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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허병렬: 구두방에 앉아 교육을 생각하다
은총의 교실 (2) 최소 인원, 최대 효과의 법칙
구두방에 앉아 교육을 생각하다
“그렇게 비싸면, 새 구두를 사는 게 좋겠습니다.” 헌 구두를 되받으려고 하자 “그럼, 10달러를 감하지요.”라고 하여서 구두 창갈이를 맡겼다. 여러 번 ‘구두 수선과 구두 닦기’ 간판을 보면서 그 앞을 지나다니다 오늘은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먼저 맡은 일이 있다고 하기에, 걸상에 앉아서 신문을 펴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것을 보면서, 아예 신문을 접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벽면에 의자 열 개가 나란히 앉아있다. 그 밑에는 구두닦이용 약품들이 여럿 들어있고, 의자 발치에는 걸레들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 걸레들은 구두를 닦을 때 쓰인다. 구두를 닦는 일꾼들은 열 명이 같은 색 T셔츠를 입고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이 들어오면 일꾼들이 한 팔을 높이 쳐들고 그들을 맞으며 각자의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 그들은 똑같은 순서로 약품과 헝겊을 사용하면서 손님의 구두를 닦는다.
손님들은 반짝이는 구두에 만족하며 1달러씩 팁을 주고, 떠나기 전에 회계 담당자에게 수고비를 지불한다. 구두 수선은 회계가 앉아있는 뒷방에서 이루어진다. 회계 담당자는 일감이 들어올 때마다 손님이 요구하는 일에 대한 수고비를 작정하고, 이을 받는다.
이 가게의 종사자는 모두 12명이고, 각자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필자는 거기에 머무는 동안에 경영학을 연구하였다. 어떻게 하면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의 기준이 되는 본보기가 바로 거기 있었다. 그곳에는 겨우 12명이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제각기 숙련공들이었고, 그들은 맡은 일을 즐기고 있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이다. 이렇게 우리의 생활은 많은 부분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들이 있다.
어느 지역에서 교실에 모든 디지털 기구로 설비를 갖추고 학생들이 제각기 공부하도록 계획하였으나,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교육의 독특한 어려움이 여기 있다. 특히 인성교육을 기계에 맡길 수 없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요구한다. 목적 없이 애매하게, 계획 없이 순간에 따라 이룰 수 없고, 교육방법의 연구 없이 적당히 해결할 수 없고, 같은 방법으로 여러 학생을 다룰 수 없는 것이 교육이다. 모든 교육 자료는 교육을 돕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지만, 결코 교육 자체는 아니다.
교육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갖췄는데, 도무지 성적을 올리지 못 한다는 한탄은 무의미한 것이다. 어떤 행동이 좋은지 알리려면, 그 본보기로 부모가 그런 행동을 하면 된다. 친구들과의 의견 충돌을 잘 해결하는 부모의 자녀는 그것을 본받을 것이다. 자녀가 열심히 한 것에 대해 칭찬을 하는 부모의 자녀는, 친구들의 행동을 칭찬할 것이다. 각 가정에서 자녀의 성적에 예민한 반면, 왜 성적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분석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거기에도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는데 성적이 좋지 않다면 공부하는 방법을 바꿔볼 일이다. 그리고 성적에 관계없이 본인의 노력을 칭찬하고 격려할 일이다. 그러나 저러나 성적이 뭐 길래 어른들은 그렇게 야단인가. 학생들은 덩달아서 긴장하고. 지나고 나면 성적이 별것 아닌 것을 깨닫지만 그 때는 이미 학창을 떠난 후이다. 하여튼 공부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는 습관이 길러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람직한 삶의 자세니까.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성실하고 진지하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재산의 축적이 아니라, 뜻있는 삶. 생산하는 삶 등이 될 것이다.
구두 수선은 비교적 쉽다. 교육 방법을 개선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항상 염두에 둘 큰일 중의 하나이다. 첫째는 교육방법의 재검토이고, 둘째는 개선하는 방법의 연구이다. 바로 ‘어떻게’를 찾는 일이다. 구두수선 가게에서 구두만 창갈이를 한 것이 아니고, 교육에 관한 필자의 마음도 새롭게 하였다. 이것은 일상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준 선물이다.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