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신동혁씨 다큐 '캠프 14' 인권감시영화제 초대
인간은 어떻게 사육되는가?
‘21세기 아우슈비츠’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유린 폭로
CAMP 14: Total Control Zone
캠프14
2013 인권감시영화제(The
Human Rights Watch Film Festival)에 탈북자 신동혁(Shin
Dong-Huyk)씨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캠프 14: 완전통제구역(Camp 14 – Total Control Zone)'이
초대됐다.
독일 감독 마크 비제(Marc Wiese) 감독은 수용소 안에서
태어나 탈출한 신씨, 전 캠프 14의 보위원 출신 권혁씨와
비밀경찰요원 출신 오양남씨 등 탈북자 2인의 증언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비제 감독은 자유가 통제된 북한에서도 더 비인간적인 공간에서 인권유린의 현장을 그려낸다. 신씨가 회고하는 잔혹한 수용소의 장면은 알리 수잔데(Ali Soozandeh)
무채색 애니메이션으로 병치해 묘사했다. 음악을 전혀 쓰지 않은 것은 참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어머니와 형을 밀고한 후 아버지와 동생이 감방으로 갔다. 그리고 7개월 후 석방되는 날 모자 처형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캠프 14’의 힘은
북한의 통제를 위한 인권탄압 실상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자유와 풍요, 가족애 등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들을 체험하지 못한 신동혁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든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명암이 오버랩된다.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처럼.
또한 세뇌된 사회 속에서 통제에 익숙해 있는 그에게 자유라는 옷이 그다지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탈출기는 인권탄압의 실상을 폭로하는 영웅적인 성공담이기도 하지만, 그 지옥 같은
수용소를 그가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고향은 고향인 것이다.
마크 비제 감독
마크 비제 감독은 신동혁씨의 증언을 롱 테이크로 응시한다. 마치 정신치료사처럼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신씨가 말을 멈추거나, 끝내도
카메라는 그를 응시한다. 북한이 사육한 한 남자가 탈출했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철조망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제 감독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어머니와 형이 공개처형 당하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면서 이후 네 마리의 기러기가 날아가는 이미지를 몽타쥬한다.
회색 모노크롬의 애니메이션과 북한의 황량한 풍경, 복잡한 서울의 겨울, 비에 젖은듯한 시애틀... 어디에도 따스한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신동혁씨가 바라보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거세된 삶에서 그가 볼 수 있는 삶의 색깔이 회색일 뿐이다.
인권감시 영화제 네스토 알멘드로스상 수상작
'캠프 14'은 지난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2013 인권감시영화제는 창립자인 촬영감독(Nestor Almendros, 1930–1992)의 이름을 딴 2013 네스토알멘드로스상 수상작으로 '캠프 14'을 선정됐다.
‘캠프 14’는 6월 20일 오후 9시 30분 IFC센터, 21일 오후 6시 30분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의 엘리노부닌먼로 필름센터에서 상영되며, 마크 비제 감독이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오는 6월 13일부터 23일까지 뉴욕에서 열리는 제 24회 인권감시 영화제는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와 IFC센터에서 열리며, 18편의 다큐멘터리와 2편의 극영화가 상영된다. http://www.ff.hrw.org.
5월 30일 언론 시사회에서 '캠프 14'을 본 후 주목할만한 하이라이트 장면을 골라봤다.
Camp 14-Total Control Zone by Marc Wiese
물고문, 불고문...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 등으로 팔도 다리도 휘어졌다. 고문 이야기는 상처를 도지에 만든다.
# 수용소의 악몽: 영화의
오프닝은 아파트 목욕탕에서 칫솔질 하는 젊은 남자를 보여준다. 그는 눈을 감고 있다.
아직도 수용소(*북한 14호 개천관리소)의 악몽을 종종 꾸게 된다.
# 왜 관리소에? 정치범
수용소에 온 사람들은 이유도 잘 모른다. 김일성, 김정일을
‘동지’라고 붙여 부르지 않아 고발된 이, 노동신문을 말아서 담배를 피운 이도 수용됐다. 수용소 죄수들은 강제
노역을 하다가 45세쯤 사망한다. 기아와 고문 등으로 40여만명이 죽었고, 지금 관리소에는 20여만명이 수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쥐도 먹거리: 수용소
안에서는 옥수수와 배추절임을 먹는다. 잘못이라도 하면, 양은
줄어든다. 가족도 먹거리에서는 경쟁자다. 먹을 게 없어서
쥐를 잡아서 내장을 파낸 후 구워서 바로 먹었다.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이들의 가장 큰 관심은
바깥 세상의 음식이라고 한다.
비밀경찰요원 출신 탈북자 오양남씨. 캠프 14의 보위원이었던 권혁씨. 수용소 비디오도 갖고 나왔다.
# ‘묻지마’ 총살: 수용소의 10대 원칙 중 하나는 남녀가 허락없이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가차
없이 총살한다는 점이다. 수용소 내에서 물고문, 불고문은
고사하고 공개처형(교수형 혹은 총살)에도 이유는 없다. 누구도 ‘왜?’을 묻지
않는다.
# 가족은 없다: 북한 14호 개천관리소(캠프 14)에서
정치범으로 수용된 부모는 모범생활로 표창결혼을 하게 됐고, 형과 신동혁씨를 낳았다. 열 네살이 된 소년 동혁은 시멘트 공장을 뛰쳐나온 어머니와 형의 대화를 엿들은 후 이들의 탈출계획을 밀고한다. 동혁은 자신이 어머니가 먹을 것을 남겼다가 형에게 주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분노(질투)도 있었다고 암시한다.
# 수용소 안 감방: 그
길로 신동혁은 감옥에 들어가 독방에서 고문을 당하고, 후엔 2인용
감옥에 자신을 보살펴주는 한 노인과 지내다가 7개월여만에 석방된다. 나와보니, 아버지도 감옥생활을 했다. 거꾸로 세워놓고, 맞고, 갖은 고문을 당해서 팔과 다리가 휘어졌다. 그래서 여름에 반바지도 입을 수 없다. 고문에 관한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다. 아직도 몸 곳곳에 상처가 남아있고, 이야기를
하면 그 상처가 도지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형을 밀고한 14세의 신동혁. 아버지와 옥살이 후 석방된 날 수용소에선 어머니와 형의 공개처형이 이루어진다.
# 죄책감이 무언가요? 자신의 밀고로 처형된 어머니와 형: 눈 감긴 채 수용소로 돌아간 신동혁 부자는 공개처형 현장으로 간다. 부자가
석방된 날은 어머니와 형, 모자가 처형당하는 날이었다. 눈
앞에서 어머니는 교수형, 형은 총살형에 처해졌다. 소년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수용소에서 태어난 자신에게 가족이나 죄책감은 없었으며, 눈물 흘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동혁은 자신의 밀고로 자신의 눈 앞에서 처형되는 어머니와 형을 보면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 흰 쌀밥 때문에 탈출: 미싱 공장에서 일하게 된 신동혁은 바깥세상에서 살다가 수용소로 잡혀온 40세의 박씨를 만난다. 그 남자는 바깥 세계의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신동혁의 가장
큰 관심은 닭을 통째로 삶아 먹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그는 차차 캠프 14 탈출을 꿈꾸게 된다. 단 하루를 살아도 흰 쌀밥을 원없이 먹고 싶었고, 그 남자가 말한
바깥 세상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 철조망을 넘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고 신동혁과 그 남자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책선을 넘어야 했다. 그 남자가 먼저 철조망을
넘으려다가 감전사 한다. 신동혁은 그의 등을 타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걷고, 걷다가 수용소보다 자유로운 바깥 세계 사람들을 만나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이 ‘함부로(마음대로)’ 옷을 입고, 이야기하고, 걸어
다닌다는 것이 쇼크였다. 빈 집에서 음식과 옷을 훔쳐서 입고 다니다가 마침내 한 겨울 두만강을 ‘수월히’ 넘어 중국으로 탈출한다.
“몸은 남한에, 그러나 마음은 수용소에…”
캠프14
# 자유와 돈의 딜레마: 서울에 정착한 신동혁은 아직도 서울보다는 북한의 바깥세상이 더 충격적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에서는 돈으로 만사를 해결하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가 태어나 살던 수용소에서는
돈이 중요하지도 않았고, 자살하는 사람도 못봤다. 처형당하는
사람들과, 생존의지가 강한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신동혁씨는 지난해 제네바의 인권단체 UN워치에 초대되어 용기상을 받았다.
# 탈북자의 소망: (지난해 12월 CBS-TV ’60 Minutes’에 출연해 사회자 앤더슨 쿠퍼에게 “홀로코스트 비디오를 보면 눈물이 난다. 나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동혁은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곳은 수용소다. 통일이 된다면, 자신이 직접 옥수수와 곡식을 재배해서 자기 손으로
해먹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그런 낙원을 꿈꾸는 신동혁. 그의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아직도 마음은 수용소에 남아있다. 자유가 불편한 탈북자. 정치범 수용소가 사라지면, 수용소로 돌아가 살고 싶다.
▶티켓: $8-$13.50 ▶상영일정: 6월 20일, 오후 9시 30분 IFC센터(323 Sixth Ave.@West 3rd St. 212-924-7771)/ 6월 21일 오후 6시 30분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 엘리노부닌먼로 필름센터(144 West 65th St. bet. Amsterdam & Broadway, 212-875-5600) http://www.ff.hrw.org.
☞신동혁
본명 신인근. 1982녀 11월 19일 개천 소재 정치범수용소 #14에서 태어남. 탈북자 중 유일하게 수용소 태생이다. 2005년 수용소 탈출에 성공, 중국에서 노역을 하다가 한국에 망명 신청했다. 한국에서 회고록을
낸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 북한 해방을 위한 비영리 인권단체 LiNK(Liberty
in North Korea)에서 일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제네바의 인권단체 'UN Watch'로부터 도덕용기상(Moral Courage Award)을 받았다.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 브레인 하덴(Blaine Harden)이 그의 전기 ‘캠프 14으로부터의 탈출(Escape from Camp 14: One Man’s Remarkable Odyssey From North Korea to Freedom in the West)’ 을 출간했으며, 한국어 번역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