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파파야의 향기, 원조 카레와 쌀국수의 맛
영화 '그린 파파야의 향기'
가녀린 젊은 여성 무이가 소나기 내린 후 초록색 파파야를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베트남 영화 ‘그린 파파야의 향기’다.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화면을 마치 CF처럼 찍었는데, 베트남 요리하면 이 영화 속의 푸릇푸릇 순수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뉴욕에 온 후 베트남뿐 아니라 타이, 말레이지아, 인도와 인도네시아 식당에 가보면서 늘 한식보다는 덜 자극적이지만, 짜릿짜릿, 달달한 동남아 요리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습기가 많고, 더운 동남아의 요리는 숙주와 실란트로(코리앤더, 고수)를 쓰는데, 살균과 해독 기능이 있고, 매콤해서 몸에 열이 나면서 땀을 배출해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다. 이열치열의 지혜다.
'그린 파파야의 향기'에서 부자집 하녀로 들어간 소녀 무이가 타이 요리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겐 향이 강한 실란트로 알러지가 있는 친구가 둘이나 된다. 그래서 타이 식당엔 종종 나 홀로 가곤 했다. 꽃가루, 먼지, 고양이털 등 각종 알러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아직 실란트로에는 거부감이 들지 않으니 다행이다.
우리 동네 브루클린 하이츠의 렘센 스트릿엔 사이공 가든(Saigon Garden)이라는 허름한 베트남 식당이 있었다. 여기선 돼지갈비 국수를 즐겨 먹었는데, 2005년 어느 날 셔터가 굳게 내려졌다. 이 거리를 지날 때마다 아쉬웠는데, 아직도 이 식당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다. 렌트를 올린 건물주가 괘씸해진다. 그 베트남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또, 오래 전 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BAM) 근처에 뉴욕 유일한 캄보디아 식당 ‘캄보디안 레스토랑(Cambodian Restaurant)’이 있었다. 허름한 이 식당에서 시큼새콤한 핫앤사워 누들을 먹으면, 위가 시원해지면서 다음 날까지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런데, 이 집도 2005년 문을 닫아버렸다. 오호통재라!
9애브뉴 한 블럭에 하나씩 있을 정도인 타이 식당 중 맛집 1호 퓨어타이쿡하우스.
차이나타운의 골목길 도이예 스트릿 코너 지하엔 궁상맞아 보이는 베트남 식당이 있었다. 15년 전부터 팬이었던 식도락가들의 웹사이트, 그러나 기업에 팔린 후 상업화된 www.Chowhound.com의 추천으로 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식당이다. 여기서 먹은 가느다랗고 푸짐한 파파야 샐러드를 잊을 수 없다. 싱싱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는데, 얼마 후 돌아갔더니 다른 식당이 들어섰다.
왜 좋은 식당들이 문을 닫게 되는지 알 수 없다. 좋아하는 식당이 문을 닫으면,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전학가던 것만큼이나 슬퍼진다.
수많은 식당이 뜨고, 지는 ‘세계 음식의 메카’ 뉴욕에선 사계절 다국적 요리를 즐길 수 있어서 즐겁다.
즐겨 찾는 동남아 레스토랑을 소개한다. 오랫 동안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면서.
타이 식당
▶퓨어 타이 쿡하우스(Pure Thai Cookhouse)
크랩과 타이 차슈, 에그 누들의 맛이 절묘하게 조화된 라차부리 드라이 누들. 국물도 주문할 수 있다.
다민족 식당이 운집되어 있어 ‘음식의 UN’으로 불리우는 9애브뉴에서 가장 좋아하게된 식당으로, 미슐랭 1스타감이다.
자그마한 규모에 촌스럽지 않은 빈티지풍의 포스터와 태국의 옛날 가요가 흘러 이국적이다.
타이의 관광 명소 라차부리(Ratchaburi) 크랩&포크 누들은 가히 천국의 맛이다. 어떤 양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쫄깃한 계란국수에 통통한 게살과 타이식 돼지고기 차슈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dry’는 여름에, 일본 라멘집의 국물 맛보다 담백한 ‘soup’는 겨울에 좋다.
한국식 돼지갈비를 연상시키는 로스티드 베이비 백 립. 밥 한공기를 뚝딱 비울 수 있는 감칠맛이 그만이다.
돼지갈비구이(roasted baby back ribs)는 마치 쌈장을 발라 구운 것처럼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살도 많아서 하나 시켜서 밥과 먹으면, 한끼가 된다.
두부와 시금치 속을 넣어 독특한 맛을 내는 녹색 야채만두(steamed veggie dumpling)는 땅콩 때문에 달달해서 애피타이저보다는 디저트가 맞을 것 같다. 깨송편의 맛이다. 상큼한 파파야 샐러드, 새우볶음국수(shrimp pad thai)도 추천.
오후 6시경에도 기다려야 해서 테이크아웃한 적이 있다. 정오에서 오후 4시까지 저렴하고, 양도 적은 런치 스페셜을 제공한다.
특히 3시경에 가면, 직원들이 빅 테이블에 모여 점심을 먹는다. 그들이 먹는 것은 분명 메뉴에 없는 특식인듯 하다.
66 9th Ave. 212-581-0999, http://www.purethaishophouse.com
▶스리프라파이(SriPraPhai Thai Restaurant)
새우 패드타이
퓨어 타이 쿡하우스를 알기 전까지 가장 좋아했던 퀸즈 우드사이드의 타이 식당. 아직도 뉴욕 미식가들, 특히 옐프(Yelp)에선 뉴욕 넘버 원의 타이 레스토랑으로 꼽힌다.
런치 스페셜의 상큼한 파파야 샐러드와 매콤새콤한 텀염 수프.
파파야 샐러드, 매콤시큼한 수프 톰 얌 슈림프(tom-yum shrimp), 패드 타이(Pad Thai), 소프트셸 크랩(soft shell crab) 등이 두루 맛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가든 테이블을 요청하는 것도 요령.
*수요일엔 쉰다. 199 Grand St.(bet. Mulberry & Mott St) 212-334-3669, http://www.ilovenyonya.com
말레이지아
▶농야(Nyonya)
인도식 난을 튀긴 팬케이크 로티 카나이는 치킨카레 소스에 찍어 먹는 애피타이저.
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태리의 경계선, 그랜드스트릿에 자리한 농야는 오래 전 센터스트릿의 꽃집 동성화원 주인인 중국인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주변 식당이라고 추천해서 처음 갔다. 말레이지아 식당 페낭(Penang)보다 서비스 좋고, 빠르고, 무엇보다 싸며 맛있다.
애피타이저로 치킨카레 소스에 찍어먹는 인도식 튀김 빵 로티 카나이(roti canai)와 말레이지아식 꼬치구이 치킨&비프 사테이(satay)를 즐긴다.
새우탕면
우리의 짬뽕 맛보다 달착지근하고,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새우탐면(prawn mee), 부드럽고 양념이 고루 배인 호남 치킨(Hainanese chicken)도 하이라이트.
하우스 스페셜 크랩(house special crab)은 매콤한 양념이 맛있으나 게껍질이 딱딱해 먹기가 불편했다. 생선찜(steamed fish with ginger and scallion)은 생각보다 생선이 싱싱하지 않았다. 디저트로 말레이지아 빙수가 있지만, 팥은 없다.
199 Grand St.(bet. Mulberry & Mott St) 212-334-3669, http://www.ilovenyonya.com
▶패티 크랩(Fatty Crab)
패티 크랩의 간판 요리는 칠리 크랩(MP 싯가, $54).. 코코넛, 토마토로 조리한 소스가 소울까지 만족시켜준다.
그리니치빌리지의 말레이지아 퓨전 식당 패티 크랩(Fatty Crab)의 칠리 크랩은 지난해 베스트 5 음식에 올렸었다.
*NYCB '2012 음식 톱 5': 칠리 크랩, 펌킨 리조토, 브란지노, 마파두부, 포토푀
어퍼웨스트사이드의 패티 크랩에 처음 가서 시도해보려다
통째 먹을 수 있는 소프트셸 크랩을 먹으면서 후회를 했다. 차이나타운의 뉴욕누들타운에 버금가는 소프트셸 크랩을 먹어보지 못했다. 몇 개월 후 어퍼웨스트사이드
지점은 문을 닫았다.
그리니치빌리지의 본점은 다닥다닥 테이블이 붙어 콩나물 교실같다. 칠리 크랩을 먹을 때는 옆 손님에게 소스가 튀거나 팔을 치게 될까 걱정할 정도.
살이 통통한 크랩~ 그리니치빌리지 패티 크랩에 걸린 그림.
패티크랩의 게는 워싱턴주의 타운 이름을 딴 던저니스 크랩인데, 그야말로 ‘뚱뚱했다’. 코코넛 향미가 나는 스리차이(핫)소스에 토스트 3쪽, 파슬리를 곁들여 함께 나왔는데, 혼자서 밥 두 공기에 토스트 2쪽까지 먹는 ‘위력’이
발휘됐다. 이후에 테이크아웃해서 집에서 먹으니, 남은 소스로 밥에 비벼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643 Hudson St.(Horatio Street) 212-352-3590.. http://www.fattycrab.com
▶라우트(Laut)
차이나타운 밖, 유니온스퀘어 인근이라 인테리어 감각도 젊다. 데이트에 안성맞춤.
지난해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유니온스퀘어 인근의 자그마한 퓨전 말레이지아/싱가포르/타이 레스토랑. 캐주얼한 논야보다는 약간 팬시한 인테리어. 그러나, 음식으로 치면 농야가 단연 앞서며, 미슐랭 1스타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데이트하기엔 라우트가 분위기도 낫다. 지난해 중식당 하카산, 카페 상하이와 라우트 등 아시안 레스토랑이 미슐랭을 받았는데, 평점 매기는 비평가 중에 아시안 요리광이 있었을 것 같다.
라우트는 메인디쉬보다 디저트에 반했다. 뜨거운 찹쌀(떡보다는 밥)이 착착 입에 감겼다.
라우트의 소프트셸 크랩은 냉동 게같았고, 새우면(prawn mee)은 농야의 깊은 맛이 떨어졌다. 싱가포르 호키엔 국수(Singapore hokkien mee)는 새우, 오징어, 어묵과 야채를 에그누들과 가는 면을 섞었는데, 달걀 그레이비 소스가 느끼했다.
하지만, 디저트에 반하고 말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쌀로 만든 red glutinous rice with coconut milk dessert와 따끈한 kaya sweet sticky rice는 메인디쉬에 실망한 혀를 100% 만족시켰다. 15 East 17th St.(Bet. Broadway & Fifth Ave.) 212-206-8989, http://lautnyc.com
인도 요리
이스트빌리지 6스트리스이 '리틀 인디아'
▶타마린드(Tamarind)
www.nycgo.com
뉴욕에서 인도 식당 운집 동네는 이스트빌리지 6스트릿의 ‘리틀 인디아’, 렉싱턴애브뉴 25-30스트릿의 ‘커리 힐(Curry Hill)’, 그리고 퀸즈의 잭슨 하이츠다. 그런데, 시타 연주자들이 아리브 콘서트도 하는 리틀 인디아는 방글라데시 식당들이며 키친이 모두 통해있다는 루머도 있다.
파크애브뉴의 타마린드는 고급 인도 식당이다. 인테리어가 ‘현대식 궁전’처럼 우아하고, 키친은 유리를 통해 볼 수 있게 오픈되어 있다. 단 분위기만큼 조금 비싼 편이다.
타마린드 스페셜 디너의 모듬 요리를 시켜 나누어 먹기에 좋다. 양고기, 닭고기, 새우 구이 탄두리 믹스드 그릴(tandoori mixed grill)과 라지즈 베지테리언 탈리(Raji’s vegetarian thali)로 균형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부이야베즈, 우리의 해물탕 같은 fisher man’s soup도 일품이었다.
런치 스페셜이 레스토랑위크만큼이나 좋은 딜이다. 트라이베카에 2호점도 열었다. 41-43 E 22nd St. 212-674-7400, http://tamarindrestaurantsnyc.com
▶모티 마할 딜럭스(Moti Mahal Delux)
주말 런치 스페셜에서 베지테리언과 난 베지테리언을 시키니 잔치상이 되었다.
1애브뉴 퀸즈브리지 인근의 인도 식당. 겉에서 보기엔 허름해도, 분위기와 서비스, 음식은 준수하다.
뉴욕타임스가 2스타를 준 모티 마할 딜럭스는 무갈 요리 전문 식당이다. 양고기와 렌탈 요리는 뉴욕에서 제일 맛있었다. 특히 런치 스페셜(월-금 $11.95, 토-일 $14.95)을 추천하고 싶다.
모티 마할 딜럭스의 탄두리 치킨과 버터 치킨. 부드럽고, 촉촉하고, 양념도 맛있다.
런치 스페셜은 뷔페식으로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데, 셀프 서비스가 아니라 웨이터가 갖다 준다. 부드러운 버터 치킨, 탄두리 치킨과 렌틸(잠두)도 일품이었다. 1149 1st Ave. 212-371-3535, http://www.motimahaldelux.us
▶촐라(Chola Eclectic Indian Cuisine)
www.seamless.com
이스트 58스트릿의 인도 식당. 런치 뷔페(월-금 $13.95, 토-일 $14.95)만 여러 차례 가보았다. 도시락에 골고루 담아 점심 테이크아웃도 할 수 있다. 인도 요리 초보자들에게 무난한 식당.
흰 테이블보가 깔린 그래도 우아한 편의 인테리어다. 먼저 웨이터가 탄두리 치킨과 난(인도식 빵), 프리터를 가져다 준다. 입구에 샐러드부터, 치킨 티카 마살라, 시금치 양고기 램 사그(lam saag), 비리아니 등 매일 요리가 조금씩 바뀐다.
232 East 58th St. 212-688-4619, http://cholany.com
▶브릭 레인 커리하우스(Brick Lane Curry House)
왼쪽부터 비리아니(밥), 치킨 티카 커리, 그리고 다 먹으면 맥주가 선물로 나오는 팔 커리.
이스트빌리지의 ‘리틀 인디아’에서 가장 분위기가 고급스럽고, 인기있는 레스토랑. 1애브뉴 코너의 반자라(Banjara)는 BYOB가 가능해서 사실 와인이 비싼 브릭 레인 커리하우스보다 더 자주 가게 된다. 하지만, 브릭 레인이 조명도 환하고 분위기가 더 좋다.
이름대로 ‘인도 카레’ 전문으로, 제일 매운 커리 요리 ‘팔 커리(phall curry)를 다 먹으면, 맥주를 상품으로 준다. 한국인이 매운 걸 무서워하랴? 두 번 시도해봤는데, 귀가 짜릿해지면서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워 공짜 맥주를 받지 못했다.
지글지글 탄두리 미트 씨즐러
커리 요리로 코코넛 향미의 고안(Goan), 감자 양념의 빈달루(vindaloo), 탄두리 시즐러(tandoori sizzler)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저녁 때만 가보았는데, 런치 뷔페 스페셜이 $10라고. 어퍼 이스트 사이드와 미드타운 이스트, 뉴저지에도 몽클레어와 리지우드에 지점이 생겼다. 306-308 East 6th St, 212-979-2900, http://www.bricklanecurryhouse.com/downtown
베트남
차이나타운에 월남국수(pho)를 먹을 수 있는 식당들과 바게트 샌드위치 반미(bahn mi) 전문점이 꽤 생겼지만, 뉴욕에서 진짜 잘하는 베트남 레스토랑을 찾기는 힘들다.
1993년경 홍콩국제영화제에 갔다가 한밤중에 왕가위 영화 ‘열혈남아(원제 몽콕하문)’의 촬영지 몽콕을 찾으며 돌아다니다가 조그만 식당에서 베트남식 볶음밥을 시켰더니, 파인애플 안에 담겨져 나왔는데, 그 상큼한 맛이 지금도 기억에 선선하다.
아주 오래 전 하와이 여행 가서 마우이섬의 사이공 카페(Saigon Café)에서 최고의 베트남 요리를 맛보았다. 뉴저지 저지시티에 사이공 카페라는 베트남 퓨전 식당이 있어 찾아봤더니, 같은 집이 아니라 실망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뉴욕에선 그만한 맛 집을 찾기 힘들다. 베트남 이민자가 많다는 뉴올리언스에나 가면 모를까.
그나마 한인들에게 인기 있었던 어퍼웨스트사이드 암스테르담애브뉴의 대형 식당 ‘사이공 그릴(Saigon Grill)’은 지난 3월 임금체불로 종업원들이 고소하면서 문을 닫았고 말았다.
▶나 트랑(Nha Trang)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지머리 월남국수(포닥 비엣), 소프트셸 크랩(구아 롯 랑 무이), 새우&파파야 샐러드(톰 고이).
차이나타운의 박스터 스트릿(Baxter St.)엔 베트남 식당들이 나란히 자리해 있는 베트남 식당가다. 포 파스투어(Pho Pasteur), 타이손(태산, Thai Son), 그리고 나 트랑(Nha Trang) 중 가장 즐겨 찾는 식당이 나 트랑이다. 심플하게 싸고, 빠르고, 맛있다.
새우가 씨스루로 보이는 쫄깃한 섬머롤, 얇은 양지머리 고기가 국물에서 익는 월남국수 포 닥 비(Pho dac biet), 그리고, 바삭한
소프트셸 크랩을 즐긴다. 차이나타운 센터스트릿에 2호점이 있다. 87 Baxter St. 212-233-5948, http://nhatrango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