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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 홍영혜: 뉴욕공립도서관-지식의 숲을 거닐다
빨간 등대 <54> Ex Libris: The New York Public Library
뉴욕공립도서관-지식의 숲을 거닐다
Sue Cho, “Visiting Library, Reading is gift of life”, 2023, Jan. Digital Painting
이번 겨울 뉴욕시에선 첫 눈은 아직 오지 않았다. 대신 며칠 비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그랜드센트럴터미널 근처에 일을 보고 얌전히 집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갔다. 한참 동안 지하철이 떠나질 않더니 공사로 출발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얼마 전에도 지하철역 중간에 10분 정도 정차한 적이 있었는데 대각선으로 앉아있던 사람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지 계속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언제 끓어 오를지 모르는 압력솥처럼 부글부글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F Word를 꽥 소리지르며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혼비백산하고 다른 의자로 도망갔던 일이 떠올라 지하철에서 내렸다. 버스를 타러 비바람에 뒤집어 지는 우산을 앞으로 방패 삼아 직진하다가 사이드 워크에 새겨진 동판들이 발에 밟혔다. 그 순간 얌전히 집으로 가려는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Library Way, Follow the bronze plaques
Park Ave에서 41st Street을 따라 Fifth Ave로 걸어가면 길 양쪽으로 동판에 조각된 작가(알베르 카뮈, 버지니아 울프, 딜란 토마스...)들의 흥미로운 인용구와 디자인이 눈에 띈다. 우산이 뒤집히고 비바람만 아니었으면 천천히 감상하고 갔을 텐데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 (Wizard of the Oz)'에서 도로시가 노란 벽돌길(Yellow Brick Road)을 따라가면 마법사의 궁전에 이르듯, 그길의 끝에는 한 쌍의 사자상, 인내(Patience)와 불굴의 의지(Fortitude)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뉴욕공립도서관 본관(Stephen A. Schwarzman Building)과 만나게 된다. 사자상은 뉴욕도서관의 아이콘인데 팬데믹에 쓰고 있던 마스크는 이젠 벗어젖히고, 큰 크리스마스 화환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뉴욕공립도서관의 보물들
뉴욕공립도서관 본관의 전시물
뉴욕공립도서관 (NYPL)은 맨해튼, 브롱스, 스태튼아일랜드 3개의 보로우를 관장을 한다. 퀸즈와 브루클린은 각기 독립된 도서관 시스템이 있다. 본관 외에 현재 92개의 분관이 있다. 본관은 뉴욕서 추천하는 명소로 무료 투어를 꼭 할 만하다. 특별전도 여는데, 현재 “Polonsky Exhibition of the New York Public Library’s Treasures”는 125년 넘는 세월동안 수집해온 귀중한 역사적 자료 중 하이라이트를 전시하고 있다.
미국 독립선언서, 구텐베르크 성경, 찰스 디킨스의 책상, "위니 더 푸(Winnie The Pooh)"의 원본과 인형들, 존 제임스 오듀본의 “Bird of Paradise”, 그리고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대출되었던 아이들 책 "눈 오는 날 (The Snow Day)"도 전시되고 있다. 여유 있을 때 다시 와서 찬찬히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길 건너편 분관 Stavros Niarchos Foundation Library (SNFL, 455 5th Ave.)에 들러 보고 싶었다. MOMA 근처에 있는 53rd Street Library와 함께 한국어책을 많이 구비한 도서관이라 들었다.
Stavros Niarchos Foundation Library (SNFL)의 한국어 도서.
SNFL은 최근 전면적으로 리노베이션해서 깨끗하고 쾌적하였다. Thomas Yoseloff Business Center 가 5층에 자리잡고 있는데 NYPL의 4개 리서치 센터 중 하나다. 재정이나 사업투자 등 비지니스 운영에 도움을 주는 센터이다. 한국 책이 비치되어 있는 4층 “World Language” 섹션으로 갔다. 한국책은 한국 인구수에 비해 많지 않다고 한다. 대출건수에 따라서 다음에 주문할 수 있은 책의 권수가 달라지고 책이 있더라도 대출 기록이 없으면 서가에서 치워진다고 한다. 그래도 최근의 흥미로운 책들이 제법 있었다.
“82년생 김지영”과 “오은영의 화해”라는 책을 빌렸다. 사서에게 김훈 작가의 “하얼빈”이 있냐고 하니 작가 이름, 제목을 넣어보더니 없다고 한다. 다시 책의 ISBN 번호로 찾아보더니 도서관에는 책이 없지만 구매부에 연락하여 책 구매를 신청해주겠다고 했다. 한 달쯤 지나 확인해 보면 알 것 같다. 이 구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 한국 책의 목록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카탈로그 시스템을 준비 중인데, 이 페이지에서 뉴욕 도서관에 있는 한국책들의 일부 목록을 볼 수 있다. 아직은 서가에서 직접 책을 골라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또, 온라인으로 “Joy of Creation”, 글쓰기 워크숍이 4주간 한국말로 진행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신청해 보았는데 이미 인원수가 마감되었다. 일단은 대기자 명단에 넣었다. 뉴욕 도서관에서 한국말로 된 클래스를 듣게 될 줄은 뜻밖이었다.
뉴욕공립도서관 본관
이 글을 쓰면서 잊혔던 도서관에서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업스테이트 뉴욕의 카토나(Katonah)라는 조그만 타운에 이사와서 두살짜리 아들과 갈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손을 잡고 도서관에 자주 갔다. 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나도 애들 동화책이 재미있어 빌려와서 읽었던 기억들, 거기서 점차 동네의 정보도 얻게 되고, 이웃도 만나 적응을 하게 되었다. 시카고 교외에 살 때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할 때 찾던 공간이다. 잡지도 보고 서가를 걸어 다니면서 흥미로운 제목의 책도 뒤적거리고, 얼마 되지 않은 한국책 중에 읽을 만한 것이 있나 찾아 보곤하던, 유리창이 전면으로 나 있는 창가에 자리 잡고 릴랙스했던 공간들이 눈에 떠오른다.
뉴욕시로 이사와서는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비좁고 낙후된 시설에 실망하게 되고, 홈레스들로 붐벼 얼른 나오게 된다. 주문해 놓은 책을 찾으러 가다가, 요즘은 점점 E- book으로 빌리게 되고 도서관은 뜸하게 되었다. 비 오는 날 뜻하지 않게 Library Walk 를 걷다가 Comfort Meal 같은 한국 책을 만나게 되고 Stavros Niarchos Foundation Library 옥상 테라스는 책을 읽기 좋은 곳 같다고 점을 찍고 왔다. 새해에는 도서관이 나의 공간으로 다시 들어오려나.
PS1 Ex Libris: The New York Public Library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영화를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IN8O4sXLJc4
프레드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 1930- )이 연출한 2017 년 다큐멘타리다. 뉴욕공립도서관이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역할을 넘어서, 지역사회의 문화와 교육을 위해, 또 평등하게 사회적 약자와 장애자를 위한 설비를 위해 노력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본관과 그 주변의 동네와 함께 보여주는 분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도서관 행정가들이 다양한 이슈를 논의하는 장면을 보며 뉴욕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다.
PS 2 이 글을 쓰고 나서 MoMA 건너편 53rd Street Library(18 W. 53rd St)에 근무하는 한인 Ella Chorong Lee (이초롱) 사서와 연락이 되었다. NYPL에서 한국 도서구입,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여는 북클럽, 재미작가와의 북토크, 매년 세계문학 페스티발에 한국작가 초대강의 등 한국커뮤니티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여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한국 컬렉션이 더 확장되었으면 한다.
*뉴욕공립도서관 셀프 투어 by 남유정 & 정정욱(컬빗 인턴기자)
홍영혜/가족 상담가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도서관=지식의 숲, 딱 맞는 표현입니다.
저는 도서관을 가끔 쉼터로도 이용을 합니다. 구석진 곳을 찾아서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곤합니다. 그리움을 생각하기도 하고 나에게 나쁜 추억을 남겼던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인간을 우연히 만나게되면 무슨 말과 행동을 할까도 생각하면서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보면 피로가 풀립니다. 그리고 다 잊어버리고 집에 오면 하늘과 땅이 있을 뿐입니다.
삽화가 재밌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