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729)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2)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146) 스테파니 S. 리: 행복의 시작과 끝이 결혼?
흔들리며 피는 꽃 (3) 결혼, 길게 오래오래 포기하는 지혜
행복의 시작과 끝이
결혼?
"대저 우주의 거대한 암흑 속에 동그마니 떠 있는 바위 덩어리에 매달리듯 달라 붙어서 불안정한 생을 영위하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는 상황 쪽이 내게는 더 없는 공포이다.”-무라카미 하루키-
Stephanie S. Lee, Flower I, 2013, Color &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15 ¼˝ (H) x 27 ¼˝ (W) x 2 ¾˝ (D)
적절한 비유일런지 모르겠으나 ‘남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요, 남편의 직업이 곧 나의 커리어’ 라 믿고 사는 여자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이러하다. 아직도 사랑의 종착역이, 행복의 시작과 끝이 ‘결혼’이라고 믿고 사는구나… 저들이 과연 앞으로의 결혼생활을 어떻게 견딜까 걱정스러운 한편 그런 순진한 환상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는것이 매우 부럽기도 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이쯤에서 짝 찾기는 그만 접고 정착하여 행복한 사랑의 결실을 맺어보자. 손 꼭잡고 다정히 거니는 저 노부부들처럼 우리도 세월을 그렇게 이쁘게 쌓아가 보자.
그런데 살아보니 결혼생활이란 높은 구두 신고 멋부리며 또각또각 걸어갈 꽃 길이 아니었다. 잠시잠깐 분칠하고 나가서 향기로운 모습으로 만났다가 데이트 시간 끝나면 ‘안녕’ 하며 쉬러갈 수 있는 특별한 하루가 아니었다. 맨 땅에 헤딩, 두손 두발 걷고 맨발로 부딪혀야하는 매일의 연속이었다.
가장 사랑한다 믿었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좋은 것만 나눠먹으며 하하호호 살 줄 알았던 사람과 대면하고 싶지 않은 나의 추한 바닥을 끌어내 보이며 이판사판 갈때까지 다 가버리는 길. 나보다는 남이 중요하다 여기며 살아가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던 내가 실은 나만 내세우며 자꾸 부딪히는 형편없는 사람이란 것을 절절히 깨닫는 과정.
안정적인 생활을 기대했건만. 한순간에 증오가 불타오르고 절망이 내려앉고, 며칠 반짝 살만하다가 또다시 와르르 기대가 무너지고… 롤러코스터같이 요동치는 감정의 기복 속에서 외줄타기하는 불안정한 상태의 반복. 서로의 일생을 목격해 주는 증인이 되어주어야 하는 동시에 사랑이란 허상이 식어가는 것도 함께 봐야만 하는 과정. 이 잔인한 관계의 상대가 당신이라 다행이기도, 당신이라 안타깝기도 한 그런 사이…
모순된 상황 속에서 한참을 애쓰다, 포기하다, 다시 노력해보다가 이제는 남은 것의 형체가 사랑인지 의리인지 정인지 미련인지 애증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용기가 없어 살고, 용기를 내어 살고있다.
Stephanie S. Lee, Marriage, 2014, Color &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21 ½˝ (H) x 15 ½˝ (W) x 2 ¾˝ (D) each
돌아보면 내 공부, 내 인생 하며 이기적이던 내가 자기밀도는 엷어지고 그에 반해 역할밀도는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이 시기를 곱게, 순종적으로 넘겼을 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디 그리 쉽게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존재이던가… 내가 없는데 어찌 남을 배려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모든 행위들 조차도 어찌보면 또 다른 이기적 행위의 일부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고차원적 결혼생활의 기술이 없다. ‘남의 편’ 말에 의하면 지혜롭지 못한 여자, 감사할 줄 모르는 여자다. 그 지혜라는 것이 집안 일 혼자 다 하고도 힘든 내색않고 웃어주고, 연락두절 된 채 새벽까지 안들어 와도 잔소리 한번 하지 않고, 술마시고 온 다음날 해장국 끓여주고, 화난 다고 모진말로 상처줘놓고도 사과 한번 안하는데 참고 대접해줘야 하는거라면 맞다.
나는 지혜 따위는 국 끓여 먹은 여자다. 지혜는 커녕 하기싫은 거 억지로 못하고, 맘에 안드는 건 이야기하고야 말고, 잘못되었다 싶으면 끝까지 대드는 참을성없는 여자다. 사과 대신 먹을 거주면 헤헤거리며 고맙게 받아먹고, 얼렁뚱땅 넘어가지 못하는 까다로운 여자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아내란 자고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지만 나는 내 자식을 길러본 적이 없었으며 설령 자식이 있었다 한들 배우자를 자녀같이 대하며 살아야 가정의 평화가 온다는 말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내 아들과 결혼하지 않았다. 무려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 '오빠' 와 결혼했단 말이다. 나보다 덩치도 크잖아, 힘도 세잖아, 밥도 많이 먹잖아, 그럼 인생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이 나를 동생처럼 이해해 주는게 오히려 더 말이 되는거 아닌가.
설사 어머니의 마음으로 모든것을 양보하고 참고 살았다 쳐도, 어머니의 희생으로 온 식구 살아났네 하는 가정이 진정 행복한 가정일까?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 가정이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는가? 엄마는 가족이 아닌가? 비록 본인 세대에선 큰 일 없이 넘어가 그렇게 보였을지언정 어머니의 우울함이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테고, 곪은 상처는 시한폭탄이 되어 훗날 자녀들의 결혼생활 속 언젠가 터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순종적인 아내들은 그럼 남편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정말 반쪽뿐인 사람이었던 것인가? 설령 반쪽이었다 한들 자신의 반쪽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채운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피 한방울 안 섞인 생판 남인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쉽게 묶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실낱같은 제도를 의심없이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고 싶은 것일까?
남녀의 관계가 이토록 불공평한 것이 당연시 되는 것이 많이 포기했다 싶은 이날까지도 이해가되지 않아서, 어쩌면 여자에게는 태어나면서 부터 죄가 있고, 여자란 남자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진 종속적 존재라는 성경 속의 말이 사실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 몇천년 전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라는데 다 맞다 치자. 그래도 여전히 기분이 나쁘다.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에 대등한 관계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니. 이왕 불공평 할거면 내쪽이 더 나은 쪽이면 좋았을걸 내가 주가 아닌 종이라니... 그것 참 거지같군. 차라리 산을 좋아하되 산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듯 사람을 좋아할때도 기대를 버리라는 법륜스님 말을 듣는게 속이라도 좀 편해진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친들, 어른들의 말은 언제나 옳다. 정말이지 틀린 게 하나 없다. 아마 이 방법 저 방법 해볼 거 다 보고 평생을 살아봐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기에 너무 애쓰고 살지 말라고 훗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리라…
Stephanie S. Lee, Happy Marriage, 2014, Color &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29 ½˝ (H) x 25 ¼˝ (W) x 2 ¾˝ (D)
이런, 결혼생활 15년 만에 나는 사나운 페미니스트가 되어있다.
‘결혼이란, 마음에 영원한 사랑을 강제하는 가장 무자비한 법적 시도’라는 말에 박수치고, '여자의 희생따윈 개나 줘버려!’ 하고 부르짖는, 성경마저 불공평하다며 식식거리는 삐뚤어진 여자… 어찌보면 이렇게 참을성 없고 유별난, 공격적인 여자와 함께 매일을 마주해야 하는 저 사람도 참 안되었다 싶다. 우리가 상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와 함께하는 나의 모습이 좋아서일텐데. 그 사람 앞에선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일텐데…
결국 인간은 남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일뿐 일지도 모르는데 이왕이면 서로가 서로의 긍정적인 모습만 끌어내 주며 평생을 살아가면 좋았을 것을… 많은 날들을 ‘너가 더 잘못했다’, ‘내가 더 힘들다’ 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을 함께 목격해 주었고, 아직은 이 실낱같은 결혼이란 제도에 묶여진 채 살고있다. 피를 나누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 된다는거... 힘들고, 모순도 많지만 세월을 견뎌 운좋게 지켜낼수만 있다면 멍들고 상처투성이 일지라도 어려운 만큼 가치 있는것이려나?
함부로 장담하지 않겠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것이 바로 결혼생활이었으므로. 내 마음도 스스로 다스리지 못 하는 주제에 남의 마음까지 멋대로 하려 하다니... 사과는 맞닿은 부분부터 썩기 시작한다하고, 나무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심어야 서로의 그림자를 벗어나 성장할 수 있다 하니 지하실과 2층의 사이도 너무 서운해 하지 말기로 하자.
한 사람과 함께 끝까지 갈 수 있는 것도 운, 그렇지 못한 것도 운이다. 그저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실히 살아가는 것 이상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걸 인정하며 남은 세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 적응하며 살면 그 뿐… 너무 애쓰지 않기로 하자.
(P.S.
멋모를 때 정신없이 빠져들어 아가씨 적 신던 하이힐 다 벗어던진채 맨발로
뛰며 열심히 살았다면, 결혼생활 중 여자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새빨간 황혼에 가정의 꽃 활짝 피워놓고
자유로이 자아를 찾아 떠나 날아다닐 수 있는 시기에 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때는 다 늙어 하이힐을
신지도 못하겠지만 인내의 세월로 얻은 날개를 달고 맨발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의 말은 틀리는 법이 없으니, 장담할
순 없겠으나 그때쯤 남자들도 철이 들지 모른다. 그러면 그때쯤은 나도 ‘이 사나운 여자랑 매일을 마주해야 하는 당신도 참 안됐구려…’ 하는 생각을
할 정도의 여유를 가진 조금은 지혜로운 아내가 되어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려면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난 아마 황혼의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내 성질에 못이겨 홧병으로 나가 떨어질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