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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雪國)을 떠난 목마(木馬)

'남동생의 파수꾼'이 나오기까지


19년 전 뉴욕 브루클린 뒷길에 버려진 작은 목마를 주웠다. 
그 목마는 오랜동안 내 맨하탄 작업실 창고 깊숙이 놓여 있었다. 
목마가 브루클린으로 다시 돌아간 때는 그로부터 꼭 10년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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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k Jin Jo, Horse in the Snow



2005년 11월, 동생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우리는 자랄 때  참으로 오붓한 사이였다. 커가면서 각자 삶에 바쁘다보니... 공유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점차 거리감도 생겼다. 갑작스럽게 동생이 떠나니, 왜 좀더 동생을 알려하고 시간보내지 못했는지 후회가 밀려와 안타까왔다. 


나는 당시 열흘 뒤 오픈할 개인전 설치 때문에  동생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동생을 위한 작품을 구상하던 중 불현듯 창고 속  목마가 생각났다. 마치 떠난 남동생의 상징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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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k Jin Jo, My Brother's Keeper, 40' x 30', Wood, Metal, site- specific installation, Black and White Gallery, New York



'남동생의 파수꾼'은 동생을 기리는 작품이다.

동생을 생각하며, 꿈같이 아련한 어린시절의 풍경을 만들어 갔다. 목마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거닐며 그 시절을 상기하도록 숲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도 구석에 놓고, 녹슨 스케이트 바퀴도 비밀스럽게 깊숙이 숨겨 놓았다. 바람이 불면 종소리도 들리게 했다. 고독한 나무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뻗게했다.  

 

오프닝 날,  많은 사람들이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어떤 이가 "요정이 사는 세계에 온 것 같다"고 했다. 밤새 내린 하얀 눈이 목마와 겨울숲에 소복이 쌓여,  내 동생이 눈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우연이었을까.

대학 다닐때 내게 서예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지어준 내 호는 설원 '눈동산'이었다. 그래서 난 밤새 내린 눈을 보고 특별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느꼈다. 관람객들이 설국이 된 작품 사이를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걸어다녔다. 많은 사람이 목마앞에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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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k Jin Jo, My Brother's Keeper, 40' x 30', Wood, Metal, site- specific installation, Black and White Gallery, New York


 

'남동생의 파수꾼(My Brother's keeper)'은  그해 겨울 3개월 동안 전시됐다. 목마는 헐벗은 겨울 나무사이에 초연한 모습으로 있는 듯했다.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는 동안, 목마는 설국에 머무르다 초월적 세계로 떠났으리라.

 

전시 마지막 날, 작품 한 곳에 새집같은 것을 발견했다. 바람이 모은 지푸라기로 지어진 것이었다. 작품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한 미국 작가는 바람이 만들어놓은 새집을 보고 놀라워하며, 이 세상과 천국을 연결하는 메신저, 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때, 죽음과 침묵 속에서 깨어난 내 동생이 손을 흔드는듯 하여 내 몸에 전율이 흘렀다. 

 

<서울아트가이드 2012년 2월호>



sook_jin11-2-photo-ken-lull100.jpg Photo: Ken Lull

조숙진/설치미술가

1960년 광주에서 태어나 홍익대 대학원 졸업. 1988년 뉴욕으로 이주,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했다. 헌팅턴 미술관 등지에서 30여회 개인전을 했으며, 광주 비엔날레, 폴란드 우쯔(Lodz) 비엔날레, 워싱턴스미소니언뮤지엄 그룹전에 참가했다. 하종현미술상, 폴락크래스너 그랜트, KAFA(Korea Arts Foundation of America) 등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에리미술관, 마길리즈 웨어하우스, LA Metro Detention Center 등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브라질의 이타파리카섬에서 찍은 무덤사진의 십자가들을 모은 사진집 ‘엘레지’(눈빛출판사, 2010) 출간했다. http://www.sookjinj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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