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스파이더맨' 저주는 끝났을까?
토니상을 기다리는 '스파이더맨'과 줄리 테이머
할리우드에 오스카상이 있고, 브로드웨이엔 토니상(Tony Awards)이 있다. 연말엔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오스카를 노리는 영화들이 대거 개봉된다. 후보 자격이 전 해 최소 1주일 이상 뉴욕과 LA에서 개봉된 작품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의 잔치 토니상 후보작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제 66회 토니상 후보는 오는 5월 1일 발표되며, 시상식은 6월 10일 열린다. 황무지의 달 4월 브로드웨이에도 연극과 뮤지컬 개막 러시가 일고 있다. 2012 토니상 후보 자격이 4월 26일 이전에 공식 개막된 작품에 한하기 때문이다. 리바이벌 뮤지컬 ‘에비타(Evita)’ 'Leap of Faith' 리바이벌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를 원작으로 한 뉴 뮤지컬 ‘고스트(Ghost)’와 '립 오브 페이스(Leap of Faith)' 등이 줄줄이 공식 개막했다.
뮤지컬 '스파이더맨'의 복제 스파이더멘. 이들이 공중 곡예하는 장면이 관객을 흡족시켜준다.
지난해 사고에 사고 끝에 개막이 지연되며, 말도 많았던 뮤지컬 ‘스파이더 맨: 어둠을 꺼라(Spider-Man: Turn Off The Dark)’는 드디어 올해 토니상 후보 자격을 갖게 됐다. 2010년 11월 28일 프리뷰에 들어간 '스파이더맨'은 2011 토니상 이틀 지난 해 6월 14일 공식 오픈했다. 스턴트맨들의 연이은 부상 사고와 수퍼스타 연출가 줄리 테이머(Julie Taymor)의 해고라는 산통을 거치며 무려 182회의 프리뷰를 거쳤던 것. 그래서 ‘스파이더맨’은 올 토니상의 '복학생' 같은 뮤지컬이 됐다. 어쩌면, 9개의 트로피를 가져간 ‘북 오브 몰몬(The Book of Mormon)’이 석권한 지난해 보다는 올해가 더 승부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화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그리고 브로드웨이까지 상륙한 ‘스파이더맨’과 뮤지컬 사상 최대 성공작인 ‘라이온 킹’의 여제 줄리 테이무어, 그리고 세계적인 록그룹 U2의 보노(Bono)와 엣지(The Edge)가 가담한 ‘스파이더맨’은 그야말로 황금 트리오였다. 도박과도 같은 브로드웨에서 흥행을 노리는 제작자들이 돈 방석에 앉을 것이라고 성공이 담보된 ‘블록버스터형’ 뮤지컬이었다. 그래서 서커스를 방불케하는 스파이더맨의 비행 장면과 특수 효과를 위해 역사상 최대 제작비 7500만 달러가 투여됐다.
블록버스터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여제 줄리 테이머(가운데)와 뮤지컬은
초보인 록스타 보노(오른쪽)와 엣지가 '스파이더맨'에서 뭉쳤다.
‘스파이더맨’을 지난 해 3월과 개막 후인 7월 두 번 봤다. 연출, 대본, 가면 디자인에 참가한 줄리 테이머의 버전과 새로 영입된 연출자 필립 윌리엄 맥킨리의 버전이다. ‘스파이더맨’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뉴욕의 고교생 피터 파커(리브 카니/매튜 제임스 토마스 분)가 초능력의 스파이더맨이 되어 악과 싸우는 이야기다. 피터에게 초능력을 선사한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미여신 아라크네의 침이었고, 피터를 사랑하는 여인은 뮤지컬 스타를 꿈꾸는 소녀 메리 제인이다.
블록버스터 뮤지컬 ‘라이온킹’을 진두지휘한 테이머는 영화, 오페라까지 진출한 만능 탤런트다. 그녀가 당초 꿈꾸었던 또 하나의 만화 원작-할리우드 스톱-브로드웨이 데뷔 뮤지컬 공식의 ‘스파이더맨’은 ‘로큰롤 서커스 드라마’였다. 테이무어의 파트너는 글로벌 록스타 U2(보노와 엣지). 사실 이들은 뮤지컬엔 ‘왕 초보자들’. 그것이 문제였다.
보노는 한 인터뷰에서 뮤지컬에 손 댄 이유를 밝혔다. ‘팬텀 오브 오페라’‘캐츠’ 등 뮤지컬의 제왕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한 농담 때문이었다. 웨버는 “25년간 내가 전적으로 뮤지컬을 쓰게 내버려둔 록 뮤지션들에게 감사한다”고 자신의 독주를 자화자찬해버렸다. 이에 보노는 테이무어와 손잡고 웨버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만화와 영화의 2차원에서 벗어난 입체적인 만화와 다이나믹한 세트 디자인, 그리고 공중 곡예가 볼 거리다.
그러나, U2는 5천여명 이상의 팬들이 몰린 스타디움이나 대규모 콘서트홀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록뮤지션들이다. 폭스우드시어터는 1829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파이더맨은 음악적으로 실패작이다. 단 한 곡의 주제곡 ‘Rise Above‘ 단 한 곡 만이 뇌리에 남고, 음악은 극을 서술하는 수단이 아니라 효과음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파커/스파이더맨의 정서나 돌연변이 괴물들의 공격, 신문사의 광끼 등을 멜로디와 가사로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테이머 버전의 공연에선 보노와 엣지를 상기시켜주는 두 기타리스트가 무대 왼쪽에서 외로이 연주했다. 개정판에선 연주자들을 오케스트라 핏으로 내려보냈다. 무대 옆에서 노래하던 4인조 코러스도 삭제됐다. 대신 파커가 왕따 당하는 장면(“Bullying by Numbers”)가 추가됐으며, 메리 제인과의 러브스토리, 파커의 가족 이야기가 강화됐다. 테이머가 포커스를 둔 거미여신의 그로테스크한 춤이 삭제됐고, 역할도 작아졌다.
세트와 의상은 화려하다. 화가 로이 리히텐쉬타인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만화 무대세트가 3차원으로 팝업 되면서 ‘스파이더맨’을 다이나믹하게 만들었다. 개성 없는 스파이더맨을 보완해주는 것은 녹색 괴물 고블의 의상과 카리스마다. 그가 자조적으로 부르는 “난 7500만 달러짜리 서커스의 비극!”은 솔직해서 더 믿음직스럽다. 고블린이 만든 6인조 괴물들의 컬러풀한 패션과 비디오 아트도 볼 거리다.
뮤지컬 '스파이더맨'에서 사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서커스 같은 장면일지도 모른다. 복제된 스파이더맨들이 피아노선을 타고 연속 공중을 날아다니는 장면이다. 2차원의 스크린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라이브 뮤지컬의 맛, 그 곡예에는 9명의 스턴트 스파이더맨이 필요했다. 그러나, 홍금보나 정소동같은 홍콩의 무술감독을 영입했더라면, 공중 액션이 더 치밀하지 않았을까?
킹콩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스파이더맨은 크라이슬러 빌딩이 무대다.
메자니석에 앉아있던 소년은 1막에서 15분이 채 되지않아 “스파이더맨은 어디있지?”하고 물었다. 어린이들이 학수고대하는 스파이더맨은 40여분이 지나야만 나온다. 전반부에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이야기에 너무 오래 할애하는 바람에 1막은 다소 지루하다. 그러나, 2막에선 고블린의 코믹 연기와 스파이더맨들이 동시다발로 벌이는 공중전에 관객들은 넋을 잃는다. 속삭이던 소년 앞에도 스파이더맨이 날아와 사뿐하게 앉았다. 소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놀이터에 가면 “나 스파이더맨 봤어!”하고 친구에게 으시댈 수 있을테니까.
*뮤지컬 '스파이더맨' 하이라이트는 이곳을 클릭하세요.
‘스파이더 맨’의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줄리 테이머는 ‘스파이더맨’의 제작진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작품으로 흥행하고 있으면서 로열티를 받지 못했다고 있다는 것. 이에 제작진(8 Legged)은 테이머는 원작을 각색했을 뿐이기에 저작권 침해가 아니며, 테이머는 제작진의 요청대로 대본을 바꾸지 않았다고 맞고소했다.
뮤지컬의 여제 줄리 테이머. Photo: Joella Marano
‘라이온 킹’으로 브로드웨이 역사상 여성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수상하며 정상에 올랐다가 ‘스파이더맨’으로 위신이 추락한 줄리 테이머는 누구인가?
1952년 매사추세츠의 뉴턴에서 유대계 산부인과 의사와 교사 사이에서 태어난 테이머는 어려서부터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 9살 때 보스턴어린이극단에 들어가 활동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스리랑카와 인도에 여행하면서 눈을 넓혔다. 그리고, 파리의 자크 르코크(Jacque Lecoq)시어터 국제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마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오벌린칼리지에서 신화와 민속학을 전공하던 테어머는 열린 극단에서 활동하면서, 시애틀의 미동양예술협회 서머 프로그램에서 인도네시아의 가면극과 인형극을 배웠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가면극무용단을 창단해서 순회 공연을 다냤으며. 대학 졸업 후엔 일본 아와지섬에서 ‘분라쿠 인형극’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뮤지컬 ‘라이온 킹’과 오페라 ‘마술 피리’의 연출에서 드러난다.
테이머는 1997년 디즈니의 블록버스터를 각색한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연출자로 초빙됐다. 그녀는 연출 뿐만 아니라 의상을 디자인했으며, 가면과 인형도 공동으로 디자인하고, 가사까지 썼다. ‘라이온 킹’으로 브로드웨이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수상한 여성이 됐으며, 의상디자인상까지 거머쥐었다. 테이머는 '라이온 킹'을 최근 브로드웨이 사상 최고의 히트작으로 만들어 놓았다.
할리우드와 오페라계도 테이머의 재능을 주목했다. 1999년 할리우드의 콜을 받아 영화 셰익스피어 원작 ‘타이터스(Titus)’로 메거폰을 잡았다. 이어 2002년엔 셀마 헤이약 주연으로 멕시코 화가 카를로 프리다의 생을 그린 ‘프리다(Frida)’을 연출했다.
2005년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초대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100분 용 할러데이 버전으로 연출했다. 2008년엔 셰익스피아 원작 ‘템페스트’를 각색, 영화를 만들었다.
소녀 시절부터 연극과 세계 여행, 그리고 오픈 마인드로 재능을 길러온 우리 시대 연출가 테이머, ‘스파이더맨’ 소송이 어디서 종지부를 찍게될 지는 모르지만, 테이머의 재능이 위축되지 않기를 바란다. $67.50∼$140, 폭스우드시어터(213 West 42nd St. 212-307-4100) www.spidermanonbroadway.marv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