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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김원숙: 눈물의 통역사
이야기하는 붓 (4)
눈물의 통역사
뉴욕은 큰 꿈을 품고 설레임과 비장한 각오로 무장한 사람들이 미국 전역, 아니 온 세계에서 모여드는 섬이다. 택시 운전수, 레스토랑 직원, 호텔 종업원, 청소부 등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며 예술가의 길을 시작하는 프로 지망생들의 경쟁터. 나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 도전의 길에 뛰어들었다. 무엇도 두렵지 않고 피곤을 모르던 스물셋의 나이였다.
Wonsook Kim, “Conversation” ink and charcoal on paper 28x36 inches 1979
친구의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거처는 뉴욕 시청 옆에 있다고 해서 번화가일거라고 안심하고 도착한 곳이 트라이베카. 지금은 멋진 동네가 되어있지만, 그 때는 낮에 분주한 거리가 밤이 되면 사무실들만 있는 곳이라서 조용 캄캄하고 무서운 동네로 변하는 이상한 곳이었다. 더우기 일리노이의 널널한 옥수수밭 동네에서 온 한국 처녀에겐 정신이 바짝 드는 곳이었다.
일자리를 찾느라 이웃 사무실들을 돌아다니다가 우리 집 근처가 뉴욕 법정이란 걸 알았고, 들어가서 게시판에 한국어 하는 통역관을 구한다는 광고지를 보았다. 가출형 유학을 가려고 홍대 1학년을 죽어라고 영어 공부만 한 덕분에 토플 시험부터 영어로 하는 것들엔 자신이 있었다. 당장 가서 신청서를 내고 인터뷰 날짜 잡고 드디어 통과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시간당 보수도 나에겐 상당한 금액이어서, 한 건만 하면 며칠 동안 그림만 그려도 되니 큰 횡재라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교육 세미나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케이스가 생겨서 법정에 나갔다. 곧 후줄그레한 한국인 할아버지가 (아마 그는 중년이었겠지만, 젊기만한 나는 50 지난 사람들이 늙은이들로 보이던 떄)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변호사와 함께 들어왔다. 사방을 두리번거리시다가 나를 보구는 안도 내지는 도와달라는 눈길을 보내왔다.
검사가 이분의 체포과정을 판사에게 말하고 곧 심문이 시작되었다. 퀸즈 지역에 비디오 게임방을 지키는 일을 하던 중 남자 아이들을 성추행했고, 여러 부모들이 동시에 증거를 대고 고소했다는 것.
검사가 묻고 내가 통역을 할 차례.
“당신은 남자 아이들을 좋아하십니까?”
“네에, 그럼요, 아이구, 그 꼬마들 이쁘지요, 자주 오는데요…”
“그 아이들을 만졌읍니까?”
“네, 내가 안어주구 과자도 주구 그랬지요, 공짜로 게임도 시켜주구유, 그런대 내가 무신 잘못을 했길래 잡어옵니까?”
“묻는 말에만 대답하시요, 그 아이들의 성기를 만졌읍니까?”
“사내 아그들, 얼마나 큰지 보자구 했지요,”
나는 곧 당황하기 시작했고, 이 노인이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얼마나 큰 사건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너무 기가 막혀 말을 막 더듬었다. 그분을 변호해야할 멍청한 국선 변호사는 이 분이 나이가 많다는 둥, 영어도 못하고 가족도 하나 없이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이고 성교 행위는 없었다는등의 정상 참작 설명뿐, 정작 제일 중요한 관건인 문화적 배경에 대한 변호를 하지 않았다.
“몇 명을 만졌습니까?”
“아이구, 아그들 학교 마치고 와르르 들어오는데, .. .세어보진 않어서..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나는 정확한 통역만 할 것이며 의견을 말하거나 편견성 통역을 하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지만, 계속해서 중형을 만들고 있는 이 상황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다른 변호사를 요구하셔야 합니다”하면서 소리쳤고, 판사를 향해 이건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큰 비극이 생긴다, 한국에 노인들이 사내 아이들을 대하는 정다운 정상태도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 체 그를 변태 범법자로 모는 것은 당신이 저지를 수 없는 큰 과실이다, 미국 문명이 오히려 문제이다… 눈물을 막 흘리면서 호소했다.
나는 곧 저지당했고 한번 더 이런 실수는 면허 정지로 이어진다는 경고를 받았다. 재판은 미뤄졌다. 복도에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으시고, 그럴 수가…만 반복하는 불쌍한 아저씨와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니네 나라는 아직 그러냐’는 식으로 빈정대며 귀찮아하는 변호사 사이에서 앞이 캄캄해졌다.
그 뒤 우여곡절 감옥살이 하게된 분을 면회가고 기구한 이야기 눈물 흘리며 듣는 일이 계속 되었다.
그 다음, 그 다음 케이스들도 다 너무 기구한 이민자들의 억울한 경위들. 나는 계속 개인적으로 그분들의 운명에 휘말리게 되고, 몇 달 후엔 내가 너무 지쳐서 통역을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몇 푼 벌은 돈도 그들 뒷치닥거리로 오히려 내가 큰 빚을 안은 지경이 되었다.
거의 40년전의 교포 사회가 이만큼 힘이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너무 모든 것에 초보였는지 모르나 지금은 이해가 안되는 그때의 눈물겨운 시대 상황이었다.
그 후 얻은 일자리는 큰 잡지사 사무실의 말단 심부름꾼. 처음엔 가서 커피나 점심 사오라고 던져주는 잔돈을 쥐고 거리에 나오면 눈물이 핑 돌았었다. 어떻게 공부해서 대학원 학위까지 받은건데… 그래도 이건 잠시 후 웃어 넘길 수 있는 다른 종류의 눈물이었다.
김원숙/화가
부산에서 태어나 홍익대 재학 중이던 1972년 도미해 일리노이주립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여인과 자연을 모티프로 여성으로서의 삶과 그리움, 신화적인 세계를 담아 세계에서 전시회를 열어온 인기 화가. 뉴욕과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을 오가며 살고 있으며, 2011년 '그림 선물-화가 김원숙의 이야기하는 붓'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