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sts
2015.10.12 15:47
세계 미술계에 부는 한국 단색화 열풍 (1) 단색화의 태동에서 부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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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DANSAEKHWA): 캔버스에 응집된 정신
<1> 단색화 태동에서 부활까지
크리스티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단색화 거장전. 정윤아 스페셜리스트가 박서보 화백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1970년대 태동했지만, 오랫동안 한국 미술사의 그늘에 가려졌던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 Tansaekhwa)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블루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부활하고 있다.
10월 8일부터 23일까지 록펠러센터 크리스티 뉴욕(Christie's New York)에서 열리는 '자연을 이루다: 한국 모던 추상화와 단색화(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전은 세계 미술의 메카 뉴욕에 한국의 모던 추상화와 단색화를 소개하는 첫 전시다.
이번 단색화 그룹전에는 김환기(Kim Whan-ki 金煥基, 1913-1974), 이성자(Rhee Seundja 李聖子, 1918-2009), 정창섭(Chung Chang Sup 丁昌燮, 1927-2011), 윤형근(Yun Hyong-Keun 尹亨根, 1928-2007) 등 4인의 작고한 작가와 박서보(Park Seo-Bo 朴栖甫, B. 1931), 정상화(Chung Sang-Hwa 鄭相和, B. 1932), 하종현(Ha Chong-Hyun 河鐘賢, B. 1935), 그리고 이우환(Lee Ufan 李禹煥 (B. 1936) 등 4인의 건재한 거장들이 뉴욕 크리스티 웨스트갤러리에서 랑데부하고 있다.
뉴욕 크리스티 전시엔 대여 작품 7점을 포함 33점이 소개되고 있으며, 11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홍콩 크리스티으로 이어질 전시회에선 같은 작가군의 다른 작품 24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이 전시회는 경매가 아니라 프라이빗 세일 형식으로 소개된다. 잊혀졌던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을 뉴욕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크리스티 갤러리는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다.
1963년 뉴욕에 정착했던 한국 모던 추상화의 기수 김환기 화백의 '산'(1958)과 '무제'(1971)도 소개된다.
동양사상이 농축된 절제의 캔버스
단색화 그룹전을 기획한 정윤아(Yunah Jung)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는 "한국 거장들의 시기별 작업 변화와 전개과정을 보여주면서도 자연을 중시하는 한국 추상화의 개념과 특성이 드러나도록 전시작을 구성했다. 또한, 유화라는 서양매체를 받아들이면서도 아시아 전통 철학과 수묵화 전통에 뿌리를 둠으로써, 형식과 형태에 초점을 맞추는 서양 추상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 즉 조형성과 정신성을 추구해 왔음을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설명한다.
단색화는 마크 로스코의 색면화(color field painting)나 도날드 저드, 아그네스 마틴, 엘스워스 켈리 등 미니멀리스트의 작품과는 다르다. 1970년대 초 자유가 억압됐던 유신체제 하에서 화가들에게도 침묵이 금이었을 것이다. 각 작가들은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캔버스와 오일과 이젤을 수용하되 수묵화, 서예, 마대, 한지, 고령토, 배압법 등 한국적인 매체와 테크닉,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정신으로 재무장하게 된다.
'대화'를 작업하는 이우환 화백의 근간은 서예다. Photo: Guggenheim Museum
단색화 작가들은 손보다는 몸 전체로, 논리적인 머리가 아니라 자기연마하듯이 명상의 마음으로 캔버스 앞에 섰다. 수묵화의 전통을 따르는 그들은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노자사상을 바탕으로 반복적으로 수행하듯이 작업했다. 그래서 완성된 단색화는 표면에 시간과 밀도, 그리고 에너지(기, 氣)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국적인 추상화, 마음의 풍경인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는 서양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모노크롬(monochrome painting)과 다르다.
작가의 개념적 표현에 집중한 미니멀리즘과 달리 단색화는 정치적 억압기 한국 화가들의 금욕적이며 명상적인 에너지로 작업한 유니크한 결과물이다. 저항정신으로 마음을 비우고, 노동집약적인 반복적인 행위로 완성한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그림이다. 달항아리처럼 텅 빈듯 하지만, 충만한 마음과 질감이 느껴지는 회화다.
크리스티 뉴욕에 전시 중인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 왼쪽 벽은 정상화, 중앙은 정창섭, 오른쪽은 박서보 화백 작품.
최근 세계 메이저 뮤지엄 큐레이터들과 학자들, 아트 컬렉터들이 새삼 단색화에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이유는 '단색화'를 연구한 영문 서적(*Joan Kee,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이 출간되어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정윤아 스페셜리스트는 무엇보다도 한국 추상화가 "철학적으로 심오하며,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며, 개념적으로 독특하다는 것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제 세계 미술사의 궤도에 오른 단색화는 일본의 구타이 미술(具體美術)와 모노하(もの派)나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독일의 제로 그룹(ZERO group)처럼 세계 미술사에서 한국의 독창적인 미술 유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단색화의 태동, 동면과 복귀
2008년 첼시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박서보 화백(오른쪽 끝).
단색화는 1970년대 언론의 자유가 탄압됐던 유신시대 정점에 이루다가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 민중미술이 대두하면서 현실도피적이며, 부르조아적인 미술로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러다 2000년 제 3회 광주 비엔날레에서 윤진섭 호남대 교수가 한국의 단색화를 집중 조명한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을 선보이며 전면 복귀시킨다. 이전까지 모노크롬으로 불리우던 한국의 단색화가 광주 비엔날레부터 'Dansaekhwa'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이 윤진섭 교수와 ‘한국의 단색화 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전을 열면서 이미 작고했거나, 황혼에 들어선 노장들의 단색화가 재조명된다. 전시는 전기와 후기 단색화 작가군으로 나뉘어졌다. 전기 단색화가엔 김환기, 곽인식,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등 후기 단색화가엔 이강소, 문범, 이인현, 김춘수, 노상균 등 14명 작가의 150여 점이 소개된다.
서울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대표(왼쪽)와 뉴욕 티나김 갤러리의 대표 김태희(티나 김)씨. Photo: Sukie Park
이듬해 세계적인 파워 아트 딜러인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대표가 2013년 5월 런던 아트페어 프리즈(Frieze)에서 단색화를 들고 나갔다. 이때, 뉴욕 구겐하임, 디아아트센터, 런던의 테이트갤러리, 파리 퐁피두센터 등 메이저 뮤지엄 이사회 아트컬렉터들에게 팔았다.
그리고, 지난해 상하이에서는 한국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텅 빈 충만: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으로 단색화 작가들을 소개했으며, 올 베니스비엔날레엔 국제갤러리가 단색화가 7인(김환기, 권영우,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의 70점을 소개하는 특별전 'Dansaekhwa'를 소개한다. 이로써 최근 몇년 사이에 단색화는 세계 미술 시장에서 열풍을 일으키게 된다.
세계 미술계의 '퍼펙트 스톰'
주간 뉴요커(New Yorker)는 9월 30일자에서 'The Koreans at the Top of the Art World'를 제목으로 한국 단색화의 부상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뉴요커 잡지는 파워 갤러리들의 지부 확장, 경제 호황으로 막강해진 아트 콜렉터, 뮤지엄이 평가절하된 작가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는 최근 세계미술계의 동향에 즈음해서 한국의 단색화가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 이우환 화백의 회고전을 기획했던 구겐하임뮤지엄의 알렉산드라 먼로 큐레이터는 이에 대해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고 묘사했다.
알렉산드라 먼로 구겐하임 큐레이터. 사진: 양영웅
뉴욕에선 2014년 2월 첼시의 알렉산더 그레이 어쏘시에이츠(Alexander Gray Associates)에선 'Overcoming the Modern(Dansaekhwa: The Korean Monochrome Movement)에서 단색화가 정상화, 하종현, 허황, 이동엽,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를 선보였다. 기획은 독립 큐레이터 샘 바르다위(Sam Bardaouil)과 텔 펠라스(Till Fellrath)가 맡았다.
한편, 서울의 국제갤러리는 지난해 8월 '단색화의 예술'전(김기린,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을 열면서 작가들과 세계의 단색화 전문 큐레이터들을 모아 좌담회를 열었다. 단색화에 대한 학구적인 연구가 시급한 시점에서 주목할만 했다.
그해 9월엔 LA의 블룸&포우(Blum & Poe)에서 조안 키(Joan Kee)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From All Sides: Tansaekhwa on Abstraction)'에서 정상화, 하종현, 권영우,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의 작품이 소개된다. 조안 키는 단색화를 주제로 한 첫 미술 연구서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어 11월엔 뉴욕 블룸&포우에서 하종현의 단색화 개인전을 선보인다.
이후 단색화는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구겐하임 뮤지엄(Guggenheim Museum, 뉴욕/아부다비)을 비롯,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 워싱턴 DC의 허쉬혼 뮤지엄(Hirshhorn Museum), 퐁퓌두센터(Centre Pompidou) 등지의 컬렉션으로 들어간다. 이에 경매시장에서 단색화 작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음은 물론이다.
윤형근 화백 작품. From All Sides: Tansaekhwa on Abstraction Photo: Blum & Poe(L.A.)
뉴욕에서 단색화 열풍은 크리스티 뉴욕의 '자연을 이루다: 한국 모던 추상화와 단색화(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전부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0월 말부터 최소한 3곳의 뉴욕 갤러리에서 단색화 작가전이 동시에 펼쳐진다.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블룸&포우(Blum & Poe)가 윤형근 전(10/30-12/23), 어퍼이스트사이드의 갤러리 페로탕(Galerie Perrotin)은 정창섭 전(11/3-23), 그리고 국제갤러리의 뉴욕 지부인 티나김(Tina Kim)은 하종현 개인전(11/6-12/5)을 연다.
한편, 10월 중순 런던의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London)의 마스터 섹션에선 악셀 베르부르트(Axel Vervoordt), 국제갤러리/티나 김(Kukje Gallery/Tina Kim)과 학고재(Hakgojae)가 단색화 작품을 소개한다. 그런가하면, 런던의 페이스(Pace) 갤러리에선 이우환의 단색화 시기 회고전(9/15-10/31)이 진행 중이다.
또한, 데미안 허스트를 전속작가로 둔 런던의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선 내년 1월 박서보 개인전을 연다. 블럼&포우(Blum & Poe)에선 단색화와 브라이스 마든과 로버트 라이만 등 서양작가 비교전 등 몇개의 전시를 기획 중이다. 도미니크 레비(Dominique Lévy)에선 정상화 전시회를 열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뉴욕과 런던에서 단색화 열풍이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미술계에 부는 한국 단색화 열풍
<2> 크리스티 뉴욕 한국 모던 추상화와 단색화 거장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크리스티 뉴욕에 전시 중인 이성자(왼쪽부터), 하종현, 윤형근 화백의 작품.
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
Oct. 8-23, 2015
Christie's New York: 20 Rockefeller Plaza, bet 5-6th Ave.@49th St.
http://www.christi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