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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박준: 50+50
사람과 사막 (2) 100이라는 고지를 향하여
50+50
Park Joon, 9-Form Desert
어릴 때 100이라는 숫자는 나를 늘 두렵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100점을 받아오라는 채근에 난 언제나 힘들어 했다. 난 공부보다는 노래하길 좋아했고, 그림과 사진을 보기를 좋아했다.하지만 100점을 받는 친구를 부러워했고, 질투했으며, 절망했다. 20대에는100만원만 모아봤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한번도 100만원을 모아본 적이 없다.
미국에 와서는 100만 달러를 벌어봤으면 하는 헛된 바램에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난 한번도 100이라는 숫자를 완성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100이라는 숫자는 나에게 넘지못할 힘든 고지였다.
Park Joon, Nude in Page Canyon
사진가로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과 만들고 싶은 작품에 대한 갈망이 나를 힘들게 했고,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10년 전 문득 100이라는 숫자가 나에게도 가능할 거라는 강한 믿음에 사로잡혔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작품을 만들면 100 이라는 숫자가 완성되어질까? 나는 결정했다. 내 나이 50, 그리고 누군가의 나이 50이 결합하면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거라는 어렴풋한 생각에 집착했고, 곧 결론을 내렸다.
내 오랜 친구 중에 무용을 하는 50세 이송희씨에게 연락했고 사막에서의 누드 작업을 제안했다. 그녀는 흔쾌히 승락했고, 우린 작업을 위해 사막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50+50 프로젝트였고 그 프로젝트는 결국 100이라는 숫자에 절망했던 지난 날들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계기가 되었다.
의미없는 숫자 100에 집착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한없이 후회스러운 오늘이다.
박준 Park Joon/사진작가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해군 제대 후 83년 암울한 정치적인 상황을 피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 포토그래픽아트센터스쿨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가 됐다. 1997년 첫번째 전시 후 카메라 들고, 캘리포니아 데스밸리만 30회 이상 촬영했으며, 7월 뉴욕에서 LA까지 크로스컨트리 여행도 10여회 하면서 ‘로드 러너’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와이와 US 버진아일랜드만 빼고 전국을 돌았다. 아웃사이더로서 미국의 역사와 역사 속의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배우기 위해 떠난다. 1년에 2번씩은 대륙여행을 하고 있다. 2005년 뉴욕타임스는 생선과 인물을 모델로 작업하는 박씨를 대서특필했다. 그에게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