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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여성(La Donna Forte) <3> Faith Ringgold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 1851)'에서 만투아 공작은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고(La donna è mobile)"라 노래했다. 여성을 변덕스럽고, 편협하다고 묘사한 "라 돈나 에 모빌레"는 오페라 사상 가장 여성 혐오적인 노래로 꼽힌다. 뉴욕컬처비트는 '강인한 여성(La Donna Forte)'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그 세번째는 할렘에서 태어나 뉴욕시립대학원 졸업 후 화가, 조각가, 동화작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교수, 사회운동가, 페미니스트로 와이드 스펙트럼의 커리어를 구축해온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Vs.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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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으로 휘청거리던 1930년 태어난 91세 동갑내기 두 미술가의 회고전이 뉴욕에서 연달아 열렸다. 재스퍼 존스(Jasper Johns)는 뉴욕 휘트니뮤지엄과 필라델피아뮤지엄에서 동시에 대대적인 회고전(Jasper Johns: Mind/Mirror, 9/29/2021-2/13/2022)을 마쳤다.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는 맨해튼 다운타운의 뉴뮤지엄(New Museum)에서 회고전(Faith Ringgold: American People)을 2월 17일 시작했다. 이 전시는 6월 5일까지 계속된 후 샌프란시스코 드영뮤지엄(7/16-11/27/2022)으로 이어진다. 

 

백인남성 화가 재스퍼 존스와 흑인여성 화가 페이스 링골드의 성조기와 미국 지도 그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스퍼 존스는 1954년 로어맨해튼 작업실에서 첫 성조기 작품 'Flag'를 그렸다. 페이스 링골드는 1967년 맨해튼 할렘에서 흑백인 남녀 3인 위의 피가 난무하는 성조기 작품 'The American People Series #18: The Flag is Bleeding'를 그렸다. 존스는 신문조각을 겹쳐 유화물감에 뜨거운 왁스를 믹스한 납화법(encaustic)으로 형식을 실험한 반면, 링골드는 1960년대 미 민권운동과 JFK와 말콤 X의 암살, 그리고 향후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로 얼룩지게 될 미국의 초상을 성조기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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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per Johns, 1973, Photo By Hans Namuth/ Faith Ringgold with quilt Tar Beach,1993 Photo by Kathy Willens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중퇴한 재스퍼 존스가 성조기, 타겟, 숫자, 그리고 회색에 몰입하며 사회현실에 무관심했다. 반면, 뉴욕시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페이스 링골드는 페미니스트로서 사회운동가로서, 교사로서 작품으로 목청을 높였다. 동성애 작가인 존스가 사회적 관심보다 순수 미술에 치중한 반면, 강인한 여성 링골드는 현실참여의 작가였다. 존스는 커네티컷주 샤론의 농장에 거주하며 1970년대 카리브해 세인트마틴섬에 매입한 별장을 오가며 살고 있는 반면, 링골드는 뉴저지 잉글우드에 살며 작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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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per Johns, Map(left), 1961, Oil on canvas/ Faithe Ringgold, United States of Attica, 1972, Offset lithograph

    

재스퍼 존스의 미국 지도 'Map'(1961)은 적색, 청색, 황색, 흑색으로 채색된 추상화이지만, 페이스 링골드의 'United States of Attica(감옥의 미국)'(1972)는 녹색과 적색(신호등을 상징하는)의 미국 지도에서 폭력의 역사를 기록한 작품이다. 

 

페이스 링골드가 백인 남성이었다면, 그녀는 재스퍼 존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까? 적어도 재스퍼 존스만큼 조명을 받았을 것이다. 페이스 링골드의 다이나믹하고, 스펙터클한 작품 세계는 재스퍼 존스의 명상에 가까운 고요한 캔버스와 대조된다. 링골드는 치열하게 미국의 문제를 담아냈다. 

 

링골드는 존스에 비교해 보면,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재스퍼 존스의 성조기 작품 'Flag'(1983)는 2014년 작가 최고 기록인 3천600만 달러에 팔렸다. 한편, 미술가, 작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교수이자 사회운동가인 페이스 링골드의 경매 최고기록은  '마야의 퀼트인생(Maya's Quilt of Life, 1989)'으로 46만1천 달러에 팔리는데 그쳤다. 100년 후 역사는 재스퍼 존스와 페이스 링골드를 재평가할 것인가? 

 

 

페이스 링골드: 페미니스트/ 사회운동가/ 교수/ 아티스트의 삶 

 

Faith Ringgold: American People

February 17-June 5, 2022

New Museum,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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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American People, February 17-June 5, 2022, New Museum, NY

 

#할렘의 딸: 본명은 페이스 존스(Faith Jones).1930년 그녀가 태어났을 때 미국은 대공황이었지만, 할렘은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가 꽃피우던 시기였다.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이야기꾼이었으며, 엄마는 패션디자이너였다. 당대 최고의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Dukie Ellington)과 시인 랭스톤 휴(Langston Hughes)가 지척에 살았고, 색소폰 거장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는 어린 시절 친구였다. 링골드는 청년시절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색소폰을 연습했던 친구 소니 롤린스에 헌사하는 작품(1986)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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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Sonny’s Bridge, 1986, Acrylic on canvas with printed and pieced fabric

 

#미술교육 석사: 어린 시절 페이스는 만성천식으로 인해 크레용화에서 바느질, 헝겊 조각 등을 배우며 자랐다. 1950년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을 전공할 계획이었지만, 여학생은 금지되어 대신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재즈 피아니스트 로버트 얼 월리스와 결혼해 두딸을 낳았으나 남편의 헤로인 중독으로 4년 후 이혼했다. 1962년 버데트 링골드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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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A Family Portrait: The American Collection #2(detail), 1997

 

#유럽과 아프리카 여행의 영감: CUNY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페이스 링골드는 공립학교에서 가르쳤다. 1959년 두딸과 파리, 피렌체, 로마의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프렌치 컬렉션(French Collection)에서 향후 제작하게될 퀼트 그림의 영감을 받았으며, 1972년 유럽 여행 중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에서 14-15세기 네팔의 탱화를 본 후 퀼트와 접목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과 1977년 두차례 서아프리카를 방문한 후엔 가면(mask), 인형 및 조각에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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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American People, February 17-June 5, 2022, New Museum, NY

 

#아메리칸 피플: 1960년대 미국은 흑인 민권운동과 페미니스트 운동, 그리고 베트남 전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페이스 링골드는 그 시대에 풍경화를 그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1963년 시작한 '미국인 시리즈(American People Series)'는 벽화 크기의 캔버스에 폭동으로 피가 흥건하게 흐르는 60년대 미국의 초상(Flag Is Bleeding, Black Power People, Die...)이다. 링골드는 "미술로 시간, 장소, 화가의 문화적 정체성까지 시대상황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에 매혹되었다. 흑인여성 작가로서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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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For the Women’s House, 1971

 

#벽화: 링골드는 1972년 뉴욕 인근 라이커스 아일랜드(Rikers Island)의 여성 감옥에 벽화 'For the Women’s House'를 설치했다. 링골드는 뉴욕시에서 3천 달러를 받고, 여성죄수들과 인터뷰를 한 후 그린 벽화다. 링골드 자신은 1970년 웨스트빌리지의 한 저드슨교회서 열린 'People's Flag Show'에서 성조기를 모독한 혐의로 체포된 3인의 화가 중 한명으로 이 감옥에 며칠 수감된 경험이 있었다. 2019년 라이커스 아일랜드를 방문해 자신의 그림을 살펴본 링골드는 브루클린뮤지엄에 장기간 대여로 이동 전시할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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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Mrs. Jones and Family(center), 1973, From Family of Woman Mask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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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The Wake and Resurrection of the Bicentennial Negro(front), 1975–89, Mixed-media installation/ Windows of the Wedding series, 1974

 

 

#조각가: 1973년 링골드는 동네와 국가 행사를 기록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새로운 매체 조각 작업에 들어갔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구슬로 장식하고, 라피아(*야자수나무에서 만든 실)로 머리카락을 짜서 붙이는가 하면, 마녀 가면 시리즈를 제작했다. 링골드에게 마스크는 영적인 정체성의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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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Black Light Series #9: The American Spectrum, 1969

 

#퍼포먼스 아티스트: 페이스 링골드는 이후 퍼포먼스 아트로 행동반경을 넓혔다. 마스크 조각은 훌륭한 퍼포먼스 의상이었다. 아프리카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스토리텔링, 춤, 음악, 의상 및 가면을 퍼포먼스에 가져갔다. 1976년 미 독립 200주년 기념 행사에 대한 응답으로 'The Wake and Resurrection of the Bicentennial Negro' 파포먼스로 미 200년 역사의 절반 동안 노예로 살았던 흑인들의 역사를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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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Le Café des Artistes: The French Collection Part II, #11, 1994

 

#사회운동가: 링골드는 흑인과 여성을 위해 투쟁한 작가다. 1968년 동료 아티스트 파피 존슨(Polly Johnson), 미술비평가 루시 리파드(Lucy Lippard)와 함께 애드혹 여성미술위원회(Ad Hoc Women's Art Committee)를 설립했다. 그리고, 11월 매디슨애브뉴 휘트니뮤지엄에서 여성작가 50%와 비백인 작가의 참가를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했다.

 

당시 휘트니에서 열리고 있던 모더니스트 미술전(The 1930's: Painting and Sculpture in America)에 흑인작가가 한명도 전시되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전시였다. 이후 휘트니의 1969년 회화 비엔날레엔 143명의 전시 작가 중 여성 작가가 단 8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1970년의 조각 비엔날레엔 22%의 여성작가들이 초대되는 효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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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Feminist Series, 1972

 

이후 혁명의 여성작가그룹(WAR, Women Artists in Revoltution)에서 활동했는가하면, 딸 미셸 월리스와 흑인미술해방을 위한 여성학생과미술가모임 WSABAL(Women Students and Artists for Black Art Liberation)을 창립해 흑인 페미니스트 기구의 선구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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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Coming to Jones Road series, 2010

 

#스토리 퀼트: 1980년 링골드는 민속예술로 여겨진 퀼트를 작품에 도입하게 된다. 패션 디자이너였던 링골드의 엄마와 할머니는 그녀에게 퀼트를 가르쳐주었으며, 링골드 자신 또한 유럽전통회화 중심의 서양미술사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자신이 쓰고 있던 자서전은 아무도 출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퀼트에 담아낼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이야기 퀼트 시리즈(Story Quilt Series)'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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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링골드의 회고록 We Flew Over the Bridge'(1995)

 

#동화작가: 링골드는 생애 17권의 동화책을 출간했다. 1991년 나온 동화 '타르 비치(Tar Beach)'는 할렘의 아파트에 살면서 뉴욕시 전역을 비행하는 꿈을 꾸는 8세 소녀 캐시 루이스 라이트풋(Cassie Louis Lightfoot)의 이야기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결합한 '타르 비치'는 인종차별 문제에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에즈라잭키츠 신인작가상과 코레타스콜킹 일러스트레이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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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Jo Baker’s Birthday: The French Collection Part II, #10, 1993, Acrylic on canvas, printed and tie-dyed pieced fabric, ink

 

#UC 샌디에고 교수: 링골드는 1987년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의 미대 교수가 되어 2002년 은퇴할 때까지 가르쳤다. 1995년엔 회고록 '우리는 다리 너머로 날아가(We Fly Over the Bridge)'를 출간했다. 1997년엔 보스턴 위록대에서 교육학 명예박사 학위, 뉴욕의 몰리대에서 철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받은 박사학위만 23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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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Ringgold, Church Picnic, 1988, Tie-dyed, printed fabrics, and acrylic on cotton canvas

 

 

Faith Ringgold: American People

February 17-June 5, 2022

New Museum, NY 

New Museum

235 Bowery St.(bet. Rivington & Prince St.) 212-219-1222 ▶개관시간: 월-화 휴관, 수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목요일 오전 11시-오후 9시, 금-토-일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티켓: $18(일반) $15(노인) $12(학생) *목요일 오후 7-9시 무료.  

http://www.newmuseum.org.

 

 

*휘트니뮤지엄의 흑인 거장들 <2> 프란츠 클라인 옆 노만 루이스(Norman Lewis) 

*휘트니뮤지엄의 흑인 거장들 <3> 혼자만의 방 제이콥 로렌스(Jacob Lawrence)

*2019 휘트니 비엔날레 흑인작가들

*2021 뉴뮤지엄 트리엔날레: Soft Water, Hard Stone 

*뉴뮤지엄 한스 하케(Hans Haacke) 회고전(10/24-1/26, 2020)

*2018 뉴뮤지엄 트리엔날레: 사보타지의 노래들 

*뉴뮤지엄 피필로티 리스트 회고전 '픽셀 숲'  

*마씨밀리아노 지오니 큐레이터, 뉴뮤지엄 미술감독

*2012 뉴뮤지엄 트리엔날레: 누가 그들의 예술혼을 통치하랴 

*우리는 왜 수집하는 것일까? 뉴뮤지엄 특별전 'The K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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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2.02.25 12:32
    링골드의 작품세계를 잘 읽었습니다. 그녀를 왜 강인한 여성 시리즈에 올리었나를 알았습니다. 흑인으로서 흑인과 여성해방 운동가로 치열한 삶을 살았고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면서도 미술을 놓지않고 그리면서 독특한 미술세계를 지녔음을 알았습니다. 그림을 퀼트에 접목해서 새로운 작품, 퀼트미술을 만들어냈습니다. 17권의 동화책을 펴낸것을 보면 그 능력이 초인적입니다. 미술가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인 링골드의 강인함이 엿보였습니다. 성조기는 재스퍼 존스가 그린 성조기가 링골드가 그린 성조기보다 훨씬 성조기 같은 감을 느낍니다. 국기에 사회상을 넣는 것은 동감이 가질 않아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