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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이영주: 뉴욕 촌뜨기의 어떤 하루
뉴욕 촌뜨기의 일기 (31)
뉴욕 촌뜨기의 어떤 하루
‘피카소전’이 곧 끝난다고 해서 지인들과 부랴부랴 맨해튼에 나갔던 날입니다. 버스를 타고 40가에서 내리자 이왕이면 운동 삼아 모마(Museum of Modern Art)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42가로 도시를 횡단하는데, 42가 주변은 뮤지컬 성지답게 수많은 극장들이 요란하게 네온사인과 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호객하는 모양새가 여간 복작거리지 않았습니다. 혼자라면 그냥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을텐데, 이렇게 맨하튼 길을 걷는 건 처음이라는 영씨가 전화기를 꺼내 수없이 사진을 찍는 바람에 자주 멈추게 되었습니다. 당혹스런 일은 자신만 사진 찍어달라는 게 아니고 같이 찍자는 바람에 거절할 처지도 아니니 같이 찍기도 하고 찍어주면서 처음 뉴욕에 온 관광객처럼 촌뜨기 아닌 촌뜨기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뚱뚱이 조형물은 그 뒤에 들어가 얼굴을 내놓으면 내가 우스꽝스런 뚱뚱이가 되는 것입니다. 남이섬에 가면 배용준 등신대 사진을 세워놓고 그 옆에 서서 함께(?) 기념 촬영을 하거나 아니면 뒤에 가서 얼굴을 내놓으면 자신이 배용준 되는 사진을 찍는 곳이 있던 게 생각납니다. 암튼 셋이서 한번씩 그 뒤에 들어가 뚱뚱이가 되었습니다.
좀 더 걸어가자 이번엔 왁스로 만든 교황님 등신대 모형이 인자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가톨릭인 글라라가 “어쩜 교황님 피부가 이렇게 고우세요? 꼭 진짜 교황님 같아요.”, 하면서 사진을 찍어달라며 옆에 섰습니다. 왁스뮤지엄 앞이었다는데, 뉴욕통으로 알려진 저지만 뉴욕서 30년 넘게 살면서도 가본 적이 없어서 그곳에 왁스 뮤지엄 있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왁스 뮤지엄은 어느 나라에 가든 관광객을 위해서 만들어 놓으므로 35년 전, 처음 유럽에 갔을 땐 그게 너무 신기해서 좋아하는 배우 왁스 인형 앞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가톨릭이니 양쪽에서 글라라와 함께 교황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니 정말 교황님이랑 찍은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진짜 교황님과 사진 찍은 일이 있습니다. 1979년, 처음 유럽에 갔을 때 입니다. 마침 부활절이어서 그곳서 유학하고 계시던 신부님의 배려로 영세 받는 유학생의 대모를 서게 되었습니다. 미사 후에는 교황님과 담소하는 시간도 주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교황님과는 사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규정이었습니다. 나중에 교황청 사진사가 찍은 사진을 로마 시내 한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서운함이 풀렸습니다. 말해준 시장에 가보니 수많은 교황님 행사 사진들이 진열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얼굴 있는 사진은 모조리 다 샀습니다.
그렇게 인도에 차려진 요란한 조형물들과 네온사인이 정신없이 번쩍이는 길을 지나자 42가 코너에 대형 H&M 스토어가 있었습니다. 패션은 여성의 이상향이니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들어가보니 유감스럽게도 스토어의 크기 빼고 우리 입맛에 맞는 패션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처럼 셋이서 맘에 드는 걸 하나 골랐으나 맞는 사이즈가 없었습니다. 재미가 없어져서 짐짓 바쁜 채 빨리 모마부터 가자면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모마에서 피카소 특별전은 4층에서 하고 있었습니다만, 동행들은 6층서부터 보고 내려오고 싶어 했습니다. 6층은 모마 소장품인 회화와 조각의 상설 전시장입니다. 오랜만에 세계적 대가들의 작품을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황홀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피카소 조각전 때문인지 여느 때보다 피카소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1985년인가, 바르셀로나에 가서 피카소 박물관에 갔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15살 피카소가 그린 그림부터 뎃상, 말년까지의 시대별 회화와 조각,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뮤지엄이 문 열자마자 들어가서 두 번씩 자세히 돌아보았던 그때의 감동이 전율처럼 온몸에서 느껴졌습니다. 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포함해 작품 수가 3만 여 점이라고 하니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경이롭기만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고갱과 클림트의 그림도 다시 보니 좋았습니다. 특히 처음 본 클림트의 아델 블로흐 바우어(Adele Bloch-Bauer II)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이날 회화 전시관에서의 백미는 우루과이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보편적 구성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Joaquin Torres Garcia, 1874~1949)를 만난 일입니다. 가르시아의 작품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단순한 선이나 동화적인 작품을 좋아하는 저는 가르시아의 작품을 보는 순간 뭔지 모르지만 저만 느낄 수 있는 신나는 소통을 감지한 것입니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든지, 피카소와 교류가 있었다든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도와 팔마데 마요르카 성당과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가족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을 하기도 했다는 뒷이야기들이 더욱 그를 친근하게 해주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회화, 조각관에서 에너지를 소모한 덕분에 정작 피카소 조각전은 즐기지를 못했습니다. 피카소 조각이라면 언젠가 파리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본 적이 있어서 그때만큼 강렬한 감동이 퍼올라지지가 않았습니다. 아마도 피카소 조각전을 먼저 봤다면 달랐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수많은 멋진 작품 속에서 저는 자전거 부품으로 만든 소품 ‘소의 머리’가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재료들로도 작품을 만든 피카소가 다정한 이웃처럼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너무 많은 예술 작품들을 섭렵하고 나니 기진맥진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35가에 있는 한국식당 ‘초당골’에 갔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입니다. 반찬들이 홈메이드처럼 깔끔하고 구수합니다. 김치비지, 청국장, 뚝배기 불고기 등을 시켜서 배를 두들기며 포식을 하고 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들었습니다.
그날 밤, 영씨는 자정도 훨씬 지난 늦은 시각에 우리들이 찍었던 사진을 줄줄이 보내왔습니다.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오늘 우리들의 길거리 해프닝이 생각나서 쿡-쿡 웃음이 새나왔습니다. 새삼 기분 좋았달까요. 일탈 아닌 일탈이랄까요. 혼자서는 주변 구경 보다는 갈 길만 재촉했던 뉴욕 거리에서, 나이도 적지 않은 제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조형물 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한 촌뜨기 짓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낼 수 없었던 일을 셋이니까 서로 의지해서 용기 낸 일이 유치하지만 유쾌했습니다. 용기를 내니 새로 충전된 인형 모양 몸에 탄력이 느껴지고, 위축됐던 어깨도 짐짓 펴지고, 걸음걸이는 흘러나오는 길거리 음악에 맞춰 저 혼자 리듬을 타면서 춤추듯 그루브가 터졌습니다.
가끔의 일탈이 아니라 매일을 일탈처럼 이렇게 동심으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에서 번쩍! 합니다. 불규칙동사의 효용성? 돌연변이의 기적? 이런 단어들도 함께 떠오르면서.
지루한 일상 속에서 아주 쬐끄만 작은 일이 상상할 수 없는 경이를 선물줄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오묘합니다. 삶은 끊임없이 이렇게 우리에게 새로운 지혜를 깨우쳐줍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