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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스테파니 S. 리: 꽃과 끝, 그리고 시작
흔들리며 피는 꽃 (11) 전시가 끝나고 난 뒤
꽃과 끝, 그리고 시작
Cosmos, 2014, Stephanie S. Lee, Color & gold pigments and ink on Hanji
전시가 끝났다.
몸과 마음을 죄어오던 그 많던 일들이 주위의 도움으로 어찌 어찌 다 해결되었다. 혼자 하는 전시라서 ‘개인’전이라 불릴지언정, 그룹 전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개인전’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한 사람, 한 사람 누구하나 도움주지 않은 분이 없고,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세상에 나 혼자만으로 되는 일이란 없는 법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혹자는 전시 후 몇점을 팔았는지, 얼마나 좋은 기회를 얻었는지로 성과를 따지겠지만, 제발 완성해서 무사히 끝낼 수 있기만을 빌던 때를 생각해 보면 욕심 부리지 말아야 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나름 한다고 했으니 그것으로 족하기로 한다. 그래도 민화라서, 민화이기 때문에 뒤늦게 시작한 길이지만 이 만큼이라도 올 수 있었지 않은가.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민화에 깃든 정신이 새삼 더 고맙다.
많은 작가들이 전시가 막을 내리고나면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우울감과 상실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소진하고나면 사람이 그렇게 무기력해 질 수가 없다. 이번에도 철수 후 며칠은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서 죽은듯 누워 있었다.
그래도 요령이 생긴건지, 엄마가 지원군으로 오셔서 든든해서 그랬는지, 이번 전시의 마무리는 전보다 한결 수월했다. 도움을 줄줄도 알아야 하지만 도움을 청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말, 절절이 공감한 터라 이번에는 염치고 뭐고 차릴 생각 않고 엄마 덕을 야무지게 보았다. 일하는 엄마아래서 셀프로 컸다고 생각하며 쌓인 서러움과 원망이 한번에 다 없어질만큼 원없이 엄마를 부려먹었다. 나쁜 딸이다.
이런 저런 후회도, 아쉬움도 많지만 그래도 전시가 끝나면 꽃이 풍성해져서 좋다. 철없던 연애시절엔 나 잠시 즐겁자고 금방 시들어버릴 꽃을 꺾는 건 못된 사치라며 꽃다발 대신 화분을 달라고 까다로이 군적이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제는 나에게 꽃다발을 주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 화분을 받을 일은 더더욱 없다. 지나고 보니 꽃이 아닌 화분을 받았던들, 나란 사람은 그것을 끈기있게 관리해 꽃 피울 타입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여튼 이래저래 꽃 선물 받을 일이 별로 없는 차에 전시 핑계로 꽃을 잔뜩 받으면 한동안 집안에 꽃향기가 가득한게 기분이 참 좋다. 식탁 가득 만개한 꽃을 쳐다보며 앉아있자면 배우 이병헌의 나레이션으로 화제가 되었던 SBS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 에서 본 브록파 족 생각이 난다. 꽃을 하늘에서 준 최고의 선물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꽃다발을 펼쳐 꽃병에 옮겨 꽃아놓으니 그들처럼 나도 잠시나마 부자가 된듯 행복해져온다.
그래, 꺾여와 곧 시들어버릴지언정 최선을 다해 이쁘지 않은가.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꽃들이 저마다의 때에 나름의 모습으로 피고지듯이, 비록 서툴지언정 언제나 최선을 다해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무기력한 마음을 다독여 일으켜 본다.