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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영주: 카트만두의 점쟁이
뉴욕 촌뜨기의 일기 (4)
카트만두의 점쟁이
내게 다시 희망을 일깨워준 작은 흰꽃. Photo: Young-Joo Rhee
언젠가 카투만두에 여행한 일이 있습니다. 하루는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길에 점을 치는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길 한쪽 코너에서 코가 발개지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뭔가 열심히 길 위의 점쟁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젊은 여인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팔에는 이제 갓 백일이 지났음직한 아주 쬐그만 아기가 안겨 있어서 더욱 그 젊은 여인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저렇게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상관 않고 울면서 상담을 하고 있을까. 빨개진 그녀의 코 끝이 더 할 수 없이 애처로웠습니다.
힌두교에는 3억 3천 명의 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네팔에는 인구보다 더 많은 신이 있고, 집보다 더 많은 사원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말은 여행 가이드가 웃기느라고 한 말이지만 네팔의 종교들은 그처럼 많은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미약한 존재이며, 자신을 신에게 의지해서라도 복락을 빌고 싶어 하는 비독립적인 존재입니다.
사실 저도 신년이면 인터넷에 들어가 신년 토정비결을 공짜로 훔쳐보곤 합니다. 그것을 믿어서가 아니라 괜히 슬쩍 그렇게 자신의 운세를 알고 싶은 호기심 때문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것처럼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그런 점치는 일에 많이 흥분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제 어머니께서는 “우리 엄마가 나 어릴 때 깊은 산 속에 들어가 40일 동안 매일 폭포에서 목욕재계하고 기도하고 돌아오신 적이 있다. 그때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이제부턴 너희들 미신을 믿지 않아도 된다. 내가 기도로 다 해결하고 왔다.', 하셨어. 그래서 난 미신을 절대 믿지 않고 살았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제 의식에 각인되어 있어서인지,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할 때 진학을 앞두고 급우들이 점집을 찾아다니며 소동을 피워도 별로 마음이 동한 적이 없습니다. 딱 세 번, 미국에 오기 전에 점집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그 점치는 사람들은 제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사주가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신이 있으니 그 신에게 열심히 기도하면서 노력하면 자신의 사주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신에게 열심히 기도해라.”는 말로 매듭을 지어주곤 했습니다
운명이라는 게 있지만, 신에게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그 정해진 운명도 바뀌어진다는 점쟁이들의 말은 그러나 제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습니다.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다. 얼마나 멋진 처방입니까? 아마도 그때부터 저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늘 더 잘하려고, 모든 시련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왔던 것 같습니다.
신(神)과 테레사 수녀를 비판해서 서구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는 종교를 부정하고 혐오합니다. 종교가 '의심하지 말라', '질문은 불경스럽다', '한낱 인간이 신의 섭리를 어찌 알랴', 하는 식으로 인간이 지식을 쌓는 것을 가로 막으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추켜세우는 까닭이랍니다. 종교가 없어도 사랑, 섹스, 음악, 철학 등, 위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의 말에 모두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종교와 정치는 철저하게 분리되고, 속세는 철저하게 세속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고 이해합니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라는 개인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환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종교라는 대목도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팔에 신들이 많은 까닭은 그만큼 그곳에 사는 인간들의 사연이 많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이 사람들의 종교 세계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가난하고 힘든 지경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와 관련된 운명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본능이라는 사실입니다.
젊은 아기엄마를 보면서 저는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이렇게 절망적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물음 앞에 보다 정직해져서, 신앙의 답이 그런 희망과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솟구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마땅한 답이 없다 해도 이런 절박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진솔하고, 진지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은 있지 않겠습니까. 카트만두의 점쟁이들이 혹시 사실은 우리보다 더 이들의 삶의 슬픔, 갈망, 아픔에 진지하게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카트만두를 떠나는 저의 마음은 많이 착잡했더랬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저를 한동안 무기력 속으로 침몰시켰습니다. 카트만두의 점쟁이들을 떠올린 건 점쟁이를 찾는 이들의 절박함만큼 제게도 슬픔과 분노와 고통이 절절했기 때문입니다. 밑에서부터 위까지 총체적으로 기본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 아마도 "하필이면 왜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라는 자괴감에 가슴을 갈갈이 찢긴 사람은 비단 희생자의 가족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태어나기 전에 점이라도 쳐서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 나라에 태어날 순 없을까, 하는 엉뚱한 망상도 생겼습니다.
산책길에 이름 모를 하얀 꽃이 땅바닥에서 나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어줍니다. 왈칵 그 이름 모르는 난쟁이 하얀 꽃이 제게 희망을 속삭여주는 것 같아 한참을 서서 내려다 보았습니다. 때로는 이처럼 작은 생명이 우리에게 꿈과 용기를 줍니다. 비로소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과 우리 서로에게 이 작은 꽃송이를 통해 위로와 사랑을 함께 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