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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6 13:46
Cool New Yorkers (2) '르네상스 우먼' 케이트 오 트라불시(Kate Oh Trabul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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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New Yorkers
<2> 케이트 오 트라불시 Kate Oh Trabulsi
발레 소녀, 패션모델, 화가, 무용수, 뮤지엄 도슨트, 재단 이사, 그리고?
메트로폴리탄뮤지엄 그레이트홀 발코니에서 케이트 오 트라불시씨.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한 우물만 파라"는 속담이 통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한 우물에만 집착하라고 조언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가지씩은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채 살아 간다. 그러나, 어떤 이는 손가락 다섯개가 모자랄 정도의 재능을 펼치면서 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엔 화가, 조각가, 수학자, 과학자, 발명가, 해부학자, 작곡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었다. "내가 깨어나보니, 세상이 여전히 잠자고 있더라"고 노트에 썼던 레오나르도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2016년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요동치는 재능과 열정으로 깨어있는 멋진 사람들이 있다.
"진정 위대한 재능은 실행하는데서 행복을 발견한다"는 괴테의 말에 따르면, 케이트 오 트라불시(Kate Oh Trabulsi, 49)씨는 분명 행복한 사람일 터이다. 뉴욕처럼 우리의 오감(五感, five senses)을 시시각각 자극시키며 영감을 주는 도시에서 트라불시씨는 화가이자 무용수, 뮤지엄 안내원(museum docent)이자 교육자, 그리고 재단이사로 끊임없이 자기변신을 하는 카멜리온, 쿨 뉴요커(Cool New Yorker)다.
케이트 오 트라불시씨와 그리스 신화에서 미모, 즐거움, 풍요함을 상징하는 조각 삼미신(三美神, The Three Graces)'.
케이트 오씨는 1966년 '예향' 광주에서 태어나 소녀시대엔 발레를 배웠고, 대학시절엔 패션모델로 활동했다. 하지만, 1992년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전공은 미술로 바뀐다.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학사와 석사학위까지 받은 후에도 지적인 호기심은 계속 자랐다. 결혼하고, 딸을 키우면서도 크리스티 경매사의 코스와 뉴욕식물원의 플라워디자인 코스까지 밟았다.
그러는 한편, 트라불시씨의 보폭은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안까지 넓어진다. 뮤지엄의 한국어 도슨트로서 10년째 한인 관람객들에게 뮤지엄 소장품 하이라이트를 해설해주어온 것이다. 그러면서 민화를 발견했고, 이제는 작가로서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미자연사박물관까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한인 2세들과 타민족에게도 한국문화의 멋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한때 골프도 잘 쳤다. 9홀 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후 골프채는 놓았지만,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전시회 오프닝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기원무를 추면서 한국 미술과 음악, 무용의 풍취와 아름다움을 싱크로나이즈하는 재능과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면, 현대의 르네상스 여성, 케이트 오 트라블시씨의 현란한 자기변신은 또 어디로 갈까?
케이트 오씨가 2004년 메트가 4500만 달러에 구입한 두치오의 성모자화(Madonna and Chil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11시 메트뮤지엄 하이라이트 투어에서 트라불시씨는 관람객 14명을 이끌고 1시간여 동안 소장품 10여점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화가로서 미술사와 테크닉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 발레댄서 출신으로서 우아한 동작과 매너, 패션모델을 거친 무용수로서 무대체질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그리고 우리 민화풍의 유머까지 가미해서 작품을 해설했다.
그날 도슨트로서의 멋진 모습은 케이트 오 트라불시씨의 빙산일각(氷山一角)에 불과하다. 다재다능한 뉴요커, 우리시대 르네상스 여인의 쿨한 삶에 주목해 보았다.
A Modern-Day Renaissance Woman
An Interview with Kate Oh Trabulsi
에드가 드가의 청동조각 '14세 소녀 무용수'. 트라불시씨도 한때는 발레 소녀였다.
-화가, 무용가, 뮤지엄 도슨트...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요. 무엇이 가장 먼저였는지요?
"고등학교때 무용 선생님의 권유로 발레를 했었고,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그 당시 워낙 몸이 약해서 집안의 반대가 있었어요. 어느 더운 여름날 밀폐된 공간의 연습실 문을 열었을 때 현기증을 느끼고 가방을 내려놓았어요. 그후 몇년 후 꿈에 그리던 유학길에 올라 미술 공부를 하게되었어요 현재 화가이면서 박물관의 도슨트 일을 자원봉사로 하고있습니다."
-발레가 그림에 영향을 줄 것 같은데요.
"오랜 시간 한곳에 앉아 그림 그리다 보면 몸이 불편해지는데, 어릴 때 발레하면서 배웠던 스트레칭이나 기본 자세는 지금도 도움을 주고있어서 배워놓은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전문 무용수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기본 자세를 가르쳐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니 세월의 흔적은 버릴게 없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복제 미술회사를 운영하셨다고요.
"2000년 대학원 졸업 후 취직이냐, 그림 작업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작업도 하면서 경제적인 독립도 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비자 문제가 있었고, 그 당시 순수미술로 비자 받기란 쉽지 않았어요. 투자 이민도 전공과 관련이 있는 직종으로 한정되어있었고요. 수소문 끝에 불란서에서 개발한, 그 당시 획기적인 프린트 기계를 지인에게서 우연히 소개받고 복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명화를 복제하셨나요?
"세계적인 명작들은 물론, 일반 사진도 100% 면 캔버스에 찍혀나오고 고객이 원하면 수정 작업, 붓 터치로 유화처럼 그려내고, 방수 스프레이를 뿌려서 마무리하죠."
-고객은 누구였나요?
"주 고객이었던 사진관이었어요. 처음엔 인기가 좋아서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었는데 9/11 사태가 일어났고, 고객이 점점 줄어들면서 내리막 길을 가고 있었지요. 그즈음, 고객의 요청으로 메트 박물관에 걸려있는 명작을 복제해달라는 주문 받았어요 오래된 고화들은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주문을 받아들였지요."
하이라이트 투어 중 한국실에서 삼국시대 7세기 중엽 금동 반가사유 보살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명작복제 사업을 하시면서 미술이 다르게 보였을 것 같네요.
"좀더 자세히 보기위해 박물관을 찾았어요. 학교 다닐 때는 막연히 숙제를 하기위해 들렀던 메트 박물관의 그림들이 어느 순간 아주 작은 부분까지 속속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예를 들어 작가들의 각기 다른 개성의 붓 처리, 색깔, 모양, 구도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4년 동안 사업이 아니라 공부를 한셈이죠?"
-메트뮤지엄에서 또 다른 길, 도슨트를 발견하신 셈이네요. 도슨트는 어떻게 되나요?
"그림 감상이 좋았고, 재미있어서 박물관을 자주 찾게 되었어요. 처음 도슨트 자원봉사를 신청했지만 자리가 나지않았어요. 2004년 가을부터 안내 데스크에서 1년 일하면서 박물관 내부를 관찰하고, 각 기관에 대해서 익숙해졌지요. 그 무렵 교육부에서 자리가 났다며 도슨트 면접하라는 연락이 왔어요. 1년 동안 교육을 받고 한국어 하이라이트 도슨트 일을 하게 되었어요. 도슨트는 10년째이며, 한국어 가이드 캡틴을 3년째 하고 있지요. "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외국에서 100%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로 그림 설명 들으며 세계 명작들을 감상하게되어 무척 고마워하십니다. 명함 주시며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분들도 있고, 때로는 팁이나 점심 사겠다는 분들도 있어서 정중하게 사절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정이 많은 사랑스런 국민이잖아요."
-전업작가이면서 뮤지엄에서 자원봉사하면서 어떤 혜택이 있을까요?
"박물관에서는 도슨트 자원봉사들에게 계속해서 한달에 몇번씩 교육도 시켜주고, 지속적으로 후원해 주고있어요. 새로 열릴 특별전시 교육이라든가 도슨트들끼리 공부하게해서 정보도 교환하고, 발표하여 잘못된 정보가 나가지 않게 서로가 지켜주며 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박물관 신분증으로 다른 박물관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직원 세일 등등...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자원봉사자들이 한번 들어오면 잘 나가지를 않아요. 지금 한국어 도슨트는 저를 포함 7분인데 20년 가까이 경력을 가진 베테랑 선배님들도 많아요. 그리고 박물관에서 일하는 화가 직원들에게는 1-2년에 한번씩 박물관에서 그룹 전시도 제공하고 있어서 저에게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메트뮤지엄 한국어 투어는 매주 화/금요일 오후 12시 15분-1시 30분에 진행된다.
스튜디오에서 민화 작업 중인 케이트 오 트라불시씨.
-파슨스에서 회화/조각을 전공하셨는데, 특별히 민화를 선택하시게 된 이유는?
"도슨트로 세계 유명 작품들을 설명하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허전함이 생기더군요. 우리 문화예술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은데 하고요. 20년 넘게 타국에 살면서 우리 문화가 그립고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 뜻을 이해하겠더군요. 그래서 시작하게된 게 민화 그림이었어요."
-민화의 매력이라면.
"민화에는 교과서가 없어요.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매력적이죠. 일관된 시점이나 화법을 무시하고 표현되기도 하고요. 알록달록 오방색을 이용해서 그린 우리 민화 그림들은 원색적으로 그려져서 건물의 단청이나 한복의 아름다움도 엿볼 수 있어요. 민화는 단순한 아름다움의 표현 방식을 넘어 무병장수, 부귀공명, 다산과 같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착, 소망이나 기원을 담은 그림이라는 게 매력있었던 같아요."
-민화에는 서양화에서 담을 수 있는 무엇이 있나요?
"민화는 한지를 이용해서 그려요.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서 섬유질이 있어 단단하고 질겨요. 장기보존이 가능하고 잘 찢어지지도 않고요. 공기가 잘 통해서 온도나 습도 조절 능력이 있으며 마치 살아있는 느낌입니다. 한지의 우수성은 요즈음 많이 거론되고 있어요. 천년을 간다는 한지는 세월이 갈수록 결이 고와진다고 하더군요. 한지에 작업하다보면 먹물이 퍼지는 짜릿함을 서양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분이죠."
2014년 12월 첼시 쿠하우스 갤러리(Coohaus Art Gallery) 개인전에 전시된 연꽃 시리즈 'Spirit, Unity and Enduring Hope'.
-최근 한국에서 전시하셨다구요.
"한미문화예술재단 USA 창립 10주년 특별기획 국제교류전 '한지의 울림' 전시가 대한민국국회 주최로 국회의사당에서 약 한달간 열렸어요 출품작 모두 한지를 이용해 만든 작품들로 해외 5분 국내 작가 5분 이렇게 10분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좋은 반응을 보였어요. 특히 개막식에서 한복 디자이너 박지현 재단 이사님께서 한복을 지원해주셔서 입고 행사에 참여하게됐어요. 감사했어요. 이번 국회 전시는 훌륭하신 작가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저에게는 영광된 자리였던 것 같아요."
-전시에서 한국 무용 공연을 하시던데요.
"전시회 개막식에 가끔 전통 무용을 추는 까닭은 전시회에 특히 뉴욕에는 타민족들도 많이 오는 곳이기에 우리 문화예술을 한자리에서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우리의 민화기법을 이용한 저의 그림은 눈으로 감상하게 하고, 전통 국악음악과 무용, 우리 장단과 율동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기원무는 왕비가 높은 누각에 올라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춤입니다. 모란이 수놓아져있는 이 의상은 무척 화려해서 타민족들의 감탄사를 자주 듣기도 하지요."
2015년 9월 베이징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에서 트라불시씨가 '기원무'를 추고 있다. http://www.kateohtrabulsi.com
-어려서 발레를 하셨는데, 한국무용은 어떻게 배우셨나요?
"오랫 동안 한곳에 앉아서 작업하다 보니 운동량이 부족한 걸 느끼게 되었고, 요가라도 할까해서 찾아간 곳이 한국공연예술센터였어요 회장 박수연 선생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 제 97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이매방 선생님의 이수자로서 박 선생님에게서 입춤, 승무, 살풀이, 소고춤, 기원무 등등을 배웠고, 아주 짧은 워크숍이었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 예능 보유자 고 정재만 교수님과의 만남도 있었고요. 그분과 함께 2013년 맨하탄 심포니 스페이스에서 열린 한국공연예술센터 제 19회 정기공연 '태평성대' 공연에도 참가하기도 했지요. 부족한 실력인데 믿고 극장 공연까지 끌고 밀어주신 박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전합니다."
-코리아소사이어티, 미자연사박물관에서 민화 워크숍을 하시면서 어떤 성취감을 느끼시나요?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의 수업은 미국 초,중,고 선생님들을 모시고 열린 워크숍이였는데 이분들이 학교로 돌아가서 현지 학생들에게 우리 민화그림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정말 뿌듯했어요. 수업이 끝나가는데도 집중하며 하나라도 더 배워가려는 그분들의 열정을 보니 보람있더군요.
2015년 8월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교사들에게 민화 워크숍을 연 후 기념촬영을 했다. http://www.kateohtrabulsi.com
미자연사박물관 역시 대 성황을 이루웠어요. 작년 하루 5천378명의 관람객이 왔다는 통계였어요 '스포트라이트 아시아: 빅 캣' 이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아시아 각 나라마다 부스가 나눠져 있었고 우리 한국팀은 까치 호랑이 민화그림 워크숍을 해서 대 인기였어요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라 익살스럽고 어리숙하기까지 느껴지는 호랑이가 친근감이 있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자리가 부족해 돌려 보내야하는 경우가 더 많아 안타까웠어요. 올해 2월 21일에도 자연사 박물관에서 민화 수업해달라는 제의가 들어왔고 지금 샘플 작업하고있어요."
-케이트 오 작가의 민화 워크숍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나요?
"제가 하는 민화수업에는 숨은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예를 들어 호랑이 무릎 부분에 태극기 모양을 자연스럽게 삽입시켜서 현지인들과 차세대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려보게 한 다음 설명을 해주지요. 대한민국 국기가 이렇게 생겼다고요. 요즈음 우리 문화를 배우려는 현지인들이 많아서 한류를 실감하고 있어요. 또한, 되도록이면 한복을 입고 워크숍에 참가합니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우리 옷을 보며 좋아하는 현지인들을 보면 제 마음이 즐겁거든요."
-한때 모델 활동도 하셨다구요.
"발레를 그만두고 슬럼프에 빠져있을때 누군가 모델해보지 않겠냐며 티켓을 주더군요. 본인도 왕년에 모델 출신이었고, 모델 에이젼시를 하고있던 도신우 선배님이셨어요. 패션쇼를 구경하면서 드라이 아이스가 구름처럼 퍼져나오고, 아름다운 곡이 흘러나오면서 조명이 켜지고, 그림처럼 서있던 모델들은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걸어나오는 모델들의 워킹은 정말 멋져보이더군요. 모든 조건이 발레하고 거의 비슷하기도 했었고요. 그 당시 무엇보다 사업상 이외의 일반인들은 해외 여행이 금지되어있던 시기여서 저에게는 외국에 나갈 수있는 돌파구를 찾았고, 집안에서 반대하는 유학비를 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거죠.
2015년 4월 포에츠 덴 시어터(Poet's Den Theater) 공연에서 트라불시씨의 작품으로 무대가 꾸며졌다.
다음날로 국제복장학원 내에 있었던 3개월 코스 모델스쿨을 등록했고, 마치기도 전에 본격적인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88올림픽이 열렸었고 외신 기자들이 한국을 알기위해 대거 취재하던 시기였어요. 이영희 한복, 작고하신 앙드레 김 쇼, 코튼 쇼, 섬유 쇼 등등을 가명을 써가면서 집안 몰래 활동했었어요."
-10살 때, 소녀시절 꿈은 무엇이었는지요?
"화가였어요. 어릴적 우연히 신문에 나온 모 페인트 회사의 광고를 보고 색깔을 칠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던 기억이 나요. 꿈을 이룬 셈이네요 밤샘하며 색칠을 하고 있으니까요."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오나요?
"저는 주로 연꽃을 자주 그립니다. 연꽃은 삼국시대 불교의 유입 이후로 불교의 상징으로 여겨 긴 수행 후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의 모습과 빛의 상징이자 생명의 근원입니다. 연꽃은 하나하나에 부처가 탄생한다는 의미를 지녔다고 하더군요. 요즈음 한국에선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몇년 전 고국방문 길에 충남 마곡사에서 수불스님의 지도하에 있었던 외국인을 위한 간화선(看話禪)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배운 명상 지도가 작품 구상하는데 도움을 주고있다고 생각합니다.
Kate Oh Trabulsi, Spirit, Unity and Enduring Hope #6, Acrylic on Mulberry Paper, 30'' x 30'' x 1.5''
종교를 떠나 연꽃은 탁한 물에서 고귀하게 피어나고 생명의 창조, 번영, 정화의 의미가 있다고 해서 좋아합니다. 또한, 연꽃은 연잎, 연대, 연밥, 연 뿌리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고, 최근 어렵게 받은 저의 호가 연지당(蓮池堂)이라서 더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지형상 연화 부수형(*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형상)이라고 하더군요."
-뉴욕에서 연꽃 작업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텐데요.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접하고 서로 다른 우리가 질서를 유지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을 통해 표현해 보았어요. 각색의 꽃들 그리고 그안에 존재하는 영롱한 씨앗들을 보면서 개개인의 아름다운 꿈과 이상을 표현한 것이죠. 꽃 한송이 한송이마다 다른 색의 무궁한 가능성과 염원을 가진 씨앗을 품고 있고, 저는 그 다양성과 신비로움 그리고 그것이 주는 조화로움의 선물을 제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읍니다."
-뉴욕이 자신에게 무엇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수많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등 저에겐 천국같은 곳이지요. 세계 어디를 가도 뉴욕처럼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 곳은 없어요. 아주 매력있는 도시죠. 최고가 되고싶어 각자의 꿈을 가지고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때로는 내려놓으려고 노력도 해보고. 뉴욕에 살고 있어서 큰 혜택, 그리고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즐겨찾는 식당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카라바지오(Caravaggio, 23 East 74th St.)과 그리포네(Grifone, 244 East 46th St.)입니다. 음식이 맛도 있고, 조용히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20년 단골이기도 하지요."
Kate Oh Trabulsi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펼쳐오셨는데, 새로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는지요.
"최근 한국 다녀오면서 한복 만드는 서적을 구해왔어요. 한지에 사군자나, 민화를 그려서 한복을 만들어 입으려고요. 5월에 있을 개인전시 개막식에 입으려면 부지런히 배워야겠어요."
-만약 무인도에 일주일간 갖혀있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것 3가지는?
"붓, 종이, 먹입니다. 그림을 그릴꺼예요."
-인생의 모토는?
"즐겁게 살자."
http://www.kateohtrabulsi.com
*Cool New Yorker <1> 행복을 바느질하는 남자 민형은씨
뉴욕컬처비트가 새해 PEOPLE 새 시리즈 Cool New Yorkers(쿨 뉴요커)를 시작했습니다.
Cool New Yorkers는 세계 문화의 메카, 다민족의 용광로/샐러드볼, 뉴욕에서 독특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멋지게 사시는 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사회인사나 예술가,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분이 아닐지라도, 라이프 스타일이 우리들에게 영감을 주는 Cool New Yorkers를 찾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추천도 받습니다. Cool New Yorkers로 추천하시는 이유와 연락처를 NYCultureBeat@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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