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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이수임: 화가 부부의 특별한 기념일
창가의 선인장 (29) 그림이 팔린 날
화가 부부의
특별한 기념일
Soo Im Lee, Cheers and tears, 2009, sumi ink & crayon on paper, 9 x 12 inches
푸른 새가 앉아있는 나무 아래 두 여자가 양손을 잡고 있다. 친구가 보낸 생일 카드다. 우리의 우정에 알맞은 것을 찾기 위해 애쓴 듯하다.
친구는 자상하게 내가 태어난 해로 돌아가서 음력으로 6월 18일이 양력으로는 7월 17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생일을 축하하며 ‘오랜 세월 친구로 있어줘서 고맙다’는 긴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내 생일도 결혼한 날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 생일이 지났네. 우리 결혼한 날이 언제인지 알아?”
“그런 것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며 살아?”
속물이라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하기야 음력을 양력으로 알아내는 것도 번거롭고,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생일을 챙길 여유가 있었나.
"다시는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을 챙기지 않을 거야."
어느 날 한 여유있는 친구가 그간 속상한 사연을 털어놨다. 생일 잊어버린 남편에게 상기시키고, 분위기 있는 식당을 예약하고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 식탁에 앉아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것이다. 막상 둘이 분위기를 낼라치면 지치고 기분이 나빠 티격태격 싸울 짓을 하느니 아예 포기하겠다며 선언을 했단다.
둘 다 화가인 우리 부부의 기념일이란 ‘그림이 팔린 날’이다.
그림이 팔리면 우리는 그동안 챙기지 않고 살았던 날들을 위해 축하의 술잔을 부딪친다. 예전보다 술잔 부딪칠 일이 많아졌다. 잘하면 그동안 밀린 날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올 기념일까지도 앞당길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에게 가장 기뻤던 날은 어려운 시절 그나마 여유있는 선배 화가가 그림을 사간 날이었다. 화가가 화가의 그림을 인정할 때가 더욱 술맛이 난다. 우리도 전시회를 다니다 보면 사고 싶은 그림이 있다. 어려운 동료나 후배에게 조그만 보탬이 되고자 비싸지 않은 작품을 몇 점 사기도 했다.
그나마 그림이 팔린 날도 별로 차린 것 없는 저녁 식탁을 보며 남편이 빈정거린다.
“그래 음식 솜씨 없는 와이프 덕에 성인병에 걸리지 않은 것만도 고맙지.”
"그림이 뭐 거기서 거기지. 일단 화가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영광을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거야.”
둘은 신나서 맞장구치며 술잔을 부딪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