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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미경: 머 먹고 살 건데?
서촌 오후 4시 (2)
“머 먹고 살 건데?”
김미경, 여름, 2013
“머 먹고 살 건데?”
“밥 먹고 살지~. ㅎㅎ”
“아니~ 월급 없이 머 먹고 살 거냐고?”
“조금 벌어 조금 먹고 살려고~.”
“너 사는 게 장난이 아니다. 그림이야 직장 다니면서 그냥 취미로 그리면 되지 지금 그 나이에 그림을 새로 시작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림 그리는 걸 삶의 중심에 놓고, 온갖 알바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보겠다는 거야.”
“알바? 알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누가 너한테 알바자리라도 쓩쓩 줄 줄 알아?”
“때밀이도 할 자세거등.”
“나~ 참~. 눈이 그렇게 나빠 가지고설랑 때밀이는 어떻게 하냐? 안경 낀 때밀이 봤어?”
“ㅎㅎㅎ 식당에서 일하지~.”
“나이든 사람 식당에서 일자리 쉽게 준대?”
“길거리에서 그림 그려 팔꺼야~!”
“길거리에서 금방금방 그릴 수 있어? 너처럼 천천히 그리는 그림 누가 그걸 기다려 사냐? 그리고 그렇게 그려서 하루에 몇 장이나 팔 것 같애?”
“……”
“직장에서 4대 보험이 다 되니까 너 아무 생각 없지? 직장 나와 봐라. 지역의료보험료는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국민연금에, 월세에, 대출금 이자에 장난이 아닐 걸~.”
“……”
“막상 나와 봐. 사람들 대접이 다를 걸. 너 이제 곧 환갑이야. 그렇게 좋은 직장 두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한테 꼭 맞는 곳인데 왜 그러느냐구!!! 누군 직장생활이 꿀맛이어서 그렇게다니고들 있는 줄 알아?”
“……”
“그리고 아프면 어떻게 할 건데? 모아둔 돈도 없이. 네 나이가 몇이야?”
“……”
“이제 다시 너 불러주는 데도 없다~. 그냥 죽은 듯이 살아.”
“……”
“그림이 밥 먹여주냐?”
“……”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림이 밥 못 먹여준다’고 생각하는지 몰랐다. 맞다. 생계를 해결하고 사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일이다. 화가는 그걸 잘 못하는 덜 떨어진 존재로 인식된다. 생활비를 대주는 동생을 두고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려대던 고흐나. 귀족들의 경제적 후원 아래 그림 그리며 살았던 서양화가들의 이미지가 너무 강력하기 때문일게다.
뉴욕에서 소위 ‘거지 화가’들을 숱하게 봤다. 생계가 막막해 여기저기 손 벌리며 돌아다니는 화가 친구들도 많았다. 그림 팔 길은 막막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 거리를 배회하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슬픈 화가친구도 있었다.
물론 ‘씩씩한’ 화가들도 많았다. 낮에는 센트럴 파크 앞에서 얼굴 그리고, 밤에는 자기 작품을 하는 친구. 일주일에 며칠은 식당에서 일하고, 며칠은 그림을 그리며 사는 친구. 백화점 쇼윈도우 디스플레이, 매니큐어 작업 등을 파트타임으로 하면서 작업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작한 다른 일이 점점 커져 결국 그림을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결국은 무엇을 삶의 중심에 놓느냐, 얼마나 자신과의 싸움을 버텨 내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머 먹고 살건데?”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기들이 나 먹여 살려 줄 것도 아니면서 웬 참견들이야? 프라이버시 침해 아냐?’ 싶었지만, 정직하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는 생각을 이젠 해본다. 그리고 앞으론 이리 대답하리라 다짐해 본다.
“갤러리에서 폼잡고 전시회하면서, 내 그림의 진가를 와이래 몰라주노!! 하며 낑낑대는 그런 화가가 되겠다는 게 아니다.
내 그림이 좋다는 사람에게는 단돈 1,000원에라도 그림을 파는 화가. 길거리에서 그림 열심히 그리는 화가, 작은 구멍가게에서 그림 그려 파는 화가, 그림이 안 팔리면 파출부로 일해서 먹고 사는 화가, 그런 생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화가, 그림 그리는 일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화가, 세상은 좀 가난하게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화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엄청 많이 버는 것은 반칙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화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돈 내고 사는 사람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화가. 그날까지 열심히 열심히 그리는 화가가 돼서 먹고 살낀데~~와? 그래 먹고 살먼 안되나?” 하고 말이다. ㅎㅎㅎ
*그림설명: 2013년 여름 집 앞 마당 모습이다. 현관 앞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그렸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길은 없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정말 행복한 걸까?’ 등등을 고민하면서 매일 지나쳤던 마당이다.
p.s. 아래는 2009년 12월 뉴욕에서 이 비슷한 주제로 sunjooschool.com에 썼던 글이다.
http://www.sunjooschool.com/class_published_Brooklyn1/7388
김미경/'브루클린 오후 2시' 작가
대구에서 태어나 서강대 국문과와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를 졸업했다. 여성신문 편집장,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2005년 뉴욕으로 이주 한국문화원 기획실에서 일했다. 2010년 뉴욕 생활을 담은 수필집 '브루클린 오후 2시'를 펴냈다. 2012년 서울로 부메랑,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2014년 3월부터 화가로서 인생의 새 챕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