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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후의 보헤미안 아티스트

데이빗 호크니 다큐멘터리 'HOCKN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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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A Bigger Splash, 1967 (inside)

 

미켈란젤로는 돌을 보면 "말을 해봐!"라고 외쳤다고 한다. 화가들은 빈 캔버스를 응시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는 뮤지엄이나 갤러리 혹은 화집 속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더 나아가 미술가들의 정신세계를 읽고 싶어한다. 그들의 진짜 모습을 만나는데, 인터뷰와 다큐멘터리처럼 좋은 매체도 없다. 근래 미술시장의 붐을 타고 미술가들의 다큐가 줄줄이 제작, 특히 회고전에 맞추어 개봉되는 것도 시너지 마케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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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 예고편

 

영국 출신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 1937- )의 다큐멘터리 '호크니(Hockney)'도 내년 7월 9일 호크니의 80회 생일을 맞아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시작되어 파리 퐁퓌두센터를 거쳐,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으로 이어질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개봉되었다. 1시간 53분. http://www.filmlinc.org/films/hock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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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arents, 1977

 

랜달 라이트(Randal Wright) 감독의 '호크니'는 아티스트로서의 호크니보다, 동성애자로서의 호크니에 더 치중한 작품이다. 영국의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난 호크니는 아버지의 조언을 평생 신조로 삼았다. "남들이 너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지 신경 쓰지 마라!" 호크니가 어느날 염색약 클레롤(Clairol)의 TV 광고를 본 후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후 이제까지 블론드 아티스트로 남아있다. 금발은 큰 안경테와 컬러풀한 복장과 함께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며, 보헤미언 스타일을 유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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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ckney

 

로열칼리지오브아트를 금상을 수상하며 졸업한 호크니는 1964년 미술의 메카 '뉴욕'을 거쳐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60년대 뉴욕에서 미술계와 사교계를 유영하던 앤디 워홀이 동성애자임을 숨겼던 반면, 데이빗 호크니는 정반대편 LA에서 공공연한 동성애자로 자신의 애인(피터 슐레진저)을 뮤즈로, 동성애 친구들을 모델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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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Schlesinger With Polaroid Camera, 1977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이 풍미하던 미술의 격투장 뉴욕 대신 일년 내내 햇살이 눈부시고, 할리우드의 화려한 매혹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풀장이, 해변에는 늘씬한 서퍼들이 있는 산타 모니카에 정착했다. 자유분방한 LA에서 호크니는 11살 연하의 미술학도 피터 슐레진저와 사랑에 빠졌고, 실연한 후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헨리 겔자흘러를 만나 안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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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l with Two Figures,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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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 George Lawson and Wayne Sleep 1972-75

 

아웃사이더로서 데이빗 호크니는 LA의 고요함, 게이 보헤미안 서클에서 파티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호크니는 한 장르에 귀속되지 않았다. 회화에서 사진, 폴라로이드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까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하이테크를 모두 수용하며 진화해 나갔다. 오페라의 세트 디자이너로 영역을 넓히면서 선명한 컬러 감각과 위트로 관습에 화려한 스파크를 가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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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로 그린 그림. Late Spring Tunnel,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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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의 카메라로 포착한 설경. Woldgate Woods, 9.30 am 26 November, 2010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의도하지 않게 무례한 인물"이 또한 호크니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느리게 그리면서 가십을 한다. 나는 그림 그릴 때 침묵을 지킨다." 

"제프 쿤스는 형편없는 화가다 형편 없는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항상 스퀴즈로 같은 것을 만든다. 뭐 그래도 좋겠지만, 난 뭐가 그리 훌륭한지 모르겠다"

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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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ckney

 

동성연애자로서 80년대 AIDS 쇼크에서 호크니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친구들 2/3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면, 세상에는 보헤미아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빗 호크니는 최후의 보헤미안 아티스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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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ckney

 

수구초심. 호크니는 1999년 어머니가 99세로 사망하자 고향 브래드포드로 돌아갔다. 2013년 럭비 선수이었던 조수가 약물중독으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사망하는 상처도 입었지만, 오늘도 호크니는 그림을 그린다. 그동안 소재도 사람에서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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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ckney

 

'호크니'는 프레임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면서 시대의 흐름을 변주해온 한 화가의 삶을 묘사한다.호크니의 보헤미안적 라이프 스타일은 캔버스에서, 아이패드에서 무한대의 컬러풀한 이미지를 생산해왔고, 인생을 예찬해온듯 하다. 그의 삶을 랜달 라이트의 카메라로 엿보는 것은 흥미롭지만, 사생활 중심의 이야기로 작품의 미학에 대한 조망이 피상적인 것이 아쉽다.

 

*Hockney 상영관: 월터리드시어터(링컨센터) http://www.filmlinc.org/films/hockney

 메트로그래프(로어이스트사이드) http://metrograph.com/film/film/114/hockney

 

 

*링컨센터 도서관 데이빗 호크니, 마크 샤갈 '마술 피리' 디자인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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