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2013.06.16 20:41
'라이온 킹' 여제 줄리 테이머와 '여성운동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대화
조회 수 8704 댓글 0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줄리 테이머 Vs. 글로리아 스타이넘
이 시대, 이 땅에서 여성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
미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라이온 퀸(Lion Queen)' 줄리 테이머가 브루클린뮤지엄에서 만났다. Photo: Sukie Park
“다이앤 폴러스! 팸 매캐넌! 씬디 로~퍼!”
지난 6일 라디오시티뮤직홀에서 열린 2013 토니상 시상식에서 두 여성 연출가와 여성 작곡가가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다이안 폴러스는 뮤지컬 ‘피핀’, 팸 매캐넌은 리바이벌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의 연출자로, 록스타 출신 신디 로퍼는 브로드웨이 첫 뮤지컬 ‘킹키 부츠’ 작곡가로 토니상을 수상한 것. 토니상 67년 역사에서 브로드웨이의 명백한 여성 파워를 입증한 날이었다.
이들에게 문을 열어준 인물은 누구일까?
블록버스터 뮤지컬 ‘라이온 킹(The Lion King)’의 여제 줄리 테이머일 것이다.
줄리 테이머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각색한 ‘라이온 킹’으로 1998년 여성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수상했고, 의상디자인상까지 거머쥐었다.
테이머는 남성들이 독점하다시피한 ‘브로드웨이 정글’에서 ‘사자왕’을 진두지휘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쾌걸(快傑), '라이온 퀸'으로 등극했다.
1997년 11월 개막된 '라이온 킹'은 2012년 4월 총 8억538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면서, 브로드웨이 사상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또한, '팬텀 오브 오페라' '캐츠' '시카고' '레 미제라블'에 이어 5번째 장기 공연으로 기록됐다.
엘리자베스 A. 새클러 재단 이사장으로부터 퍼스트 어워드를 받고 있는 줄리 테이머.
줄리 테이머가 13일 브루클린뮤지엄의 제 2회 엘리자베스 A. 새클러 페미니스트아트센터 퍼스트 어워드(Elizabeth A. Sackler Center for Feminist Art First Awards)를 수상했다.
지난해 브루클린뮤지엄의 ‘엘리자베스 A. 새클러 페미니스트아트센터’ 설립 5주년을 기념해 창설된 이 상은 성(gender)의 장벽을 넘어서 공적을 세운 여성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제 1회는 미 연방대법원 판사 산드라 데이 오코너,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 앵커 코니 정 등 각 분야 최초의 여성 15인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줄리 테이머는 뮤지컬뿐 아니라 오페라와 영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재능을 발휘해온 이 시대 공연예술의 최고봉으로 공적을 인정받았다.
79 그리고 60
미국의 지성과 재능을 대표하는 두 여걸의 랑데부.
지난 13일 브루클린뮤지엄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A. 새클러 페미니스트아트세터 퍼스트 어워드 시상식에서 미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 줄리 테이머와 마주 앉았다.
긴 생머리, 블랙 카디건, 줄무늬 플레어 스커트에 굵은 벨트와 금색의 굵은 팔찌, 그리고 맨발에 샌들 차림으로 나타난 줄리 테이머(60)는 지성, 재능을 겸비한, 2013년판 바비 인형으로 보였다.
살아있는 전설 글로리아 스타이넘(79)은 우아함 그 자체였다. 군살 제로의 스타이넘은 블랙 니트에 블랙 팬츠, 그리고 금색 꽃무늬 장식 벨트를 리본처럼 맸다.
79 그리고 60.
1980년 만난 작곡가 겸 파트너 엘리엇 골덴탈과 동거해오며 ‘결혼 안했어도 행복하다(Happily Unmarried)'고 말해온 이 시대 공연예술의 귀재와 독신으로 살다 66세에 동물애호가 데이빗 베일(*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과 결혼했지만, 3년만에 사별했던 여성운동의 전설이 만났다. 이 날의 대화를 요약했다.
신데렐라보다 계모 역이 좋은 아이
-글로리아 스타이넘: 당신은 내가 아주 자발적으로 ‘천재’라고 묘사하고 싶은 첫 번째이자 유일한 사람이다. 천재란 타인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늘 다음 프로젝트로 간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줄리 테이머: 진지하게 말한다면, (객석을 향해 손짓하면서) 저기 우리 엄마, 중간에 앉으신, 엄마 덕분이다! 난 아주 특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셨다. 응석받이가 아니었고, 애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달려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어릴 적부터 옷을 입고 뒷마당에서 동생과 연기하는 걸 좋아했다.
열살 무렵엔 주말마다 집(*뉴타운, 매사추세츠)에서 보스턴의 어린이 연극반에 다녔다. 여기서 매우 중요했던 건 우리가 중산층이었지만, 연극반엔 흑인, 빈곤층, 부유층 등 다양한 계층의 어린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건 어린 내게 완전히 다른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G. 스타이넘: 보스턴 어린이 연극반에서 신데렐라가 아니라 나쁜 언니 역을 맡고 싶었다던데.
-J. 테이머: 난 연기를 좋아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난 예쁜 소녀, 공주 등에 캐스팅됐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역은 계모나 의붓 언니 등 흥미로운 악역이었다. 그래도, 백설공주는 거절했다!”
-G. 스타이넘: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 어떤 영향을 주었나.
-J. 테이머: 내게 여행은 정말 중요하다. 열세 살 때 부모님이 스리랑카와 인도에 교환학생으로 보내주셨고, 고등학교 졸업 후엔 ‘원하는 걸 해봐라!’하시면서 파리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대학교(*오벌린대) 졸업 후엔 일본에서 인형극과 노 연극, 인도네시아에서 인형극을 공연을 공부할 수 있었다.
봄베이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시내까지 버스타고 가는 도중 사람들이 달려들고, 굉장한 경험이었다. 혼란과 아름다움, 환희와 빈곤… 인도의 문화는 나에게 쇼킹했다.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홈스테이하면서도 제의식, 공연예술과 종교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희생과 공연이 분리되지 않았다.
내 작품은 인도네시아, 일본, 동구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TV가 보급되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매일 어린이들을 위해 창작하는 인형극도 충격적이었다. 내 오리지널 창작극을 처음 올린 곳도 인도네시아였다.
예술과 흥행을 정복한 ‘라이온 킹’
-G. 스타이넘: 난 ‘라이온 킹’을 네 다섯 번 봤다. 손님 올 때마다 같이 가면서… 그런데, 평소엔 잘 울지 않던 사람들이 울더라. 이런 공연을 전에도 한 적이 있었나?
-J. 테이머: 난 항상 경험에 의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하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라이온 킹’을 리얼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리얼한 것이 아니다. ‘라이온 킹’에서는 애니메이션에서 하지 못하는 것, 무대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고안해야 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의 일출 장면엔 실크 천과 대나무를 썼다.
일출 장면에서도 프로젝터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걸 썼다. 오렌지색 실크천을 깔고 대나무 장대를 사용해 조명이 비치면, 천이 반짝거리면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실크와 대나무로 일출 장면을 묘사했다. 이것이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다. 연극에서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것은 스토리 자체가 아니라, 물론 스토리도 좋아야 하지만, ‘어떻게 스토리를 이야기 하는가’ 그 방법에 감동한다는 점이다.
오프닝 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합창도 일부러 영어가 아니라 원어로 했다.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 영어로 하면, 우리는 두뇌의 한 부분을 잃게 된다. 하지만 원어로 하면, 진짜 음악을 듣게 된다. 감동은 이런 모든 것의 조합이다. 가뭄 장면도 일본 서예에서 한 획으로 하듯이 천으로 묘사했다. 난 하이테크와 로테크를 섞는 걸 좋아한다. 이것이 '연극의 시정(poetry of theater)'이다.
2012년 11월 '라이온 킹' 브로드웨이 15주년 공연에서 줄리 테이머가 출연진과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Photo: Disney
‘'라이온 킹'의 대 성공 후 영화와 오페라계에서도 줄리 테이머의 재능을 필요로 했다.
테이머는 할리우드로 가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한 '타이터스'(1999)와 '템페스트'(2008),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전기영화 '프리다'(2002), 비틀즈 노래를 모은 로맨스 뮤지컬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를 연출했다.
한편, 1992년 일본 사이토 키넨에서 '오디퓌스 렉스'로 오페라 연출가로 데뷔한 후 LA오페라 '플라잉 더치맨'(1995)을 공연한 테이머에게 오페라 연출 콜도 쏟아졌다. 테이머는 러시아의 키로프오페라단에서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살로메'를 시작, 독일과 이스라엘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마술 피리'를 연출해 찬사를 받게 된다.
줄리 테이머의 메트 오페라 데뷔작 '마술 피리'는 할러데이 시즌 고정 레퍼토리가 됐다. Photo: The Metropolitan Opera
브로드웨이, 할리우드에서 오페라까지 정복한 줄리 테이머는 또 한편의 블록버스터 프로젝트에 초빙된다. 2011년 록뮤지컬 ‘스파이더맨: 어둠을 꺼라(Spider-Man: Turn Off the Darkness)’의 연출을 맡게된 것이다.
록그룹 U2의 보노와 엣지가 음악을 담당한 ‘스파이더맨’은 또한 브로드웨이 사상 최고액인 75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뮤지컬이었다. 하지만, 공식 개막을 앞두고 프로덕션은 휘청거렸다. 서커스를 방불케하는 묘기로 배우들이 부상당했고, 스토리의 문제로 개막일이 지연되면서 제작자들이 줄리 테이머를 해고한 것이다.
이후 저작권을 둘러싸고, 테이머와 제작진의 고소와 맞고소로 법정 공방이 진행됐고, 지난해 2월 마침내 합의로 종지부를 찍었다. 테이머가 ‘스파이더맨’ 로열티로 주당 1만달러 내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비 7500만불이 들어간 뮤지컬 '스파이더맨'은 줄리 테이머의 경력에 오점을 남겼다.
뮤지컬 ‘스파이더 맨’의 비애
-G. 스타이넘: 브로드웨이에서 당신에 대한 신뢰는 높다. 이제 ‘스파이더 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나.
-J. 테이머: 복잡한 이야기라서… 언젠가 진실이 나올 것이다. 난 8년 동안 ‘스파이더 맨’에 매달렸다. 진짜 정통 뮤지컬이라기 보다 서커스, 록큰롤이 조화된 새로운 뮤지컬이었다. 슬픈 사실은 우리가 작업했던 실제 스토리가 버려졌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의 플롯은 사이버 테러리즘이었는데, 지금 공연에는 이 스토리가 없다. 일정 기간 내에 공연을 할 수 없으면, 그건 엉망이 되며, 나 자신은 다른 행성에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린 취약한 상태에서 처벌받은 셈이다.
-G. 스타이넘: 그럼, 다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J. 테이머: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마다 “당신에게 딱 맞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 두렵다. 대학교에서도 했던 작품이긴 하지만… 내 파트너 엘리엇 골덴탈이 작곡한다. 11월 브루클린의 새 극장 씨어터 포 뉴오디언스에서 공연하게 된다. 캐스트도 훌륭하며, 팀이 좋다.”
여성 예술가로 산다는 것
-G. 스타이넘: 서양미술사의 전통에서 미술계는 남성들이 지배해왔다. 여성이 하는 것은 ‘공예(craft)’라고 지칭했는데. 당신은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묘사되기를 원하는가?
-J. 테이머: 난 상자 속에 집어 넣어져 분리되는 것에 항상 저항해왔다. 여성으로 제한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작업은 거의 카테고리화할 수 없다. 난 한 장르에서 다른 장르로 옮겨갔으며, 한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요즈음 내가 하는 것은 스타일의 혼합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고유한 보이스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카피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독특한 비전을 발견해야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며, 어떻게 스토리를 구성하고 싶은가를 찾아야 한다.
아티스트는 가슴팍에 주홍글씨 ‘대형 A’자를 박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돈을 벌어야 한다. ‘스파이더맨’에는 예술이 너무 많았고, 상업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라이온 킹’에선 신뢰가 있었다. 어린이용으로 각색한 오페라 ‘마술 피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어린이들은 자막을 읽지 않는다. 보길 원한다. 영어 버전으로 100분짜리로 제작했다. 관객은 내가 여자건 남자건 상관하지 않는다. 제작자들이나 신경 쓸 뿐이다.
☞ 엘리자베스 A. 새클러 페미니스트아트센터 퍼스트 어워드
(Elizabeth A. Sackler Center for Feminist Art First Awards)
2012년 브루클린뮤지엄이 ‘엘리자베스 A. 새클러 페미니스트아트센터’의 설립 5주년을 기념해 창설된 상이다. 지난해엔 미 연방대법원 판사 산드라 데이 오코너,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 앵커 코니 정 등 각 분야 최초의 여성 15인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삼각형의 크리스탈 상패는 조각가 주디 시카고가 페미니스트아트센터에 전시되어 있는 자신의 작품 ‘디너 파티’을 따서 디자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