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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이수임: 아들들아, 우리가 늙거들랑...
창가의 선인장 (33) 크루즈 블루스(Cruise Blues)
아들들아, 우리가 늙거들랑...
Soo Im Lee, A.P, Sail 1, 1997, 6.75 x 4.75 inches
배를 타고 내린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꿈 속에서는 여전히 배 안을 헤매고 있다.
파티, 선물, 카드 그리고 새해 인사 등등 버거운 연말 연초를 피해 크루즈를 탔다. 배에 오르려는데 노인이 구급차 침대에 실려 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배에 비해 나이 든 사람들이 많다. 물론 우리보다 젊은 사람도 있고 결혼식도 있었지만.
뷔페에서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 둘이 만나자마자 반갑다며 지팡이를 치켜들고 기운 빠진 펜싱 흉내를 내지 않나! 남편이 살아 생전에 만들어 준 지팡이라며 산신령이나 들고 다닐 것 같은 키 크기의 지팡이에 의지한 할머니도 있다. 가끔 ‘메디칼 팀! 메디칼 팀!’ 하면서 요란한 호출 소리가 들리며 비상벨이 울렸다. “아무래도 요번 배는 잘못 탄 것 같다.”며 남편이 구시렁거렸다.
“우리 남편 봤니?” 뷔페에서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는데 할머니가 묻는다. “ 너 바로 전에 네 남편과 함께 밥 먹고 있었잖아? “나 결혼한 지 75년 됐는데 남편을 잃어버렸어.” 한다. 결혼한 지 75년이 됐다면 거의 100살은 됐다는 얘긴데 80 정도로 보이는 것이 치매가 왔나 보다. 그로 인해 집을 나가 잃어버릴까 봐 아예 남편이 배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태운 것은 아닐까?
스파에서 만난 할머니는 내가 내린 후에도 두 달 반이다 더 배에 남아 아프리카를 돈단다. 지루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집에 혼자 있다 죽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두렵다”며 음식이 항상 준비되어있고, 수시로 청소도 해주는 배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단다.
거동이 불편해 집에 있으면 청소하고 요리해줄 사람 불러야지, 빌 내야지, 등등 여러 잡다한 일들에 신경 쓰지만, 배에 거주하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크루즈 여행이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이라 한 곳에 머물며 그곳의 문화를 알고 즐길 수는 없다. 하지만, 잠자리 들기 전에 다음날 닻을 내릴 항구를 상상하는 맛, 긴 시간을 전화와 컴퓨터 없이 책을 읽으며 보낼 수 있는 공간, 게다가 공기도 좋고 음식과 잠자리가 정갈해서 타게 된다.
어느 복권 탄 부부가 외부와 단절하기 위해 크루즈로 잠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식들이나 이따금 정박하는 항구로 찾아와 만나면서.
"아들들아! 먼 훗날, 그리 멀지도 않았나? 엄마가 기력이 쇠하면, 크루즈에다 버릴래? 너희가 만나고 싶으면 항구로 찾아오고 그것도 귀찮으면 오지 않아도 괜찮아.”
두 놈 다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