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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2024.06.21 10:53

클래식 피아노 전공자에게 최고의 영광은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서 평생 연주여행을 하며 사는 것이죠. 그게 안되는 경우에 음대 교수를 선택하고 후학 양성에 힘쓰게 되는 분들이 많고요.

우리가 호로비츠나 리히터, 에밀 길레스, 아르헤리치, 폴리니 등등의 콘서트 피아니스트들이 음대를 졸업했나, 대학원을 졸업했나 전혀 궁금하지 않듯이, 평생을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산 백건우 씨가 줄리아드 대학원을 졸업했는지 여부도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고등학교 떄부터 로지나 레빈 여사에게 사사받을수 있었는지, 또 로지나 레빈여사의 허락하에 일로나 카봇여사에게도 사사받았고, 마찬가지로 로지나 레빈 여사의소개로 이태리로 건너가 빌헬름 켐프에게 베토벤 소나타를 사사받으셨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얼마나 사랑 받으셨길래 스승님이 이걸 허락하셨을까요? 빌헬름 켐프같은 전설에게 베토벤 소나타를 사사받을수 있는데(이태리 시절 동문들의 증언도 인터넷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굳이 줄리아드에 남아 대학원 학위를 딸 필요가 있나요..허허.. (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살수 있는데 굳이 학위를 받고 대학이나 대학원에 남을 필요가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일로나 카봇여사, 귀도 아고스티 등의 대가에게 사사받기 위해 뉴욕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신거죠. 결국 프랑스에 정착하셨지만요.

백건우씨는 과거 90년대에 낙소스에서 나온 프로코프에프 소나타, 협주곡 음반만으로도 유럽에서 당시에 이미 레전드 셨고, 마찬가지로 마이너 레이블에서 나왔던 스크리아빈 피아노 모음곡집, 라벨 전집 등으로 이미 프랑스에서 피아노 연주자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디아파종 상을 여러차례 밥먹듯이 받으셨죠.

한국에서 커리어가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남겨지고 있었는와 상관없이 백건우 씨는 유럽에서의 연주로 인한 명성 그자체로 이미 80-90년대에 이미 일본과 유럽에서 만들어진 영상 다큐나 기록물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계속 등장하고 계십니다.

숙희님의 이 편협한 시각의 저널리즘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것인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