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729)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2)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78) 박숙희: 1천만불짜리 앵커의 '거짓말 서사극'
수다만리 (7) 비극의 주인공이 된 TV 앵커
1천만불짜리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의 '거짓말 서사극'
-우리는 왜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고 말하는 것일까?-
Instagram
대학 시절 군 제대 후 복학한 남학생들은 술이 들어가면, 각종 군대 체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 여대생들은 알았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의 80%는 과장인 것을.
NBC 나이틀리 뉴스(Nightly News)의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Brian Williams) 스캔달을 접하면서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국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툭하면 꺼내는 군대 무용담이었다.
나는 저녁 뉴스를 볼 시간도 없거니와 굳이 TV로 뉴스를 접하지도 않는다. 인터넷이 있으니까.
왕년에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있었고, 내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할 즈음부터 미 방송 3사에서 피터 제닝스(ABC), 댄 레더(CBS), 톰 브로코우(NBC)의 트로이카 시대가 오래 지속됐다. 2005년 클래식 할리우드 영화 배우처럼 핸섬한 피터 제닝스가 폐암으로 사망하고, 박성범 앵커를 연상시키는 댄 래더가 공신력으로 휘청거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톰 브로코우가 은퇴하면서 트로이카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04년 브로코우의 바톤을 이어 받아 저녁 뉴스 데스크에 앉은 이가 브라이언 윌리엄스였다. 그로부터 10년간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뉴스 앵커 1위를 공인 받았다.
얼핏 미트 롬니, 존 케리, 게리 하트 등 미 대통령 후보 타입의 WASP 이미지를 갖춘 브라이언 윌리엄스(*카톨릭)는 할리우드로 가도 손색이 없을만큼의 '프리티 보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대통령 선거를 보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채널을 돌리게 됐다. 옆으로 지나치게 쳐진 눈, 늘 힘주어 콧소리으로 말할 때 돋보이는 비뚤어진 입술, 그리고, 6시 5분 전 시계추처럼 비뚤어진 자세도 거부감을 주었다. 코 왼편의 사마귀가 카메라에 안보이도록 기울려온 자세가 습관이 된듯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 1 2003년 3월 톰 브로코우가 '나이틀리 뉴스'의 앵커였을 때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전쟁 중인 이라크의 종군 특파원으로 날아갔다. 당시 그는 “내가 탄 헬리콥터 앞(ahead)의 헬리콥터가 로켓수류탄(RPG)에 맞았다”고 보도했다.
# 2 2013년 CBS 데이빗 레터맨쇼에 출연, "정확히 10년 전 오늘 이라크 종군 기자로 갔다가 헬리콥터 2대가 폭격당했다. 내가 탔던 헬리콥터를 포함해서(Two of our four helicopters were hit by ground fire, including the one I was in...."라고 스토리를 바꾸었다. 레터맨이 “농담 아니냐(No kidding?)”라고 되물었다.
# 3 2015년 1월 30일 뉴욕 레인저스 게임에서 12년 전 브라이언 윌리엄스와 한 헬리콥터에 있었던 참전용사에게 헌사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나의 폭격맞은 헬리콥터에 탔던 참전용사 팀 퍼팩'을 뉴욕 레인저스 게임에 초대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레인저 측에서는 1만8000여명의 군중 앞에서 은퇴한 영웅 팀 퍼팩과 브라이언 윌리엄스를 전광판에 올리며 이라크전의 영웅으로 소개했다. 다음 날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나이틀리 뉴스'에 이 내용을 자화자찬식으로 보도했다.
# 4 반전의 챕터. 페이스북의 힘. 이에 2013년 당시 이라크 사막에서 폭격맞았던 헬리콥터에 탔던 조종사 랜스 레이놀스가 NBC 페이스북에 "윌리엄스는 브라이언 윌리엄스가 자신의 헬리콥터에 없었고, 폭격 후 1시간쯤 뒤에 나타났다"고 올렸다. 이에 페북 친구들이 동조하면서 일파만파 퍼지게 된 것이다.
# 5 윌리엄스의 사과. 그러자, 2월 4일 윌리엄스는 자신의 ‘나이틀리 뉴스’ 데스크에서 “12년 전 일을 회고하면서 실수를 했으며, 사실 자신은 폭격밪은 헬리콥터가 아니라 '따라가는(following) 헬리콥터에 타고 있었다. 사과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브라이언 윌리엄스의 이라크전 체험 거짓말 과정 비디오 보기
# 6막: NBC 수습. 2월 6일 NBC 보도국은 사실 확인 조사에 들어갔다. 7일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당분간 휴식을 선언했다.
이에 시청자와 언론계를 비롯 대대적으로 브라이언 윌리엄스를 비판하면서 900만명의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는 ‘나이틀리 뉴스’와 NBC의 신뢰도는 땅으로 추락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에는 브라이언 윌리엄스를 조롱하는 표지와 몽타쥬 사진도 속출했다. 이로써 TV 뉴스 및 모든 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의문으로 남았다.
케네디 암살 현장의 윌리엄스
에이브라함 링컨과 함께
최후의 만찬 속에서
Images from Instagram
도대체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왜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다른 헬리콥터가 폭격을 당했는데, 왜 멀쩡했던 자기가 탄 헬리콥터가 폭격당했다고 미화했을까?
한국에서 복학 남학생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무용담처럼 과장한 것일까? 아니면, 착각을 한 것일까?
남자들의 나르시즘과 영웅주의일까? 아니면, 뉴스 앵커와 코미디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며 발생한 실수일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Rashomon/羅生門, 1950)은 인간이 자신의 시각으로 보고 싶은대로 보고, 기억한다는 것을 그린 영화다. 숲 속에서 일어난 강간-살인 사건을 산적, 사무라이, 사무라이의 아내, 그리고 나뭇꾼 등 네명의 증언으로 다른 시각을 보여주면서 '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후 발레리 알리아라는 언론학자는 70년대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각자 보는 시각이 다른 현상을 가르키고 있다. 인간이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기억하려하는 심리에도 적용되어 왔다.
지난해 12월 윌리엄스는 NBC와 연봉 1천만 달러 연봉, 5년 계약을 맺었다. 이는 보통 할리우드 A급 스타의 샐러리다. 그는 미국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뉴스의 소개자, 전달자로서 NBC-TV의 간판 앵커로서 거액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0분짜리 저녁 뉴스 시간에 앵커가 실제로 화면을 차지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광고와 기자들, 뉴스 화면을 제외하면 총 5분이나 될까? 오프닝 인사말, 중요 헤드라인, 기자들 소개, 엔딩 인사말 정도라고나 할까? 게다가 앵커들의 멘트를 써주는 작가들이 따로 있다.
말하자면, 앵커들은 카메라 옆의 TV 프롬트터를 읽는 뉴스 리더(news reader)다. 수백불짜리 헤어컷과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도와주고, 이탈리안 수트에 넥타이를 매고 TV 앞에 앉는 '보도 배우'에 가까운 셈이다. 필자의 경우 1994-95년 MBC-TV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 여행'의 작가로 일할 때 MC들의 오프닝 멘트에서 엔딩 멘트까지 스크립을 모두 써주었다. 물론 MC의 재량에 따라서 애드립 멘트도 나올 때가 있지만.
인터넷에 실시간 뉴스가 범람하고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는 소셜미디어가 점령한 오늘날 누가 저녁 뉴스를 보러 TV 앞에 앉아 있겠는가? 인터넷 뉴스로 위기에 몰린 TV 네트워크에선 저녁 뉴스라는 보도 프로그램을 타블로이드 신문식의 양념을 가미해 오락 프로그램으로 치장하고 있다.
앵커 다이앤 소여가 성전환을 선언한 킴 카다시안의 계부 브루스 제너와 독점 인터뷰를 추진 중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도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점령하기 위한 전략이다. 뉴스 프로그램이 미 국민들이 진짜 알고 있어야할 세계 정세나 경제 등 하드 뉴스 등보다 킴 카다시안 류의 선정적인 소재, ‘해외 토픽’ 수준의 소프트 뉴스, 옐로우 뉴스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2013년 3월 '데이빗 레터맨쇼'에서 윌리엄스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대형 사고를 쳤다. 저널리즘의 기본은 진실하고 정확한 정보와 공정한 시각이다. 연봉 1천만 달러짜리 앵커 윌리엄스는 저녁 뉴스 1위의 ‘나이틀리 뉴스’를 홍보하기 위해 CBS ‘데이빗 레터맨쇼’에 출연했고, 앵커가 되기보다 코미디언이 됐다. 자신의 이라크전 취재 경험을 부풀리면서 자신을 영웅화한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이며, 목격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TV 앵커의 거짓말을 폭로한 것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이었다.
이로써 브라이언 윌리엄스의 신뢰도가 심판대에 올라 있다.
2006년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취재 당시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시체…, 내가 묵고 있던 리츠-칼튼 호텔에 갱들이 많았고, 젊은 경찰관이 나를 계단에서 구했다”고 보도했던 그다. 이에 대해서도 당시 목격자들은 “물에 별로 잠기지 않았으며, 시체도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Brian Williams, NBC Photo: Justin Stephens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어떤 인물인가?
1959년 뉴욕 엘마이라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뉴저지 미들턴에서 자랐다. 고교시절 동네 소방서에서 3년간 자원봉사를 했으며, 팬케이크 식당에서 버스보이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그가 공부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뉴저지 브룩데일 커뮤니티칼리지에 다니다가 워싱턴 DC의 미카톨릭대학교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조지워싱턴대로 전학했지만, 중퇴한 후 지미 카터 행정부 하에서 백악관 인턴으로 일했다. 대학에서 총 18학점을 수학한 윌리엄스는 한 인터뷰에서 "대학을 마치지 못한 것이 삶의 가장 큰 후회"라고 말한 바 있다.
방송 경력은 1981년 캔사스 지역방송국(KOAM-TV)에서 시작했다. 이후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뉴욕에서 지역 방송국을 거쳐 1993년 NBC 뉴스로 입사했다. 그리고, 백악관 수석 특파원으로 거쳐 현재 보도국의 앵커 겸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방송인으로서 에미상 12회 수상, 월터 크롱카이트상, 조지포스터 피바디상 등을 권위있는 상을 수상했고, 2006년 '타임(Time)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대학을 중퇴한 윌리엄스는 어디서도 저널리즘의 철학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한 것 같다. 그의 화려한 경력은 피할 수 없는 피상성을 본질로 하는 TV 뉴스계에서 파생된 것인지 모른다. 그는 우직한 진실보다 수려한 미모로 스타덤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진실을 위반하고, 시청자를 우롱한 브라이언 윌리엄스의 위대한 착각. 그것을 옹호한 NBC 보도국은 동반자살극을 벌인 셈이다. 앵커 윌리엄스는 5년 계약 1억달러와 함께 스캔달의 회오리 바람 속 망망대해의 돛단배 안에 들어갔다. 그는 1억 달러짜리 입을 조심해야 했다. TV 뉴스 앵커라는 방송의 정상을 정복한 후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추락하고 있는 브라이언 윌리엄스. 10년 스타 앵커의 말로, 그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 Back to School!
1991년 동경국제영화제에서 '꿈(Dreams)'를 연출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기자회견에 갔다가 프로그램에 사인을 받았던 게 영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라쇼몽' 연출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
-구로사와 아키라(黒澤 明, 1910-1998)-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