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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수임: 미국 사는 맛
창가의 선인장 (1)
건강하고 짧은 두 다리로 맨해튼 기웃거리기
Soo Im Lee, Fire Island, 2012, gouache on panel, 12 x 12 inches
맨해튼으로 이사 온 후, 두 다리에 모터가 달린 듯 수시로 집 밖을 들락거린다.
한발은 엑셀, 다른 한발은 브레이크를 밟도록 서울에서 잘못 배운 운전 탓에 미국에서 첫 시험은 바퀴도 굴려보지 못하고 떨어졌다. 학원에 다니며 한발로 연습하고 시험장에 갔지만, 운전교사가 실수로 차에 키를 놓고 문을 잠그는 바람에 두 번째도 헛공사.
남편에게 운전 배우다 이혼한다는 소리를 듣고 감히 가르쳐달란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남편은 학원 선생보다 편하게 가르쳐줬다. 산달이 거의 임박해 남산만 한 배를 안고 시험장에 갔다. ‘이번에 운전면허를 받지 못하면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힘들 것 같다.’는 하소연 덕이었는지 합격했다.
운전도 내력인지 친정 식구 모두가 소질이 없다. 이 생각 저 생각하다 스탑 사인에 그냥 지나가고, 내가 찾던 곳을 보고 신이 나서 갑자기 멈추고, 뒷 좌석에서 난리 치는 아이들을 뒤돌아보고 혼내다가 사고를 여러 번 냈다. 연락을 받고 사색이 되어 달려와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는, 내가 차를 몰고 나가면 불안해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을 생각하니 운전대를 더는 잡을 수 없었다.
시집 식구들은 모두 다 운전을 잘한다. 차를 달고 사는 LA이기는 하지만, 소질도 있고 즐기기까지 한다.
신기한 것이 짜증 많은 남편이 운전대만 잡으면 마치 고용된 운전사처럼 친절하다. 아침에는 클래식을 오후에는 록 음악을 들려주며 아이 둘 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왔다. 사춘기 때 탈선할 틈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의 과외 활동도 운전해 줬다. 한 마디로 빠져나갈 틈을 아예 틀어 막아버린 것이다. 내가 외출 시에도 재즈를 들려주며 드라이브해 줬으니 아마 남편은 전생에 우리 친정집 운전사였나 보다.
허구한 날 드라이브해준 아빠에게 고맙고 미안했는지 아니면 부담스러운지 아이들은 차에 대한 미련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나 또한 더 이상은 미안해서 남편에게 묻고 허락받지 않아도 내 건강하고 짧은 두 다리로 가고싶은 곳을 갈 수 있으니 다리에 날개를 단듯 자유롭다.
선글라스를 끼고 긴 머리 휘날리며 오디오 볼륨을 한껏 올린 채 운전대를 잡고 달릴 때 미국 사는 맛을 느낀다는 한 지인이 운전대를 전혀 잡지 않는 나에게 ‘무슨 맛으로 사냐?’고 의아해했다.
나는야, 두 다리로 활기차게 맨해튼을 누비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맛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