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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연사숙: ★★ 별이 뭐길래
동촌의 꿈 <1> 수길(Soogil) 뉴욕타임스 투스타 받다
★★ 별이 뭐길래
셰프들에게 별이란 훈장과도 같다. 훈장을 받은 셰프의 식당만이 좋은 요리이고 맛집이라 할 수 없지만, 뉴욕에서 별을 받은 셰프의 식당의 신뢰란 어떤 공들인 홍보 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우리처럼 새로 문을 연 식당의 경우는 말이다. 2만여개가 넘는 뉴욕의 넘쳐나는 맨하튼의 식당에서 1년 이내 문을 닫는 것이 평균이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별을 받는 다는 의미는 살아남기 위한 최상의 홍보 수단이다. 그래서 셰프들은 본인의 명성 뿐 아니라, 실제로 생존을 위해 그토록 별을 받는데 집착 아닌 집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힘들게 살았니.” 뉴욕타임스에서 우리 식당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 순간 결혼 이후 9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식당 문을 열고 정확히 4개월 만에 받은 결과였다. 그렇게 기다렸던 성적표는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받았다. 둘다 얼떨떨한 마음에 “잘했네. 잘했어” 먹먹한 한마디를 나누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마침 결과를 받아본 주방 식구들과 한번씩 포옹을 나누며,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이내 남편의 친구들, 주변 지인들의 연락이 쏱아지고, 식당으로도 예약전화가 밀려든다. 이제 한 두달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고생할 것이란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그때까진 식당이 그렇게 바쁘지 않았으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걱정반, 기대반 그렇게 샴페인에 취해 잠을 들었다.
지난 1월 맨하튼의 동촌, 이스트빌리지에 셰프인 남편(임수길)의 이름을 따 만든 우리의 첫 레스토랑 'SOOGIL'을 열었다. 우리 아들 이외의 우리가 같이 만든 또 다른 우리의 자식이다. 감사하게도 뉴욕타임스는 "뉴욕 최고의 프랑스 식당 '다니엘(Daniel)'에서 수련한 한인 셰프"라며 수길 오프닝을 헤드라인 기사로 올리며 주목해줬다. 뉴욕타임스의 영향은 막강했다. 신문이 인터넷에 올라가는 순간 식당으 로 예약 전화가 빗발쳤다.
처음엔 어리둥절 했고, 기쁨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손과 발은 무엇인가를 위해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안됐다. 그저 와주는 손님이 감사했고, 기다리거나 술이 없다고(주류면허가 늦게 나왔다) 불평하시는 손님들의 불만을 듣고 있어도, 손님이 없어 고민하는 것 보다는 백배 좋은 일이라며 만족했다. 주변에서 오픈하고 석달은 소위 ‘파리 한마리도 안보인다’고 말했는데 말이지. 서둘러 예약 사이트와 계약하고 그렇게 뉴욕타임스의 주목에 석 달간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Chef Soogil Lim Photo: Michael Tulipan
암행 비평가 출두하다
그리고 4월 9일. 내 생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식당을 떠나지 않던 남편은 그래도 저녁 한끼는 먹자며 근처의 식당에 아들과 셋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 문을 열고 아들과 같이 앉아서 먹는 첫 저녁이었다. 모처럼 들뜬 우리 세 가족은 사진도 찍고, 와인도 한 잔 주문해 마시려는 찰나 전화가 울렸다. “형, 아무래도 뉴욕 타임스 비평가 피트 웰스(Pete Wells)가 온 것 같아요. 와서 확인해야할 것 같아요.” 부주방장으로 있던 친구의 전화였다.
뉴욕타임스의 오프닝 기사가 나가고, 나는 서둘러 뉴욕타임스의 식당 비평가 피트 웰스의 얼굴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간간히 직원들에게 보여주면서, 혹시나 우리 없을 때 오게되면 꼭 알려달라는 당부도 해 놓은 상태였다. 전화를 끊고 남편은 바로 식당으로 뛰어갔다. 나도 아들과 함께 뒤따랐다. 마침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가장 한가한 날 중 하나다. 손님은 많지 않았고, 긴 커뮤널 테이블에 남자 두 분과 여자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얼굴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맞는듯 했다. 여하튼 뉴욕타임스 비평가라는 가정 하에, 모든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그들은 일체의 술은 시키지 않았고, 녹두빈대떡, 방울 다다기 양배추와 두부, 순두부, 아귀찜, 돼지 보쌈, 갈비찜, 누룽지 그라(푸아그라 요리)를 시켰다. 그저 평범한 고객인 듯, 3명이 잔잔한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듯 했고, 최대한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모든 음식이 나가고 그들도 떠났다. 마지막 확인은 영수증에 적힌 그의 이름이었다. ‘Pete Wells’. 맞았구나. 남편은 주방에서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래도 모든 음식이 그의 손을 거쳐 나갔으니 후회는 없으리라. 요리공부 한다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미국에 건너온게 2005년이었는데, 13년만에 드디어 뉴욕 최고의 비평가에게 평가받는 기회를 얻은 것 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Soogil
실수연발...주사위는 던져지고
뉴욕타임스는 보통 식당 평가를 내리기 위해 최소 3번 암행을 나간다고 알려져 있다. 최소 우리가 1번을 목격했으니, 이제 언젠가 또 오지 않겠나 생각하면서 하루하루가 긴장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또 다른 월요일 밤이 돌아왔고, 나는 식당에 들어오는 그분, 피트 웰스와 눈을 마주치고야 말았다. 웬지 내가 알아챘다는 것을 알리기 싫어 일부러 구석지 잘 안보이는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의 초록색 체크무늬 자켓이 걸려있는 의자 뒤를 보다 문득 어느 주말이 생각났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 역시 등지고 앉아 있었고, 의자에 초록 체크무늬 자켓이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번이 3번째.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고, 최선을 다하라고 전했다.
이번에는 그분은 푸아그라 테린, 삼치구이 등 지난번에 시키지 않았던 메뉴를 주문했다. 프렌치 코리안, 코리안 프렌치가 우리 식당의 정체성인 만큼 푸아그라 요리도 다룬다. 거위간으로 테린을 만들어 브리오쉬라는 부드러운 빵에 배와 대추 등 한국적인 고명을 얹어내는 요리였다. 남편은 긴장한듯, 이미 만들어놓은 테린을 써는데 오랜 공을 들였다. 이 사이 빵이 식어가는줄도 모르고. 모든 플레이팅을 마치고 오븐에서 빵을 꺼내는 순간, “아, 식었네..”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할수없다. 그냥 나가”라고 접시를 서버에게 건냈다. 빵을 다시 구우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러면 첫 접시가 나가야하는 서비스 시간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식은 빵은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유일하게 실망한 접시로 등장한다.
뉴욕타임스 식당 비평가 피트 웰스가 수길(SOOGIL)의 돼지보쌈을 인스태그램에 올렸다.
실수는 연발이었다. 보통 우리는 이미 다운 받아놓은 재즈 음악을 트는데, 이날 따라 미국인 서버가 팝을 틀고 싶다고 했다. 별 다른 생각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유투브를 연결한 것이다. 중간광고가 나오는데, 아차 싶었다. 뉴욕타임스의 식당의 별을 매기는 기준은 분명히 있다. 음식과 서비스, 인테리어와 분위기. 세개가 큰 기준인데, 이 중에 음악.. 아, 정말 그가 이 중간광고를 듣고 말았다. 이 역시 나중에 지적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서비스가 끝나고 또 ‘Pete Wells’라는 이름이 찍힌 영수증을 보았다. 아,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구나. 실수연발인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아니나 다를까. 몇일 뒤 뉴욕타임스에서 인터뷰 질문을 보내왔다. 아마 리뷰 기사를 위한 것이리라. 사진기자도 와서 음식사진 등 여러가지 사진을 찍어갔고, 우리는 성적표를 기다리는 것 외엔 할 것이 없었다. 당시엔 소위 ‘오픈빨’이 점점 떨어졌고, 이먼 이스트 빌리지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뜸해질 무렵이었다. 장사도 잘 안되고, 마음은 불안해지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루 하루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3주나 계속됐다.
Soogil Monk Starr Photo: Lily Brown
뉴욕타임스 효과, 아귀찜 스타덤
5월이 돌아왔고, 결과를 받아본 뒤 얼떨떨한 기분의 행복감도 잠시, 뉴욕타임스 효과는 바로 다음날 밀려드는 손님으로 실감했다. 손님들이 주문하는 메뉴도 확연히 달라졌다. 신문에 사진이 커다랗게 실린 아귀찜은 퇴출 위기의 메뉴에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됐다. 남편은 “사람들은 자신의 혀 보다는 신문을 더 믿나봐.”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만든 요리중 하나가 아귀찜이었는데, 그게 잘 안팔려 속상해 하더니, 기쁘면서도 허탈한 한마디였다.
뉴욕타임스의 주 독자층은 주로 연세가 있는 분들이 많았다. 어퍼이스트, 웨스트 사이드 등 맨하튼의 먼 곳 뿐 아니라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일부러 찾아온 여행객까지. 때로는 동촌(이스트 빌리지)의 작고 비좁은 식당이 감당하기 힘들 때도 많다. 그래도 와주는 손님 한분 한분이 너무도 귀했고, 그들의 응원과 비평이 공존했지만 모든 것이 감사하다. 더욱 감동을 받은 것은 리뷰 이후 뉴욕타임스 비평가 피트 웰스가 소셜 미디어에 남긴 글이었다.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고, 아직 갈길은 멀지만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우리 식당은 이제 1년이 안된, 어떤 손님의 비유처럼 “Baby Restaurant!”, 사람으로 말하면 아직 걷지도 못하는 누워있는 아기다. 뉴욕 최고의 프랑스 식당 ‘다니엘’ 출신의 셰프라는 이유로, 다니엘에 걸맞는 서비스와 분위기를 기대한 손님들은 실망도 했고, 합리적 가격에 새로운 한식의 맛이라며 호평을 하는 손님도 있다. 별이란 것에 심취해서 과대 포장해서도, 오만해서도 안되며, 식당을 열기 전 가졌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을 다진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이 뜻처럼 요리의 본고장 프랑스 식당에서 배운 기술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 만든 한국음식이 더 많은 뉴요커들에게 사랑받을 때까지. 뉴욕타임스의 별은 우리만 간직하고 있던 동촌의 꿈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연사숙/ 레스토랑 수길's Mom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경제학과, 연세대 경제대학원 금융공학과 졸업. 한국경제TV에서 9년간 경제-금융전문 기자, SBSCNBC에서 2년간 월스트릿/뉴욕증권거래소 전문 뉴욕특파원으로 일했다. 2009년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다니엘(Daniel) 수셰프 임수길씨와 결혼 후 뉴욕에 정착, 아들 알렉스를 두었다. 2018년 1월 이스트빌리지(동촌)에 남편과 함께 한식과 프렌치 테크닉이 만난 레스토랑 수길(Soogil)을 오픈, 뉴욕 타임스로부터 별 2개를 받았다. https://www.soog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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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피트 웰스 리뷰가 이렇게 진행되는군요^^ 오래 전 92스트릿Y에서 전 뉴욕타임스 식당 비평가 루스 레이츨의 토론회에 갔어요. 레이츨은 당시 가발도 쓰며 변장하고, 세번씩 친구들과 먹어본다고 하더라구요. 한번은 남편과 어느 레스토랑에 갔는데, 와인 리스트를 남편에게 주고, 가격 없는 메뉴를 자신에게 주더라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었지요. 또, 비평은 택시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쓴다고 했어요. 흥미진진한 뉴욕 스토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