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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마종일: 불(火)에 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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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V
불 (火): 극도의 흥분에서 완벽한 휴식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불의 순간적 진화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 동안 피워놓은 불 앞에 앉아 있을 때마다 느끼는 최대의 유혹적인 부분이다. 그 핵 또는 심은 항상 나를 그윽하게 현혹하고 분발하게 하고 극도의 흥분을 유발하기도 하며 동시에 한없는 평온하고 완벽한 휴식을 안겨 주기도 한다.
Ma Jong Il, Lab Gallery Installation, Passing a Bunch of Beetles Preparing for their Gracious Dinner Party, collaboration with Elizabeth Winton
그 연홍색 불 속 깊은 곳에, 거의 반투명한 연한 사람의 살속 같은, 연붉은 불의 심을 볼 때마다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어떤 최후의 알맹이같다는 생각하곤 한다. 또는 그 것의 가장 저변에 있는 입자같기도 했다. 불이 이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정점과도 같아 보였다. 알맹이를 바라보는 나에게 그윽한 안정감을 준다. 그곳에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밖의 불꽃들과 달리 극도의 고요함이 있다. 그 입자나 핵 속에 아직 불을 위해 주어질 것이 있는한 그 고요는 지속된다. 그 위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불꽃은 밑에 형성되는 고요를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알맹이, 핵을 생산해 쌓아가고 있었다. 그 핵에 더이상 탈 수 있는 물질이 없어지면 이내 작게 부스러지고 끝내는 아무것도 없어지게 되고 그것이 재가 되는것.
그 속을 조금이라도 소유하고 싶고, 느끼고 싶은 충동에 가는 나뭇가지를 맑고 투명한 연붉은 곳, 그 고요함 속에 살며시 천천히 밀어 넣으면 순식간에 또하나의 작은 불꽃을 만들어 낸다. 고요함 속의 연한 불꽃을 배경속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연기와 함께 더 진하게 타오르는 작은 불꽃은 커다란 전체의 불꽃이 가지는 수 많은 구조를 다시 단순한 모양으로 반복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마치 커다란 나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가지들 속에서 그 전체를 닮은 작은 구조가 반복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불의 순간적 진화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내가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 동안 피워놓은 불 앞에 앉아 있을때 마다 느끼는 최대의 유혹적인 부분이다. 그 핵 또는 심은 항상 나를 그윽하게 현혹하고 분발하게 하고 극도의 흥분을 유발하기도 하며 동시에 한없는 평온하고 완벽한 휴식을 안겨 주기도 한다. 또 그렇게 불을 피우는 것을 즐기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미래, 그 두렵게 몰려오는 삶의 무게를 해소시키고자 하는 하나의 심리적인 방편으로써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작극 굿놀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불을 피우 것, 즉 상황에 맞는 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또한 나는 통달해 있었다. 어쩌면 불을 내가 피운다는 것보다는 저 태양이나 아니면 존재하고 있는 우주의 어떤 곳으로 부터 흘러온 불을 잠깐 빌린다는 것이 맞을수 있을 듯 하다. 불을 일으키는 방법은 조그마한 성냥이 기본일 수 있지만, 나중에는 가끔씩 돋보기를 이용 정말 태양 빛을 빌린다거나 또는 옮겼기에, 그것은 분명 틀린 말이 아닐것이다. 어떤 나무가 더 열을 내고 오래 타는지, 어느 정도의 마른 나무를 언제 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어느 시간 후에 뒤집어 주고 어떻게 바람골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필요하면 어떻게 더디게 타는 모든 것들을 재구축해야 되는지를 해결하는 것은 그냥 나에게는 하나의 자연 자체다.
Albert Pinkham Ryder, With Sloping Mast And Dipping Prow, c.1883,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12 x 12 in.,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
내가 어렸을적, 걸을 수 있을 때 부터 불놀이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의 삶의 일부분이었다. 추운 겨울날 냇가에서 얼음 지치다 추워지면 이내 불을 피워 그 주위에 둘러 앉았을때 포근하게 온몸을 감싸는 불은 내가 파충류가 아님에도 불을 떠나 살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 여름에도 갖 익어가는 보리나 밀 열매를 살짝 구워 먹을때도 불은 필요했다. 설을 막 지나 보름이 되면 온 들판에 있는 마른 짚풀, 끝이 없이 이어져 있는 논둑에 불을 지르는 쥐불놀이, 들불은 단연 최고의 불 이었다. 넓은 벌판에서 활활 타오르며 벌판 곳곳에 자욱히 차오르는 연기, 논둑을 따라 천천히 때로는 빠른 속도로, 약하고 강하게 진행하는 불을 지켜 보는 것은 정말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이 끝나고 봄을 희망하는 마음이 간절한 잊을 수 없는 광경임에 틀림이 없다.
불이 진행되는 저 쯤에 무성하게 서 있는 마른 풀들이 엉켜 있는 지점이 있을때마다 근처에 뛰어가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곤 했다. 그 지점에서 갑자기 하늘로 치솟으며 주변의 찬공기를 끌어 들여 빠르게 공중으로 휘몰아치는 동시에 나의 작은 몸도 한껏 그 열을 받아 뜨거워 지기에 그 순간은 내가 좋아하는 들불의 정점 이상이었다.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어 타고 있는 숫불을 잔뜩 끼워 넣어 최대한 회전시키면 곧 돌고 있는 깡통불 뒤에 혜성 불꼬리가 이어지고 온 마을 애들이 모여 같이 만들어 내는 불꽃의 향연. 돌고 있던 불을 손에서 놓아 높이 높이 그리고 멀리 쏘아내어 수없이 많은 불꽃들이 밤하늘에 퍼져 다시 지상으로 불꽃의 비가 되어 떨어 지는 장면은 단연 보름날 밤 축제의 위대한 피날레 였다. 불은 이렇게 사시사철 나와 동거하고 있었던 것 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내가 이곳 예술문화속에서 엉키어 살면서 느끼고 있는 한참 부족한 예술적 체험 때문에, 그래서 내가 신은 신발이 몇사이즈 큰 고무신처럼 느껴질 때마다, 내가 그렇게 늘 같이했던 불놀이의 자연 친화적 문화처럼, 예술의 문화 속에서 자랐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생각해 보곤 했었다. 자정이 훨씬 지나, 아직도 쉬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불을 뒤로 하고 텐트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이 불은 적어도 새벽 세, 네시까지는 불꽃을 유지하며 탈 것이고, 새벽은 야수들에게 그들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날이 열림을 알리는 신호이므로. 이제 나는 초저녁에 했던 그 걱정을 않을 수 있었기에... 바로 머리 위에 있던 보름달은 하늘 저 만치 멀어져 가며 아직도 사방을 비추고 있었다.
마종일/작가
1961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덕수상고 졸업. 대우 중공업을 거쳐 한겨레 신문사 감사실에서 일하다 1991년 퇴사한 후 박재동 화백 소개로 그의 후배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1996년 뉴욕으로 이주 스쿨오브비주얼아트를 졸업했다. 이후 2006 광주미술관 레지던시 작가, 2008 소크라테스 조각공원 신임미술가로 선정되었으며,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2010 폴란드 로츠(Lodz) 비엔날레에 초청됐다. 2010 LMCC 거버너스아일랜드, 2011 랜달스아일랜드, 롱아일랜드 이슬립미술관, 브롱스 미술관 전시에 참가했다. 2008 알(AHL)재단 공모전에 당선됐으며, 2012 폴락크래스너 그랜트를 받았다. http://www.majong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