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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한혜진: 미셸 위의 눈물과 웃음
에피소드 & 오브제(6) 미셸 위의 눈물과 웃음
프로는 아름답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AFP
스타란 반짝이는 사람들이다. 마치 하늘의 별처럼 우리의 눈을 잡아 끌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중은 귀를 쫑긋거리게 된다. 연예계나 스포츠계 그리고, 정치계에서까지도 스타는 배출되고 있다. 그들은 대중에게 어필하는 미모나, 재주, 순발력 그리고 스캔들까지 가지고 있다. 그리고보면, 스타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인 지도 모른다. 대중의 호기심과 대리만족에 가장 적합한 요소를 갖춘 대상으로서 말이다.
올해 US 여자오픈 골프대회가 끝나고, 다음날 일제히 신문엔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미쉘 위의 사진이 실렸다. 난 비로소 그녀의 큰 웃음을 보았다. 큰 웃음이라 애기하고 싶은 것은 수 년 전 그녀가 프로로 데뷔하자마자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골프계의 천재소녀 미셸 위는 일찌감치 그 스타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어린 나이, 남자들에게도 뒤지지않는 체격조건, 깜찍한 외모, PGA 투어에서 남자들과 겨룰 수 있는 장타력. 이 모든 조건은 스타가 되기에 너무나 충분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미셸 위의 프로 전향설은 오래 전부터 솔솔 피어나고 있었다. 그 해 9월 유명한 토크쇼인 '레터맨 쇼'에 초대되었을 때부터 구체적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골프장이 아닌 스튜디오에 나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운동복이 아닌 숙녀복 차림의 모습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깔끔한 자세와 화사한 미소는 골프를 잘 모르는 방청객이나, 시청자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는, 10월 8일 그녀의 16번째 생일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미셸 위는 프로로의 전향을 선언해 버렸다.
스포츠계의 큰 뉴스거리였다. 프로 전향과 함께 소니사와 나이키사의 스폰서 계약도 동시에 이루어져 각 언론 매체는 ‘천만 달러 소녀’의 탄생을 알렸다. 골프만 잘쳐도 저렇게 될 수가 있구나 라는 대박심리를 꿈틀거리게 했으며, 미셸 위로 시작되는 승승장구의 연상작용을 만들어내는 것을 볼 때, 그 상품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렸던 미셸 위에게 프로가 되어서 달라진 점을 묻자, 후원사에서 보내준 여러가지 선물상품에 즐거워하는 기분을 말했으며, 경기에서 입상하면 상금이 주어지는 것이 달라진 것이라고 아직은 틴에이저다운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대중이 프로가 된 스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미셸 위의 프로 전향설이 나돌 무렵, 타이거우즈와 소렌스탐이 그에 대해서 한마디한 것을 기억해 보고 싶다. 타이거 우즈는 "미셸 위가 너무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되는 것보다는 대학진학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소렌스탐은 "미셀 위는 충분히 실력으로는 프로가 될 자격이 있다. 그러나,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짊어져야 할 또다른 짐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라는 투의 코멘트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로 미루어볼 때, 프로의 세계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험난한 과정의 연속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발을 헛디디기만 하면 떨어져 버리기 쉬운 낙하가 심한 산등성이를 등정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그런데, 미셸 위는 프로 데뷔를 하자마자 단 2주만에 천국과 지옥을 맛보는 별난 프로 기행문을 쓰게 되었다.
AP
'스위트 식스틴'이라는 달콤한 나이를 프로세계에 바치고자 결심했을 때 느껴지던 고공행진은 막바로 연결된 삼성월드 챔피언쉽에서도 어렵지 않게 절묘히 맞아 떨어지는 듯 했다. 당당히 세계의 스타들과 겨루어서 4위를 하다니, 박수를 쳐 주고도 남고, 어깨춤이라도 같이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판정번복을 당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실격처리, 이는 친근한 SI기자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고, 어쩌면 너무나 감정적인 처사라고 항의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프로세계에서는 ‘사소한, 너무 사소한’ 행위조차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한 사건인 셈이다. 특히, 골프 경기는 ‘신사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골프에서는 '심판이 곧 플레이어 자신'이라는 얘기가 있는데,이는 골프가 곧 ’인품경기’라는 말일 것이다.
미셸 위의 드롭볼의 위치가 문제가 되었던 모양인데, 신문기사는 ‘미셸 위의 욕심’이라고 전하고 있지만 이는 더 나아가 골퍼로서의 매너가 무엇인가를 상기시키며, 프로로서의 자격론까지 거론하려는 우회적인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프로의 세계는 이처럼 냉정하게 미쉘 위를 가르쳤던 것이다.
프로가 된 이상 “잘 몰랐어요.”라든가, “잘 부탁해요.”등의 애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프로로서의 첫 대회인 삼성워드챔피온쉽에 임하여, “누구나 처음엔 못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던 미쉘 위가 슬럼프를 극복하고 드디어는 첫 메이저 대회의 우승을 알렸다. 한 경제연구소가 미셀 위에게 ‘창조적인 파괴자’라는 호칭을 선사했던 기억이 난다. 프로 데뷔 당시 여제라 불리는 소렌스탐보다도 많은 갤러리를 몰고 다니는 미셸 위는 나이의 영역파괴, 성별이라는 영역을 파괴한 앞선주자라는 논리에 부합했던 모양이다.
이런 창조적인 파괴자에게 웃음보다 눈물이 먼저 주어진 게 약이 되었던 게 아닐까? 진정한 프로란 잘 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좌절과 성공을 통해 자신의 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프로는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대중은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지만, 진정한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그가 기울인 각고의 노력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미쉘 위의 시작은 진정 이제부터인 것 같다. 미셸 위의 화이팅과 성숙을 지켜보는 것, 우리에겐 즐거운 일이다.
골프장에서
한혜진
파란 하늘엔 구름 한점 박혀 있지 않지만,
공으로 꽉 찬 나의 머리속
하얀 공들이 으그럭거린다.
뚫어져라 쳐다보며
내리치면은
“거 봐라” 하면서 똑 떨어지고
이번에는 잘 되겠지
휘둘러보면
곡괭이 내리치듯 땅만 파인다.
내가 풀리면 너도 자유로와질거다.
마음을 비우고, 몸을 돌리면
흰 공은 어느 새, 하늘을 달린다.
머리 속에 가둔 공은 날지 못하지만
가슴으로 미는 공은 창공을 가른다.
마침내 깃발이 펄럭이는 고지에
하얀 새가 되어 사뿐히 내려 앉은 공.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몸 속으로 열려있는 구멍이 크게 보인다.
내 숨과 함께 천천히 빨려 들어가는 공.
“또그르르”
내 심장을 건드린 하얀 공은
백혈구가 되어 다시 혈관을 타고 흐른다.
한혜진/수필집 '길을 묻지 않는 낙타' 저자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결혼, 1985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한양마트 이사로 일하면서 김정기 시인의 권유로 글쓰기와 연애를 시작, 이민 생활의 균형을 잡기위해 시와 수필을 써왔다. 2011년 뉴저지 리지필드 한양마트에 갤러리1&9을 오픈, 한인 작가들을 소개했으며, 롱아일랜드 집 안에 마련한 공방에서 쥬얼리 디자인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