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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연사숙: 아름다운 인연
동촌의 꿈 <5> 행복한 뉴스
아름다운 인연
"영국 파이낸셜 뉴스에 따르면…"
외신 뉴스에서 한 두번 들어본 듯한 소리 일 수 있다. 예전 경제부 기자로 일할땐 기사에 많이 인용하던 신문이었는데, 이 신문에 우리 식당이 나올 줄이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리뷰(2018년 12월 28일)를 스크랩해 보내준 소중한 분의 편지/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
사람의 인연은 참 알수가 없다. 사람에게 공들인 만큼 허무한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우연찮은 인연에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경우도 있다. 잘 아는 친구에게 소개 받았다면서 오신 영국신사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의 주말판에 식당 비평을 하는 기자였다. 그의 와이프 역시 와인업계에서 유명한 비평가다. 이 두 부부와 함께 하는 점심식사가 2,650 파운드(한화 390만원 가량)에 경매가 낙찰 되기 하는 등 식음료 업계에서는 상당히 영향력 있는 부부다. 남편은 그들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고, 그저 서비스가 끝나고 셰프와 얘기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저 평범한 음식 이야기였고 부인이 와인에 대해 상당한 조애가 깊으신 것 같아 보였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이들은 뉴욕에 사는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작은 뉴욕의 동촌 한국식당 수길(Soogil)에 왔고, 이후 한달 뒤 쯤 리뷰를 신문에 실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친구 역시 우리 식당에 우연히 오셨던 손님이었을 뿐, 우리와 어떤 일면식도 없었던 분이었다. 2018년의 마지막날을 앞두고 12월 28일. 파이낸셜 타임즈에 우리 식당의 ‘맑은 대구탕’ 사진이 떡 하니 실렸다. 이 기사는 남편의 요리 뿐 아니라 인간적인 따뜻한 문구로 끝을 맺었다.
“이 식당에서 마지막 기쁨은 행복한 셰프 임씨를 만나는 것이다. 작은 주방에 작은 레스토랑에 있는 매력적인 임 셰프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 마치 집에서 처럼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뉴욕에서 이 신문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고, 참 신기하지. 신문을 보는 많은 고객들이 다시 식당을 찾기 시작하며 우리는 2019년을 희망차게 맞을 수 있었다. 뉴욕 타임스 만큼 상당한 홍보효과는 아니었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희망과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Good Review"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길(Soogil) 리뷰
신문은 그 하루가 지나기 전에 구매하지 않으면, 그 다음날이 되면 구하기 힘든 물건으로 변한다. 이미 지난 뉴스를 찾는 사람이 없어 전날 신문의 가치는 없지만, 꼭 필요한 사람에겐 제 시간에 사야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오후 4시마다 레스토랑에 배달오는 집배원 아저씨가 있다. 보통은 돈 내라는 청구서가 대다수인 집배원 아저씨의 손엔 그날 따라 유난히 손글씨로 적힌 주소가 있었다. “누구지?” 하면서 열어보니 그 파이낸셜 타임즈의 우리식당 리뷰를 곱게 오려 포스트잇으로 "굿 리뷰"라는 짧은 문구만 붙여 보냈다.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지만, 읽으시면서 기분 좋으셨으니 잘라서 보내주신게 아닐까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지난 뉴욕타임즈 리뷰 후에도 여러 손님이 비슷하게 신문을 잘라 갖고 오신 것을 보면, 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지 않을까는 상상도 해본다. 신문을 스크랩하는 습관은 아버지에게서만 보던 기억 이었는데, 그 모습이 정겹고 우표를 붙이고 신문을 잘라 보내주신 그 수고가 더욱 고맙다.
돌아온 지갑
"나는 도미니카 사람입니다. 이 지갑을 42가에서 주웠습니다."라며 보내준 소중한 나의 인연의 편지
정신없이 살다보면 절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가끔은 생긴다. 평소 물건을 잘 챙기는 편인데… 주말 브런치 서비스를 마치고 친구 집에 놀러간 아들을 픽업하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친구 집으로 가서 돌아오는 길에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갑엔 운전면허, 신용카드 뿐 아니라 나와 남편의 영주권, 그리고 나의 소셜카드가 들어 있었다. 해외여행이 아니면 들고다니지 않던 영주권인데, 최근 보험을 바꾸기 위해 상담을 가던차 영주권이 필요하다고 해서 챙겼던 것이다. 모처럼 4월 아이 방학때 가족여행 계획도 세워놨는데… 영주권이란 것이 잃어버리면 운전면허 처럼 빨리 재발급 되는 것이 아니었다. 1인당 수수료만 520달러에 기간은 무려 6개월에서 1년까지도 걸린단다. 변호사 비용만 1인당 720달러나 됐다.
MTA에 분실물 처리 요청을 하고, 경찰서에 가서 리포트도 하고, 운전면허 재발급 받고... 잠 못 이루는 지옥같은 나날을 몇 일 보냈다. 잃어버린 지 5일 뒤, 집에 돌아오는 길 혹시나 우편함을 열었는데 무언가 묵직한게 잡혔다. 순간 “아! 혹시나…”하는 감이 왔다. 급하게 열어보니 나의 지갑이 그대로 들어있던 것 아닌가. 지갑을 열었더니 있던 현금에서 우편요금을 쓰고, 스페인어로 쓰인 종이 한장을 발견했다. “나는 도미니칸 사람입니다. 42가에서 주웠습니다.” 라는 문구였다. 순간 그동안 잿빛이었던 세상은 환한 광채로 변했다. 덤벙거리는 멍청이라고 죄책감에 시달렸던 마음 속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준 이 천사같은 도미니카 사람의 덕에 나는 다시 올 4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의 가족 여행을 꿈꾸게 됐다.
땡큐카드는 누구한테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미국 문화를 잘 모르는 나로써는 한번도 사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감각적으로 이럴때 필요한 카드란 사실이 인지됐다. 이메일이나 문자, 톡으로 세상의 대화를 하는 요즘같은 세대에 손글씨로 쓰는 카드란 1년에 한번, 크리스마스가 전부였는데.. 세상에 이렇게 감사하고 고마운 일은 꼭 손글씨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에는 유학시절 접하게 된 인연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워하면서도 한 번 만나고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서로 아니 만나 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어리석은 나에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것을 알려준 얼굴 모를 이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연사숙/ 레스토랑 수길's Mom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경제학과, 연세대 경제대학원 금융공학과 졸업. 한국경제TV에서 9년간 경제-금융전문 기자, SBSCNBC에서 2년간 월스트릿/뉴욕증권거래소 전문 뉴욕특파원으로 일했다. 2009년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다니엘(Daniel) 수셰프 임수길씨와 결혼 후 뉴욕에 정착, 아들 알렉스를 두었다. 2018년 1월 이스트빌리지(동촌)에 남편과 함께 한식과 프렌치 테크닉이 만난 레스토랑 수길(Soogil)을 오픈, 뉴욕 타임스로부터 별 2개를 받았다. https://www.soog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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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연, 스쳐가는 인연은 우리 삶 속에 무한히 얽혀 있네요. 따뜻한 인연, 좋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