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노라 에프론 감독
뉴욕의 가을을 사랑했던 뉴요커
노라 에프론 Norah Ephron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유 갓 메일’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등 로맨틱 코미디로 성공한 노라 에프론(Norah Ephron) 감독이 26일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난 에프론은 맨해튼에서 급성골수형 백혈병에 기인한 합병증인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26일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영원한 뉴요커' 노라 에프론은 기자, 수필가, 소설가, 희곡작가에 시나리오작가이자 영화감독이며 블로거로도 활동했다.
에프론은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서 유대인 시나리오작가 부부 헨리 에프론과 피비 울킨드 사이에서 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모는 할리우드 영화 ‘카루셀’ ‘쇼 같은 비즈니스는 없다’ 등으로 알려진 유명 작가다. 에프론이 네살 때 부모는 뉴욕에서 비버리힐스로 이사했다. 비버리힐스고교 졸업 후 웰슬리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교내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1961년 여름 케네디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의 인턴으로 들어갔다. 훗날 에프론은 "나야말로 케네디가 눈독을 들이지 않은 유일한 인턴일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달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다.
에프론이 시나리오를 쓰거나 연출까지 한 할리우드 영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유 갓 메일'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그리고 메릴 스트립 주연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의 전기 영화 '줄리아, 줄리아'.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와 ‘뉴스위크’지의 메일룸에서 일하기 시작, 이후 타블로이드지 ‘뉴욕포스트’의 기자로 일하면서 밥 딜런의 비밀 결혼식을 특종 보도했으며, 비틀즈와 미자연사박물관의 사파이어 '스타 오브 인디아' 강도 사건 등을 취재했다.
에프론이 할리우드에 발을 디딘 것은 1976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한 워싱턴포스트지의 칼 번스틴과 결혼하면서부터. 워터게이트를 폭로한 번스틴과 밥 우드워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영화 ‘모두가 대통령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의 시나리오(작가, 윌리엄 골드만)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이에 에프론이 개작했지만, 거부됐다. 그러나, 이 경력으로 할리우드에서 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메릴 스트립 주연의 '실크우드'. 스트립은 에프론이 시나리오를 쓴 '하트번'과 연출까지 맡은 '줄리아,
줄리아'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에프론과 친했던 스트립은 항상 전화를 걸어 의사에서 음식까지 무엇
이든 물어보면, 긴 이메일로 답장을 해주곤 했다고 회고했다.
1983년 플루토니움 공장의 실화를 다룬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실크우드(Silkwood)’ 시나리오를 썼다. 카렌 실크우드 역은 메릴 스트립이 맡았으며, 셰어와 커트 러셀이 출연했다.
이후 둘째 아들을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 칼 번스틴이 영국의 정치인 마가렛 제이와 바람을 피우자 파경에 이른다. 이후 당시의 상처를 담은 소설 ‘하트번(Heartburn)’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자신의 각색으로 메릴 스트립과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HeartBurn’이 나왔다. 메거폰은 다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잡았다.
에프론의 첫번째 흥행영화는 1989년 멕 라이언과 빌리 크리스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사진)’. 로브 라이너 감독의 영화에서 멕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즘’ 장면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았으며, 에프론은 로맨틱 코미디의 귀재로 떠오른다.
에프론은 1992년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권유로 여성 코미디언의 이야기를 그린 ‘이것이 내 인생(This is My Life)’으로 감독 데뷔했다. 이듬해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 주연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사진)’으로 흥행에 성공을 거둔다.
1998년엔 작가인 동생 델리아 에프론과 함께 쓴 시나리오로 ‘유 갓 메일(You’ve Got Mail/사진)’를 연출했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코너의 숍(The ShopAround the Corner)’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라이언/행크스가 다시 만나 크게 히트했다.
시나리오 작가 부모를 두었던 에프론은 할리우드 게임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 결국 시나리오 작가들은 약자들이었으며, 말년에 부모 모두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웰슬리대 졸업식 축사에서 에프론은 “영화 연출의 가장 좋은 점은 단순히 쓸 때와는 달리,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지 혼동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바로 나다”라고 말했다.”
감독 의자가 편한 노라 에프론. 그는 유머가 항상 넘치는 연출자로 알려졌다.
에프론은 영원한 뉴요커였다.
“뉴욕의 창 밖을 바라보면, 불빛과 스카이라인, 그리고 거리엔 사람들이 무언가 도모할 일, 사랑,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칩 쿠키를 찾아 돌아다니지요. 그러면, 내 마음은 조금씩 춤을 춘답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에프론은 ‘실크우드’’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가 동생 델리아와 함께 쓴 희곡 ‘사랑, 상실, 그리고 내가 입은 옷(Love, Loss, and What I Wore/사진 아래)’은 오프브로드웨이 웨스트사이드시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다섯명의 여자가 실연의 상처와 극복에 관한 이야기를 패션 센스와 함께 모놀로그로 펼친다.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사랑, 상실, 그리고 내가 입은 옷(Love, Loss, and What I Wore)' 중에서.
에프론은 작가 댄 그린버그와 이혼한 후 두번째 남편 칼 번스타인과 이혼했다. 1987년 영화 ‘카지노’의 시나리오 작가 니콜라스 필레기와 결혼했다. 그가 회고하기를 "삶의 비결은 이탈리아인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번스타인과 사이에 난 아들 제이콥은 기자, 맥스는 록뮤지션이다.
“가을의 뉴욕을 사랑하지 않으세요? 뉴욕의 가을은 제게 문구용품을 사고 싶게 만들지요. 제가 당신의 이름과 주소를 안다면, 새로 연필을 깎아 부케로 만들어 당신에게 보내고 싶어요.”
안타깝게도 에프론은 2012년, 뉴욕의 가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