14 23:03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을 년도별로 자세하게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그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았고 또 배웠습니다.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고 자랐고, 두명의 남동생과 세명의 여동생이 있어서 외롭지도 않았음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천재 화가는 스스로 고독 속에 빠졌고 그림이라는 세계 속에 혼신을 쏟고,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며 짦은 생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눈을 감았습니다. 천재는 이런가? 하는 의문이 해답없이 이어졌습니다. 하늘과 별과 밀밭, 감자와 커피가 고흐를 떠오르게 합니다.
    -Elaine-
  • 그레이스 2022.10.06 08:42
    매우 상세한 설명 덕분에 그동안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sukie 2022.10.06 18:56
    뉴욕컬처비트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