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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스테파니 S. 리: 나는 뉴욕의 영원한 에트랑제
흔들리며 피는 꽃 (9) 언제나 관광객으로
나는 뉴욕의 영원한 에트랑제(étranger)
Stephanie S. Lee, City Pond, 2015, Color and Gold pigment on Korean mulberry paper, 19˝ (H) x 31˝ (W) x 1 ¾˝ (D)
뉴욕은 매일이 새로운 도시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에게도 그렇다.
지겹도록 긴 겨울이 우울해도, 냄새나는 지하철에서 고양이 만한 쥐를 만나도, 온갖 인종과 차들이 바글거리며 북적대도, 대 정전과 테러를 겪고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뉴욕만의 매력이 있다.
그것이 아마도 1996년 겨울 처음 본, 그 삭막하고 후즐근한 모습에 실망했던 내가 이날까지 뉴욕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일것이다.
이곳에서 지낸지도 올해로 딱 20년이 되었다.
19살에 와서 어느새 마흔을 바라보고 있으니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또 나머지 반절은 미국에서 보낸셈이다. 그래도 유년시절의 기억이란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기도 할 만큼 영향력이 큰 탓에 나는 아직도 집 떠나온 이방인의 마음으로 산다.
이렇게 이방인으로 사는 것에 장점이 있다면 사물을 늘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의 눈으로 매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살펴보다보면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다.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모르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곳, 모르는게 많아서 늘 호기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곳.
뉴욕이란 곳은 금싸라기 땅의 정가운데를 뚝 떼어 나무와 돌로 채울수 있는 배짱과 낭만을 가진 곳이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도심외곽의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즐길수 있는 축복받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Stephanie S. Lee, Lily Pond, 2015, Color and Gold pigment on Korean mulberry paper, 19˝ (H) x 31˝ (W) x 1 ¾˝ (D)
서로 다른 문화가 모여 충돌하지 않고 어우러질 수 있는 장.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언어와 문화의 커튼을 치면 얼마든지 스스로를 고립시킨채 살 수 있는 사회.
온갖 계층의 인종을 받아들이는 열린 곳인 동시에 최상위층의 완벽히 차단된 생활을 함께 보장하는 곳. 그렇게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지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것을 함께 품은 아이러니한 장소.
붙잡으면 잡힐것 같은 거리에 잡을 수 없는 것들이 공존하고, 모순과 변화, 다양성과 차이, 그 모든 것의 거리들이 짧아졌다 멀었다 하며 에너지를 일으키는 밀당의 고수같은 도시. 이 변화무쌍하고 모순으로 가득찬,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서면 생각나는, 미워할 수 없는 도시.
이곳에서 나도, 뉴욕도, 그 사이 참 많이 변했다.
무지하게 촌스럽고 멋 모르던 소녀가 제 손으로 돈도 벌어보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며 어느새 뉴욕 촌년이 되어있다. 여전히 모르는것 많고, 촌스럽고, 무식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유연해 졌고, 다시 단단해졌다. ‘최악의 경우 나에겐 돌아갈 곳이 있다’ 라는 것을 담보삼아 용감하고 씩씩하게 지내왔고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그곳의 모든 것을 새롭게 볼 수있을 것 같다.
어쩌면 여행자의 자세란 것은 우리가 완결이 아닌 과정 중에 살아가고 있음을 일깨워주기에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오늘이 끝이 아닌, 더 나은 어딘가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적잖은 위로와 위안이 되기에… 오늘도 나는 나만의 뉴욕이자 모두의 뉴욕인 이곳에서 관광객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