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당 노부(NOBU) 성공의 비결
수다만리 (4) 노부의 "No!"
노부유키 마추히사 성공의 비결
# 마르첼로, 하사키
“생선을 날로 먹는 걸 우리 엄마가 알면, 날 죽이려고 할꺼야!”
뉴욕 온 첫 해 클래스메이트 마르첼로가 이스트빌리지의 일식당 ‘하사키(Hasaki)’에서 스시를 시키면서 말했다. 80년대 마돈나가 무명시절 다녔다는 하사키의 식탁은 물, 된장국, 접시 두 개가 올라오니 꽉 차버렸다.
폴란드계 유대인 이탈리안으로 비잔틴 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은 마르첼로는 어머니에게 반항하듯이 스시를 간장에 찍어 날름날름 집어 먹었다. 영어를 공부하러온 이탈리안 유학생에게도 스시를 먹을 줄 아는 것은 쿨!한 것처럼 보였다. 마르첼로는 지금 첼시의 갤러리 주인이 되어 있다.
# 사샤, 월스트릿 아파트
1996년 즈음 뉴욕에서 스시 레스토랑은 전성기였을 것이다. 영어 회화 파트너로 만나던 ‘보그’지 불어판 편집장 사샤는 날 월스트릿의 아파트로 초대해서 레드 와인 한잔을 준 후 그녀의 팔뚝만한 파미자노 치즈를 얇게 썰어서 안주로 건내주었다. 그리고 비디오를 틀었다. 벨기에의 작은 교회에서 찍은 자신의 결혼식 비디오였다.
사샤는 얼마 전 결혼 2주년 기념일 노부(Nobu)에서 식사했다고 자랑했다. 당시 뉴욕 레스토랑 톱 5에 속했던 노부는 한달을 기다려야만 예약이 가능할 정도로 인기 있었다. 내게 노부에 가보는 것은 ‘그림의 떡’처럼 생각됐다. 노부의 대표 겸 요리사 노부유키 마추히사(Nobuyuki Matsuhisa, 松久信幸)는 명실공히 스타 셰프였다.
#마추히사, LA
그로부터 몇 년 후 친구와 LA를 여행하다가 비버리힐즈를 배회했다. 즉흥성을 좋아하는 친구는 예약도 없이 마추히사로 가자고 했다. 노부유키 마추히사가 뉴욕에 지점을 내기 전에 오픈한 오리지널 식당으로 업스케일 한식당 '우래옥' 건너편에 자리해 있었다. 영화배우 뺨칠 정도로 예쁜 호스트가 예약없이 온 것에 대해 찡그리더니, 스시 카운터로 안내했다. 입구에서 시트콤 ‘프렌즈’의 미셸 블랑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코트 체크하는 여인도 모델급. 할리우드 세트장에라도 들어가는 듯 했다. 주눅이 드는 순간들. 그러나, 성공한 마돈나, 리처드 기어가 즐겨 찾는다는 마추히사의 인테리어는 상당히 소박했다.
뉴 스타일 사시미
워낙 퓨전에 대한 약간의 저항감을 가졌지만, 노부의 간판요리인 ‘뉴 스타일 사시미(New Style Sashimi)'를 건너 뛸 수는 없었다.후라이팬이 지진 광어 사시미? 그 위에 올리브 오일, 깨소금과 간장을 얹은 ‘느끼한’ 뉴 스타일은 날 생선을 못먹는 고객을 위해 개발했다는 메뉴다. 담백한 생선회를 좋아하는 나의 입맛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흑대구 된장조림
또 하나, 노부의 히트작 흑대구 된장 구이(black cod with miso)을 주문했다. 그런데, 스시맨이 카운터로 접시를 주다가 그만 내 머리에 국물을 몇 방울 쏟았다. 영화배우 수준의 고객들 사이에서 주눅 들었던 나에게 된장+간장 소스로 샴푸까지 시킨 것이다. 불쾌해졌지만, 흑대구 된장조림은 입에서 사르르르 녹는 식감이 천국의 맛이었다.
마사 스튜어도 반해서 레시피를 소개한 흑대구 된장 조림은 이후로 일식당뿐 아니라 한식당까지 은대구 조림 메뉴를 유행시키게 된다.
# 노부유키 "I'm Very Sorry."
그런데,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하얀 가운 차림의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I’m very sorry.”
그는 일본어 억양으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당황했던 나는 고개를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 남자도 키친으로 돌아갔다.
친구는 그가 바로 주인 ‘노부 마추히사’라고 말해주었다. 매니저도 아니고, 주인이 나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은근히 맘 속에선 ‘에누리(할인)’나 ‘보너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겐 '국물'도 없었다.
노부 트라이베카
# 뉴욕 노부, 프랑스 관광객
맨해튼 트라이베카의 노부에 간 것은 아마도 그로부터 한참 후였을 것이다. 우리는 베어마운틴 인근까지 허드슨강 단풍 크루즈를 즐긴 후 헝크러진 머리카락과 허기진 배를 잡고, 예약 없이 노부를 노크했다. 호스트는 테이블이 없다며, 우리를 옆의 지점인 ‘넥스트 도어 노부’로 보냈다. 옆집 호스트는 마침 취소한 고객이 있다며, 테이블로 안내했다.
옆 테이블에서 중년의 남녀가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니 관광객같았다. 그런데, 남자는 스시 접시에서 녹색의 와사비 덩어리를 서투른 젓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입 안으로 가져갔다. 물론, 그의 얼굴은 빠알갛게 변했다. 그는 내프킨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소동을 최소화했다. 프랑스 남자의 첫 노부 체험은 나처럼 소스 벼락 대신 와사비 벼락이었나 보다. 노부의 스시 스페셜과 록 슈림프 뎀푸라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로버트 드 니로와 노부 마추히사
# 노부, 로버트 드 니로
그로부터 몇 년 후 저녁 때 노부 오리지널에 테이블을 잡았다. 데이빗 로크웰이 디자인했다는 버치나무 인테리어가 우아했다. 구석에 “미안하다”고 했었던 노부상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열심히 한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굵은 뿔테에 신문배달 소년 모자를 쓴 남자의 인상이 이쩐지 낯이 익었다. 우디 알렌이 뚱뚱해지면, 저런 얼굴이 될까?
인터뷰라도 하고 있는듯한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생각해보니, 그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였다. 얼마 후 아시아계 웨이트레스에게 ‘로버트 드 니로’였냐고 하니, 맞다면서 “뒷문으로 왔다가 사라졌다”고 했다. 스타의 변장술은 훌륭했다.
노부유키 마추히사와 로버트 드 니로는 노부 레스토랑의 파트너라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알게된 것은 노부 요리책 ‘NOBU’을 읽으면서였다.
노부와 사부 나카네씨
# 노부의 NO 1 & 2
1949년 도쿄 인근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노부는 7살 때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어 홀어머니에게 키워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신주쿠의 마추에 스시에서 마스터 나카네씨으로부터 스시를 배우려했다. 그러나, 나카네씨는 몇 년 동안 새벽에 생선시장 데리고 다니고, 식당 청소를 시키고, 손님 차 시중에 설거지를 두루 시키다가 1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비로소 스시 칼을 쥐게 했다는 것.
1973년 스시맨으로 일하던 중 노부에게도 기회가 왔다. 일본계 페루인 손님이 합작으로 페루에서 식당을 열자고 제안한 것이다. 홀어머니는 극구 말렸지만, 스물네살의 막내에게 꿈은 있었다. 어머니에게 "NO'라고 한 후 페루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일식당에서 일하게 됐다.
페루엔 일본 이민자들이 많다. 후지모리 대통령이 있는 페루에선 세비체라는 상큼한 사시미 샐러드도 국가 대표 요리가 됐다. 1970년대 일본 식재료가 부족했던 페루에서 노부는 재료를 일일이 만들어 쓰면서 아이디어를 저축했다. 어느날 돈 벌이에 급급한 동업자는 노부에게싼 재료를 쓰라고 강요했고, 노부는 “NO"라고 한 후 그만 두었다.
이후 스테이크의 나라 아르헨티나로 가서 식당을 열었다. 스시 대신 샤브샤브 등 육류 전문으로 운영했지만, 회의감이 들었다. 노부는 스시에 전념하기 위해 스시 불모지인 알래스카로 이주한다. 그러나, 식당에 불이 나서 하루 아침에 무일푼이 되어 버렸다.
노부 트라이베카
# 로버트 드 니로의 삼고초려
노부는 1977년 'LA로 이주했고, 10년간 일식당을 전전하면서 일했다.
그러다 1987년 비버리힐즈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마추히사’를 오픈한다.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드나들면서 2년 후 캘리포니아 최고의 일식당, 자갓 서베이 최고 인기 식당, 그리고, 뉴욕타임스의 미 10대 레스토랑에 선정됐다.
마추히사의 단골이었던 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맨해튼에서 레스토랑 트라이베카 그릴을 운영하고 있었다. 드 니로는 노부의 흑대구조림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뉴욕에 지점을 열자고 제안했다. 노부를 뉴욕에 초대해 자신이 매입한 빌딩을 보여주며, 설득했지만 노부의 대답은 ‘NO’였다. 마추히사 오픈 1년만에 또 하나의 레스토랑은 부담스러웠던 것. 알래스카 화재로 인한 상흔으로 연달아 식당을 오픈할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4년 후 노부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노부상, 이제는 어때요?” 드 니로였다. 새 건물에서 파트너로 노부를 열자고 다시 제안했고, 노부는 마침내 ‘OK’를 했다. 1994년 8월 뉴욕 노부가 오픈하면서, 넥스트 도어 노부, 미드타운 57스트릿 노부까지 트로이카 노부가 탄생하게 된다. 그뿐인가? 노부는 드 니로가 합자한 런던의 오본(UBON)에서 햄턴, 하와이, 두바이, 홍콩, 부다페스트, 그리스, 크루즈까지 30여개 지점으로 늘어났다.
로버트 드 니로는 친구이자 파트너인 노부를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소개해 출연까지 시켜주었다. 영화 ‘카지노’에서 카지노 손님으로, ‘게이샤의 추억’에서 기모노 화가로 등장하기도 했다.
노부 벤토
# '고꼬로' 노부
노부가 최근 뉴욕 지점 20주년을 기념했다.
미국에 고급 스시 레스토랑의 열풍을 일으킨 이는 노부유키 마추히사다. 스시 야스다와 마사(Masa)의 마사 타카야마도 노부가 포장한 길을 매끄럽게 운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부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비법이 “신선한 재료와 마음( こころ, 고꼬로)을 담은 음식”이라고 말한다. 어린시절 노부는 아버지를 잃었고, 페루와 아르헨티나를 거쳐, 알래스카에서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노부는 LA에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오뚜기처럼 일어섰다.
노부의 성공, 그 뒤에는 엄격한 스승, 집요한 열정, 마음을 담은 음식, 그리고 ‘NO’를 할 줄 아는 정신에 있지 않았을까?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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