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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영주: 하와이 촌뜨기 ‘조비와 카푸아’
뉴욕 촌뜨기의 일기 (5)
하와이 촌뜨기 ‘조비와 카푸아’
마리아, 루시아, 안젤라 안트리오와 가족이 배 타고 나가 잡은 고기들!
조비와 카푸아는 하와이 카일루아(Kaiula, Hawaii)에 사는 막내네 친구입니다. 17년 전, 막내 사위가 하와이서 있을 때 카푸아가 그 부하 직원이었는데, 친해져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족처럼 지내는 막역한 친구입니다. 그들 부부는 막내네 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 누구든 하와이에 가면 저녁초대를 하고, 배를 태워주고,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다 해줍니다. 오래 전, 제가 갔을 때 랍스터 요리를 해줘서 배를 두드리며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난 5월 18일,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서 제 딸들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와이에 들러 작은 연주도 하고, 방송 인터뷰도 하고, 휴가도 가졌습니다. 막내 사위 뺀 모든 식구가 처음으로 함께 하는 여행이어서 카일루아 비치에 있는 집을 빌렸습니다. 뉴욕서 떠나기 전날까지 호텔이든 집이든 구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굴렀는데, 조비 어머니 조지아가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줄게.”, 하더니 카일루아 비치 앞의 집을 쉽게 구해 주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카일루아 비치는 미국에서 언제나 첫 번째로 꼽히는 아름다운 비치입니다. 요즘은 오바마 대통령의 별장이 있다고 해서 훈장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먹었다는 빙수집 ‘아이스랜드 스노우’가 우리 집에서 2분만 걸어가면 있어서 사먹었더니 과일맛 나는 물감만 뿌려주는 것이 영 맛이 아니어서 입맛만 버렸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빙수는 얼마나 맛있나요? 단팥이 잔뜩 올라앉은 밑으로 찹쌀떡이며 온갖 과일로 색깔까지 화려하고, 콩가루까지 뿌려주면 그야말로 입 안에서 녹지 않습니까? 저는 한국 촌뜨기라서 그런지 한국식 빙수가 훨씬 더 좋습니다.
저희가 도착한 첫날부터 자기 집에서 딴 파파야와 바나나 등, 과일을 잔뜩 가져다준 카푸아는 저녁엔 우리 식구가 손자 블루 때문에 식당 가기 어렵다고 수퍼 사이즈 피자를 3개나 가져와서 함께 먹으며 맥주도 마셨습니다.
카일루아 카푸아의 집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만두를 빚었다.
조비네 저녁 초대는 절정입니다. 조비와 장인인 갸비는 배를 가지고 바다로 나가서 스킨 스쿠버 다이빙이 일상사인 물의 달인들입니다. 그들이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를 우리에게 요리해주는 것입니다. 그날 잡았다며 아이스 박스에서 갸비가 물고기를 보여주는데, 얼마나 큰지 어떤 놈은 1미터도 넘었습니다.
조비네 집 설명을 잊었습니다. 조비네 집은 열대 식물로 둘러쌓인 전원주택입니다. 뒷마당에 파파야 나무, 바나나 나무들이 여럿 있고, 넓은 정원의 빽빽한 나무 사이로는 밭을 일궈 여러가지 야채를 재배합니다. 조비네 침실은 집 뒤 끝에 있는데, 유리로 만든 방 벽 너머로 열대림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작은 여울이 돌돌 흐릅니다. 부부가 한 잔 나눌 수 있게 덴도 한 쪽에 만들어서 그 방에 가 있으면 “여기가 내 궁전이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 방에 재운 손자 블루 핑계 대고 블루 옆에 한참을 누워 있었습니다, 하하.
저녁은 생선회와 중국식 생선요리 2개, 생선만두, 돼지고기찜, 샐러드, 그리고 포케(poke)였습니다. 포케는 참치의 한 종류인 아히(Ahi)를 깍둑썰기로 썰어서 양파나 해초류, 혹은 다른 풀들을 함께 넣고 무친 일종의 '회무침'인데, 생선이 싱싱하니까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만두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막 빚기 시작해서 저랑 막내도 팔 걷어붙이고 거들었습니다. 오늘 잡았다는 생선을 깍뚝 썰기로 썰고 두부도 같은 크기로 썰어서 시금치 종류라는 파란 채소도 넣어서 참기름과 소금에 양념했는데, 그 만두 속을 그냥 먹는 게 더 맛있었습니다. 카푸아는 그 만두를 대나무 찜기에 쪄서 프라이팬에 구워 진짜 군만두를 만들었습니다.
엄청 큰 생선을 (이름을 잊었습니다) 중국식으로 찜한 것도 좋았지만, 저는 원래 생선회 귀신입니다. 갸비가 썰었다는 생선회는 양배추 채 썬 것과 함께 네모난 은박지에 담아 있어서 보기엔 그저 그래 보였지만, 와사비 간장에 찍어 입에 넣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폭풍 흡입으로 회 접시를 순식간에 접수했지만, 어찌나 많은지 먹어도 먹어도 바닥이 안보였습니다. 갸비가 회 좋아하는 저를 배려해서 충분히 준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음식들 먹기 전에 그렇게 회를 폭식하는 바람에 진짜 맛있는 생선찜을 마음껏 즐기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그래도 갸비가 다음에 오면 문어 요리도 해주고, 매일매일 생선 먹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서 안심입니다.
손자 블루도 생선회와 포케 팬.
다음 날은 조비가 딸들과 사위, 손자를 자기 배에 태우고 놀러 나갔습니다. 섬에 가서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낚시도 하고, 바다를 통째로 들이마시듯 즐기게 해주었습니다. 큰딸이 자기가 제일 먼저 한 마리 낚았다며 자랑하니까 큰 사위가 “그 담엔 내가 2마리 잡았어.”, 하며 낚시 성공담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저는 원래 배멀미를 해서 못 갔는데, 둘째 사위도 겁이 많아 저와 둘이서 집에서 뒹굴며 비치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하루 해를 보냈습니다. 저녁에 카푸아는 바다에 못간 저를 위해서 새로 잡은 생선회와 포케를 잔뜩 보내왔습니다. 저와 손자 블루가 다음 날까지 포식했습니다.
갸비와 카푸아는 젊은 부부지만 하와이의 지위 높은 공직자들입니다. 하와이 인텔리 중의 인텔리들인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하와이 자연 속에서 자연이 주는 열매를 따 먹고,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먹고, 농사를 지어 유기농 채소들을 먹으면서 자녀들도 그렇게 키웁니다. 바다는 그들의 놀이터입니다. 제 큰 사위가 수영광이라 뉴욕에서도 매일 2시간씩 빼놓지 않고 수영을 합니다. 웬만한 수영선수 실력이지요. 그런데 와이키키 해변의 수영팀과 같이 수영하고 와서는 “그들은 너무 빨라요.”해서 웃었는데, 아무렴 그곳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과 수영 실력이 어떻게 같겠습니까.
카일루아 비치에서 놀란 건 아름다운 경치며 밀가루같이 고운 모래도 모래려니와 채 일년도 안된 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들이 많았던 일입니다. 거기서 자라는 애들은 걸음마 뗄 때쯤이면 바닷가에서 파도를 타면서 놉니다. 제 손자 블루는 그 아기들보다 한참 큰 데도 파도가 치니까 발등에 쓸려오는 물에 겁을 내었습니다. 나중엔 익숙해져서 조심스레 들어갔지만 언제나 제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카일루아 비치의 특징은 동네 사람들이 마음대로 올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랄 수 잇는 그곳 어린이들은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비와 카푸아 부부는 제가 찾아낸 하와이 촌뜨기들입니다. 너무 귀하고 아름다워서 오래오래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멋진 촌뜨기 친구들입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