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조회 수 2819 댓글 1

대기만성(大器晩成) 화가 잠들다

Carmen Herrera, 1915-2022

 

carmen.jpg

 

 

89세에 이르러서야 명성을 얻은 쿠바 출신 추상화가 카르멘 헤레라(Carmen Herrera, 1915-2022)가 2월 12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6세. 미니멀한 기하학적 추상화에 몰두해온 카르멘 헤레라는 스타이브샌트고교의 영어 교사였던 남편 제시 로웬탈이 2000년 사망할 때까지 무명화가로 살았다. 

 

2004년 브라질 출신 페데리코 세베의 라틴콜렉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뉴욕타임스의 찬사를 받으며, 운명이 바뀌었다. 당시 NYT의 비평가 홀랜드 코터는 "상쾌하고, 멋진 전시는 20세기 남미 미술에서 기하학적추상을 이어가며, 미술사에서 중대한 공헌을 한 세 여성작가를 추종한다. 그중 가장 덜 알려진 연로한 화가는 1915년 쿠바에서 태어나 1954년부터 뉴욕에서 살아온 카르멘 헤레라다. 그녀의 선언적이며, 재치있고, 각진 형식은 몬드리안, 엘스워스 켈리와 옵 아트와 접촉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라질에서 번성했던 전위 네오콘크리트 작가 리디아 클락, 엘리오 오티시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평했다.  

 

카르멘 헤레라는 지난해 7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장(Offic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을 받았으며, 최근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 2점을 구입했다. 

 

Carmen Herrera, Cuban-Born Artist Who Won Fame at 89, Dies at 106, NYT

https://www.nytimes.com/2022/02/13/arts/design/carmen-herrera-dead.html

 

 

388.JPG

Kenneth Noland, October, 1961(left)/Carmen Herrera, Equilibrio, 2012. Epic Abstraction: Pollock to Herrera, Metropolitan Museum of Art

 

Epic Abstraction: Pollock to Herrera

서사적 추상화전 : 폴락에서 헤레라까지

추상표현주의 여성작가들 <5> 카르멘 헤레라 Carmen Herrera (쿠바)

 

December 17, 2018–ongoing

Metropolitan Museum of Art, Galleries 917–925, Floor 2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서사적 추상화전: 폴락에서 헤레라까지'는 뮤지엄이 소장한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소개하고 있다. 전시 타이틀엔 잭슨 폴락과 카르멘 헤레라가 마치 동급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전시에서는 폴락의 작품이 10여점인 반면, 헤레라의 전시작은 단 1점이다. 

 

이 전시에서 주목해야할 여성 화가들을 외국 태생과 미국 태생 작가로 나누어 작품과 삶을 조명해본다. 

<1> 잭슨 폴락 갤러리 <2> 마크 로스코 갤러리에 이어지는 시리즈. 

 

 

Epic Abstraction: Pollock to Herrera@Metropolitan Museum of Art

<5> Carmen Herrera (1915, Cuba - )

 

"이런 말이 있지요. 버스를 기다리면, 버스는 오기 마련이다.

나는 버스가 오기를 거의 100년이나 기다린 셈이예요.

그랬더니, 버스가 왔네요."

-카르멘 헤레라-

 

 

000012.jpg

 올 3월 뉴욕 소더비에서 290만 달러에 경매된 'Blanco y Verde'(1966–67)와 카르멘 헤레라의 젊은 시절과 노년.

 

쿠바 출신 여성작가 카르멘 헤레라(Carmen Herrera, 1915-  )는 100살이 넘어서야 첫 뮤지엄 회고전을 열었다. 2016년 9월 휘트니뮤지엄에서 열린 첫 회고전이다. 그녀 나이 101세였다.

 

카르멘 헤레라가 남성이었더라면 일찌기 조셉 알버스, 엘스워스 켈리, 프랭크 스텔라, 도날드 저드, 바네트 뉴만, 케네스 놀란 등의 미니멀리스트들과 어깨를 견주었을지도 모른다. 카르멘 헤레라가 미국 여성이었더라면, 아그네스 마틴와 같은 챕터가 되었거나, 에바 헤세처럼 요절했다면 더 작품 가치가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카르멘 헤레라는 89세인 2004년에야 처음 그림을 팔 수 있었고, 100세가 넘어서야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011.jpg 

카르멘 헤레라의 가족 사진

 

# 카르멘 헤레라는 1915년 쿠바의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문 '엘 문도'의 창립 편집장이었고, 어머니는 기자였다. 유복한 가정의 7남매 사이에서 자라면서 8살 때 미술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했고, 14살 때는 파리의 국제학교 마리마운트 학교에서 유학했다. 

 

# 1938년 건축가를 꿈꾸면서 하바나대에 진학, 직선이 주는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이후 건축가 대신 화가로 선을 탐구하게 된다. 

 

 

003.jpg 

남편 제씨 로웬탈과 파리에서.

 

# 이때 하바나에 여행온 13세 연상의 미국인 영어교사(뉴욕 스타이브슨트 고교) 제씨 로웬탈(Jesse Loewenthal)을 만나 결혼하고 뉴욕으로 왔다. 로웬탈은 맨해튼 엘리트교 스타이브샌트고교의 교사이자 사진이 취미였다. 

 

# 맨해튼 19스트릿, 파크애브뉴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아트스튜던트리그와 브루클린뮤지엄의 판화 강좌를 들었다. 1948년 헤레라와 로웬탈 부부는 파리에서 5년간 체류하게 된다. 이곳에서 바우하우스, 러시아 아방가르드 절대주의(Russian Suprematism) 미술운동의 영향을 받아 평생의 화두가 된다. 이 시절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을 들으며, 소설가 장 쥬네와도 어울렸다.

 

 

IMG_7728.JPG

Carmen Herrera: Lines of Sight, 2016–2017,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1951년 모국 쿠바로 돌아가 액션 페인팅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제작, 하바나에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추상표현주의와 결별하는 계기가 된다.

 

# 1950년대 뉴욕 미술계는 카르멘 헤레라에게 차가왔다. 로즈 프라이드 갤러리의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더니 프라이드가 여성이기 때문에 전시에 참가시킬 수 없다고 응답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00년까지 헤레라는 무명 화가에 불과했다. 

 

 

IMG_0616.jpg

Carmen Herrera, Blanco y Verde, 1959, Spilling Over: Painting Color in the 1960s, 2009,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헤레라는 "Less is More"를 모토로 삼았다. 미니멀리스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헤(Mies van der Rohe)의 명언이기도 하다. 헤레라는 건축가적인 대담한 구도에 날카로운 직선과 컬러 감각으로 이미지의 정수를 뽑아 냈다. 

 

# 카르멘 헤레라의 첫 주요 갤러리 전시는 뉴욕에 정착한지 50여년 후인 1984년 69세 뉴욕의 Alternative Museum에서였다.

 

 

01111.jpg 

카르멘 헤레라

 

# 헤레라가 뒤늦게 빛을 본 것은 동료 화가 토니 베차라(Tony Bechara)의 도움이다. 베차라는 2004년 맨해튼의 라틴콜렉터 갤러리 대표 페데리코 세베(Frederico Sève)와 만나 저녁식사 중 세베가 여성 기하학풍 화가들의 그룹전을 기획 중 한명이 빠졌다고 불평했다. 이에 베차라는 헤레라를 추천했던 것. 세베는 처음에 헤레라의 작품을 보고 브라질 화가 리지아 클락(Lygia Clark)으로 착각했으나, 헤레라는 기하학적 회화를 클락보다 10여년 앞서서 해왔다는 것을 알게된다.

 

# 2008년 맨해튼의 엘 무세오 델 바리오(El Museo del Barrio)에서 헤레라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9년 영국 버밍햄의 IKON갤러리에서 회고전이 시작되어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의 팔츠칼러리뮤지엄으로 순회 전시됐다. 영국의 '옵저버(The Observer)지는 카르멘 헤레라에 대해 "10년간 최고의 발견"이라고 평했다.  

 

 

w1.jpg

Carmen Herrera: Lines of Sight, 2016–2017,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2016년 9월 휘트니뮤지엄은 카르멘 헤레라의 회고전 'Carmen Herrera: Lines of Sight'을 성대하게 열었다. 1948년부터 1978년 사이에 제작된 회화 50여점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 2014년 앨리스 클레이만(Alison Klayman) 감독이 다큐멘터리 '100년의 전시(The 100 Years Show)'를 제작했다. 클레이만은 중국 화가 아이 웨이웨이의 다큐 'Ai Weiwei: Never Sorry'를 연출한 바 있다. http://www.the100yearsshow.com

 

 

000landscape-1480721058-elle-elleinbook-december-walkthelineassets1.jpg

Akris Collection inspired from Carmen Herrera. Elle Magazine, December, 2016

 

# 2016년 스위스 브랜드 아크리스(Akris)의 디자이너 알버트 크라이믈러(Albert Kriemler)가 카르멘 헤레라에게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발표했다. 

 

# 2017년 필립스 경매에서 1956년 작 'Untitled (Orange and Black)이 118만 달러에 팔렸으며, 올 3월 소더비 뉴욕에서 'Blanco y Verde'(1966–67)가 290만 달러에 경매됐다.  

 

# 카르멘 헤레라는 54년간 파크애브뉴 19스트릿 아파트에서 살아왔다. 2000년 남편이 사망했고, 지금은 조수 마누엘 벨두마(Manuel Belduma)의 도움으로 작업하며, 이웃의 화가 친구 토니 베차라가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 그녀는 "직선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작업을 지속한다고 말했다.   

 

 

IMG_7716.JPG

Carmen Herrera: Lines of Sight, 2016–2017,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 sukie 2022.02.15 11:44
    추상화가 칼멘 헤레라의 일생을 읽었습니다. 대기만성의 화가, 89세에 처음으로 자기작품이 팔렸던 화가, 106세까지 장수를 누린작가를 알게됐습니다. 그림이 기하학적이고군더더기없이 깨끗해서 눈에 확 각인이됩니다. (올려주신 그림) 건축가를 꿈꾸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림이 설계도를 연상시키네요. 삼각형 사각형과 한가지색(초록색)으로도 절묘한 그림이 탄생하네요.
    106세까지 자기가 하고싶은 일-그림을 그리면서 살다가 간 칼멘 헤레라가 부럽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